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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문화칼럼141] 다시 읽는 《토끼전》

[인터넷료녕신문] | 발행시간: 2020.01.08일 11:03
작성자: 권진홍

  (흑룡강신문=하얼빈) 《토끼전》은 우리 민족에게는 좀 많이 익숙한 이야기이다. 룡궁의 룡왕이 불치의 병이 걸려 백약이 무효하고 오직

토끼의 간만이 치료할 수 있다고 하여 룡궁의 신하 자라가 륙지에 나가 토끼를 감언리설로 유인해오고, 토끼는 죽을 고비에서도 지혜를 발휘하여

룡왕과 룡궁의 신하들을 다 속여넘기고 다시 산으로 귀환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토끼전》은 한국의 본토소설이 아니라 인도에 뿌리를 둔 불전설화(佛典说话)를 근원으로 한다. 불전설화는 석가모니 부처의 일대기를

다룬 본생담(本生谈)으로, 원왕본생(猿王本生), 악본생(鳄本生) 그리고 원본생(袁本生)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옛날 인도에서 교훈적인 우화로

전해오다가 불교 경전에 포용되면서 종교적인 의미를 갖게 되였다. 원래 인도설화에 등장하는 동물은 원숭이와 악어이고 물에 사는 악어 안해가

원숭이의 간을 먹고 싶어한다는 내용이였다. 불교 경전에 삽입된 고대 인도설화가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에 들어와 한자로 번역될 때 악어와

원숭이가 자라와 원숭이, 또는 룡과 원숭이로 변하였다. 그러나 설화가 지니는 불교적 의미는 같아서, 설화 속의 원숭이는 석가의 전신이며, 악어는

변절한 부처의 제자인 제바달다로서, 악어가 원숭이의 간을 탐내는 것처럼 제바달다가 석가를 해치려 한다는 내용이 되였다. 중국에서 각색된 본생담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그 주인공이 다시 토끼와 자라(거북)로 변하였다. 이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인 《삼국사기》 김유신조에 삽입된

귀토설화의 내용을 보면 그 주인공이 토끼와 자라(거북)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인도 본생담, 중국 불전 설화, 의 귀토설화를 거쳐 네번째 단계에 이르러 《토끼전》으로 소설화되였는데 그

시간을 대체로 조선 후기인 17, 18세기경으로 추측하고 있다.

  소설 《토끼전》은 류동문학이고 적층문학으로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는데 학계에 소개된 이본만 해도 무려 65종에 이른다고 하는가 하면 또

100여종에 달한다고도 한다. 판본에 따라 내용도 좀 많이 다르고 등장하는 동물들도 다양한데 모든 판본들에 공통으로 있는 내용과 등장인물은

아래와 같다.

  공간: 룡궁 내용: 룡왕 득병.선관이 나타나 토끼의 간으로 병을 고칠 수 있음을 알려줌.

  공간: 륙지내용: 자라가 토끼를 잡으러 륙지로 나옴.자라가 토끼를 룡궁으로 유인함. 토끼와 자라의 지혜 대결.

  공간: 룡궁내용: 토끼가 자라에게 속은 것을 알고 룡왕과 지혜 대결.

  공간: 륙지내용: 토끼가 륙지로 다시 돌아옴.

  우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판본의 《토끼전》은 룡궁-륙지-룡궁-륙지라는 공간이동을 하면서 룡왕, 선관, 자라, 토끼 이 네

인물이 다 등장한다. 《토끼전》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토끼, 자라, 룡왕에 대해 사회배경을 념두에 두고 인물형상 분석을 많이 진행하여왔다. 오늘

필자는 《토끼전》 완판본을 모델로 기존과는 좀 달리 당시의 시대배경을 떠나 지금의 시각으로 《토끼전》의 인물들을 읽어보려고 한다. 《토끼전》에는

대량의 중국 역사 인물, 전설 인물들이 거론되였고, 그들의 이야기와 경전 어구, 시어들을 많이 인용하였다. 아래 문중에서 일부는 각주 형식으로

그 출처를 제시한다.

