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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이끄는 사람들] 신뢰를 바탕으로 봉사와 섬김을 실천하다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9.07.15일 11:28



북경교육문화호텔 전룡태 리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북경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우는 번화한 거리 왕징(望京)에 가면 북경교육문화호텔이라는 고층건물이 버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호텔의 관리자가 바로 전룡태(56. 사진)리사장이다.

  성실함과 신뢰를 바탕으로 봉사와 섬김,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전 사장의 마음은 여느 기업가들로서는 흉내 내기 힘든 부분이다. 물론 서비스업이라는 점도 있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고, 또 섬길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전 사장의 마음가짐은 기업인들이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중국조선족기업가골프협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책임감을 깊이있게 터득했다고 한다. 전 사장은 “공헌과 기부가 기업가 정신이다”고 말한다.



북경 왕징의 중심에 우뚝 솟은 북경교육문화호텔은 조선민족의 자부심을 심어주며 중한교류에 큰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본사기자

  낯선 불모지에 서다

  흑룡강성 오상시 출신인 전 사장은 1980년 연변대학 예술학교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했다. 졸업후 연길시조선족예술단 판공실주임으로 있다가 ‘하해’하고 1993년 북경으로 진출했다. 북경사이몬스무역회사에 입사해 열심히 배웠다. 덕분에 얼마후에는 부장으로 승진했다. 오선보밖에 모르던 젊은이가 금융무역 지식을 장악하게 되였으며 기업관리와 운영에 대한 경험도 많이 쌓게 되였다.

  회사에 출근할때 호주에 3개월간 연수를 갔다. 이런 저런 여러가지 힘든 일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사장의 인정을 받았고 어느날 사장이 일본료리점으로 함께 가지고 했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일본료리를 맛보았는데 이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였지요”

  당시 일본료리점에 피아노가 있었다. 전씨는 성악을 전공했는지라 한번 피아노를 쳐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장은 그의 피아노 솜씨에 아주 놀랐다고 한다.



  전 씨는 북경에 돌아온후 사업을 하려고 왕징을 찾았다. 전 사장이 처음 왕징을 찾았을 때는 왕징은 아직 아무것도 갖추어진것이 없이 계획만 존재하고 있는 미개발 지역이였기 때문에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허허벌판에서 사업을 일구는 것만큼 기업가들이 꺼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투자를 했다고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어쩌면 공허한 투자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불모지에 전 사장이 투자를 결심하게 된 리유는 발전 가능성이였다.

  그런 왕징이 개발지구로 선정돼 투자자를 모았지만 처음 투자자는 유일한 조선족인 전 사장을 포함해 5명 뿐이였다. 모두가 막연하게 기대만 하고 남들이 하는걸 보고만 있을 뿐 서뿔리 나서지 못했다.

  전 사장은 중일우호병원 부근에 한식일본료리점을 오픈했다. 맛이 좋아 주변의 고소득자들과 화이트칼라들이 많이 모여들어 대박이 났다. 후에 욕심이 나서 식당을 몇곳 더 오픈했는데 장사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 1호점만 계속 운영하고 나머지는 문을 닫았다.



  조선족사회 길잡이 역할을 하다

  왕징이 북경 소재 개발지구로 포함됐다는 소식이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장미빛 미래를 꿈꾸는 한국인들이 이곳으로 많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왕징에 자연스럽게 코리아타운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았고 부작용도 있었다. 중국의 법률에 대한 사전 리해가 부족하고 정보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다들 돈만 싸들고 찾아왔다. 수속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지도 막막해 하는 사람도 있었고 술자리에서 의리를 다지고 사업을 하다 돈을 떼우는 사람도 있었다.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에 피해가 많았다.

  이를 잡아 줄수 있는 사람은 이미 전에 발을 들여놓은 전 사장과 같은 사람들이였다. 급격한 변화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이처럼 피해가 커지고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전 사장은 사비를 털어 중국정부 유관부문에 투자설명 세미나를 요청했다. 150명을 예상했던 세미나에 한국공사, 령사 및 중국공상국 등 각 부처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500여 명으로 훌쩍 늘어났다. 애매했던 법과 관행의 문제들을 한눈에 알수 있도록 짚어냈다. 급시우 같은 세미나를 통해 각 부처와 기업가들이 왕징에서의 활동을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전 사장이 세월이 흘렀어도 자호감을 느끼는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2015년 중앙민족대학에서 열린 북경조선족 제15회 운동회이다. 전 사장이 문화 프로 총지휘를 맡게 되였는데 원래 무대공연을 하려던 아리랑 대형무극을 큰 운동장에서 공연해 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전 사장은 지금도 그 일을 련상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5천여 명 조선족과 천여 명 인원들이 참석한 이날 공연현장은 60-80세 로인들이 270명 동원됐고 어린이들도 참여했는데 할머니들이 짐을 지고 두만강을 건너오는 력사 장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력대 운동회치고는 사람이 제일 많이 모였는데 한복을 차려입은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화폭이나 다름없었다. 운동회가 끝난후 민족대학 학생들을 동원해 운동장 쓰레기 줏기를 했는데 손으로 해바라기 껍질까지 깔끔하게 주었다. 해가 져서 깜깜해 지자 조명을 키고 쓰러기를 하나하나 주어냈다. 이튿날, 운동장을 둘러보던 중앙민족대학의 간부들은 “조선족들이 정말 우수하다”며 연신 감탄했다. 후에 민족대학의 서기가 전 사장을 찾아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후로 민족대학의 조선족들이 어깨를 펴고 다닌다는 후문까지 나돌았다. 이번 운동회를 통해 북경에서의 조선족들이 이미지가 크게 향상 됐던것이다.

