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아는데, 딱히 나에게 무례하게 구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편하지는 않아서 계속 평행선처럼 가는
관계가 있다.
‘그녀’가 그러하다.
그녀와 알고 지낸 지 벌써 8년이 넘어가지만 일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면 우리 둘 사이에는 차마 무너뜨릴 수 없는 벽이 생기는 느낌이다.
그녀와는 동년배라 어느 정도 오고가다 보면 우리의 관계가 공적인 관계에서 사적인 관계로 넘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기대였다는 것을 그녀는 한결같이 보여준다.
“봄이다. 화창하니 좋네.”
“그러게.”
“너무 덥네. 휴가는 언제 낼 건데?”
“아직 잘…”
“가을이네. 선선하니 좋아.”
“그러게.”
“옷 많이 껴입어도 춥네.”
“그래.”
영구불변의 소재인 ‘날씨’로 공략해봤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다. 공감대를 살 수 있는 ‘나이’ 이야기로도 공략을 해봤지만 결과는 여전히
실패다. 계절이 바뀌여도 우리 사이는 전혀 좁혀지지가 않는다. 혼자, 조용히 지내는 데 인이 박힌 데다 남 챙기는 데 서툰편인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시도했던 ‘비위 맞추기’는 이렇게 실패로 끝났다.
‘비위 맞추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더니 ‘비위는 소화액을 분비하는 비장과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위장을 합쳐서 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비위 맞추다는 비장과 위장이 서로 협력하여야 소화가 잘되듯이 어떤 일에 있어서 남의 마음에 들게 해주는 일을 뜻한다.’로 나온다.
과하면 체하고 부족하면 배고프겠으니 비위 맞추는 건 그만큼 참으로 어렵다.
처음에는 ‘나를 싫어하나? 내가 잘못했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나?’ 별별 생각을 다했다. 한번 생각이 꽂히니 계속해서 신경이 쓰였는데
이제는 알았다. 그 사람은 그냥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걸. 그녀와 나는 그냥 평행선으로 가야 하는 관계라는걸. 어쩌면 그녀는 나보다 먼저
감지했을 수 있다. 그래서 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내가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내가 굳이 나쁜 머리를 굴려가며 어렵게 노력을 하지 않아도 뚜벅뚜벅 다가오는 인연이 있다. 여전히 내가 ‘관계의 지옥’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다.
“지난번에 쓴 그 기사 너무 마음에 들었어.”
짐작도 못했다. 한다리 건너 알게 된, 선배 입에서 내 글에 대한 품평이 나오리라곤. 서너달 전 모임에서 지나가듯 ‘이런저런 기사를 쓰고
있으니 조언 좀 해달라’고 말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 얘기르 흘려듣지 않고 몇달 치를 꼼꼼히 읽어본 거다. 그게 다가 아니였다. 한참
후배인 모임 참석자들을 위해 아껴뒀던 와인과 예쁘게 포장된 선물까지 챙겨왔다.
가볍게 무시해도 아무 일 없었을 부탁을 기억해뒀다. 다들 바쁜 평일 오후, 따로 시간을 내 기어이 들어주는 사람, 그런 인연이 지척에
있었구나, 우리는 그렇게 가까워졌고 지금도 좋은 만남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관계를 자기의 것으로 쥐고 가려는 건 욕심인 듯하다.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두의 마음에 들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순 없다.
대신 나와 정말 잘 맞는 사람들과는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생각도,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일 생각도 없다. 그러니 관계도 놓아줄 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걸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내 속은 편해졌고 그녀와는 여전히 어색하게 잘 지내고 있다. 연변일보 신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