  먼저 자라의 이미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효도는 백행의 근원이요 , 충성은 삼강의 으뜸이라 , 천성으로 할 것이지 가르쳐 하오리까? 신의 선대 할아비가 멱라수에 사옵더니,

절강으로 장가가서 굴삼여의 고기는 할아비가 얻어먹고, 오자서의 고기는 할미가 얻어먹어, 부부지간 두 배속에 충혼이 잔뜩 들어 자손이 나는 대로

아주 배속 충신이요 대대 충신이라. 수중은 고사하고 세상의 사람들도 충심의리 아는 이는 잡아먹는 법이 없고, 어부들이 잡았으면 사다 물에 넣는

고로 종족이 번성하되 여러 벼슬 아니 하고 좋은 벼슬 구하지 않고, 가문 중에서 상자를 뽑아 주부 벼슬 세전하니, 황하수가 오래도록 국가를

모시옵고,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할 테니 신의 간을 잡수어서 대왕 환후 나을 터이면 곧 빼여 올리겠으나, 토간이 좋다하니 신의 정성 대로 기어이

구하리다.”

  소설 속에서 자라는 굴원, 오자서(伍子胥)에 비기면서 자신이 충신임을 부각시키며 토끼를 잡아 오겠다고 자진해 나선다. 룡궁의 다른

신하들은 다 발뺌하기에 급급한데 선뜻 나설 수 있다는 것은 목적이 무엇이냐를 막론하고 용기가 가상하다. 룡왕이 그 재주를 의심하여 자세히 묻자

“충성지략 말 잘하기 흉중에 들었으니 외모 보아 알 수 없고 , 외모로 본다 해도, 과보가 잘 걸어서 해를 쫓아 갔사오나 그 발이 둘 뿐인데

신의 발은 넷이옵고, 맹분이 힘이 세여 구정을 들었으되 목을 감추지 못하는데 신은 목을 출입하고, 대가리가 뾰족하니 백기의 지혜옵고 , 허리가

넓었으니 오자서의 열 아름 둘레의 크기옵고 , … 참혹하게 죽더라도 토끼를 잡아올 터이오니, 토끼의 생긴 형용을 자세히 그려 주옵소서.”라면서

자신이 해를 쫓는 과보보다, 힘세기로 유명한 맹분보다 우세가 있음을 자랑하며 충성을 맹세한다.

  그런데 집식구들과 하직할 때 어미 자라의 “너의 부친 식욕 많아 낚시밥을 물었다가 청년 나이에 죽었기에, …” 이 한마디로 대대

충신이였다는 자라의 가족사 포장은 어처구니없이 무너진다. 충성심을 내세워 공을 세워 주부라는 보잘것 없는 벼슬자리에서 신분상승하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자라는 가문중의 아저씨, 형님, 조카, 사촌들과 작별인사를 할 때 인사하러 온 해구(海狗)를 보고 호통을 친다. “우리집 내외척이 다

내력 있느니라. 고동, 소라, 우렁들이 내 목과 같아서 들락날락하는 고로 촌수가 있거니와 너는 어찌 친척관계가 있노?”라면서 광객 취급을 하여

쫓아버린다. 낮은 벼슬자리에서 무시당하고 억업당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해구에게는 무자비하게 차별대우를 한다. 포장을

해서라도 내력 있는 집안임을 가장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시하고 싶어하는데 이는 자신에 대한 현실부정이며 밟힌 만큼 밟아주고 싶어하는 아주

못된 근성이다.

  토끼 그림을 가지고 만경창파를 지나 륙지에 도착하여 처음 만난 것은 남생이였다. 서로 인사 끝에 동족임을 알게 된다. 남생이가 눈물

펄펄 흘리면서 “본시 같은 뿌리에서 나왔는데 산수간에 갈리여서 이제야 상면하니 내 마음 반갑기는 측량이 없사오나, 종씨는 어찌하여 저러한 귀한

몸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길을 가십니까?”라고 묻자, 자라는 수궁에 지관이 없어 눈이 밝은 토끼를 수궁으로 모셔다가 대궐 터를 정하려고 한다고

둘러댄다. 같은 종족이라는 반가움도 반가움이겠지만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았기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

  자라는 토끼를 처음 만났을 때, 다른 륙지 동물처럼 토끼를 하대하지 않고 ‘토생원’이라 부르며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며 토끼와 빨리 친해지려고 한다. 자라는 룡왕을 보좌할 인물을 찾으러 륙지로 나왔다면서 “…만좌를 다 보아도 왕을 보좌할 만한 신하는

‘곰 아니면 표범이라 ’ 선생 하나 뿐이기로, … 바라건대 토선생은 범수가 왕계 따르듯 , 한신이가 소하 따르듯 나를 따라 가사이다.”라며

계속하여 산속에서 늘 멸시만 받아오던 토끼를 한껏 올리추며 토끼의 허영심에 바람을 넣어준다. “선생의 기상 보니 잘 다스려진 세상의 정치 수완이

좋은 신하요, 어지러운 세상의 간사한 영웅이라 . 눈이 밝고 속이 밝아 천문지리 다 알테요, 몸이 작고 발이 빨라 산도 넘고 물도 뛰여 따라갈

이 없을테니, 능란한 저 말솜씨가 소진의 합종인지 , 가끔가끔 조는 것 공명의 춘수 런가, 생긴 것이 모두 나라에 이로운 신하, 볼수록 모두

모든 성중 모족 중의 제일이니, 우리 수궁 가시오면 입상출장 저 공명을 따를 이 뉘 있을까?”

