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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32] 우리 부부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0.01.21일 13:57
나와 남편은 내가 대학교 3학년 되던 해 겨울방학에 처음 만났다.

음력설 휴가로 길림에서 직장을 다니던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고 나의 아버지와 남편의 엄마가 같은 위생계통에서 근무하는 인연으로 만남의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때 남편은 엄마의 손에 끌려 직접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남자 치고는 너무 말쑥하고 이쁘다 할 만한 모습인데 난 오히려 그런 모습이 별로였다.



남편과 함께 있는 필자 김숙자

내가 상상했던 남자친구는 얼굴색이 좀 검고 오관이 부리부리하고 선이 굵고 좋기는 구레나룻을 한 그런 형상이였는데… 그리고 키도 175센치를 넘는 우리 아버지 키 정도는 되였으면 했다. 그런데 남편의 신장은 누구 어머니의 말을 빈다면 너무 커서 멀뚱하지도 않고 작아서 바틈하지도 않은 딱 보기 좋은 168센치! 내가 조금만 굽 높은 신을 신으면 나 보다도 작아보일가 하는 그런 체구이다. 하지만 난생 처음 선을 본 남자인데다가 내가 정말 존경하는 아버지께서 주선한 남자이고 대련에 있는 좋은 대학을 나온 수재에 직장까지 당시에는 전국에서 소문 높던 길림 모 국영 단위라니 굳이 뻐길 리유가 서지 않아서 후일을 약속했다.

선을 보는 날 재미 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손님이 직접 우리 집으로 오게 되였기에 례의상 우리 4남매가 모두 나와서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 잠간 합석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의 엄마가 맞선 상대자인 나한테는 몇마디 말을 시키는 듯 하더니 내 바로 아래의 녀동생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유심히 쳐다보고 말도 많이 걸었다. 녀동생도 그 때 장춘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누가 보아도 참 이쁜 애라고 찬사를 할 때였다. 내가 보아도 나보다 훨씬 예뻤다. 그날 손님이 간 후 아버지가 단호히 얘기를 하셨다. 다음에 이 손님들이 오실 땐 둘째는 친구들 집에 놀러 가라고.

자녀교육에서 법도도 많이 세우셨던 아버지셨지만 대학교 때 대상을 찾아야 제일 ‘값이 높다’는 생각만은 굽히지 않으시고 직접 팔을 걷고 나섰던 아버지셨으니 오죽했겠는가. 둘째 동생도 후에 아버지의 알선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음력설에 처음 만나서 후에는 편지가 오갔다. 남편은 언제나 직장 특제의 원고지에 편지를 썼는데 그 내용은 띄여쓰기 문장 부호까지 다 합쳐도 결코 한페지를 초과한 적이라고는 없었다. 그 한페지에서나마 길림의 날씨가 어떻소 하면 3분의 1, 단위에서 요사이는 무슨 일이 어떻소 하면 또 3분의 1, 그 나머지 3분의 1에는 당신은 요사이 어떻게 보내오 하고 물어보면 끝이였다. 그렇게 흔하디 흔한 ‘사랑한다’든지 ‘보고 싶다’ 든지 하는 말 같은 것은 애초에 흔적도 없었다. 난 이런 편지가 많이 서운했지만 또 그럴수록 어딘가 은근히 끌리는 마음을 접을 수가 없었다.

그런던중 ‘5.1’절이 되였다. 내가 편지를 주고 받는 남자가 길림에 있다는 소식을 알고 있는 숙사친구들이 숙사에서 뭘 하냐 구경도 할 겸 길림에 가보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나도 갑자기 그러고 싶어졌다. 못이기는 척하고 나는 녀자라는 체신도 잊고 길림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편지로 소식을 알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린지라 나는 작심하고 직접 단위로 찾아갔던 것이다. 후에 하는 말이 그때 웬 녀자가 찾는다 해서 나가기는 했는데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딱 자기 이름을 대며 찾아온 녀자라 례의상 응대를 하는 과정중에 아차 그 녀자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 치듯 떠오르더라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도 있다. 사실 남편은 쉰이 훨씬 넘은 지금도 녀자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걸 많이 어려워하고 있으니 그 때는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

