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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수기]꽃향기에 젖어 사는 인생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9.12.19일 10:19



목단강시조선족소학교 처춘해

  (흑룡강신문=하얼빈)나는 봄이면 교정의 화단에서 피여오르는 라이라크꽃향기, 여름이면 월계화향기, 가을이면 국화꽃향기, 겨울이면 설련화향기 사시장철 꽃향기를 맡으면서 25년을 그 정겨운 꽃들이 피고 짐을 보았다. 어떻게 보면 꽃향기가 내 인생의 동반자인 것 같다.

  어느 날 아침 교실에 들어서니 구수한 민들레차의 향긋한 향기가 기분좋게 나의 코를 찔렀다. 교실을 둘러보니 교탁 우에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차물이 놓여있었다. 요즘 나는 인후염이 도져 민들레차를 마시고 있다. 하여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면 우선 물부터 끓이는 것이 나의 첫작업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생각지도 않게 컵에 김이 몰몰 피여나는 차물이 담겨져있었다. 누가 물을 끓여놓았는가고 물었더니 애들이 일제히 “철이!” 하고 철이를 가리켰다. 철이는 쑥스러워하며 “선생님, 차물이 너무 따가운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손에 컵을 든 채 “아니요. 딱 마시기 좋은데요.”라고 말하면서 정겨운 눈길로 철이를 쳐다보았다. 철이는 “OK” 하고 손가락을 펴보이면서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철이가 어떻게 차물을 끓여놓을 생각을 다했지?”

  “선생님께서 매일 아침 물을 끓이고 인차 아침자습을 시작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너무 바쁘신 것 같아서 물을 끓여놓았습니다.”

  “오늘 차물은 철이의 고운 마음이 담긴 민들레차물이여서 향기가 더 짙어요. 아침부터 기분이 너무 좋아 오늘 하루 수업을 더 멋지게 할 것 같네요.”

  철이가 너무 기특하여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더니 철이는 얼굴이 복숭아처럼 발가우리하게 물들었다. 그날의 민들레차 향은 여느 때 보다 더 짙고 향기로운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매일 아침 민들레 향이 피여나는 교실에 들어서게 되였다.

  애들의 천성이 말하고 웃고 떠들고 하는 것이여서 교실에서 떠들지 말라고 내가 ‘고음나발’을 틀어도 조금만 지나면 또 벌둥지 터진 것 같다. 어느 날 점심 너무 피곤하여 교실에서 걸상 등받이에 기대여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것이 그만 꿀잠이 들었다. 하긴 교실이 여느 때보다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이윽하여 눈을 어슴푸레 뜨고보니 그렇게 까불던 용이도 살금살금 교실문을 떼고 들어오고 숙이는 손을 입에 대고 “쉬-” 하고 선생님이 쉰다고 암호를 강이에게 보냈다. 몇몇 애들은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일어나 앉으니 애들이 잘 쇴는가고 활짝 웃어보였다.

  “너희들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하지?”

  “선생님, 옥이가 종이에 ‘선생님께서 쉬니 조용히!’라고 써서 교실문에 붙여놓았어요.”

  순간 난 그들의 맘에서 은은히 피여나는 향기에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잠시 표정관리를 하는데 오후 첫시간 상학종이 울렸다. 그 쪽지가 그냥 교실문에 붙어있었기에 애들은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와 조용히 제자리에 가서 앉았다. 옥이의 맘에서 피여나는 라이라크향기가 다른 애들의 마음에 가닿으며 교실이 꽃향기로 물들었다.

  언젠가 내가 점심밥을 먹다가 집에 급한 일이 있어 갔을 때도 애들이 나의 도시락그릇을 깨끗이 씻어 교탁에 올려놓았다. 내가 잠간 자리를 비운 사이에 또 수라장이 됐겠다고 비파소리가 나게 부랴부랴 교실에 들어서니 진달래꽃처럼 화사하고 이름처럼 령리한 령이가 학습임무를 흑판에 써놓아서 모두들 조용히 공부하고 있었다. 휴식시간이면 나와서 나의 어깨를 모다들어 주무러주고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강이의 곰손, 선이의 토끼손, 선생님이 목이 쉬였다고 인후염에 먹는 약을 슬그머니 갖다놓는 우성이…

  나는 애들이 다 자기만의 꽃향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짙은 꽃향기를 풍기는 월계화가 있는가 하면 싱그러운 향기를 풍기는 울금향이 있으며 남의 눈길을 별로 끌지 못하는 민들레도 있고 수수하게 피여나는 코스모스도 있다. 아이들의 여린 마음에서 피여나는 꽃향기에, 교실에서 피여나는 ‘백화향’에 도취되여 나는 오늘도 “짠!” 하고 희망찬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지식의 ‘호미’를 쥐고 꽃밭을 가꾼다. 풀도 뽑고 물도 주고 스러져가는 꽃을 부추겨 세운다. 얘들아, 한송이한송이 아름다운 꽃이 피여 울긋불긋한 꽃밭을 이룬단다. 남에게 꽃 한송이를 선물하느라면 내 손에도 꽃향기가 남는단다. 우리 모두 몸에서 향기를 풍기는 꽃나무가 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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