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조선족 한계월 암환자 생사의 벼랑끝에서 몸부림
(흑룡강신문=칭다오)김명숙 기자=칭다오 조선족 여성 한계월씨가 뜻하지 않게 유방암으로 판정나면서 거액의 치료비때문에 생사의 벼랑끝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홀몸으로 딸 셋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오던 한계월씨는 지난해 9월 유방암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밑빠진 항아리처럼 치료비는 계속 늘어만 갔다. 치료 중인 올 1월 큰딸이 결혼하게 되었지만 결혼식도 치뤄주지 못하고 옷짐만 챙겨서 보내면서 자신의 처지가 너무 한심하여 밤새 통곡했다는 한계월씨는 현지 현재 10살난 쌍둥이 딸들과 함께 의지하며 셋집에서 살고 있다.
이미 10만 위안 넘게 치료비로 썼고 앞으로도 항암치료를 계속 해야 하는데, 돈을 꿀만한 사람한테는 모두 꿔서 이젠 더이상 어디 손을 내밀 곳이 없어 벼랑끝에 홀로 남은 셈이다. 하루에도 죽고 싶은 마음이 수없이 생겨났지만 갓 인생의 스타트선을 떼기 시작한 어린 딸들을 두고 차마 죽을 수 없는 한 어머니의 아픔은 이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긴 시간의 암 치료에 머리카락이 다 빠진 한계월씨는 현재 수입은 없고 매일 엄청난 치료비가 물처럼 들어간다. 거기에 생활비는 물론 아이들의 학비 마련도 쉽지 않아 눈앞이 캄캄하다.
그래도 어떡하나 살아남으려고 아득바득 기를 쓰면서 치료에 열심히 임하고 있다.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을 보면서 꿋꿋이 살아남아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한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부모없는 고아로 남길 수 없다는 부모된 책임감이 그녀를 오늘날까지 병마를 이겨내도록 하고 있다.
한계월씨는 올해 53세, 흑룡강성 탕원현 출신으로 1986년 흑룡강중의약대학 의사산후조리학과를 졸업하고, 목단강의학원 임상학과를 전공한 후 하얼빈시 의란현인민병원 산부인과에 취직했다. 2004년 칭다오에 진출해 모 산부인과병원에서 근무했으며, 바삐 사는 동안에도 칭다오한중의료단 한국부 차장으로 일하면서 5년동안 꾸준히 농촌 의료봉사를 해왔다.
후에 홀로서기를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빚더미를 허물고자 한국으로 떠났다. 2년 동안 한국에서 마른 일 궂은 일 가리지 않으며 매일 이른 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일했다. 바야흐로 희망이 내다보이는 어느날 그녀는 뜻밖에 암 판정을 받았다.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한계월씨에 따르면 병원 치료비가 많이 밀린 것도 궁지이지만, 퇴원 후 오래 동안 먹어야 하는 약과 장기간 항암약으로 인해 손상된 장기를 회복하는데 먹어야 하는 영양제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한계월 씨는 딸들이 성인이 되어 날개를 굳히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고, 죽어서도 안된다면서 민족사회의 도움으로 살아남아서 부모된 책무를 다하는 동시에 한중의료봉사단에서 해왔던 것처럼 받은 이상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것으로 갚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