  자라의 달콤한 말에 마음이 거의 동한 토끼, 그래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서 산 속의 풍월을 자랑하자 사냥군, 독수리에게 쫓기고 김매는

농부까지 작대 들고 쫓아오는 마당에 무슨 풍월을 즐길 수 있냐면서 토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사정없이 이야기하며 “……화로 망할 살이 사주에

있어 못 가겠다 하시오니, 괴철이 말 아니 듣고 종실의 한신 죽음 , 범려의 편지 불신하고 월나라 문종의 죽음 , 선생 신세 불쌍하오. 내

행색이 바쁘니 부득이 가나이다.” 라면서 토끼의 구미를 더 당긴다.

  토끼가 끝내 자라 따라가기로 결정하고 산중 친구들과 가족들과 하직을 하려고 하자, 중간에 누군가가 끼여 일을 그르칠가 봐 “큰 일을 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꾀할 것이 아니라 하였으니 , 각기 소견 다 다르니 … 길가에 집짓기라 삼년이 지나도 짓지 못할테지요 ”, “꾀하고자

하는 바가 여자에게 미치면 망하는 법인것을, 수궁에 가서 공명한 후 쌍교 보내 모셔 가면 오죽 좋겠는가?” 라며 이리저리 돌려 가며 신중을

기한다.

  아니나 다를가 지나가던 여우가 토끼에게 한마디 뚱기자 토끼는 바로 망설인다. 여우가 다 된 밥에 재를 끼얹자 자라는 얼른 토끼와 여우

사이에 리간질을 해서 결국에는 토끼를 속여넘긴다. 이렇게 자라는 우여곡절 끝에 토끼를 룡궁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한다.

  토끼가 룡왕전에서 간을 산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룡왕은 간도 없는 토끼의 배를 가르느니 자라에게 다시 한번 뭍으로 다녀오라고

명한다. 그러자 자라는 간이 출입한다는 말은 《사기》에도 기재된 바가 없다며 일단 배를 갈라보고 없으면 다시 토끼를 잡아 오겠다고 하면서 상식에

어긋나는 토끼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토끼가 죽일 테면 죽여보라고 들이밀자 역시 두눈만 껌벅껌벅할뿐 당장 실행은 하지 못하다가

룡왕의 명에 따라 다시 륙지로 나오게 된다. 토끼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확신이 없기에 최악의 경우를 책임지는 것까지는 담략이 없었던

듯하다.

  처음 토끼를 수궁으로 데리고 갈 때는 토끼가 묻는 말에 묵묵부답이였지만 다시 토간을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 시점에 이르자 등에 앉은

토끼가 매번 묻는 말마다 다 고분고분 대답을 해준다. 륙지에 도착하자 토끼는 자기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자라는 토끼가 올려준 똥을 가지고

수궁에 돌아가서 룡왕의 병을 낫게 한다. 그래서 그 공 인정받아 충신 되고 부귀영화 누린다.

  총적으로 자라는 립세양명에 눈이 멀어 가족사를 화려하게 포장하기도 하고,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소유자에 대해선 차별대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용기 백배하고 맡은 바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서 지혜를 총동원하며, 지식, 수완 다 구비하고 있었다. 토간이

배속에 없다는 것을 믿지 않았지만 끝까지 견지하지 못하였다는 점에 대해선 좀 아쉽지만 오직 명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처지를 감안하면 리해가

될만도 하다. 자라를 우직하고 미련한 형상이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천신만고를 마다하지 않고 결국엔 목적에

달성하는 자로 보는 것은 어떨가 한다.

  아래에 토끼의 형상을 보기로 한다.

  자라가 륙지에 나와 처음 토끼를 만났을 때 ‘토생원’하고 한번 불러본다. 산속에서 몸이 작아 늘 멸시를 받던 토끼는 생원이라는 호칭을

듣더니 대뜸 너무 좋아 호들갑을 뜬다.

