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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유적지 답사 실기(10) 그 산 그 강은 기억하네

[인터넷료녕신문] | 발행시간: 2019.07.23일 08:33
항일유적지 답사 실기(10)

그 산 그 강은 기억하네

량기하, 그는 누구인가?

김창영

민박집에서 리진룡기념원으로 갈 때 전정혁 주임의 당부에 따라 모두들 행장을 챙겼는지라 리진룡기념원에서 이른 아침의 추모의식을 끝마치고 직접 전날 늦은 저녁을 먹은 식당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한 후 갈 길을 다그쳤다. 청산구진에서 단통고속도로에 올라 50여킬로메터를 달려 환인현에 도착해서 길림성 집안으로 향하는 국도에 들어섰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길림성 집안시가 아닌 료녕성 관전현 하로하조선족촌 련강촌이다. 련강촌은 하산 량기하의 순국지로 련강촌 뒤산에 모셔져 있는 량기하 석상을 참배하기 위해서다.



봉고차가 고속도로에서 내려 국도에 들어서자 전정혁 주임이 량기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량기하는 한국 충남 논산군 두마면에서 태여났다. 호는 하산(荷山)이며, 별명은 인원, 임창주 등이 있다. 량기하는 1910년 8월 한국이 경술 국치로 주권이 상실되자 충청남도 공주 군수직을 내던지고 중국 길림성 류하현 삼원포로 망명하였다. 1919년 한국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를 무력으로 타도하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항일무장투쟁단체 조직에 착수하였고 의병 출신 애국지사들과 함께 대한독립단 결성에 참여하였다.

량기하는 대한독립단의 교통부장, 선전부장을 력임하면서 대한독립단 의용군을 한국에 파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 군경 및 친일주구들을 처단하는 국내진공작전을 수행하였다.

1921년 4월 6일 상해림시정부의 의정원 의원으로 피선되여 상해로 갔으나 책상머리에 앉아 싸워서는 결코 독립을 쟁취할 수 없음을 고민하던 중 1923년 9월 대한통의부 의용군 제1중대장 백광운, 제2중대장 최석순, 제3중대장 최지풍, 제5중대장 김명봉 등이 대원 약 500여명을 이끌고 통의부를 탈퇴한 뒤 상해림시정부로 대표를 파견하여 관복군사령부를 계승한 림시정부 직속 통일 군정부의 수립을 요청하자 이를 기회 삼아 만주로 귀환하였다.

1924년 8월 환인현에서 김승학, 윤세용 등과 협력하여 림시정부 군무부 직속의 군사기구인 륙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를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재개한 한편 1926년 남만주 일대의 민족유일당으로 조선혁명당이 결성되고 그 당군으로 조선혁명군이 편성되자 이 두 조직에 가담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여 나갔다. 그리고 1927년 3월에는 참의부의 교육위원장 겸 제3행정구 위원장으로 선임되여 재만한인동포들에 대한 민족교육과 자치행정의 실현에 이바지하였다.

량기하는 1931년 12월 17일 신빈현에 있는 서세명의 집에서 개최된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 국민부 간부 긴급 중대회의에 참석하였다. 이 회의에서 조선혁명당과 국민부를 단일 조직체로 만들어 림전태세를 갖추기로 결정하면서 이미 일본군에 피체된 현익철(玄益哲)의 후임으로 당 중앙집행위원장에 리호원(李浩源)을 선출하고 량기하를 정치부장에 선임하는 등 당과 군의 조직을 정비하고 임원을 개선하여 대일 투쟁력량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밀정들로부터 이같은 회의 사실을 탐지한 일제는 12월 19일 일경을 파견하여 회의장을 포위 습격하였다. 결과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장 리호원과 조선혁명군 사령관 김관웅, 국민부 공안부 집행위원장 리종건 등 주요 간부 10여명이 피체되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른바 "신빈사변"이였다.