  2015년 전룡태 사장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한민족 동포대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이였다. 이 대상은 한국기자련합회에서 700만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바른 봉사와 섬김을 실천하고 재외동포사회에 좋은 귀감이 되는 사람을 한국신문기자협회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시상하는 것이다. 해외 각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끌며 세계 속에서 민족의 위상을 세우고 있는 기업가들에게 그 공로를 인정하여 주어진다. 전 사장의 봉사와 섬김, 그리고 나눔을 실천하는 마음과 그 행보가 심사위원들의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호텔을 찾는 손님을 집식구처럼 대하다

  전 사장은 왕징에 호텔을 오픈하기로 작심했다. 한번 먹은 마음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라 전 사장은 한국에서 호텔업의 ‘경’을 도입하려고 한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부산의 국가 단체인 교원공제와 인연을 맺게 되였다. 한달 여간의 심사 기간을 거쳐 신뢰성을 인정받은 전 사장은 교원공제와 협력 파트너 관계를 맺는데 성공했다. 개인이 국가 단체인 교원공제와 협력하기 힘들다고 했지만 전 사장은 믿음으로 일을 끝내 성사시켰다. 이 일은 전 사장이 자신의 인생중 가장 보람스럽게 느끼는 일 중의 하나이다.



  전 사장은 귀국후 왕징을 돌아다니며 호텔 자리를 물색했다. 마침 국영 단위에 빈 집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갔다. 당시 개인이 국영 단위와 거래한다는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주변 사람들이 재삼 고려하라고 말렸다. 그러나 전 사장은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며 일을 추진했다. 그러는 과정에 성실 경영으로 두터운 신뢰를 쌓아 호텔업이 성황을 이루었다.

  한국 교원공제 회원들이 차편이 불편하면 전 사장은 자신의 차로 직접 운행을 하는 등 극진하게 회원들을 집식구처럼 모셨다. 회원들도 이런 전 사장의 마음을 알고서는 호텔 객실이 부족하면 객실이 나기까지 다른 호텔에 묵었다가 객실이 나면 다시 돌아왔다.그래서 150개 객실의 투숙률이 거의 90%에 육박하며 그 가운데서 한국 손님이 60%를 차지한다.

  전 사장은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적었다. 하루에 적어도 객실 5개를 돌며 관리에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전 사장은 객실에 들어서는 순간 제일 처음으로 할 일이 바로 창문을 열어 환풍시키는 일이라고 늘 교육을 시켰다. 환풍을 시키는 습관이 보기에는 작은 일 같지만 손님이 객실에 척 들어서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 기분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 작은 서비스 하나가 결국 성패를 가른다고 전사장은 늘 말한다. 서비스업은 큰 일보다 작은 세부적인 것 하나하나가 다 중요하다. 절대 홀시할수 없는 것이다. 전 사장은 항상 이런 마음 자세로 봉사와 섬김을 실천해 가고 있다.




  기회보다 능력이 중요하다

  젊은이들의 창업 이야기가 나오자 전 사장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지금 많은 청년들이 창업을 꿈꾸는데 창업 준비자는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창업과정에 여러가지 어려움에 봉착하는데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는지, 그리고 기회보다 능력이 중요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있어도 능력이 부족해서 창업을 못하는것이다. 기회가 생기면 단단히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 사장은 지금의 성과에 대해 모두가 함께 노력해준 결과이라며 혼자 독불장군이 없다고 말한다. 전 사장이 빛나는 리유는 화려한 교육문화호텔 보다는 가슴속에 담긴 사나이의 오기와 봉사와 섬김의 마음이다.

  왕징의 중심거리에 우리 글로 된 호텔이 우뚝 솟아나 있는것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특별취재팀 리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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