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문화/생활 > 건강/의료
  • 작게
  • 원본
  • 크게

락관적으로 살아가면 삶은 의연히 아름답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0.02.29일 14:32
 

코로나19 전염병 발생후 길림성에 남아있는 외국인들

가장 빠른 시간내에 전염병 발생상황 정보를 발포하고 중앙에서 기층에 이르기까지 법령을 따르고 금지령을 내려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했다 … 코로나19전염병의 예방통제에 대비하여 중국은 유력한 조치와 량호한 효과를 거두어 세계보건위생조직과 많은 국가들의 충분한 긍정과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길림성은 동북아 중심지에 위치하여 로씨야, 한국, 일본 등 많은 나라들과 밀접한 왕래를 하고 있다. 

현재 많은 외국사람들이 전염병 발생으로 귀국했지만 일부《외국인》들은 사업이나 학습 등 원인으로 계속 중국에 머물러 있으며 길림성에도 남아있다.이번 전염병예방통제와 저격전에 직면하여 외국인인 그들도 이 역경과 맞서싸워 이겨 나가고 있다. 그들의 가족, 친구들은 길림성의 상황과 그들의 안전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 일전 기자는 길림성에 남아 있는 로씨야, 한국, 일본, 수단, 까메룬 등 나라의 몇몇 외국인들을 취재하여 그들의 현재 생활과 사업, 학습상황을 료해했다. 취재가운데서 우리는 그들이 매우 안심하고 있으며 우리 성의 예방통제조치가 그들의 우려를 충분히 해소시켜 주고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이 특수한 시기를 마음속 깊이 영원히 기억하렵니다”

“이번 전쟁에서 중국이 반드시 이기리라 확신하고 매 사람마다 안전에 조심하시길 희망합니다. 중국 화이팅! 무한 화이팅!”위챗으로 보낸 기자의 친구요청을 재빨리 수락하며 흔쾌히 취재에 응해준 외국인 타니아는 기자에게 전염병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지지를 보내왔다. 타니아는 올해 22살인 로씨야 시베리아 바르나울시에서 온 류학생이다. 지난해 9월 그는 알타이국립대학 동방학과를 마치고 길림대학 국제언어학원에서 한어전공을 연수중이다. 그녀의 전공은 중국 문화, 경제, 지리,력사 등과 관련되여 있으며 그 또한 중국 문화에 대해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중국에 오게 된 까닭도 바로 이때문이였다.



로씨야 류학생 타니아

“중국의 선생님들께서는 우리에게 대학생활이 풍부하고 다채롭기 때문에 량호한 심리상태를 수립하고 자신의 학습과 미래에 대해 신심으로 충만되여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눈깜짝할 사이에 길림대학에 온지도 어언 한학기가 지났다는 그는 비록 요즘은 암울한 시기지만 “이것 또한 나의 학습생활에서의 특수한 경험으로서 이 특수한 시기를 소중하게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겠다”며 서투른 중국어로나마 자신의 감수를 표현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많은 류학생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갔지만 타니아와 그의 친구들은 “우리는중국정부가 반드시 잘 해결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다른 류학생들도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의 안위를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부모님들일 것이다. 타니아의 가족들도 그녀에게 서둘러 귀국하라고 했지만 그는 외출을 하지 않고 기숙사에만있으면 괜찮다면서 가족들을 안심시켰고 또 “중국정부에서 여러가지 조치를 취해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가족의 걱정을 달래기도했다. 타니아가 머무르고 있던 우의회관 종업원들은 그들 도와 물품을 구매해 주었고 매일 체온을 체크해 주었으며 개인물품을 소독해 주었다.

“지금은 상황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 부모님들도 비교적 안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늘 나에게 로씨야 국내의 소식을 전해주기도 하고 나도 그들에게 장춘의 상황을 전달해주기도 합니다”

타니아는 요즘 단조로운 생활을 하지 않기 위해 독서, 채팅, 노래듣기, 신체단련을 하고 있으며 중국노래와 중국료리기술도 익혔다.

타니아의 모멘트에는 많은 여러 나라 류학생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이 “엄동설한이 지나가면 꽃피는 봄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 무엇도 내가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배우는 것을 막지 못할것이다”

마리아는 올해 18살난 로씨야 불고그라드시에서 온 류학생인데 현재 그는 동북사범대학 인문학원에서 한어를 전공하고 있다. 마리아는 중국에 온지 이제 겨우 6개월밖에 안되였지만 갑작스러운 전염병발생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겨울방학기간 계속 장춘에 머무르기로 했다.