  “게 누구요, 게 누구요, 날 찾는 게 누구요. 상산의 사호 들이 바둑 두자 나를 찾나, 죽림의 칠현 들이 술을 먹자 나를 찾나.

청풍명월 채석 가자고 리백이 나를 찾나 , 노와 삿대 잡고 적벽 가자 소동파 가 나를 찾나. 인생부귀 물으려나 인생무상 가르지지, 력대흥망

물으려나 상전벽해 가르치지.”

  자라가 토끼의 재주를 한껏 부풀리면서 수궁에 가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바람을 넣자 대뜸 마음이 동한다. 그래도 자신의 왜소한

체구와 짧은 지식은 의식하고 있었던지 수궁에 문장조관이 있는지, 체격 큰 조관이 있는지를 물어본다. 확인을 마치고도 산속의 흥겨움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다며 허세 한번 부려본다. “청산에 봄이 오면 온갖 꽃이 만발하여 병풍을 두른듯, 꾀꼬리는 노래하고 나비는 춤을 추어 좋은

풍류 놀기도 좋거니와, 공자 제자 육칠 관동이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 바람 쐴 때 따라가서 구경하고… 이러한 편한 신세 시비할 이 뉘 있으며,

이러한 좋은 흥미 앗아갈 이 뉘 있으랴? 수궁이 좋다해도 ‘고향을 떠나면 곧 천해진다 ’하니 갈 수 없제 갈 수 없제. 회수를 지나면 유자도

탱자되니 안갈라제 안갈라제.”

  토끼의 교만함에 자라가 대뜸 태도를 바꿔 토끼의 하루살이 신세를 여지없이 까밝히고 화망살로 죽으리라는 엄포도 놓으면서 좋을 대로 하라는

시늉을 하자 토끼는 바로 자라 동아줄을 덥석 잡는다. 타국에서 왔다고 천대나 받지 않을가 하는 념려가 가득하지만 지위상승과 곧 다가올듯한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 다른 건 더 생각지 않는다.

  재차 확인 후 자라와 출발하려던 찰나, 지나가던 여우가 고향 떠나 벼슬하다가 비명횡사할 수 있으니 가지말라고 뚱겨준다. 토끼는 잠간

동요했지만, 자라의 리간책에 넘어가 오히려 여우를 질책하며 자라의 등에 업혀 수궁으로 간다. 가장 하위층에서 일인지하의 위치로 달리는 신분상승의

기회라는데서 판단력을 상실하고 편이하게 일보승천할 수 있는 기회만 노리는 얍삽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수궁에 도착한 후에야 수궁 군사들로부터 모셔진 것이 아니라 잡혀온 것임을 알게 되고 룡왕과의 대결을 하게 된다. 간을 빼놓고 다닌다는

얼토당토 않은 거짓을 룡왕 앞에서 그럴듯하게 꾸미는데, 끝내는 룡왕을 속여 넘긴다. 놀란 마음을 달래주려고 룡왕이 연회를 베풀자 토끼의 행동

가관이다. “품격 높이려고 원숭이 모양으로 앞발을 추켜 들고 뒷발은 잣 디디고 시녀에게 붙들리여 눈 길게 발을 떼여 전상에 올라가니…” 종래로

받아본 적이 없었던 대접이라 방금 전의 위험은 구중천으로 보낸 채 한껏 거들먹을 피운다. 인간세계의 사람들중에도 토간을 먹고 효험 본 일이

있냐는 룡왕의 물음에 “끔찍히 많지요. 제일에 신선 공부 토끼 간의 물을 못 먹으면 성공을 못하기에 안기생 적송자 가 다 우리 문인으로 우리

선조 간 씻은 물을 얻어먹고 신선 되여 장생불사하는고로, 지금까지 세시 되면 선과 좋은 과실 설음식을 붕하지요.”라고 대답하고, 며칠만에 륙지에

다녀올 수 있냐는 룡왕의 물음에는 “수로 팔천리는 주부가 나를 업고 밤낮으로 하였으면 나흘이나 될 것이요, 륙로로 이만리는 내가 주부 업고

밤낮으로 달아나면 사흘 쯤 될 것이니, 갈 제 이레 올 제 이레, 많이 잡아 보름이면 래왕하기 넉넉하지요.” 라고 허풍을 친다.

