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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이 깨졌다…” 결혼 후 심경고백

[연변일보] | 발행시간: 2019.06.11일 15:52



결혼, 누군가는 ‘달콤한 결말’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의 무덤’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결혼이라지만 막상 부부가 된 뒤에는 현실에 부딪치며 크고 작은 트러블이 생긴다. “내가 생각했던 결혼은 이게 아닌데…” 2030세대 결혼 후 심경고백을 들어본다.

“날 선 말, 상처 돼요”

강모연(35세, 결혼 9년차)

남편은 말수가 적고 감정표현이 적은 사람이다. 그를 본 사람은 누구도 그의 성품이 반듯하고 점잖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결혼 초반 이런 저런 문제로 다툼이 잦을 동안 나는 내 탓을 많이 했다. 내가 참을성이 부족한가? 내 문제인 건가?

시비가 생기면 남편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 흔한 자기해명도 하지 않고 그저 무거운 입을 닫아버리군 했다. 나는 남편은 내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수위를 높여 날이 선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다 상담이라는 걸 받아보자 하고 심리상담사를 찾게 되였다. 상담사가 그랬다. “남편은 안해의 말을 맘에 두지 않은 게 아니예요. 본인이 요구하는 ‘남편’의 상이 있어서 점잖은 남편으로 남으려고 입을 닫았을 뿐, 그 날 선 말들이 모조리 마음에 와 박혀 상처가 돼요.” 그때 나는 뒤통수를 얼얼하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리고나서 상담사는 남편을 향해 말했다. “감정표현을 일절 하지 않는 남편은 소리 지르고 행패 부리는 남편 만큼이나 나빠요. 안해 탓을 하라는 게 아니라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 하고 감정을 안해에게 솔직하게 알려줘야 해요.”

몇번의 상담을 받은 뒤, 남편은 한동안 상상할 수 없는 ‘잔소리쟁이’가 되여버렸다. 내 한마디 말에도 참지 않고 바로 말에 감정을 실어 되받아치군 해서 그즈음 우리는 1차원적인 유치한 싸움을 또 적지 않게 했다. 그런 시간이 한두달 흐르고나서,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더 솔직할 수 있게 되였다.

남편의 화난 마음을 알게 되니 나도 말을 조심하게 됐고 ‘점잖은 남편’을 내려놓은 남편은 한동안은 유치한 반발도 하군 했지만 그 시간이 지나자 바로 반성을 하며 따뜻하게 나를 품어주었다. 그 본인도 감정표출을 그때그때 하니 맘에 남은 찌꺼기가 해소되였던지 한결 개운해진 모습이였다.

결혼 9년차, 싸우는 일이야 없지 않지만 이제 서로를 많이 리해하고 물러설 때를 알아서 잦은 싸움을 벌이지는 않는다. 그럭저럭 평화로운 나날들이다.

“오빠는 왜 안해요?”

한수 (29세, 결혼 10개월차)

또래에 비해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벌고 있는편이다. 그래서 결혼 전부터 돈은 내가 많이 벌 테니 살림은 네가 해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어찌보면 올드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나는 대남자주의이다.

그런데 웬걸, 결혼해보니까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녀자가 살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였다. 사실 결혼에 앞서 거의 동거하다싶이 지낼 때도 살림에 관심이 없는 줄은 알았지만 그때는 결혼하면 달라질 거라고 해서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결혼해도 동거 때랑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집안 살림살이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안해도 사업이 바쁘다. 직업특성상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고 저녁에 야근이 잡힐 때도 많다. 자그마한 체구에 늦게 퇴근해서 쏘파에 쓰러질 때면 너무 안쓰럽다. 그러나 누군가는 저녁을 해야 할 게 아닌가.

“오빠는 왜 안해요? 솔직히 우리 같이 밖에서 일하고 돌아오는데 왜 나만 집안일 해야 돼요?”하고 빤히 올려다보며 되묻는데 솔직히 나도 집안일 할 생각이 눈곱 만큼도 없는 나쁜 남편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분으로 쪼개쓰는 사람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밖에서 돈 버는 일, 집에서까지 정력을 뺏기면 밖에 일도 못하게 될 것이다. 하물며 나는 몇년간 주말에도 한번 쉬여본 적이 없다.

평일에 출근하느라 힘들면 내가 한발 양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말에 쉬면서도 일하러 나가는 남편 밥을 챙겨주지 않으니 나도 못내 서운하다.어떻게 하면 현황을 개변할 수 있을가 고민중이다. 장인장모를 모시고 함께 살면 따뜻한 집밥을 먹을 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밖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깨끗이 정돈된 집에서 따끈한 집밥을 먹고 싶은 게 너무 거창한 바람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안해의 애교에 넘어가 배달음식을 시켜먹는다.

“딸을 질투해요”

김애화(36세, 결혼 9년차)

남들처럼 적당히 련애하고 남들처럼 적당한 시기에 결혼했다. 아이가 생기자 가정의 중심이 아이에게 쏠렸다.

나는 우리 부모가 나에게 그랬듯이 모든 정력을 내 아이에게 쏟아부었다. 좋은 음식, 귀한 음식이 있으면 꼭 남겼다가 아이에게 주고 아이가 다 먹었다고 해야 내가 먹었다. 우리 딸아이는 식성이 까다로워서 뭘 먹어도 조금씩만 맛보고 이내 싫다고 하며 많이 남기군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편을 나몰라라 한 것도 아니다. 아이에게도 남편에게도 똑같이 그릇에 담아서 내놓는데 남편은 내가 아이에게 더 신경을 쓴다며 질투 비슷한 감정을 드러낸다.