“중국에 와서 한어를 배우려고한 것은 저의 오랜 소망이였어요. 중국과 로씨야는 문화가 많이 다른데 저는 이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접촉해보고 싶었습니다. 중국은 현재 류학생들에게 여러 분야의 좋은 교육기회들을 제공하고 있어서 여기서 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전염병이 발생한 후 마리아는 자주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게 되였는데 부모님들은 걱정되여 여러번이나 마리아더러 로씨야에 돌아올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무엇도 내가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배우는 것을 막지 못한다. 중국정부에서 머지 않아 이 상황을 잘 해결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아는 “중국어를 배우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세상에 불가능한 것이 없으며 목표가 있다면 모든 대가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로씨야 속담에 “인내와 노력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며 그녀는 점차 중국인의 심리상태를 학습하기 시작하였고 한어문법과 상형문자를 리해하기 시작했다 . 



로씨야 류학생 마리아

그녀는 중국어로 “중국사람은 아주 우호적입니다. 중국에서 나는 그동안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는데 그들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라고 중국어로 말했다. 마리아가 현재 머물고 있는 학교에서는 엄격한 예방통제조치를 취하여 학생들에게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있었다.

“우리는 뷔페식당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사먹을수 있습니다. 음식도 맛있고 정기적으로 마스크를나눠주고 체온을 검사하고 있으며 선생님들께서 살틀 보살핌과 관심으로 우릴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평소 기숙사에서 마리아는 책을 읽고 배운 중국어를 복습하고 한가할 때는 T V 를 보거나 친구와 이야기도 나눈다. 

“현재 주변에 많은 대학생들이 온라인수업으로 강의를 듣고 있는데 참 좋다고 생각됩니다. 외출을 하지 않아도 학습할 수 있고 더 충실한 생활을 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감이 넘치고 락관적인 생활태도를 잃지 않는 마리아는 밝은 래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중국의 더욱 진실된 방역정황을 친척친구들에게 알려줄래요.”

“저는 이번 방학에 집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되였거든요. 장춘에 남아 진정한 중국의 음력절 분위기를 체험하고 싶었어요. 안타깝게도 이번에 전염병이 돌발하면서 저의 체험은 조금 유감을 남겼죠. 그러나 이때문에 또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도 했고요.”

발레리는 위챗을 통해 기자에게 길림에서 보낸 이 특별한 방학에 대한 감수를 전했다.

발레리는 로씨야 랴잔시에서 왔다. 랴잔국립대학에서 한어를 공부하다가 작년 9월에 장춘대학으로 류학을 오게 되였다고 한다. 그는 기자에게 요근래의 장춘생활을 통해 로씨야와 중국 량국은 보기엔 완전히 달라 보여도 실제로는 공통점이 아주 많음을 발견하게 되였다면서 장춘에서의 생활이 아주 편하다고 말했다.



로씨야 류학생 발레리

사실 겨울방학 후, 특히는 전염병이 발생한 이후 그는 집에 돌아가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 게다가 로씨야정부도 그들에게 귀국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발레리는 중국정부가 충분한 조치를 취하여 전염병을 통제하고 있고 또 문제가 인츰 효과적으로 해결될것이라 믿고있었다.

“저는 여기에 남았죠. 왜냐면 저는 중국정부를 믿고 나의 대학과 중국인민을 믿기 때문입니다.” 발레리는 류창한 한어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염병 방역 기간 변화된 생활절주에 직면해 발레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숙사에서 보냈다. 비록 생활이 조금 따분했지만 스스로 향상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였다. 매일 실내에서 신체를 단련하고 책도 좀 읽었으며 중국어 교과서를 복습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 “주자청의 산문과 스티븐 호킹의 책을 아주 좋아하는데 이 기회를 잘 리용하여 공부해야겠다”고 덧붙였다.

독서가 끝나면 녀자친구와 인터넷으로 련락한다고 말했다. 녀자친구는 윁남사람인데 역시 같은 장춘대학 류학생이라고 하면서 방학하고나서 귀국했다고 말했다. “전염병이 하루 빨리 결속되길 희망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만날 수 있게 되죠!”

