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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33]<몽당치마>를 말하다(림원춘편-5)

[인터넷료녕신문] | 발행시간: 2020.01.09일 10:47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33](림원춘편-5)

작가협회에 전근한 다음 제가 제일 처음 괜찮다는 작품을 내놓았다는 것이 단편소설

입니다. 그럼 어떻게 를 창작하게 되였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연변대학에서 교수(강의)를 하는 형님네 형수님이

위암수술을 한지 7년에 나면서 병원놀음을 계속하는데 둘째 조카 선희가 시집을 가게 되였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식당잔치라는게 없이 다 집에서

하였어요. 형수가 집에 없는데다 형님이 교수(강의)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잔치준비를 하기가 힘들었어요.



룡정시 만무과원에서

마라친부(왼쪽 사람)와 함께.

전직작가였던 내가 시간이 좀 많았어요. 그래서 형님이

잔치날을 앞두고 서시장에 가서 돼지발쪽이며 소고기며 명태와 해물을 구입해들이고 내가 형님네 집에 가서 음식준비를 하느라 싱크대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형수님이 래일모레면 결혼날인데 (병원에서)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때 형수님을 속였댔어요. 위암인데 앞길이 오라지 않은 분한테 부담을

어떻게 주겠는가고 속였는데 형수님이 덜컥 집에 왔어요.

“어째 이런 일에 나를 속이는가,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고 하면서. 그래서 형수님이 몸이 편치 않아서 휴식시키기 위해서 그랬지 다른 뜻은 없었다고 했더니 형수님이 쌀독을 열더구만. (정말

어머니의 마음이란 대단한 걸 그때 알았어요.) 8호독에 잔치날 떡을 치려고 찹쌀을 꼴똑 채워둔거지요. 그런가 하면 또 기장쌀 까지 가득

준비해놓았어요.

래일모레면 결혼식인데 형수님이 보니 생원이 싱크대에서

왔다갔다하지 남편이 땀을 철철 흘리면서 준비하지 그래서 막내 조카를 부르더니 “야, 니가 가서 동불사에 있는 아재를 오라구 해라!”하더구만.

지금 저 앞에서 다방을 하고 있는 막내조카인데 그애를 동불사에 보낸 후 저녁녘이 되였을가 했는데, 내가 지금 앉아서 형님이 가져온 대구를 막

검질하고 있는데 동불사 사돈이, 형수님 사촌동생이 문을 뚝 떼고 들어오더구만.

“아니 사돈이 어떻게 종앗간(정주)에 앉아서 이런

일을 하는가”하면서 문에 들어서는데 입고 온 옷을 보니까 바지는 무릎마디나 가리는 팽팽한 새까만 바지에다 저고리라는게 단추 네개인 학생복을 입고

왔어요. 그 사돈이 형수님이 입었던 몸베에 저고리를 바꾸어 입고 나오는데 형수님이 잔치떡을 할 떡쌀을 씻지 못했다구 하니 독에 있는 찹쌀을

이남박에 담고 썩썩 씻는데 땀을 철철 흘리면서 씻어서 불궈놓고 씻어서는 불궈놓고 합디다.

그러다가 나를 보면서 “에구야, 나보다 젊은 사돈인데

부끄러울 게 있는가” 하면서 우에 입었던 아주머니 저고리를 훌 벗더구만. 그런데 입은 런닝그가 남자들이 입는 런닝그인데 이남박에 쌀을 일 때

보면 그 런닝그 뒤 해진 곳에 동전만큼한 구멍이 보이였습니다.



중앙민족대학 옹달샘문학사 한글날 기념공연 《몽당치마》의 한 장면.

