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중 동창이 보낸 메시지를 ‘씹었다’.
‘A랑 련락이 됐는데 다음달에 같이 한번 보자.’
A는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친구, 학교 다닐 땐 제법 친하게 지냈지만 졸업 후 자연스럽게 멀어져 이제는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만나면 일단 반갑긴 하겠지. 하지만 그때 뿐이지 않을가? 형식적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답을 안했더니 친구들도 더는 련락이 없다.
가끔 련락하며 지내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억지스럽지 않게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가 생각한 적이 많다. 몇 안되는 친구와만 가까이 보내는
나에게 사람들이 “너 정말 친구가 없네.”라는 말을 자주 건넨다. 내가 이토록 ‘인맥 다이어트’를 하게 된 원인이 뭘가 곰곰히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람 좋아하는’ 내가 맞닥뜨린 ‘딜레마’가 있다. 나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카드로 상대를 대하는데, 정작 상대의 인생관은 ‘두루두루’일
때 왕왕 겪게 되는 갈등 아닌 갈등이다. 내가 결국 그 상대의 ‘두루두루’ 인맥중 한사람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알고나서부터이다. ‘두루두루’로
일관하는 상대가 요구한 적 없던 ‘배려’를 나 혼자만 기꺼이 해주면서 파생되는 나의 ‘기대심리’가 있다. 근데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 상대도 이
정도는 해주겠지?’라는 이 ‘고약한’ 기대심리라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상대와 합의된 적 없는 100% 내 기준이라는 것이 항상
문제였다.
그렇게 내 ‘인맥 세탁’은 시작됐다.
정말 친한 친구가 물어온다.
“후회하지 않니?”
“아니. 너무 홀가분해.”
내 대답이다.
오히려 진짜 내 사람들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형식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SNS로 아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이 관계는 피상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외로움이 더 커진다. 과거에는 량적 인맥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관계에서
질과 깊이를 중시한다.
혈연, 지연, 학연 등 어떤 끈이라도 붙잡고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사회생활의 지레대로 삼는게 생존전략이자 미덕으로까지 여겨지는
사회분위기라지만 력설적으로 관계에 대한 회의는 그럴수록 더 강력해진다.
‘마당발도 한계는 있다’는 ‘던바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문화인류학자인 로빈 던바라는 교수가 만든 이 가설의 핵심은 한 사람이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은 ‘150명’이라는 것이다.
전세계 원시마을의 구성원수가 평균 150명이라는 게 주장의 근거이다. SNS 최적의 친분관계 역시 150명이라고 주장한다. 년 1회 이상
련락하는 관계를 친구라고 했을 때, 인맥이 수천명인 사람과 수백명인 사람의 친구 수 차이는 아주 미미하다. 그 가운데 끈끈한 관계는 10명도 채
안된다.
글로벌 기업인 고어는 직원이 150명 이상이 되면 사무실을 분리한다. 직원수가 지나치게 많으면 소통이 비능률적이기 때문이다. 기네스북에
오른 자동차 판매왕인 조 지라드는 판매 경험을 바탕으로 인맥수자를 250명이라고 제시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수자가 아닌 진정한 관계의 적정선을 찾고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가?
우리는 자원도 시간도 유한한 존재라는 면에서, 나는 던바 교수의 주장에 십분 공감하는 바이다. 흔히들 멀티태스킹을 하면 업무처리량이
증가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반대인 듯 하다.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서 그 수만큼 그대의 역경을 나눌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옥석을 가리듯 ‘인맥 다이어트’가
필요한 리유가 여기에 있다.
연변일보 신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