장춘대학에서도 류학생들의 생활에 많은 보살핌을 주고 있다. 발레리는 학교에서 경상적으로 기숙사를 소독한다고 말하면서 특히 엘리베이터 소독을 철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소속된 국제교육학원은 정기적으로 마스크, 소독액, 알콜 등 방역물자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교원들도 그들의 일생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문의해오면서 일부 곤난을 해결해주고 있다.

집에 돌아가지 않고 있다보니 발레리의 가족들이 그를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발레리 어머니는 수시로 그와 련락한다고 했다. “련락할 때마다 저는 중국의 더욱 진실된 방역정황을 식구들에게 소개해주려고 해요. 동시에 그들을 통해 더욱 많은 친척과 친구들에게 알려주려고 해요.” 발레리는 가족들에게 요언을 믿지 말 것을 권하면서 전염병이 곧 지나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발레리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주변의 친구들도 세계 여러 부동한 나라들에서 왔는데 우리는 서로 격려하고 있어요. 지금 우리는 마치 하나의 대가정과 같아요.”

“전염병을 통해 저는 중국인민들이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쿠미코는 동북사범대학 국제한학원 한어국제교육 석사를 전공하고 있는 일본 류학생이다. 두살이 채 안된 딸이 한명 있었다. 전염병 돌발 상황에서 쿠미코는 중국에 남기로 결정하고 중국의 식구들과 함께 전염병과 맞서 싸우기로 했다.

초기에 쿠미코는 매일 대량의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접하다보니 불가피하게 가슴을 졸이고 걱정하게 되였다고 했다. 더우기 딸이 감염될가봐 더욱 걱정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의 도움과 친구들의 관심, 그리고 공식 주류매체의 권위적인 해독을 통해 심리상태가 점점 평온해지기 시작했단다. 쿠미코는 “중국이 각종 조치를 강구해 전염병을 통제하면서 저는 전염병 상황이 꼭 호전을 가져오리라는 것에 신심이 더해 졌어요. 뿐더러 저희 사회구역에서도 특별히 엄격한 관리통제 방법을 취해줘서 더욱 안전감을 느꼈죠.”



일본 류학생 쿠미코

일상생활이 전염병 상황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기자의 물음에 쿠미코는 “생활물자가 부족한 것은 없었어요. 대형슈퍼마켓에 가면 물품이 다 비치되여 있고 사재기 현상도 없었고요. 슈퍼마켓의 체온 측정 등 방역조치도 적절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었고요.”라며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쿠미코는 이 시기 학교 교원들 역시 류학생들이 생활상 불편을 겪을가봐 경상적으로 위챗으로 안부를 물어올 뿐만 아니라 매일 책임자 교원에게 개인 신체상황을 보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하면서 매우 책임심이 강하다고 표했다. 며칠전에는 학교에서 가까운 시일에 인터넷 수업을 전개할 것이라는 통지를 받았다. 이에 대해 쿠미코는 학생들의 건강도 보장하고 또 학업을 지체하지도 않고 서로 너무 좋은 것 같다고 하면서 중국인의 지혜에 탄복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중국을 아주 좋아합니다. 중국의 언어와 문화에도 흠뻑 빠졌지요.”

쿠미코는 자신의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여 더욱 많은 외국인들로 하여금 중국을 료해하고 중국을 좋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특별한 한달여 동안 저는 주변인들의 관심과 배려를 느꼈고 중국인민들이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았으며 저 또한 전염병을 물리칠데 대한 신심이 가득합니다.”

" 모든것을 중국정부와 보조를 맞출것이다 "

“전염병 예방퇴치에서는 이동을 차단하는것이 매우 중요하기때문에 중국정부를 협조해 한국인들의 이동을 적극 자제시키고 있다” 연변한국인상회 이명재 상임고문의 말이다.

이번 코로나19전염병발생기간에 음력설이 맞띄우면서 연변에서 생활하고 있던 많은 한국인들이 설쇠러 한국에 돌아갔다. 이명재 상임고문은 연변에 1500명가량의 한국인들이 살고있는데 현재 남은 한국인은 200명가량 될것이라고 말했다.



업무와 방호에 모두 지장 없이

“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전염병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하루빨리 개선될것을 기대하고 있다…” 필경 적잖은 한국인들은 다년간 연변에서 생활하고 사업하면서 이 고장이 바로 소중한 삶의 터전으로 되였으니 아무리 전염병상황이 닥쳐와도 모든것을 접고 외면할수는 없기때문이다.

