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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텔레비죤방송사업의 전성기를 열며

[인터넷료녕신문] | 발행시간: 2019.05.23일 10:33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8](김희관편8)

1986년 3월 말 주당위에서는 저와 담화를 하면서

사업의 수요에 의해 연변텔레비죤방송국 국장을 맡고 영상사업을 발전시켜보라는 것이였어요. 저는 얼싸 좋다고 했지요. 영상사업에 대해 오래전부터

꿈을 꿔왔으니깐요.

첫손을 댄

음력설문예야회

1986년 7월 중순에 TV방송국에 전근하면서

음력설문예야회프로에 첫 손을 대기 시작했지요. 우선 등근 식탁에 둘어앉아 다과회 방식으로 진행하던 야회프로를 채색 붉빛이 번쩍이는 무대식으로

바꿨어요.무대가 우뚝 서고 조명이 화려해지고 무대구성의 품위가 완전 달라졌어요.



1988년

대형가무‘노들강변’촬영현장, 총감독을 맡은 김희관 국장.

그리고 연변라지오방송국 음악부의 청년작곡가 고창모를

문예부 부장으로 전근시키고 TV음악프로를 맡겼지요. 그의 음악창작을 위해 스튜디오에 있던 피아노를 전문용으로 돌려놓았어요. 문예부를 통해 전

주적으로 우수한 가무, 소품 작품을 뽑게 하고 인기가수들도 불러왔지요. 그래서 김경애의 노래‘오빠의 편지'며 소품‘사촌언니'가 뜨면서 구련옥

가수랑 배우 리옥희랑 강동춘, 송미라 등이 스타로 되였지요.



1991년 음력설문예야회 무대배경을

그린 중앙발레단 무대미술가 고 김태홍선생(가운데)과 함께.

섣달 그믐날 저녁, 저는 주당위의 심열까지 마친

TV음력설문예야회프로테프를 제 손으로 송출부에 올려다 주고 연기가 새뽀얀 애단로를 따라 터벅터벅 걸었어요. 집에 들어서니 부인과 아이들이‘심사

잘됐어요?’ 하며 저의 눈치를 보는 것이였어요. 한참 있다가 술 한잔 들며‘모든 것이 잘됐다. 주당위의 심사에 통과됐다!'고 말하니 식구들이

좋다고 박수를 쳐주었어요.

그러다가 두 시간 후 TV음력설야회가 방송되는데 나는

조마조마했지요. 무대가 환해지면서 조명이 번쩍번쩍하고 복장이 바뀌고‘사촌언니'가 등장하니 모두 배를 끓어안고 웃어대는 것이였어요. 우선 식구들의

축하 박수를 받았지요. 그리고 축하전화벨소리가 밤중까지 울렸어요.

천군만마가 동원된 장관의

1988년에는 봄부터 음력설야회를 구상했지요. 하루는

아침 일찍 청년호에 나갔어요. 청년호의 봄물이 잔잔한데 휘휘 늘어진 수양버들이 물에 비껴 아주 보기 좋더라구요.



청년호반에서 촬영한 대형가무프로

.
그러한 풍경을 보면서 생각을

한거예요. 옛날의 은 작사자, 작곡가가 없는 전통민요고 부터는 작사자, 작곡가가 있거든요. 그래서

민요사에서 을 신민요의 시작이라고 하지요. 청년호에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을 보면서‘이 좋은 노들강변을 배경으로 진짜

을 한번 튕겨보자’그런 생각이 나더라구요.



가야금 예술가 김성삼(왼쪽)의 독주

.

미국방문공연에 함께 갔던 연변예술학원의 김성삼 교수가

을 가야금으로 튕기고 여러분들이 새납소리에 북장구를 울리며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어우러지면 얼마나 좋을가. 또한 로천의

립체무대가 관중들의 시각을 사로잡을 수 있고… 이런 구상이 가무배우 300여명이 등장한 1988년 음력설야회 장면이

된거지요.

그것을 위해 연변의 여러 문공단들에서 북 치고 퉁소

불고 가야금 치는 연예일군들을 연길에 몽땅 모이게 하였어요. 호수가의 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촬영기법으로 주변의 경치를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를 담아내고 현대예술을 담아내고 민속정감을 담아낸거에요.



