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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만필]겨울눈 해맑고 차가워라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0.05.29일 12:12
 

◎ 김혁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다

겨울하면 생각나는 작품들이 있다. 각자 나름이겠지만 나로서는 선참 생각나는 작품이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였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책을 펼치자 곧 싸한 겨울 향기가 코끝에 감도는 듯한 《설국》의 도입부이다. 소설 못지 않게 너무나 유명한 《설국》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된다.

《설국》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필자는 젊음의 열기로 뛰던 문예기자 시절 중문으로 읽었고 우리말본으로는 중년이 되여 썩 후에야 다시 접했다. 서로 다른 어종의 문자로 읽어도 작품의 기저에 깔린 그 서정성은 아직도 문학에 현혹된 나그네의 가슴을 흔들기에는 족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36세에 단편 을 발표했고 비슷한 주제의 단편들을 모아 13년 만에 대표작 《설국》을 완성했다.

겨울의 변두리에 선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고작 세명이다.

부모가 남겨준 재산을 가지고 무위도식하며 려행을 다니고 있는 시마무라, 눈 지방에서 게이샤로 있는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녀자 고마코, 그리고 아름답고 순수한 소녀 요코.

시마무라는 이 두 녀인에게 동시에 마음이 끌리게 되고, 이 두 녀인은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하고 눈발처럼 부유하는 시마무라를 현실세계로 인도한다.

의식의 흐름에 기댄 주인공의 시선으로 환상적인 설국의 분위기를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낸 작품은 1948년에 발표되였고 ‘근대 일본의 신감각파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설국》의 작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소설 속에서 자연과 인간을 그토록 아름답게 그리면서도 그 밑바닥에 우수와 허무를 눈밭처럼 하얗게 깔아놓았다. 그 까닭은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면 리해가 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899년 오사카의 명의사 집안에서 태여났다. 하지만 부유한 집안은 그가 출생한 지 얼마 안되여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두살 때 아버지가, 세살 때 어머니가, 일곱살 때는 할머니가 련이어 세상을 등졌다. 그 후에는 시력을 잃은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는 밤이 되여도 방에 불을 켜지 않았다. 상실감과 슬픔이 가득했을 캄캄한 방에서 눈 먼 할아버지 곁에 앉아 열두살의 왜소한 소년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을가? 그리고 그가 열다섯살 되던 해에는 그 할아버지마저도 세상을 떠난다.

그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이후 가와바타 작품의 주요한 정조를 이룬다. 유년 시절에 체험한 비애가 뿌리 내린 작가의 미의식은 이로써 일본 고유의 전통정서와 겨울의 길목에서 조우하게 된다.

작가의 내면에는 현실과 삶을 관망하는 자기만의 쓸쓸한 감성이 폭설처럼 켜켜이 내려쌓였고 그 감성이 우울한 눈사람으로 만들어져 작품의 갈피에 동그라니 서있다. 친인들의 잇달은 죽음은 삶과 죽음에 잠재된 미(美)를 발견해내고 소설창작이라는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였는지도 모른다. 또 찬란하나 비극적인 인생을 규정 지었는지도 모른다.

노벨상을 받고 일본 펜클럽 회장을 지냈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서의 명망을 얻은 가와바타였으나 74세 나던 해의 봄, 가스관을 잘라 입에 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음은 작정한듯이 그의 곁을 맴돌았고 그만큼 그는 죽음에 익숙했다. 죽음을 둘러싼 풍경을 아름답게 그린 《설국》의 마지막 장면은 어쩌면 작가가 자기 곁을 떠난, 죽은 이들을 위해 소설가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애도일 것이다.

작품은 그가 살았던 당시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는 않다.

당시 ‘9.18’사변을 감행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심은 서구의 견제를 받았고 덮쳐든 대공황은 작은 일본렬도를 크게 강타했다. 이런 시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왔던 시골 처녀들은 귀향할 수 밖에 없었고 가와바타는 이를 주목하고 모티브를 얻어 《설국》을 집필했다.

때문에 《설국》에는 서글픔과 허무한 감성이 겨울의 랭기처럼 짙게 깔려있다. 눈 덮인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그러한 자연 속 유한한 인간의 존재를 주인공의 차거운 의식의 시선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막상 《설국》을 읽고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문학도들에게서 몇번이고 들어왔다. “재미가 없다”, “리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들이다.