“매일매일 전염병상황을 체크하고 당지 언론매체에서 나오는 전염병 정보들을 적시적으로 한인채팅방에 공유한다.”고 이명재상임고문은 말했다. 그가 이렇게 하고있는것은 연변을 떠나간 많은 한국인들에게 당지 전염병상황을 제때에 알리기 위한것도 있지만 중국정부의 전염병 예방퇴치에 한인들을 적극 공조시기 위한것이기도 하다.

“현재 연변내 모든 한국기업들은 중국정부에서 요청하는데 따라 보조를 맞추고 있다” 고 그는 말했다.

“현재 중국정부가 전염병에 대한 대처를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이명재상임고문은 말했다.

특히 그는 " 전염병이 발생한후 14억 중국인민은 정부의 인도하에 공동으로 전염병 발생상황에 대처하여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였고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곧 이 저격전을 이기고 생산을 회복시킬 것이다”

“코로나19 전염병이 발생한후 중국정부에서는 질서있고 유력하게 전염병을 예방통제하고 있는 데 인상적이고 정말 탄복된다 !” 연변 음료수업종에서 다년간 분투해온 한국인 안명식은 당면한 중국의 전염병 상황에 대해 그의 감수를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

안명식은 중국에서 13 년간 생활하면서 연변은 이미 자신의 두번째 고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염병 사태를 경험하면서 중국과 중국인민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게 되였다고 말했다.



안명식 대표

“전염병은 무정하지만 사람은 유정하다. 전국인민들의 공동한 노력으로 예방통제 조치가 매우 엄밀하고 전 중국의 상황이 점차 호전되고 있는것을 보았다. 동시에 각계의 관심하에 우리 회사도 곤난을 극복하고 점차 생산을 회복하였다.” 안명식의 소개에 따르면 회사에는 현재 200 명의 종업원들이 있는데 현재 생산부서로 돌아온 사람이 150 여명이다. 2 월 10 일 회사가 생산을 재개한후 전원이 투입되지 않는 상황에서 생산량은 평소의 절반에 불과했다. 후에 회사에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여 생산라인이 전부 가동되였고 생산환경이 개선되였으며 생산량도 점차 제고되고 있다 .

“설날을 계기로 우리는 한국과 중국의 기타 지역에서 복직한 직원들에 대하여 정부의 요구에 따라 2 주간의 격리를 거쳐 건강을 확보한 상태에서 비로서 일터로 돌아갈수 있게 했다.” 안명식은 또 기자에게 전염병 발생후 연변주 정부와 안도현 정부는 제때에 중국경내 전염병 확산 및 예방통제 관련 정보를 알려주고 안전관리를 포함한 생산에 필요한 여러가지 편리를 제공함으로써 기업의 전염병 예방통제와 생산난제를 적극 도와주고 해결해주었다고 알려주었다 .

 

 

현지 정부의 지지와 인도 아래 점차 복공 모식을 시작

현재 연변농심광천음료유한회사는 매일 종업원들에게 전염병 예방통제의 관련규정을 강조하여 모두가 신심을 증강하고 일치단결하여 전염병 예방통제와 생산 운행의 두가지 임무를 완수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 안명식은 기자에게 “중국은 반드시 전염병과의 이 저격전에서 싸워 이기고 정상적인 생산을 회복할 것이다"고 말했다 .

“나는 중국을 응원한다. 중국정부와 인민을 믿는다!”

리상(李想)은 아프리카 수단 사람이다. 그녀는 수단의 수도인 카루툼대학 공자학원에서 2016년에 중국어 언어학 본과를 졸업하고 2016년에 중국에 왔다.천진사범대학에서 1년간 중국어를 진수, 2018년 장춘대학에 입학해 현재 중국어국제교육전업 석사과정 1년째이다.

기자가 인터뷰 요청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헬스중이라며 잠시후 자기가 기자에게 다시 련계하겠다고 류창한 중국어로 응답했다. 사람 됨됨이가 아주 겸손함을 알수 있었다.

과연 10분도 안돼 그한테서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왔어요 ”하고 위챗으로 메세지가 왔다. 리상의 영문이름은 AlSADIG, 문자 중 ‘리상(理想) ’이 들어간데서 리상(李想)이란 중국이름을 가지게 되였다고 한다.