자기 딸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솔직히 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부 고민상담 같은 글을 읽다 보니까 이런 사례가 우리 집 뿐이 아니였다.

한번은 뭐가 그렇게 쌓였는지 비싼 체리를 사다가 씻어서는 그릇 채로 안고 방에 쑥 들어가버리는 것이였다. 아이에게 남기지도 않고. 나는 깜짝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 남편이 어렸을 적에 시어머님이 간식을 조금씩만 줘서 언제 한번 성에 차게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결혼해보니 어렸을 적 자라온 환경이 달라서 생기는 에피소드가 많다.

“이상한 료리를 내놓아요”

정림(39세, 결혼 10년차)

8년간의 련애 끝에 결혼했다. 우리는 대학 때부터 남들 하는 건 다하며 련애를 거창하게 했다.

결혼 전엔 나랑 떨어져있으면 죽고 못살 듯이 보이더니 결혼하고 나니까 나랑 붙어있으면 죽고 못살 듯이 보인다. 결혼 전엔 나를 보여주기 위해 화장을 하더니 이제는 나랑 있을 때면 화장을 지운다. 화장을 지우면 딴 사람이 된다.

결혼 전엔 착하고 고분고분하기만 했는데 결혼 후엔 ‘암펌’으로 변했다. 잔소리에, 큰소리에… 애를 닥달할 때면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무엇보다 이상한 료리를 자꾸 만들어 내놓아서 힘들다. 나는 식성이 까다롭긴 하지만 그냥 우리 민족이 즐겨먹는 된장찌개, 감자채, 콩나물볶음, 모두부 이런 것만 있으면 만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퓨전료리랍시고 자꾸 이것저것 시도한다. 한번은 스테이크랍시고 내놓았는데 썰어보니까 피물이 질벅했다. 식탁에서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한점 입에 넣었는데 고무보다 더 질겼다.

고마운 것은 안해가 우리 사이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적극 해결책을 찾아 관계를 개선해나간다는 것이다. 가끔씩 있는 ‘랭전’에도 적당한 타이밍에 주동적으로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줘서 내 알량한 자존심을 지켜주기도 한다.

좌충우돌 어설프지만 무난히 ‘7년의 가려움’ 시기를 지나보내고 점점 서로에게 맞춰가고 있다.

“침묵으로 일관해요”

심준희(35세, 결혼 6년차)

연애 6개월, 결혼 6년차, 누가봐도 부처님상 우리 남편이다. 부지런하기로 자갈밭에 보내도 비옥한 밭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첫 직장 4년 만에 생각지도 못한 시련을 맞고 사직한 후 한창 힘들 때 남편을 만났다. 감정기복이 심하고 곧잘 욱하는 나에게는 구세주 같은 사람이였다.

남편도 당시 사업에 실패하고 가슴앓이를 엄청 크게 하고 난 뒤라 어쩌면 동병상련 같은 동지로 만나기도 했던 우리, 정신없이 쏟아내는 내 불만과 말도 안되는 감정기복을 참 묘하게 잘 치유해준 남편이였다.

“생각이 바르면 그게 속도와 상관없이 꼭 다시 원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는 말 한마디에 꽂혀서 우린 짧고굵은 련애를 마치고 바로 결혼에 골인했고 바로 딸내미까지 합류되면서 완벽한 가족을 이루었다.

제일 힘든 시기에 만났기에 사는 내내 나는 불만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생활은 필경 현실이였다. 서로가 원했던 그림이 있었고 우린 그 그림을 잘 그려주지 못했다. 나는 너무 정직하고 정확하고 다소 과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였던지라 우리 남편의 자상함은 나에게는 너무 큰 안식처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에게 집착하게 됐다. 저도 모르게 내 기준에서 아닌 건 틀렸다 하고 내 기준미달이면 불만을 터뜨리면서 싸움이 잦아졌다. 말수가 적은 남편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나 혼자 울고 방방 뛰였다.

사람들은 늘 나보고 “너 시집 잘 갔다! 남편 잘 만났다!”고 했는데 이 소리도 내 자존심을 엄청 건드렸다. 지금 함께 운영하고 있는 가게가 남편덕에 돌아간다는 얘기로 들렸다.

너무 힘들어서 심리상담을 받았고 나는 충격을 먹었다. 사실 우리 부부 사이를 이렇게 만든 건 내가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 채 어렸을 적 받은 트라우마 때문에 생긴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걸 다 묵묵히 보면서도 아무 것도 벗겨내지 않고 아무 것도 짚어내지 않으면서 그 자리에 있어준 것만으로도 이 사람은 이미 많은 걸 주고 있지 않았나… 물론 지금도 그 심술궂은 과묵함은 여전하다. 싸울 때면 끝까지 대꾸 한마디 없는 지독함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남들 부부보다 좀 다르게 가게에 24시간 붙어있는 우리, 그래서 어쩌면 남편은 더 많이 말을 아끼고 그래서 어쩌면 난 더 오픈하려고 하는 게 아닐가… 그래도 고맙고 든든하다. 오늘도 심술궂은 표정으로, 과묵함으로 처음 그 자리에서 일만 하고 나만 지켜주는 이 사람이. 소스를 자꾸 치고 싶은 복잡한 나보다는 원맛을 고집하는 소박한 남편이 이끌어주는 일상이 어쩌면 남들도 똑같이 살아가고 있는 결혼생활이 아닐지…

리련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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