  연회에서 토끼는 선녀들에게 “수궁 식구들이 모르니까 그렇지 내 간은 고사하고 입만 맞추어도 삼사백년 례사로 살제.”라면서 의뭉한 말을

한다. 《토끼전》의 다른 판본에도 토끼가 수궁에 들어가 자라의 안해와 간통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고, 또 룡왕의 딸과 사통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는

걸 보면 분명 토끼는 고상한 인격과는 거리가 먼, 추잡함이 있는 인물임을 보여준 듯하다. 룡궁을 떠날 무렵 《전등신화》의

에서 여선문이 썼다던 상량문을 보면서 한마디 한다. “… 새로 지은 영덕전이 룡왕의 대궐인데, ‘룡’의 뼈를 갈아

대들보를 삼는다’는 ‘룡골’ 두 자 망발이오. … 룡자를 파내고 고래 정자 좋을터이나 내 길이 바쁘오니 다녀와서 하옵시다.”면서 떠나는 순간

까지도 허풍을 멈추지 않는다.

  자라와 함게 룡궁을 나서면서 안도의 숨을 쉬는 토끼는 “이왕에 왔던 터에 착실히 구경하며 산중 여러 동무들에게 이야기나 하자 하고,

주부를 달래, ‘올 때에는 바빠서 만경창파 꿈속이라 아무데인줄 몰랐으니, 오늘은 그리 말고 내가 묻는 대로 자세히 가르치면, 너도 먹고 오래

살게 좋은 간을 한보 주제.’”라면서 자라를 구슬린다. 토끼의 생각처럼 ‘이왕 왔던 터에 착실히 구경’하자는 생각은 위험천만의 기회까지도 뭔가를

배우는 데 리용하는 근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토끼의 위인으로 봤을 때 산 속에 가서 또 누군가에게 아는 체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죽을 고비에서까지 허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토끼의 모습을 보면 서글픈 웃음이 나온다.

  산속에 돌아온 토끼의 말: “항적은 천하 장사 팔천병 거느리고 한태조와 다투더니 오강을 도로 못 건너고 , 형가는 만고 협객 삼척검

빼여들고 진시황 찌르려다 역수를 도로 못 건넜다 . 신통한 이 내 재주 잠간 동안의 말솜씨로 룡왕을 속여놓고, 이 물 도로 건넜구나. 반갑도다

반갑도다. 우리 고향 반갑도다. 의구한 청산록수 모두 전에 보던 대로다. 푸른 봉 흰 구름은 나 앉아 졸던데, 덩굴 과실 나무 열매는 나 주워

먹던 대로다. 너구리 아재 평안하오? 오소리 형님 잘 있더나? 벼슬 생각 부디 말고 리사 생각 부디 마소. 벼슬하면 몸 위태롭고 타관 가면

천대받네. 몸 익은 청산풍월 낯익은 우리 동무 주야상봉 즐겨 노세."

  마지막 장면에서 토끼는 자신을 항우, 형가와 비교하면서 항우, 형가는 만력으로 싸우다 실패하고 죽었지만 자신은 그들과는 달리 신통한

말솜씨로 위기를 넘겼다는 희열에 잠긴다. 끝끝내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잘났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미약한 존재임을 부정하고 싶은

심사이다. 그러면서 벼슬이나 리사 등 허망한 것을 쫓지 말고 원래 있는 그대로를 잘 살라고 득도한 것처럼 번지르르한 말을 한다.

  토끼는 소설 속 전체에서 경망하고 경솔하고 잔꾀에 습관화되여있는 자이다. 자신을 바로 알지도 못하고 누군가를 쉽게 믿지도 못하고,

벼락출세에 눈이 멀어 명석하게 판단하려고 하지 않으며, 사리분별에 밝지 않은 위선자이다.

  다음은 여우의 이미지를 보기로 한다.

  《토끼전》 완판본에 여우라는 인물이 등장하였고 꽤 재미있는 캐릭터였다. 여우라는 동물은 예로부터 교활하고 간사하고 약은 이미지로

묘사되여왔다. 그래서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비롯해서 여우와 관련한 성구나 속담에는 긍정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거의 없다. 《토끼전》에서도

여우는 호랑이 옆에 붙어서 쥐와 다람쥐가 겨울 나려고 장만해놓았던 먹거리들을 다 가져나와 산속동물 회의할 때 간식거리로 먹어치우도록 간교를

부리고, 고기를 찾는 호랑이에게 잘 보이려고 애매한 메돼지의 큰 아들을 희생물로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한다. “저희들이 못

생겨서 남에게 볶이여서 걱정하제, 나같이 행세하면 아무 걱정 하나 없제. … 아무 데를 가더라도 주관하는 사람에게 비위만 맞추면 일생 평안한

신세 거저 남의 일에 참여하고 놀제.”