2018년 장춘대학에 입학해 현재 중국어국제교육전업 석사과정에 있는 리상(李想)

“올해 26살, 나이를 많이 먹었어요!”

리상은 롱을 섞으며 열정적으로 기자한테 자신을 소개했다. 아프리카주 사람들이 지닌 외향성 성격과 특유한 유모아 감각으로 하여 리상과의 인터뷰는 매우 순조로왔다.

리상의 어머니는 차드공화국 사람이고 아버지가 수단 사람이였다. 부동한 문화배경을 가진 가정환경은 리상으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언어에 흥미를 느끼게 했다.“집에서도 나는 차드와 수단 두 민족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었어요. 소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나는 영어와 아랍어도 배웠구요. ”

타고난 언어의 천부적 재능은 리상으로 하여금 고중때부터 중국문화에 대해 깊은 흥취를 가지게 했다. 중국의 서법을 흔상했고 중국영화를 보기 좋아했으며 특별히 리련걸의 무술영화를 즐겨봤다고 한다.

“나는 중국어를 배우기 전부터 중국인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어요. 외국사람들에게 있어서 중국은 가장 안전한 나라이고 중국은 가장 노력하는 나라, 가장 평화적인 나라이며 외국사람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나라이지요. 그래서 나는 중국인을 특별히 존중한답니다.”

리상의 내심에는 언녕 중국을 자기의 두번째 고향으로 간주했다. “코로나19 전염병기간 나는 중국에 남아있기로 결정했어요. 나는 이젠 중국을 떠날수 없게 됐어요!”리상의 말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그는 중국에 온 2년간 많은 것을 배웠다며 절대 코로나19전염병 때문에 중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중국인의 코로나19 전승을 응원할 것이다. 그것은 나는 중국정부와 중국인민을 믿기 때문이다!”

코로나19전염병 상황은 류학생들의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주었다. 지금 리상은 대부분 시간을 숙사에서 책 보고, 신체단련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비상시기가 조속히 끝나 중국인민이 승리할 그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참말로 고마워요. 그들의 관심과 방조는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 리상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 이름 모를 어머니들과 아저씨들의 로고가 있어 자기들의 안녕과 생활이 보장된다고 말한다. 또한 그들이 있기에 부모님들이 처음에는 걱정하던 데로부터 점차적으로 시름놓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줄곧 부모님한테 맹목적으로 일부 떠도는 소문을 믿지 말라고 말립니다. 그건 가짜라고! 내가 중국에 안전하게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증명이라고 ! ”리상이 가족에 제일 많이 말해주는 말은 “항 코로나19 전역은 바야흐로 끝난다, 승리는 곧 다가온다!”이라는 말이다.

“버들잎 우거지고 백화 만발하는 그날은 곧 오리라”

“미안, 제가 늦었네요!”

당원(唐远)과 대화가 이루어진 건 대화 요청 발송후 30분이 좀 지나서였다.

“나의 중문 이름은 당원, 영문이름은 Fah Emmanuel,카메룬의 수도 야운데에서 왔어요.”

당원은 중국에 온지 2년 남짓이 된다. 지금은 장춘대학에서 기업관리전업을 전공하고 있다. 기자가 물어보기전에 시원하게 자아소개를 해주었다.

“나는2017년에 중국에 왔는데 오기전 카메룬에서부터 중국문화를 접촉했어요. 중국문화를 아주 열애해요.” 당원은 카메룬 공자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웠다. 중국에 온후 복단대학에서 1년간 중국어를 배우고 장춘대학연구생에 록취되였다. 2년래 그는 중국인의 친선과 근면정신에 깊은 감동과 고무를 받았다고 한다. 당원은 중국은 하나의 매우 안전하고 편안한 나라이며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생활이 쾌적하고 편리한 나라라고 말한다.



장춘대학에서 기업관리전업을 전공하고 있는 당원(唐远)

카메룬을 말하면 아마 많은 중국인들은 축구를 떠올릴 것이다. 그것은 카메룬에 아프리카주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팀이 있기 때문이다. 당원은 축구팬이다. 지금 장춘대학 축구대의 대장직을 맡고 있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방법을 대서 축구를 하려 합니다. 오락이 되면서도 많은 친구를 사귈수 있지요. ” 당원은 자기를 교정의 ‘활약분자 ’라고 자칭한다. 헌데 지금 코로나19 사태는 아프리카주대륙에서 온 이 ‘외향성 ’총각으로 하여금 ‘구속 ’받게 하고 있었다.

