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비평가는 모두 독립개체이지만 또한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많은 비평가들의 ‘언어’는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대화는 관념이자 태도이다. 이런 태도는 협소하지도, 독단적이지도 말아야 하고 개방적인 태도여야 한다. 우수한 문학비평은 늘 통속적이고 명확하며 사람들의 공명을 이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신문학비평은 100여년의 발전려정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부족점들이 많다. 일부 비평가들은 주체성과 독립성을 잃은 채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비문학적인 요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문학비평은 작가와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점차 공신력을 잃어가고 있다.
비평가의 소양은 많은 작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는 비평가의 성실성에서 보여진다. 일부 비평가들은 지나친 ‘자신감’을 무기로 작품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한다. 이런 ‘섣부른 판단’식의 평론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일부 비평가들은 각종 작품연구토론회에 참석하면서 작품에 대한 충분한 리해가 없는 상황에서 ‘현대성’, ‘민족국가상상’, ‘세계화’ 등 개념을 쉽게 입에 올린다.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은 작품에서는 객관상을 잃고 작품을 론평하기도 한다. 이는 비평에 대한 성실성을 상실한 결과이기도 하다.
비평가 리건오는 “비평이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로 자리잡을수 있었던 것은 거기에 아름다운 인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고 밝힌 바 있다.
진정한 문학비평은 인류 내적인 정신생활에 대한 공유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작가상상력에 대한 구현을 통해 문학이 생명세계가 품고 있는 비밀을 설명하는 동시에 비평가가 심미개체에 대한 독립을 표달한다.
비평주체의 소양과 밀접하게 이어져있는 것이 바로 비평관념이다. 소양은 관념의 표현형태이다. 대화는 일종 중요한 관념이기도 하다. 대화는 사유방식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현존하고 있는 형식으로 중국문학비평사를 꿰뚫고 있다. 비평가는 왕왕 허구적인 대화형식으로 각종 문학현상과 리론관념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대화형식으로 전개되는 문학비평은 일종 독특한 문체이다. 문학비평은 비평자가 문학작품에 대한 해독으로 작가의 창작심리를 탐색하고 자신의 비평소양에 근거해 객관적으로 작품에 대한 해석을 풀어놓음으로써 작가와 독자, 작품, 세계 등 대화관계들을 활발하게 이어지도록 한다.
우수한 비평가는 비평활동중에서 원활한 대화를 이어가면서 효과적인 인물과 작가의 내심세계에 스며들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심미세상으로 이끌가면서 자신의 비평이 단순한 문자를 넘어 력사, 현실, 인성이라는 새로운 경지의 의미를 갖도록 한다. 이는 결코 비평가가 자신의 학술품격, 가치판단과 사회사명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평주체의 인격력량을 발휘하고 문학비평발전의 법칙을 준수하며 독립적인 심미판단과 리성사유정신을 유지함으로써 개체의 핸디캡을 뛰여넘고 문학비평이 그 무엇과도 대체불가능한 존재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과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대화는 일종 관념이자 태도이다. 동시에 대화는 능력이자 수양이기도 하다. 문학창작인 예술이고 문학비평 역시 예술이다. 비평가는 예민한 예술감수력을 가져야 하고 세심한 심미판단력은 물론 우아한 예술감상력을 지녀야 한다. 이는 비평가가 장기간 축적된 감성경험과 리성사유를 토대로 한다. 이 부분이 부족하다면 비평가는 작가와 작품 속에 깊이 스며들지 못한다.
이런 작품에 대한 대화가 적절하게 이뤄지는지는 비평가의 언어가 관건이다. 비평언어는 비평관념을 전달하는 담체이다. 비평언어의 우렬은 비평관념의 표달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비평언어는 또 일종의 비평관념이기도 하다.
오늘날, 문학비평가는 응당 자신의 실천으로 비평의 존엄을 재구축해야 한다. 문학비평은 반드시 인심, 인정, 인성에 대한 고찰을 통해야 하고 문학인문매력에 중점을 두고 통속적이고 명확하며 활달한 언어로 독서의 감수를 전달해야 한다. 또한 성실한 태도와 대화의 방식으로 비평가와 작가, 독자, 작품, 세계와의 관계를 건립함으로써 작가들의 탐색과 추구를 추진하고 동시에 독자들에게 독서의 즐거움과 심미적인 계시를 안겨줘야 한다.
중국신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