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드라마나 형사추리물에 나오는 형사들에게 매료되였을 때부터였을가?
언제부터인가 내 머리속에도 성숙한 어른은 항상 리성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다룰 줄 알며 독립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정말 독립적이고 리성적인 것만이 성숙한 인간상일가? 감정이 흘러넘치고 남에게 좀 기대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고 보여주고
그러면 외면받는 걸가?
“아우, 들러붙지 좀 마.”
“그렇게 외로움을 많이 타서 어떻게 하냐?”
“또 울어? 아무 때나 울면 다야?”
“상황을 좀 객관적으로 받아들여.”
이런 말들, 자주 들으며 살아온편인가 아니면 자주 하면서 살아온편인가?
우리 사회에서 원하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소소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랭철한 리성을 소유하고 있다. 칼을
빼들었으면 무우라도 자르는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리가 똑똑하다고 여겨온 인간상은 좀 차겁다.
반면 부드럽기 그지없는 우유크림 같은 가슴을 소유한 감성 충만한 이들은 연약하고 감정적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그렇게 나약해서 뭘 할 수
있겠냐는 걱정이 그들을 따라다닌다. 그들의 정감 어린 가슴은 쉽게 누군가의 과녁이 된다.
서로 치대고 공감을 열어주는 관계가 인간 치유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연구되고 있다는 사실을 뉴스로 흔히 접한다. 현대 뇌과학은 인간은
태생적으로 따뜻한 관계를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성숙한 인간상이 기득권을 가진 서양 남성학자들의 리론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도 굉장히 흥미롭다. 그런거였다. 우리가 가진 관점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똑똑한 서양 남자들의 눈을 빌린
것이였다.
반쯤은 속은 느낌이다.
우리가 의심 없이 받아들인 그들의 발달 리론으로 인해 똑똑한 사람은 독립적이고 리성적이며 감정적이지 않고 민페를 끼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게 됐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더 강해지도록 요구받았다. 감정을 단련해야 한다고 독려받는 동시에 나약하고 성숙되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이런 생각이 우리 사회를 효과적으로 만들어줄지는 몰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는 않은 것 같다. 결국 인간에게 필요한 의존성과 상호 련결성을
약화시켰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고독하고 힘들었던 건 아닐가?
혹시 우리는 왜 좀 더 똑똑하지 못하고 좀 더 강하지 못하고 리성적으로 생각하지도 못하고, 게다가 눈물 많고 탈도 많을가 자책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당신이 맞을 수도 있다. 감정적이고 눈물 많고 오지랖 넓은 당신이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더욱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더운 날에도 얼음이 가득한 차거운 컵은 오래동안 쥐고 있지 못한다. 우리가 오래동안 손에서 내려놓지 않고 꼭 감싸고 있는 것은
따뜻한 컵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도 따뜻한 컵 같은 관계가 아닐가.연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