“나는 산책도 좋아하고 친구 사귀기를 좋아해요. 그러나 코로나19사태가 터져서부터 오직 얌전하게 숙소에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 활동적인 당원은 지금 매일 조용히 열독하며 한편 졸업론문 준비를 일부 할 수밖에 없다. 간혹 기타 류학생과 함께 바둑을 두거나 유희놀이, 중문을 교류하거나 악기를 한번씩 즐기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나는 외출하지 않는 것이 중국의 코로나19 예방통제에 대한 가장 좋은 지지라고 봅니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나도 자원봉사자가 되고 싶어요. ”당원의 속심말이다.

인터뷰에서 당원은 중국정부가 코로나19 예방통제에 기울인 노력에 대해 고마움과 칭찬을 표했다. “나는 세계적으로 이렇게 해낼 나라가 몇 안될줄로 생각합니다.” 당원은 “학교측은 줄곧 집에 돌아가지 않은 외국 류학생에 대해 보호하고 돌봐주고 있는데 매우 감동된다”며 “나는 중국정부의 모든 격리조치를 매우 존중한다.”고 말했다.

당원이 매번 집에 전화할 때면 돌아오라는 가족의 권유에 당원은 태도를 분명히 한다고 말했다. “나는 현상황이 조속히 호전되리라 믿는다. 나는 중국에 남아있을 것이다.”

당원은 이번 조용한 기회에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해야겠다 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중문수준을 높혀야 겠다고 말했다.

며칠전 당원은 친구들과 함게 미니 동영상을 제작했다. 자신이 중국인에 대한 감동과 관심으로 중국을 응원하고 무한을 응원하는 동영상이였다. 거기서 당원과 그의 친구들은 “우리는 다 이 나라를 사랑한다. 버들잎 피고 백화 만발하는 그날은 (相信柳暗花明的那天)곧 다가 올것이다”고 말했다. 당원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승리는 반드시 중국인민에게 올것이다!”면서 자기의 속마음을 표시했다.

(길림일보,길림신문사,동서남북잡지사, 장백산잡지사 련합 취재)

/편역: 김영화 김가혜 김영자 안상근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100%
10대 0%
20대 0%
30대 83%
40대 17%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가수 현아가 현재 공개열애 중인 하이라이트(비스트) 출신 가수 용준형에 대한 마음을 고백했다. 지난 18일 유튜브 채널 '조현아의 목요일 밤' 에서는 '드디어 만난 하늘 아래 두 현아' 라는 제목의 영상이 새롭게 업로드됐다. 이날 게스트로 출연한 사람은 바로 가수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지하철 길바닥에 가부좌" 한소희, SNS 재개 충격 사진에 '또 술 마셨나'

"지하철 길바닥에 가부좌" 한소희, SNS 재개 충격 사진에 '또 술 마셨나'

사진=나남뉴스 배우 한소희가 SNS를 다시 시작하며 지하철 승강장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진을 공개해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8일 한소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너희가 있고 내가 있고 우리가 있고 같이 달리게 해 준"이라며 사진 여러 장을 업로드했다. 사

"돈 빌려준 팬들 어떡하나" 티아라 아름, '남친이 시켰다' 감금 충격 폭로

"돈 빌려준 팬들 어떡하나" 티아라 아름, '남친이 시켰다' 감금 충격 폭로

사진=나남뉴스 그룹 티아라 출신 아름이 금전사기, 도박설 등 각종 의혹에 휩싸인 가운데 재혼을 준비하던 남자친구와 결별했다. 이날 19일 한 언론 매체 보도에 따르면 아름은 재혼을 발표했던 남자친구 A씨와 각자의 길을 가기로 선택했다고 전해졌다. 이어 유튜브

"본인이 피해자인 줄" 유영재, 결국 라디오 하차 삼혼·사실혼 묵묵부답

"본인이 피해자인 줄" 유영재, 결국 라디오 하차 삼혼·사실혼 묵묵부답

사진=나남뉴스 배우 선우은숙이 전남편 유영재의 삼혼, 사실혼에 대해서 '팩트'라고 인정한 가운데, 결국 유영재가 라디오에서 하차했다. 지난 18일 경인방송은 유영재가 진행하는 '유영재의 라디오쇼'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 소식을 공지했다. 경인방송 측에서는 "유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