오래동안 금지곡이였던 을 연주.

거기다 소품에서‘땅우의 노배'가 나오고 ‘깍쟁이'이도

나오고 노래 등 좋은 프로가 줄줄이 나왔지요. 한차례의 TV문예의 폭풍이 일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두번의

음력설문예야회를 기획, 제작하는 과정에 비교적 성숙한 TV문예사상이 섰어요.

어떤 정신적 동력으로 TV음력설야회를 구성할것인가?

음력설 다음은 봄이 온다, 그러면 엄동설한과 새 봄의 만남이다. 역시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만남이고. 전통예술과 현대예술과의 만남이다. 그렇다면

TV음력설야회의 주제는‘만남'이다. 그렇게 정신적 동력을 찾은거예요. 그렇게 제작된 우리의 TV음력설야회는1988년 음력설 직전에 CCTV에서

방송한 전국 TV방송국 음력설야회 스페셜(요약본)에서 첫 프로로 방송되였고 또 우수상까지 받았지요.

북방의 중러변경무역에 렌즈를

돌려

1992년에는 시대에 발맞추어 TV뉴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뉴스의 시야를 좀 넓히자, 연변에만 국한되지 말고 렌즈의 줌인을 멀리까지 당겨보자, 적어도 동북은 다녀보자,

지난해에 구쏘련이 붕괴되고 로씨야가 부활했다는데 어떻게 중로변경의 무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지? 흑룡강성의 흑하랑 수분하랑 중로변경무역이 잘된다고

하는데 한번 나가보자.



수분하 취재길에 경박호에서 남긴

기념. 우로부터 홍길남, 윤상룡, 김희관, 마성록.

등소평어른이 1978년, 일본으로 방문갈 때 한

말씀이 있어요.‘다른 산의 돌이 내 옥을 깰 수 있다.’(他山之石可以功玉) 일본의 경험을 우리가 잘 배워내면 우리 옥이 반짝 빛날 수 있다는

뜻이예요. 그러니 빨리 남의 경험을 배우자는 뜻으로‘도광양회'(韬光养晦)라는 전략도 제기하셨어요. 즉 자기 재간과 능력을 적당히 숨기면서 빨리

힘을 키워라는 뜻이지요.

저는 연변의 중로무역을 춰세우는데 여론으로나마

일조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1992년 5월 중순부터 뉴스부 부주임 홍길남과 윤상룡 기자 등 젊고 능력있는 기자들을 거느리고 짚차를 타고 수분하에

달려 갔어요.



1992년 5월, 수분하

중로무역시장의 로씨야 상인들.

수분하의 중로무역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대성황을

이루었고 붕괴된 쏘련을 비웃기라도 하듯 로씨야상인들의 매대에서는 장군모자가 나뒹굴기도 했어요.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기에

수분하의 의장대들은 매일 아침 오성붉은기를 올리며 게양식을 거행하고 있었지요. 어린 아기가 군복을 입고 국기에 경례를 하는 장면이 뉴스의

포인트가 되기도 했지요.

이런 력사의 변혁시기에 우리 기자들은 수분하에서

일주일 동안 취재를 하고 돌아와 일주일동안 생동한 TV견문 (10편)을 방송했지요. 개혁개방의 시대 중국 동북의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변경무역의 진풍을 통해 보여주었던거지요. 국영기업만 변경무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줌마도, 전업군인도, 농민들도 전민이

동원되여 변경무역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렌즈에 담았지요. 반년 내지 1년 사이에 부자가 된 전형도 보도했고 상업거래를 통해 선진적인 문화를

인입한 사연도 보도했지요.

이 방송된 후 연변에서

야단난거예요. 왕청에서 소상인을 싣고 수분하로 가는 장도뻐스도 생겨나고 연길에서도 룡정에서도 잇달아 장도뻐스가 생겨났지요.



흑룡강성

흑하에서.

그 다음엔 6월에 흑하로 취재를 갔어요. 그쪽은

적막할 줄로 여겼는데 중로변경무역이 대단히 발전했더라구요. 로씨야로 건너가는 통행증을 오전에 신청하니 오후에 곧바로 나왔어요. 로씨야에 건너

가서는 그 곳의 도시를 한 바퀴 빙 돌고 무역시장에 가서 물건을 구매하고 려행사에서 마련한 로씨야 음식을 먹었어요. 특히 로씨야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돼지고기 단지찜은 두터운 기름층을 밀며 고기를 건져 먹는데 아주 별맛이였어요.

