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 조선족사회 형성에 기여해
회갑상을 마주하고 활짝 웃으며 가족과 기념촬영을 남기고 있는 손옥남 원장
(흑룡강신문=칭다오) 장학규 특약기자=새해가 시작되는 첫날에 칭다오조선족사회 형성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여 동네방네에 널리 알려진 백두산양로원 손옥남 전임 원장이 칠순 회갑잔치를 맞았다.
1월 1일, 청양구 해란강민속궁에는 수백명에 달하는 하객들이 모여 손 원장에게 축하의 인사를 올렸다.
손옥남 원장은 1950년 길림성 반석현에서 출생, 현재의 홍광중학교의 전신인 반석현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하고 추천을 받아 동북사범대학 물리학부에 입학, 1976년 10월 대학을 졸업하고 교육사업에 종사했다. 1984년 부터 사업의 수요로 선후 반석진공상관리소 부소장 겸 전직 당지부 서기, 화전현공상국 분국장 겸 당지부서기로 일하면서 해마다 공상계통 ‘선진공작자’와 ‘38붉은 기수’로 뽑혔으며, 2001년부터는 해마다 길림성공상계통 노동모범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손 원장이 관리하는 시장은 전국문명시장으로 평선되었으며 더불어 손 원장 본인도 현지인민대표대회 대표로 활약했다.
퇴직하고 딸을 따라 칭다오로 온 후에도 손 원장은 퇴직생활을 즐길 생각은 않고 현지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그러다가 20만 조선족이 살고 있는 산둥성에 양로원이 하나도 없다는 현실을 발견했다. 젊은이들은 사업에 바빠 미처 집에 계시는 노인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운신이 어려운 늙은 부모나 앓는 부모가 계시는 자식들은 비싼 돈을 팔면서 보모를 구해 돌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하여 손 원장은 2006년 5월 지모구 산리좡에 칭다오시 첫 조선족양로원을 설립, 4명 직원에 2명 노인으로 스타트를 떼어 현재 152명 노인에 23 명 직원으로 성장했으며, 여러가지 원인으로 수차 이사를 하면서 이름도 ‘복운룡’에서 ‘백두산’으로 변경되고, 면적도 8백제곱미터에서 2천여 제곱미터로 확정되었다.
10여 년간 손 원장은 현지 민족사회 구성원들의 뒷걱정을 덜어드렸을 뿐만 아니라 민족행사, 자선사업 등에도 솔선수범으로 나서서 칭찬을 받아왔다. 손 원장은 자립능력이 없는 노인들을 직접 목욕시켜주고 먹여주었고 해마다 손수 수십명에 달하는 노인들의 장레를 치루어주었으며 의지가지 없는 사람은 비용까지 도맡았다.
이날 회갑잔치에는 기업협회, 작가협회, 연변대학동문회를 비롯한 대부분 칭다오민족단체와 현지 소수민족연의회, 봉사단체, 자선단체 등 한족들이 대거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