항일유적지 답사 실기(1)
그 산 그 강은 기억하네
항일투쟁선렬 후손들과 함께
김창영
사람의 마음이 요사하기 그지 없는가 보다. 2011년 1년 반동안 진행된 "압록강 물길따라, 동포들 숨결찾아" 특별기획 련재를 끝마친 뒤였다. 같은 주제의 취재와 집필이 1년 넘게 진행되다보니 어느 순간 지루감이 갈마들어 하루 빨리 끝마치고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었는데 정작 끝을 맺은 시점에서는 또 다른 "일감"을 찾는데 신경이 곤두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였다. 신문사 글쟁이로서 어쩌면 정해진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일감"을 찾는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압록강 연안 조선족 마을들을 취재하면서 당지 사람들로부터 이곳이 항일투쟁의 현장이란 소개를 들을 때마다 머리속에 떠오르던 욕망이 고개를 쳐들었기 때문이다. 마침 당시 량세봉장군항일투쟁자료전시관 관장으로 활약하는 전정혁(황포군관학교 제6기 졸업생 전병균의 아들)씨를 만났었다. 전정혁씨는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본데 의하면 설문조사에 응한 과반수의 조선족들이 료녕성 경내에서 활동했던 리홍광, 량세봉, 한락연, 리진룡, 량기하 등 항일영웅렬사들을 모르고 있고 다수가 류린석, 윤희순 등 독립군투사들을 모르고 있다고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수 없었다.
허나 정작 실천에 옮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한번은 자료 수집차 지인의 소개를 받아 관전현 당안국에 들렸었는데 하루 종일 점심마저 거르며 자료들을 뒤졌으나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었다. 충분한 력사자료를 확보하지 못하면 답사기는 텅빈 허울에 불과하다. 이런 저런 와중에 료녕대학 력사학부 권혁수교수를 만난 것은 그 당시 급시우같은 행운이였다. 의견교환의 여지도 없이 력사자료를 권교수가 제공하고 답사기 집필을 내가 맡기로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우리의 합작은 갑작스레 일어난 사연으로 인해 시작도 하기 전에 접어야 하는 아쉬움만 남겼다.
솔직히 말해 력사적 민족적 사명감 같은 거창한 명제와는 거리가 먼 나이지만 우리 성 항일유적지 답사기를 쓰는 것은 기자로서의 소박한 꿈이였다. 그런 와중에 전면적인 것은 아니지만 성내 일부 항일유적지를 답사할 기회는 말없이 찾아왔다. 료동항일영렬연구실에서 올 청명을 앞두고 항일투쟁선렬들의 후손들을 조직해 항일유적지 답사를 진행하며 기자의 동행을 요청했던 것이다. 항일투쟁선렬들의 후손들과 함께 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벅찬 기회였다.
청명을 앞둔 3월 28일 아침 일곱시, 제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인 심양시조선족문화예술관 앞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는데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우승희씨가 반갑다며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그처럼 반가울수가 없었다. 우승희씨는 리진룡장군의 처(우씨부인)손자로 10여년전 단동시조선족학교에서 진행된 "리진룡컵글짓기콩클"에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후 관전현 청산구 은광자촌에서 진행된 리진룡장군기념행사 등 여러 행사들에서 자주 만나는 분이였다. 우승희씨는 자신들의 답사에 동행해주어서 몹시 감사하다며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그리곤 방금전에 이야기를 나누던 분을 소개해주는 것이였다. 한중문화콘텐츠연구소 안상경 소장이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안상경 소장은 동북의 항일 유적지를 개보수하는 일에 앞장서왔고 "조선족 항일투사의 후손들"이란 책자를 펴내는 한편 조선족 항일유적지, 항일투사 관련 다큐 제작에 힘을 보태고 있는 분이였다. 안소장과 수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중형봉고차 한대가 일행 옆에 멈춰섰다. 이번 행사를 조직한 료동항일영렬연구실 전전혁 주임(황포군관학교 제6기 졸업생 전병균의 아들)이 차창을 내리며 일행을 보고 빨리 올라타라고 손짓했다.
일행을 태운 봉고차가 동서쾌속도로에 올라서자 전정혁 주임이 일행을 소개했다. 의병장 리진룡장군의 처(우씨부인)손자 우승희씨와 현재 료녕민족사범고등전과학교에서 사업하는 조선혁명군 총사령 양세봉의 외손녀 김춘련 교수는 원래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그외 조선족혁명군 부사령 박대호의 손자 박홍민, 조선혁명군 부사령 최윤구의 조카 강학영, 조선혁명군 중대장 김례옥의 손자 김창하, 조선혁명군 비서장 박윤걸의 아들 박동휘, 조선혁명군 지하통신원 김도선의 손자 김용걸을 비롯하여 한중문화콘텐츠연구소 안상경 소장 등이였다. 모두들 서로 서로 수인사가 끝나자 이번 답사에서 해설을 맡은 전정혁 주임이 답사 코스를 상세히 설명했다.
이네들은 모두 한집 식구 같았다. 서로 서로 면목을 익힌지는 오래되지 않지만 선인들이 같이 항일했다는 리유 하나만으로 가족의 정을 나누는 것이였다. 달리는 차 안에서 이네들의 선인들에 대한 회상이야기를 듣는 나도 그네들과 한집 식구가 된 기분이였다. 이번 답사기의 기본 사적들은 전정혁 주임을 비롯한 이네들의 구술과 안상경 소장의 소개에 근거했음을 미리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