“야, 아무리 일이 안된다고 해도 어떻게 저렇게 파난

런닝그를 입고 와서 일하는가”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일을 하는데 그날 저녁에 안사돈이 와서 함구경을 했어요. 옛날에는 색시가

시집가기전에 본가편이고 외가편이고 모여서 함을 구경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사돈은 아래간에서 일만 하고 사돈네 와서 함구경하는데 들어가지 않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형수가 “동생도 빨리 들어가 보오!”라고

했지만 머리를 수그리고 땀을 흘리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웃방에서 막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형수님 그편인데 아마 동불사 사돈이 이집에

와서는 일을 죽게 하지만 왜 자기네 군일에 와서는 일을 하지 않는가 하는 내용으로 다툼이 난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이 사돈이 쌀을 씻다가

머리를 수그리고 눈물을 뚝뚝 떨구더구만. 그래서 나는 “야, 정말 래일 각시가 시집가겠는데 재수없이 사돈네가 와서 잔치집 기분을 흐린다.”고

생각했어요.



치치할대학에서 문학강의를

하고 있는 림원춘소설가.

사돈네가 가고 이튿날 잔치를 하는데 떡은 어떻게

쳤는지 모르겠는데 일에 지친 동불사 사돈이 목에 편도선이 부어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되였어요. 그래서 내가 “병원에 가서 주사 한대라도

맞으라”고 했더니 “난 이때까지 감기약 한알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괜찮다고 하는거지요. 그렇게 병원에도 안가고 주사 한대도 맞지

않으면서 열심히 일하더라구요. 몸에 열이 그렇게 나면서두.

이튿날 잔치가 끝나서 온 손님마다 떡 한덩어리에 술

한근씩 보내니까 싫어하는 사람 한명도 없더구만. 그렇게 둘째조카를 시집 다 보내구 이튿날까지 동불사 사돈이 불편한 몸으로 그릇까지 깨끗이

씻어서는 빌려온 그릇은 돌려주고 그랬어요. 잔치집 그릇이란게 소고기기름이랑 돼지고기 기름이랑 가득 묻고 그랬는데 그 사돈이 벼짚에 재를 묻혀

깨끗하게 씻었어요.

그때 제가 료리사였어요. 제가 어려서부터 끓여먹고

이러다보니까. 그때 가장 선진적인 취사도구인 석유곤로에 불을 붙이고 다 해놓은 돼지발쪽, 소꼬리, 간 들여놓은 대구생회 이런 것을 놓고 손님이

오는 대로 차리면 모두들 맛있다고 하면서 가군 했는데 이렇게 엉터리 료리사가 소문났어요.

그 그릇까지 다 챙겨놓고 동불사 사돈이 가게 되니

제가 최고의 천으로 저 사돈의 옷을 한벌 해입혀드리자고 형수님한테 말했더니 형수님이 그런 것은 자기가 알아처리하니‘삼촌'은 가만 있으라고

하더구만. 저녁녘에 기차편으로 떠나는데 형수님이 이만큼 큰 보따리를 하나 만들어놓았더구만. 보따리를 겉으로 보니까, 내가 입던 옷, 형님이 입던

옷, 아이들이 입던 옷을 골똑 담은 들기도 힘든 커다란 옷보따리더구만. 그리고 술 한근에 나머지 고기에 돈 5원을 내놓더구만. 그때 돈 5원이면

큰 돈이였어요. 아무리 군일 집이라도 부조를 50전 초과하지 않던 시기였으니까. 5원을 내놓으면서 동생 수고하였는데 별로 변변한 것 없어도 음식

가져다가 애들 먹이고 옷은 애들한테 입히라고 하더구만.

동불사 사돈은 "언니, 왜 이렇게 하는가"고

하더구만. 그런데 나는 형수님이 왜 이렇게 입던 옷을 보내는가고 그러면서 형수님을 손머리 작다고 원망하면서 자전거에 그 보따리를 싣고 역전까지

환송했어요.

그리고 돌아와서 형수님 보고 “아주머님 너무 합니다.

