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전히 많은 책을 샀습니다. 하지만 책에 사로잡히기보다 책에 담긴 내용을 읽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때 부터인가 저는 책에 몰입하기보다는 정보를 얻는 데만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지신경학자이자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자 매리언 울프의 이 고백에 공감한다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증빙일 수 있다.
오늘날 인류는 그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이 읽는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 덕이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한 사람이 매일 다양한 기기를 통해
소비하는 정보의 량은 평균 약 34기가바이트, 10만개의 영어 단어에 가까운 량이다. 울프는 “그러나 이처럼 무차별적인 정보를 가볍게 읽는 것은
단지 ‘오락’일 뿐 깊이 읽기도, 깊은 사고도 증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울프가 그갠 낸 책은 디지털 시대에도 왜 굳이 종이책을 읽어야만 하는지를 론하기도 한다. 요약하면 ‘디지털 읽기를 계속하면 종이책을 읽을
때 구축된 뇌의 읽기 회로가 사라지고 따라서 깊이 읽기의 결과물인 비판식 사고와 반성, 공감과 리해 등을 인류가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뇌의 가고성 때문에 한번 디지털 읽기에 최적화된 뇌 회로는 좀처럼 예전처럼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 자신이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는
어린 날 즐겁게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다시 읽으려 시도했지만 빠른 속도의 겉핥기식 독서에 익숙해진 탓에 문장의 깊은 층위를
리해하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디지털 읽기는 종이책 읽기와 읽는 방식부터 다르다. 디지털 읽기의 표준은 훑어보기이다. 스크린으로 읽을 때 우리는 지그재그나 F자 형으로
텍스트를 재빨리 훑어 맥락부터 파악한 후 결론으로 진행한다. 읽기의 결과에도 차이가 있다. 노르웨이 학자 안네 망겐이 학생들에게 짤막한 프랑스
련애소설을 읽혔더니 전자책으로 읽은 그룹은 종이책으로 읽은 그룹에 비해 소설의 세부적인 줄거리나 론리구조 파악에 약했다.
소설 한편을 곱씹어 읽을 때 뇌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감각을 그대로 체험한다. 똘스또이 소설 《안나 까레리나》에서 안나가 철로에 뛰여드는
장면을 읽을 때 독자의 운동 신경세포는 안나와 마찬가지로 활성화된다. 인간이 독서를 통해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원리 덕분이다.
‘훑어보기’의 시대, ‘깊이 읽기’를 유도하기 위한 울프의 노력이 눈물겹다.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