신빈회의에 참석했다 탈출한 량기하는 량세봉, 고이허 등과 국민부의 조직 재정비에 착수했다. 량기하가 국민부 중앙집행위원장을 맡고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장은 고이허,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은 량세봉이 맡아 조직을 재건하면서 항일무장투쟁을 재개했다.



1932년 2월 량기하는 관전현 사도구에 주둔하고 있었다. 일본 경찰은 밀정을 렴탐을 통해 량기하 부대가 사도구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평북 초산경찰과 위만군을 동원해 공격해왔다. 량기하와 조선혁명군은 화력과 수적 렬세에도 불구하고 적들과 격전을 벌였지만 기관총과 박격포를 앞세우고 공격해오는 왜경의 화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틀 동안 전투를 벌이던 량기하는 혁명군 가족들을 안전하게 후퇴시킨 뒤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혁명군 부하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지금껏 하로하조선족향 련강촌을 여러번 지나가면서도 량기하 석상을 찾아뵙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운 생각이 갈마드는 가운데 봉고차는 환인현 사첨자진(沙尖子鎭) 사첨자촌에서 국도를 벗어나 혼강을 가로막은 혼강땜 우를 거쳐 관전현 하로하조선족 경내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련강촌까지는 20킬로메터 될가 말가 하나 산길이 좁고 재 두개를 톱아야 하기에 빨리 달릴 수 없다. 그런대로 30분 쯤 달렸을가? 련강촌 길목에 도착하니 안상경 소장 다큐팀이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안상경 소장 다큐팀은 우리처럼 환인현 경내에 들어서지 않고 청산구진에서 직접 보달원진을 거쳐 하로하를 잇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련강촌 사도구는 혼강이 마을 앞으로 흐르고 강 건너편으로 환인현 로흑산이 높이 솟아있는 작을 마을이다. 일행은 자연 산세를 파괴하지 않고 지은 집들 사이로 낸 길을 걸어서 량기하와 조선혁명군이 주둔하였던 유적지를 향해 올라갔다. 미리 련락을 받은 증지(曾志. 한족)가 일행을 반겼다. 전정혁 주임은 증지의 외할아버지가 량기하와 같이 항일을 했으며 증지의 외할아버지가 그 당시 살았던 집터가 량기하 묘지가 가는 길 옆에 아직 남아있다고 소개했다. 증지는 현재 외할아버지가 살던 집터에서 썩 아래인 위치에 새집을 짓고 지금껏 생활하며 집에서 약 30여메터 떨어진 산중턱에 모셔져 있는 량기하 석상을 돌보고 있었다.

2003년 량하산장학회에 세운 석상 정면에는"항일명장 하산량기하 (1878-1932)" 란 아홉글자와 량기하의 생사년도, 뒤면에 량기하의 생애를 적어넣었다. 일행은 석상 앞에서 량기하장군을 향해 묵념을 올렸다. 전정혁 주임이 일행에게 석상 건립 배경을 이야기하는 사이 나는 량기하장군 석상 위치에서 산 우로 20여메터 떨어진 곳에 비석이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올라갔다. 비석은 1994년 관전만족자치현 민족사무위원회와 사지(史志)판공실에서 세운 것이였다. 비석 상단에 가로 "하산기비(荷山記碑)"란 네 글자, 아래에 "1932년 2월 10일, 조선혁명당 정치부 책임자이며 조선혁명군 총사령, 독립운동가인 하산 량기하가 이곳에서 일본 군경의 습격을 받고 싸우다가 불행히 희생되였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전정혁 주임은 량기하 기념 석상 위치에서 서쪽으로 600여터 더 올라가면 지금까지 증씨네가 보살펴 온 량기하 묘지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묘지까지 올라가는데만 40여분 시간이 걸리는 지라 빠듯한 일정 땜에 이번 걸음에 묘지까지 답사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일행은 아쉬움을 다음 기회에 달래기로 하고 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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