내 그렇게 부탁했는데 왜 꼴꼴한 천으로 옷을 한벌 해입혀 보내드리지 못했는가?”고 솔직한 소리를 하니까 형수님이 “삼촌이 저집 래력을 몰라서

그런다.”고 하면서 저집은 원래 남편이 룡정우정국에서 사업하였는데 300원을 탐오했다는 루명을 쓰고 동불사에 내려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동불사에 와서 (가난한 집들을 보면 모두

비슷한데) 애는 밀밀 낳아 다섯이나 되고 저 동생이 혼자 생산대에 나가 일하여 생활을 유지한다는 겁니다. 남편은 탐오범으로 로임도 없는데다

페병을 걀걀 앓다나니 저 안사돈이 생산대에 가서 남자들과 같이 목도를 했다는 겁니다. 그때는 원전화로 농토개량을 한다고 할 때인데 목도를 해도

남자들과 같이 하였는데 공수는 남자들보다 적게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정말 어렵게 사는데 거기다가 좋은 천으로 옷을

하나 해보내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애들이 다 한벌씩 입을 수 있게끔 우리 조카애들이 입던 옷, 남편이 입을 수 있게끔 우리

형제간이 입던 옷을 보내면 더 도움이 되며 하나도 해여지지 않은 옷들이라 삼촌은 더 근심말라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2004년 9월 4일, 북경에서 림원춘, 리원길 소설연구세미나가 개최되였다.

이렇게 힘들지만 저 사돈은 손뿌리가 여물어서 겨울이면

마선질을 해서 시집장가 가는 사람들의 베개머리에 원앙도 새기고 하는 그런 일을 하여 살아가는 가정인데 당치않게 그렇게 좋은 옷을 다 한벌씩

해주면 물론 좋겠지만 아직 그렇게 해주지 못할 상황,이거라도 저집에서는 그 옷을 아주 값이 있게 입을 것이라고 말해주더구만.

그게 어찌나 인상이 깊던지 그래서 머리를 탁 치는

생각이 있었는데 사돈이 입고 왔던 바지, 몽당바지라고는 없지만. 사돈이 입은 옷매무시에서 내가 제일 처음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였어요.

내가 룡정에서 혼자 밥을 지어먹으면서 공부를 할 때

그냥 머리에 감자면 감자, 옥수면 옥수를 이고 온 어머니를 보고 울면서 한마디 한 말이 있어요. 어머니 딱 하루만 밥을 해주세요.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고 싶어서요.

그러니 어머니가 “야, 내가 인츰 돌아가야 아버지

기음 매는거랑 농사짓는 것을 도와주지. 너네 뭘 먹고 살겠냐?”하면서 그 자리로 내가 한 밥에 장되를 좀 자시고 돌아가군했는데 어머니는 이렇게

사흘에 한번씩 내려왔다 갔어요.

내가 대문밖에서 막 울면서 “어머니!”하고 부르면

어머니는 내가 우는 것을 보기 싫어서 골목길을 막 빠져 나가셨는데 그때 어머니가 입은 그 베치마가 인상깊었어요. 원래는 길었는데 다슬어서 감아

올리고 감아 올려서 어머니가 입은 베치마가 겨우 무릎을 가릴 수 있는 몽당치마가 되여버렸지요.



연변주민족문화 전승발전

종신영예칭호를 수여받고(2017년

10월).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베치마가 떠올랐지요.

어머니는 아주 가난한 가정의 주부였죠. (아버지는 그냥 길에 떨어진 돈도 주으려 하지 않는 그냥 일만 하는 분이였고 가정처사나 친척처사 뭐고

삐치려 하지 않았고 다 어머니가 하였어요.) 그때 어머니가 돈이 없다보니 군일이 있는 친척집에 가면 전문 부엌에 앉아서 잔치음식을 하고 궂은

일, 된 일 가리지 않고 부조 대신으로 일을 하였어요. 그러던 어머니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몽당치마란 제목으로 우리 민속인 잔치, 회갑, 생일

등 환경을 설정하고 라는 소설을 창작하여 발표하게 되였어요.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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