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굴이 크다.
사각턱을 완벽하게 줄여준다는 보톡스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언젠가는 꼭 시술받아야지 하고 벼르고
있다.
누구나 하나쯤은 꼭 장만한다는 멋쟁이 선글라스마저 나는 없다. 내 각진 얼굴형과 어울리는 디자인을 찾지 못해서이다. 오히려 큰 얼굴을
강조한다고나 할가. 사진을 찍을 때도 자연스레 몸을 뒤로 뺀다. 어떻게든 얼굴이 작아보이려는 유치한 발악쯤으로 간주하면 된다.
큰 얼굴이 콤플렉스라고 울상을 짓는 나에게 주변에서 위로를 건넨다.
“유럽에선 오히려 큰 얼굴을 선호하기도 한대.”
“괜찮아, 환하고 좋구만 뭐.”
그들이 건네는 위로에 나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입고 만다. 속으로는 ‘제발 좀 아무 말 말아줄래?’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공감이 결여된
그 위로는 전혀 반갑지가 않다.
내가 받은 인상적인 위로를 꼽자면, 바쁜 엄마를 대신해 10년을 넘게 의지하면서 살았던 할머니가 돌아갔을 때, 친구에게서
받았다.
“선녀야, 우리 할머니 돌아갔어.”
한마디를 하고 다시 울음이 북받쳤다.
친구는 “일단 진정해”, “어디니?”, “좋은 곳에 가셨을 거야” 같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같이 울어줬다.
“어떻게 해. 할머니 불쌍해서 어쩌니. 이제 좀 고생 안하겠다 싶었는데.”
이 한마디를 하더니 친구가 꺼이꺼이 같이 울어준다.
우리는 전화기를 부여잡고 그렇게 한참을 소리내여 울었다.
내가 기억하는 인상적인 위로의 또 다른 주인공은 남편이다.
장례식장이였다. 아직은 친구였던 남편이 내 옆자리로 다가오더니 손을 잡았다. 아무말도 없이 그저 내 손을 20초 정도 꼭 잡아주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남편의 침묵과 굳게 잡아준 손이 그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됐다.
후날 그 얘기를 했더니 남편은 자기가 손을 잡았냐며, 진짜 그랬냐며 기억도 못했지만 아무튼 나에겐 큰 위로였다.
돌아보면 삶에 슬픔이 들이닥친 순간, 힘들었던 순간 내가 힘을 얻었던 위로들은 ‘화이팅’, ‘힘내’, ‘슬픔을 이겨내길 바래’, ‘넌
잘해낼 수 있을거야’ 같은 말이 아니였다.
같은 방향에서 내 마음을 느껴주려고 했던 상대의 진심이였다.
우리 민족은 왜 그렇게도 화이팅을 웨칠가? 힘들 때 왜 자꾸 용감하게 싸워서 이기라고 그럴가? 좀 주저앉아 숨이라도 고르면 왜 그렇게도
아니꼬와 하는 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위로의 말조차 꽤 성취 지향적이다.
화이팅도 이미 할 만큼 했고 더이상 낼 힘도 없고 꼭 잘해낼수 있다고 하는데 꼭 잘해야 하는 걸가? 좀 못하면 뭐 어때서.
“나도 그런 적 있는데…”라면서 위로랍시고 시작하는데 결국 자신의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게 빤히 보이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위로로
받아들이고 공감을 할 수 있을가?
위로란 극복의 독려가 아니라 생각한다.
위로는 같이 머물러주고 같이 답답해하거나, 열받아하거나, 속상해하거나 등 그런 공감과 진심이 아닐가?
만약, 상대가 위로를 원한다면 내가 추천해주고 싶은 위로가 있다. 내 직장 선배가 나한테 건넸던 가장 근사했던 위로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계속 들어주며 같이 열받아 하고 맵고 짠 자극적인 것을 같이 먹으러 가면 된다.연변일보 신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