‘일본 문학사상 최고의 서정소설’이라 정평되는 《설국》은 사실 명확한 플롯이 없는 대단히 모호한 작품이다.

서구 상업물의 자극적인 스토리에 길들여진 요즘 독자들에게는 특별한 사건도 없고 인물간의 갈등도 없는 밋밋한 소설로 안겨올 수도 있다.

하기에 소설 《설국》은 여타 소설들과는 좀 다른 독법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흔히 소설에 접근하는 익숙한 방식인 줄거리 위주의 독법으로 읽다 보면 《설국》에 내재되여있는 현혹적인 이미지와 암시적 장치들을 우리는 언 손으로 허망 잡아쥔 물건처럼 놓치게 될 것이다.

《설국》은 줄거리의 소설이 아니라 이미지의 소설로 필자는 읽었다.

요코의 ‘찌르는 듯한 눈’, 고마코의 ‘아름다운 거머리가 움직이듯 매끄럽게 펴졌다 줄었다’ 하는 입술, 차창에 비친 저녁 풍경, 눈 속에서 번지는 화재 등등.

소설의 첫부분, 기차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과 유리창에 겹놓인 요코의 모습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고 아름답다.

소설은 시작부터 우리가 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바로 그 이미지에서 소설은 시작하고 그 이미지로 소설은 이어진다.

《설국》은 자연의 풍경을 수공화처럼 세세히 그려낸 그림같은 소설이다. 그래서 천천히 그림을 감상하듯 읽어야 이 소설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줄거리만으로 재미를 느끼려 한다면 그 깊이와 맛을 전혀 알 수 없기에 그 어떤 작품보다 세세한 정독이 필요한 고전이 바로 《설국》일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 《설국》

《설국》은 수상 심사단계에서 세계 유수의 작가들과 치렬한 경합을 벌렸다.

1968년도 노벨문학상 후보자는 총 83명이였는데 그중에는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와 사뮈엘 베케트, 그리고 영국 시인 W.H. 오든이 포함돼 있었다. 자신의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와도 경합을 벌렸다.

탈락한 앙드레 말로와 오든은 생전에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 못했고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로 유명한 사뮈엘 베케트는 이듬해 노벨상의 주인공이 됐다.

그 해 12월 스톡홀름에서 일본인 최초로 아돌프 스웨덴 국왕의 손에서 노벨문학상 트로피를 넘겨받은 가와바타는 아시아에서 인도의 타고르에 이어 두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됐고 그렇게 전설이 됐다.

“봄은 꽃, 여름 두견새, 가을은 달, 겨울 눈(雪) 해맑고 차가워라.” 가와바타는 수상자로서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기념 강연을 하면서 첫머리를 일본의 선시(禅诗)를 인용해 운을 뗐다.

‘일본의 정수를 세심하게 표현하는 완벽한 내러티브(narrative)’로 가와바타는 일본의 미란 무엇인가, 아울러 세계 여러 나라의 작가들에게 자국의 전통적인 미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단서를 보여주었다.

소설 속에서는 ‘아름답고 예민한 것의 감각적인 저울’인 시마무라의 시선에 의해 눈의 나라가 낱낱이 포착된다. ‘아름답고 예민한 것의 감각적인 저울’과 그 시선, 이 묘사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도 적용된다.

가와바타의 인물사진을 대할 때마다 필자는 상대의 속을 파고드는 듯한 그 시선이 왠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 ‘예민’하고 ‘감각’적인 ‘완벽’한 시선으로 겨울 풍경을 응시해낸 정물화같은 가와바타의 소설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탐미의 시선을 갖게 해주는상 싶다.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통한 절제된 시각. 고요하고 깊은 시선으로 차가운 삶의 덧없음을 꿰뚫어버린 작품이 《설국》이 아닌가 싶다.

‘미(美)의 생산자’로서의 가와바타의 시선. 그 탐미의 시선을 따라 무한히 확장되는 감성의 세계에서 발도장을 찍어가는 즐거움을, 《설국》을 다시 읽는 독자는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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