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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상모춤이 있어 행복한 그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9.06.18일 16:23



  (흑룡강신문=하얼빈)“상모춤의 고향”으로 불리는 길림성 왕청현 배초구진에는 아이들에게 상모춤을 전수해 가며 역경속에서도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켜가기 위해 애써 온 시골학교 녀교원이 있다. 그녀가 바로 길림성 왕청현 배초구 제2소학교에서 30여년 동안 학생들에게 “상모춤”을 가르쳐 온 김수금 교원이다.

  교육사업에 종사한 이듬해인 1985년부터 아이들에게 상모춤을 가르치기 시작한 김수금 교원은 시골학교였기에 어쩔수 없이 겪어야 했던 고충이 많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교 학생수가 고작 50여 명밖에 안되는 시골학교에서 30여 명의 학생을 조직해 상모춤을 춰야 하는 일은 말 그대로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련습 도중에 상모대에 맞쳐 부상을 입는 아이들까지 하나, 둘 늘면 련습은 더 이상 진행키 어려운 일로 될 때도 있었다. 따라서 자식걱정에 공부에만 열중하면 된다는 보수적 관념을 가진 부모들의 반대 목소리도 높았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한집 한집 가정방문을 다니며 민속문화를 지켜가야 하는 의미를 강조했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 마음”으로 그들을 감화시켰다.

  경제형편이 어려운 시골학교였기에 어렵게 공연준비는 했지만 아이들에게 입힐 변변한 공연복장 한벌 없어 속상할 때도 많았다. 누구보다 강했던 그녀지만 아이들을 위해선 자존심까지 버리기로 했다. 워낙 신체가 허약한 그녀였지만 매일 왕복 몇시간의 로정을 버스로 오가며 도시학교들에 찾아가서는 손발이 닳도록 싹싹 빌어서 복장을 빌려왔다. 그런 자신이 때로는 보따리 장사로, “구걸”하는 사람으로 비참하게 느껴져 서럽게 혼자 눈물을 훔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빌려온 복장은 아무리 다림질을 해도 빛이 나지 않는 헌 옷들이였기에 그런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 아이들을 촌놈들이라고 놀려주는 도시아이들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가르쳤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 그녀는 웬만한 도시학교들에서도 그저 바라만 보는 수두룩한 영예를 받아 안는다.

  2005년 그녀가 인솔한 배초구제2소학교는 연변중소학생예술전시공연에서 유일한 향진 학교대표팀으로 단연 1등의 월계관을 받아 안았다. 그외 2008년 연변민족예술 전시공연에서 금상을, 2012년 7월,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 맞이 연변 제3차 중소학생예술전시공연에서 금상을, 2013년 12월, 길림성 왕청현 제3회 중국조선족상모춤경연에서 최우수상을 받아안았다.

  상모춤의 최고지도교원으로 실력을 인정받게 되자 현성 학교들에서도 중요한 경연이 있으면 그녀를 찾아왔다. 2014년 4 월, 그녀는 왕청현 제2소학교로 전근했다. 상모춤 인재를 더 많이 육성하라는 상급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녀는 계속하여 도시학교에서 상모춤을 전수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을 이끌고 크고 작은 경연에 참가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이들과 리허설을 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그녀는 새끼 병아리마냥 우루룩 모여와 자신의 품에 안기는 아이들로 밤잠을 설친다. 바로 자신과 오랜 시간 울고 웃으며 상모춤을 련습해 오던 시골학교 천진란만한 학생들이였다.

  “선생님, 다시 배초구에 와서 우리들을 가르치면 안됩니까? 우린 선생님이 없으니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후볐다. 그래, 다시 돌아가자! 도시학교는 내가 아니여도 다른 무용선생님이 계시는데 시골아이들은 내가 없으면 아예 춤을 배우지 못하니깐... 그녀는 도시의 우월한 대우를 뒤로 한채 2년반이란 시간을 보낸 도시학교를 떠나 꿈에도 그리던 시골학교 아이들 곁으로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가 잠시 떠난 2년반 사이, 시골학교는 학생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더는 상모춤을 조직하고 가르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30여년 동안 제대로 된 방학이 뭔지도 모른채 숨가쁘게 달려온 그녀지만 열정만 쏟아부어서는 안되는 “참혹한” 현실앞에서 뾰족한 수가 없었다. 고민끝에 상모춤이 아닌 노래와 피아노를 가르치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재간 하나 더 익혀 시골아이들도 도시아이들 못지 않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하고 또 그들의 예술감성과 특기를 키워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춤이 전공인 그녀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여 50이 넘는 나이에 그녀는 요즘 아이들을 위해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피아노 공부를 한다.그러는 그녀를 두고 지인들은 이제 상모춤을 가르칠 수 있는 날이 언제 또 오겠냐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도시학교로 돌아가라고 권고하지만 그때마다 암 선고를 받고도 작곡가로 있으면서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곡을 쓰던, 살아만 있으면 뭘 못하겠냐며 아이들을 위해 끝까지 열정을 다하라던 친정오빠의 말을 되새기며 끝까지 믿고 버텨보기로 결심한다.

  티없이 맑고 깨끗한 시골아이들 마음속에 소중한 꿈 하나라도 더 심어주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노력 중인 그녀, 누군가의 눈에는 안타깝게 비쳐질 수도 있는 그녀의 값진 노력이 꼭 헛되지만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리강춘 특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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