결혼전에 ‘말떼기’란 의식이 있어서 그의 둘째삼촌이 함께 우리 집으로 동행했다. 식사 때 조카(남편)가 숟가락이 부러지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삼촌이 “무슨 밥을 그렇게 심하게 먹냐?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집에서 왔는가 하겠다”하면서 우스개를 한 적도 있다. 사실 남편은 “그 집에 가서 식사를 하거든 절대 깨작거리지 말고 먹음직스레 푹푹 떠서 먹도록 하라”는 부모님의 당부를 실천하던중이였다. 남편은 이렇게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결혼후 나에게는 처음으로 저금통장이 생겼다. 남편 덕분에 우리집 저금통장 수치도 나날이 상승선을 그으며 올라갔다. 그 돈으로 우리는 텅텅 비여있던 집 구석구석에 가구며 가전제품을 하나하나 사서 들여놓았다. 돈이 어느 정도 모일 때 쯤이면 남편이 지시를 한다. 어느 백화상점에 가면 어느 명품이 있는데 그 중 어떤 규격의 어떤 값에 팔고 있으니 그 것을 사라고. 그 지시를 하달할 때의 남편의 두 어깨에는 여느 때보다 힘이 가득 실려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채색텔레비죤이 생기고 랭장고며 전자동 세탁기도 갖추게 되였다. 날에 날마다 나의 옷들이 바뀌고 또 바뀌였다.

출근해서 힘든 남편은 저녁 식사 때면 약주를 좀 하는 습관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녀자들이 술상에 오르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랐 던터라 남편이 함께 술 마시자고 권해도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다 노래방이 성행하면서 나도 아이러니하게 녀자들이 술을 마시는 대오에 가담했다. 이 일로 나와 남편은 참 많이 아웅다웅 다투기도 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자질구레한 일로 부부싸움을 하는 것을 질색하던 나였기에 남편의 심중을 무시하고 내 뜻만을 고집하면서 티격태격하는 날을 유지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술상을 밖에서부터 집으로 옮기게 되였는데 남편이 좋아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술친구가 생겨서 좋았나보다. 그것도 녀자 술친구가 생겼으니 말이다.

남편은 몹시 수줍은 편이여서 밖에서 다른 녀자들의 얼굴을 감히 쳐다보지 않는다. 집에서 같이 술을 마시다보니 바깥 환경보다 기분이 느슨한 때문인지 분위기가 꽤나 좋았다. 그래서 평상 시 타일러주고 싶었던 말도 이럴 때 해주면 기분 좋게 허허 받아들여주어서 부부 처세술의 열쇠를 찾은 감각이였다. 생활에 새로운 맛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 있을 때 용기를 내서 생전 불러보지도 못했던 오빠를 불러보기도 했더니 처음에는 ‘닭살’이 돋는다 하면서 몸을 움츠리며 야단이던 것이 그 후에는 면역력이 강해졌는지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지금은 하루에도 명칭이 몇가지로 바뀌여도 대수다. 한 가정의 세식구 사이도 인간관계이기에 처세술이 필요하다. 책보기를 좋아하는 나는 책 속에서 부단히 새로운 인간 처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들애가 고중 때 학교 우수 학생간부로 평성되였을 때 생화 한 묶음 사오고 카드에 축하의 글도 쓰고 아들애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남편과 함께 문어구의 량켠에 서 있다가 “환영, 환영, 열렬히 환영!” 하면서 맞아주기도 했다. 아들애도 무척 좋아했다. 식구들 사이의 감정도 더 돈독해지는 것 같았다.

남편은 고중 때 동창이거나 대학교 동창이거나를 막론하고 동창들이 길림에 오기만 하면 나를 데리고 다니기 좋아한다. 아마 내가 술상 기분을 잘 돋구어서 그런 것 같다. 동창생들이 많이 오가는 가운데서 나이도 비슷하고 기분에 따라 분위기도 많이 올려주고 했더니 그의 동창생들은 길림에 오기를 좋아했다. 서로 다니다나니 점점 감정이 깊어져 내가 그만 그들의 동창생이 되여버렸다. 해마다 설 쇠러 고향에 가기만 하면 무조건 시간을 내서 우리를 초대했고 사업이 바쁜 남편이 설 쇠러 오지 못할 때에도 그의 동창생들은 차까지 몰고 와서 기어코 나를 초대해준다. 참으로 정이 많은 동창생들이다. 남편 동창생의 딸의 결혼식에 남편이 사업관계로 참가하지 못해도 내가 대신하여 비행기 편으로 청도까지 간 적도 있다. 한번은 고중 동창생이 녀자 두분과 함께 길림에 오게 되여 우리 부부가 함께 이들을 초대하게 되였다. 분위기가 도도해지자 그 중 한 녀자분이 하는 말이 우리가 오기전 나의 남편이 안해를 데리고 온다하니까 동창생이 오는데 왜 하필 안해까지 데리고 오냐고 아니꼽게 생각했는데 오늘 저녁 오지 않았더면 이렇게 좋은 분위기를 놓칠번 했다며 련신 사과하는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해 설명절에는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기어코 우리를 고급 식당에 성심껏 초대해주었다.