  장황한 연설로 지위에 맞는 미사려구를 하려고 바등바등 애를 쓰는 룡궁의 신하들보다, 별 볼일 없는 벼슬 자리에서 눈의 띄여보려고

어처구니 없는 가족사를 만들어 들먹이는 자라보다, 무기력한 위치에 있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토끼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여우가 오히려 더 진실해보인다.

  룡궁에 벼슬하러 가려고 들떠있는 토끼를 만난 여우:

  “가지 마라. …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나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으니 물이라는 것이 위태하고, 아침에 임금의 은혜를 받다가도 저녁에

죽임을 당하니 벼슬이 위태하니, 두가지 위태한 일 타국으로 벼슬 얻으러 갔다 못되면 굶어죽고 잘되면 비명횡사한다.”, “리사라 하는 사람 초나라

명필로서 진나라에 들어가서 승상까지 하였더니, 진나라 수도인 항양에서 허리를 잘려 죽임을 당했으며… 너도 지금 수궁가서 만일 좋은 벼슬하면

반드시 죽을 테니, ‘토끼가 죽으니 여우가 슬퍼한다 ’는 우리 정다운 처지에 새 설움이 어떻겠나, 가지 마라 가지 마라.”

  여우는 룡궁에 가면 지위상승을 할 수 있고 온갖 향락을 누릴 수 있다는 자라의 달콤한 속임에 판단력을 잃은 토끼에게 냉정한 일침을

놓아주며 만류한다.

  소설 속에서 여우는 자기 처지를 잘 알고 있고 그것을 부정하거나 맹목적으로 개변하려고 하지 않는다. 있는 대로의 처지에서 현실에 맞추어

생존법을 찾고 리행하는 인물이다. 누군가를 해친다는 것은 나쁘지만 현실에 립각해서 한 목숨 보전하며 부질없는 것에 매달리지 않는 나름 진실되고

지혜로운 자이다.

  자라와 토끼와 여우는 다 지위와 권세가 있는 인물이 아니다. 자라는 룡궁에서 미생이고, 토끼와 여우는 산속에서 미물이며, 더우기 토끼와

여우는 수시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존재들이다. 여우는 있는 그대로에서 생존법을 찾고, 허황된 꿈을 꾸지 않는다. 산 속의 다른 동물들의 미움을

받는 것을 알고 비렬한 짓인줄도 알지만 생존을 위함임을 당당하게 말한다. 아주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라 하겠다.

  자라와 토끼는 부귀공명에 욕망이 강하고 허풍이 심하며 허례허식에 젖어 포장하고 미화를 일삼는 인물들로 늘 벼락출세할 기회를 늘 엿보고

있다. 자라는 토끼와 비교했을 때 허풍이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노력으로 목적에 이르기 위해 온힘을 다하고 용기도 있으며 일을 성사시키기 위한

수단도 있고 끈기도 있다. 그에 비해 토끼는 욕망에 사로잡혀 앞뒤를 분별하지 못하고 시종 위선과 허세로 일관된 위인이다.

  단편으로 본 《토끼전》에서 토끼는 지혜롭고 위기에 처해서도 슬기롭게 대처하는 긍정적인 인물이였고, 룡왕은 탐욕스럽고 미련한 인물,

자라는 우둔하고 어리석은 인물이였다. 《토끼전》 완판본을 읽으면서 어릴 때 단편으로 짤막하게 읽었던 《토끼전》과는 많이 다름을 느끼면서 토끼와

자라라는 인물을 새로이 바라보게 되였고, 소설 속의 여우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한번 조명을 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봐도 이 소설은

유, 불, 도를 넘나들면서 사람들에게 경고와 교훈을 주고 있다. 그리고 소설 속의 우리 옛말들이 풍기는 구수함도 다시 한번 즐길 수 있는

맛갈스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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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준해 전 성 경제성장안정 영상 지도회서 강조 경제회생의 호세강화를 지속적으로 공고히 하며 ‘두가지 확보, 한가지 우선’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호옥정 종합평가 진행 23일, 성당위 서기 경준해가 전 성 경제성장안정 영상 지도회의를 소집하고 회의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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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남뉴스 걸그룹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하이브를 향해 거침없는 막말을 쏟아내 화제가 되고 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공식 석상임에도 민희진은 '개저씨', '시XXX', 'X신', '양아치', ‘지X’ 등 비속어를 쓰면서 현 상황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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