연변에 돌아와서 우린 흑하와 로씨야의 광경을 담은

(10편)을 또 일주일동안 방송했지요. 주당위 선전부에서도 우리의 보도가 아주 좋다고 고무해줬어요. 우리 기자들의 역할이

충분한 긍정을 받았고 기자들의 적극성이 대단히 올라갔지요. 당시 우리 기자들의 속마음은 우리 연변의 중로무역도 빨리 그렇게 되였으면 하는

바램이였지요.

한 가정의

형제자매들

1987년 5월, 연길시 공항구역에서

이 발생했어요.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는 대담하게 TV광고로 형사사건을 방송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텔레비죤을 통해

중대사건을 해명한 첫 기록을 올리게 되였어요.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을 친히 방문한

왕충우(王忠禹) 성장(왼쪽).

이것은 중국공안력사에서의 첫 사례로 되였고 공안부는

연변예술극장에서 성대한 표창대회를 열었지요. 표창대회의 날 저도 초대되여 앞가슴에 붉은 꽃을 달았지요. 그날 오후에는 길림성 성장

왕충우(王忠禹)동지께서 친히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을 방문하여 우리를 고무해 주었어요.

이렇게 여러 모로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은 전적으로 TV방송국의 모든 기자편집과 사업일군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고 적극적이고 책임감있게 노력한 결과이지요. 그리고

김진석, 김영택 두분 부총편님께서 진심으로 받들어 주셨기 때문이지요.

저는 한 단위의 흥망은 언제나 인재에 달려있다고

믿었지요. 그러면서 인재를 선택하고 키우기 위해 노력하였지요. 1987년, 그때는 TV방송 운영경비가 많이 부족했어요. 그래도 직원들을 북경에

공부를 보냈어요. 일본 쏘니회사가 북경에서 개학했거든요. TV카메라는 전세계의 99%가 모두 쏘니의 것을 쓰니 말이예요.

영상편집기도 마찬가지구요. 이렇게 우리는 세계 속에서 배우고 빨리 틈새에서 자라나야 했어요. 북경에 2명을 보내 1년씩 체류하면서 공부를 하도록

했고 또 공부하고 싶은 직원들은 학비를 다 대줄테니 연변대학 통신학부 공부를 하라고 적극 권장했지요. 그랬더니 본인들도 잘되고 방송국의 사업도

잘되더라구요.



1989년 5월, 비암산에서 원족의

하루를 즐기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식솔들.

1990년 후부터 외국에 가는 바람이 불어 우리

직원들에게 외국방문 3개월 초청장을 한번에 몇명씩 받아주기도 했어요. 외국에 나가 몇 달간 연수를 하면서 견식도 넓히고 어느 정도 돈도 벌고

하면 이것이 최대의 복지가 아니겠어요? 그러니 모두가 감사해 하는거예요. 지금도 가끔씩 그들은 만나면 그때 얘기를 하는데 ‘아, 그때 그렇게

도운 것이 옳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저의 선배이신 남상렬 국장님이 정년퇴직을 하게

되니 환갑상을 차려드렸구요, 이어 TV방송국에서 은퇴한 로인들의 환갑상을 차려드리는 것은 하나의 기풍으로 되였어요.



전임 남상렬 국장의 환갑상 차림

준비상황을 돌아보는 김희관 국장.

매번 양력설이나 음력설 전야면 우리는 모두 한집안

형제자매가 되여 TV스튜디오에서 함께 설명절을 쇠군 하였는데 정말 재미있었지요. 저도 직원들과 함께 축배를 들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함께

너울너울 춤도 추고 했지요. 지금 그때 사진들을 보면 참으로 행복해지는거예요.

우리 연변TV방송국은 한집안 형제자매와 같은 가족적인

분위기속에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들이 어우러지면서 모두들 즐겁게 사업을 했지요. 자신의 로동이 존중받고 자신의 지식이 존중받고 자신의 노력이 후한

평가를 받는 사업터는 그 누구에게도 자랑스러운 일터가 아니겠어요.

/글 김청수 기자, 영상사진 김성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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