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할빈)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그동안 우리는 전염병으로 인한 질고를 많이 겪어왔다. 그러나 언제 한번 전염병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고 한차례 한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 경험을 쌓고 전반 건강 수준을 향상시켜왔다.
“페페스트”와의 전쟁
1910년 동북지역에서 류행되였던 페스트는 중국 현대의학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를 통해 중국은 현대 방역체계를 초보적으로 갖추었고, 공중보건사업의 기반을 닦게 되였다.
당시 오련덕이라고 하는 중국의 이름난 의학자가 페스트 예방 치료에서 관건적 역할을 일으켰다. 오련덕은 류학파 인재로 청나라말기 중화민국시기에 귀국했고, 마침 1910년 동북 페스트와의 전쟁을 맞이했다.
1910년 12월 말, 청정부는 오련덕을 의료 총괄자로 지목해 현장에 파견했다. 오련덕은 할빈에 도착한 사흩날 환자 유체 해부를 통해 그번 페스트를 “페페스트”로 최종 확인하고, 환자의 비말을 통해 감염될수 있기에 마스크 사용, 철도 검역, 교통 규제, 환자 격리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의 과단성 있는 방역조치로 짧은 4개월 사이에 전염병 류행을 저지시켰다.
1911년 4월, 오련덕은 봉천에서 “만국페스트회의”를 소집하고 각국 의학 전문가, 세균학자들을 초청해 페스트 방역사업을 론의했다. 그번 회의는 중국이 처음 인류보건을 주제로 개최한 국제의학회의이다. 량계초는 당시 중국을 국제 과학계와 어깨를 견주게 한 사람은 오련덕 일인뿐이라고 평가했다.
만국페스트회의 현장
애국보건운동
새 중국 창건이후, 우리 나라는 전염병 예방통제에 큰 관심을 돌리고 공중보건질병관리에서 중대 성과를 이룩했다. 그 례가 바로 새 중국 창건 초기 일어난 애국보건운동이다. 당시 도시와 농촌에서는 전염병이 많이 류행했다. 그러나 치료제가 부족하고 또 조선전쟁에서 미국이 발동한 세균전의 영향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 렬악했다. 1952년 모택동 동지는 “전민이 동원되여 위생을 지키고 질병을 줄이며 건강수준을 향상시키고 적들의 세균전쟁을 물리치자”는 글을 발표했다. 이로써 성세호대한 애국보건운동이 전국적으로 신속하게 펼쳐졌다.
애국보건운동 당시 홍보자료
주혈흡충병 예방과 치료
주혈흡충병은 우리나라에서 2100여년의 력사를 기록하고 있다. 장사 마왕퇴 고분에서 출토된 녀성 시신에서 처음 주혈흡충란이 발견되였다. 주혈흡충병은 인류와 가축이 모두 감염될수 있는 기생충병으로 인류의 건강과 사회경제 발전에 큰 악영향을 미쳤다.
1949년, 도강전역 당시 많은 북방 출신 전사들이 주혈흡충병에 감염되면서 대규모 비전투 희생자들이 나타났다. 새 중국 창건 초기, 주혈흡충병은 장강 중하류, 그 이남의 12개 성과 자치구, 직할시에서 류행되고 감염자는 루계로 천여만명에 달하였으며 1억이상 주민들에게 위협을 초래했다.
1958년 6월 30일 “인민일보”는 “첫 오성붉은기-강서 여강현의 주혈흡충 소멸기”라는 제목으로 장편 기사를 실었다. 모택동은 이 기사를 읽고 나서 “7언률시 2수 역귀를 몰아내며”를 발표했다.
모택동 동지, 주혈흡충 예방치료 전시 참관(좌),
모택동 동지의 “7언률시 2수 역귀를 몰아내며” 친필 원고(우)
해방초기, 중앙의 주혈흡충병 예방퇴치 관련 정책과 함께 우리나라는 주요하게 환경 개조, 권패류 소멸, 치료제 개발 등 종합대책으로 권패류 번식지와 감염자수를 크게 줄였지만 주혈흡충병을 완전히 퇴치하지는 못했다. 20세기 70년대 중기, 치료 효과는 높지만 독성이 상대적으로 약한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주혈흡충병 예방통제 사업은 큰 개선을 가져왔다.
현단계 주혈협충병 예방퇴치 책략은 뚜렷한 효과를 거두었지만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천연두 퇴치
20세기에 들어서 인류의 수많은 전염병들이 효과적으로 통제되기 시작했다. 그 주요한 원인이 바로 백신의 광범위한 응용이다.
새 중국 창건 초기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는 천연두가 여전히 심각하게 류행되였다. 1950년부터 1951년 사이 우리 나라에서 보고된 천연두 감염 병례는 만1천여례에 달했다. 천연두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통상구 보건 검역을 강화하는 동시에 1950년 10월 중앙인민정부는 주은래 총리가 서명한 “가을철 천연두 예방접종 지시”를 발표해 전국 전역에서 천연두 예방접종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1960년 먄마와의 접경지대인 운남 사모구 서맹현에서 수입성 천연두 감염병례 5례가 발생해서부터 3월 초 남항채의 호소발이라는 환자를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천연두 감염자가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요인때문에 우리 나라는 1979년 12월에 이르러서야 천연두 퇴치에서 국제적 승인을 받았다.
1977년 10월 26일, 세계 마지막 천연두 환자였던 소말리야의 한 료리사가 완치 판정을 받았다. 1980년 5월 8일, WHO는 케니아 수도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33회 세계보건총회에서 “세계 천연두 퇴치”를 선포하고 수천년간 인류를 괴롭혔던 천연두가 완전 퇴치되였음을 알렸다.
백신 개발과 더불어 우리는 태여나서부터 예방접종을 통해 홍역, 백일해, 디프테리아, 성홍열 같은 아동들의 건강에 엄중한 위해를 가져다주는 질병을 예방할수 있게 되였다. 우리는 이렇게 저도 모르는 사이에 현대 의학이 가져다준 성과를 누리고 있다.
출처: 중국조선어방송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