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은 강릉 최씨이다. 예전에는 집에 족보가 있어서 친척 관계를 찾거나 종씨들을 만나 항렬과 원근 관계를 알아보는 데 편리했으나 지난 세기 60년대 후반에 소실되였다. 그 후에 자식들이 자라서 집안의 뿌리를 물으면 대강 얼버무리는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손주까지 봤으니 가족의 뿌리를 알려주고 보존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 났다.
대전의 ‘뿌리공원’/ 사진 한국 네이버에서
지난 세기 90년대 후반에 방문학자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데 그 때 대전에 있는 ‘뿌리공원’을 찾았다.
자기의 뿌리를 밝혀 새긴 큰 비석들이 공원 여기저기에 세워져있어 한꺼번에 관련 종문의 기원과 업적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찾으려는 강릉 최씨의 비는 찾지 못했다. 출입구에 있는 단층집에 들어서니 한국 뿌리 찾기 운동본부에서 편찬한 한글판 《자랑스런 나의 족보》이란 계렬서적을 진렬해놓고 팔고 있었다.
모두 17권으로 출판되여있는데 강릉, 해주, 동주, 철원, 삭녕, 탐지, 화순, 초계 등 여러 본관 최씨의 조기 족보가 실렸다. 책을 사면서 ‘뿌리공원’을 돌아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족보에는 강릉 최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도 시조(始祖)를 달리하는 3계통이 있는데 하나는 최필달 계통이고 다른 하나는 최흔봉, 그리고 최문한 계통이라 하였다.
최필달 계통을 찾아보니 입북하였다는 안해공이 마지막으로 적혀있고 최필달공을 시조로 모실 때 안해공이 16세대이고 경성, 함흥파로 기재되여있었다. 그러니 안해공을 중시조로 모시고 작성한 입북한 강릉 최씨 족보에는 나의 선친은 입북 18대, 지금은 입북 19대인 것을 알게 되였다.
몇년전 룡정에 있는 중국조선족민속박물관에 강릉 최씨 종친이 기증한 강릉 최씨 족보가 수장되여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였다. 요즘 장춘에 있는 친구의 친척 박선생으로부터 족보를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바로 룡정으로 떠났다. 친구의 소개로 룡정에서 박선생을 만나 룡정 중국조선족민속박물관을 찾았다. 김씨 성의 중년 녀성이 우리를 맞이했고 소중히 보관함에 보존한 고서 두권을 가지고 왔다. 우리 집에 있던 족보와 같은 판본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제1권에서 명천신향파를 찾으니 선친과 형제들, 가까운 친척들이 적혀있었다. 몇년간 그토록 애타게 찾은 우리 집안 족보가 내 눈앞에 있다니 정말 감개무량했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김녀사는 이 책들은 귀중한 소장품이니 조심스레 다루라고 부탁했다. 나는 두권에 500여페지나 되는 족보를 조심스레 모두 찍었다.
이제 편집하는 일만 남았다. 시대가 좋고 귀인들을 만나 기쁘다. 족보를 기증한 종씨, 그리고 박선생과 룡정 중국조선족민속박물관의 관련 책임자와 김녀사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드린다. / 최돈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