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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중국과 함께 성장해 자랑스럽습니다”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9.09.30일 09:01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으면 줄을 그어가면서 독서하는 윤동길 로인.

   새 중국과 동갑인 윤동길 로인 시대변화 서술

  (흑룡강신문=하얼빈)“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이 없습니다. 중국공산당은 정말로 위대합니다!”

  지난 8월 30일, 화룡시 모 소구역의 자택에서 만난 윤동길(70세) 로인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새 중국과 함께 태여나 새 중국과 함께 성장을 해온 그의 말에서 뼈속 깊이까지 배여있는 당과 나라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1949년 5월, 화룡시 팔가자진 하남촌에서 태여난 윤동길은 24살 되던 해에 민영교원으로 있던 용화중심소학교에서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학교의 추천을 받아 길림사범대학(지금의 동북사범대학) 수학학부에 가게 됐다. 대학 3년의 마지막해에 계산기조에 편입하게 되였는데 수학학부에 있던 전자관식 계산기는 지난 세기 50년대 구쏘련에서 지원한 것으로서 당시 전국에서 유일한 한대였다고 한다.

  “그 계산기는 너무 커서 다섯개의 교실에 설치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컴퓨터, 노트북은 얼마나 얇고 작습니까. 마음대로 가지고 다닐 수도 있지요. 휴대폰도 컴퓨터 못지 않게 여러가지 기능을 갖추고 있으니 세상이 참 많이 발전했습니다.”라며 윤동길 로인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오늘의 생활이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했다.

  “사범대학이였기에 학교측에서 일체 학습비용, 숙박, 지어 식비까지 담당하고 학생 본인은 일전도 내는 것이 없었습니다.”며 집에서 매달 10원씩 보내주는 생활비는 주요하게 식사개선에 썼다고 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 가끔 장춘에서 규모가 제일 큰 장춘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도 료리 가격이 생각납니다. 고기볶음, 물고기튀김 등 볶음채소가 한접시에 28전, 36전이였고 제일 비싼 고급 료리라 해봤자 50전을 초과하지 않았습니다.”며 성인 4,5명이 5원 80전으로 허리띠를 풀 정도로 식사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76년, ‘어디에서 왔으면 어디로 돌아가는’ 졸업배치 원칙에 따라 화룡에 돌아와 선후하여 용화중학교, 화룡1중, 화룡4중에서 1982년말까지 줄곧 교원사업에 종사했다. 당시 력사적원인으로 학생들의 소학교, 초중 기초지식이 박약해 교수가 힘들었다. 교수질을 높이고저 윤동길은 계발식 교수와 주입식 교수를 결합하여 학생들이 잘 받아들이도록 노력했다. 그는 학생들의 취미에 맞게 수업을 진행했고 노력 덕분에 그의 수업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1983년초에 윤동길은 화룡시인민법원에 전근하게 됐다. 윤동길의 아버지는 “생각을 잘했다. 모든 사람들이 법을 지켜야 하고 법에 따라 처사해야 한다. 정치, 경제 등 사회 모든 활동은 법을 떠날 수 없으며 나라도 법에 의해 다스려야 하는만큼 법률사업에 종사하는 것이 의의가 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교원사업을 포기하는 것을 지지했다고 한다.

  법원에 전근한 후 윤동길은 형사재판정 정장, 당조성원으로 있으면서 퇴직 전까지 10여년간 정치사업, 업무고찰, 업무양성에 종사했는데 특히 1985년부터 3년간 ‘전국법원간부법률과외대학’학습을 통해 법률대학 졸업생 자격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법률리론 수준이 크게 제고되여 맡은바 재판사업 임무를 더욱 잘 완수할 수 있게 됐다.

  윤동길 로인의 서재에 들어서니 도서로 가득 찬 책장 그리고 컴퓨터가 있었다. 책을 보면서 필기도 하는 그는 떠오르는 령감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기록하여 글을 쓸 때, 시를 지을 때 사용하고 있었는데 퇴직 후 글짓기외에도 장기, 바둑, 낚시, 유람 등 여러가지 애호를 즐기면서 만년을 다채롭게 보내고 있었다.

  “새 중국과 성장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크고 작은 변화와 발전을 지켜본 증인으로서 새 중국 창건 70돐을 맞이하게 되여 아주 기쁩니다. 중국공산당은 정말로 위대합니다. 중국공산당이 없으면 오늘날 우리의 행복한 생활이 있을 수 없습니다.”라며 윤동길 로인은 조국의 번영부강을 축복했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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