길림시 모 등산협회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해 년말 총황 때 협회에서 우리 부부 보고 기어코 종목을 내놓으라 해서 집에서 종목을 련습했던 일이 있다. 무슨 일이나 열심히 하는 남편은 종목 련습하는 것도 반복적으로 적어도 스무번 이상은 한 것 같다. 그 것도 아들애와 애완견까지 쏘파에 앉으라 하고 정색해서 등장하는 부분부터 열심히 종목을 련습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우리 둘의 출연은 협회 회원들의 한결같은 치하를 받았고 두고 두고 외우는 이야기로 남아있다. 유머가 다분한 출연이지만 자신은 웃지도 않고 정색해서 출연하는 인상이 너무 깊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는 카카라는 애완견이 있다. 아들애가 고중을 졸업하던 해에 우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가서 애완견 한마리를 사놓았다. 불과 두달도 안되여 대학교에 입학하는 바람에 애완견을 보살피는 임무가 우리한테 떨어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울며 겨자먹기로 카카를 보살폈는데 점점 정이 들면서 자연적인 일로 되여버렸다. 나는 원래부터 애완견 같은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이 어린애 대하 듯이 얼려가면서 하는 짓거리가 아들애한테도 그렇게 자상하지 않은 것같다. 설 쇠러 가게 되면 애완견을 봐주는 집에 맡기는데 어느 해인가 카카를 보내놓고 시름이 놓이 않아 낮잠 자는 시간까지 허비하면서 그 집을 찾아간적도 있었다. 주인이 이렇게 찾아오면 카카한테 불리하다고 해서야 찾아가는 일이 없었다.

여름날 저녁이면 산보도 할 겸 카카의 생리문제도 해결 할 겸 밖에서 돌아다니다가 컬컬한 김에 한잔 할가요 하면 거리의 양꼬치점에서 림시로 밖에 세워둔 식탁 기둥에 카카를 매여놓고 둘이서 맥주 한병씩 병나발 불고 돌아오기가 일쑤이다. 기분 좋을 때면 손 잡고 돌아오기도 한다. 친구들에게 우수개 삼아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직도 손 잡고 다니느냐고 우리를 놀린다. 어느 날인가 저녁 9시가 넘었는데 심심해서 “오빠 맥주 사줄래요?” 했더니 “그럼 갈가” 하고 같이 나갔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창살 같은 소낙비에 갇히운 적도 있었다.

남편은 집에서 자기가 잘못한 일을 절대로 내 앞에서 잘못했다고 승인한 적이 없고 지금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한적 없다. 그저 내 눈치를 흘끔흘끔 보거나 맛 있는 료리를 해놓는가 하든지 행동으로 잘못을 승인하고 사랑을 표시할 뿐이다.

어릴적부터 조선족 전통관념에 물 젖은 나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남편을 존중해주고 남편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 안해의 직책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집에서도 우스개를 더 잘하고 남편이 맛 있는 료리를 해주면 엄지손을 내밀고 음식점의 료리보다 더 맛 있다고 칭찬을 해주고 뒤에서 살짝 포옹까지 해준다. 나의 동창생들과 친구들은 나에게 애교가 많다고 야단이다. 나는 내가 하는 짓이 애교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가족들 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해주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생활의 여유가 나에게 가져다준 별맛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가정은 사회의 세포이다. 나의 혼인생활에서 그렇게 남들이 부럽다 할 성취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도 세식구가 서로 고무하고 지지하고 곤난을 함께 해결해 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화목은 가정에서 가장 큰 재부라고 생각한다. 나는 태여날 때부터 애교와 연분이 없는 녀자지만 자기만으로서의 삶을 터득하고 실천해가면서 오늘까지 살아왔다.

지난해는 우리 부부의 결혼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나온 30여년은 순조롭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손 잡고 또 하나의 30년 고개를 넘으려고 생각한다.

/김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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