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이 사진을 기억하고 있나요?
엄동에서 혹서까지, 강소에서 호북까지, 다시 흑룡강, 길림으로…저명한 중증의학전문가이며 동남대학부속중대병원당위 부서기인 구해파가 항역 139일 후인 6월 5일 길림에서 남경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기 이틀전인 6월 3일, 길림성 서란시 위험 등급은 고위험에서 저위험으로 조정되였다.
귀가 후 하고 싶은 일은? 이젠 출근해야죠
“이번 몇차례 싸움은 모두 멋지게 치러졌다. 비록 시작은 간고했지만 결과는 완벽했다.”공항에서 구해파는 매체에 이렇게 전했다.“이 과정에서 나는 국가의 힘, 사회의 힘, 백성들의 지지를 느끼게 되였고 의료위생보건계통 대오가 어려운 싸움을 이겨낼 수 있음을 느끼게 되였다.이런 결과를 가져오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지만 결국 우리는 오늘의 승리를 거두게 되였다.”남경으로 돌아온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는 물음에 그는 웃으며 “이젠 출근해야죠.외출 시간이 좀 길었습니다.”라고 말한다.
공항에 마중 간 부인 조건이 구해파에게 생화를 올리고 있다.
길림시 당위, 정부에서는 구해파(좌)와 양의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환자가 있는 곳에 내가 있어야
무한에서 구해파는 매일 무한시금은담병원, 무한시페과병원, 무한대학중남병원 등 중증환자 집중 치료 병원을 전전했다. 낮에는 중증환자 구역에서 환자들의 병세를 알아보고 저녁에는 치료 방안을 연구하고 치료 과정을 총화하면서 치료 방법을 탐색했다.
어느 한번 구해파는 무한시금은담병원에서 근 4시간에 달하는 회진을 진행했다. 배동 의사는 구해파가 중증환자실에서 나와 방호복을 벗고 휴식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다시 다른 층으로 회진하러 갔다.
구해파는‘시간이 촉박하기에 휴식할 겨를이 없거니와 직접 다른 곳으로 회진하러 간다면 방호복 한벌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문가소조 성원인 그는 원거리에서 병례 분석 수치를 보는 것외에도 중증환자가 어디에 있으면 그 자신도 거기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고수하였다.
99일사이 구해파는 전국 지원, 중증환자 집중 치료, 방창병원 건설, 엎드린 자세 환기치료 등 응급책략 제출과 전염병 형세 안정, 수동적인 국면을 돌려 세우는 데 돌출한 기여를 했다.
호북에 있을 때 구해파가 힘 내라고 환자를 응원하고 있다.
무한에서 흑룡강으로 다시 길림으로
4월 24일,무한 코로나19 중증환자 리셋.
4월 26일,무한을 지키던 국가위생건강위원회 20명 전문가들은 륙속 무한을 떠나기 시작했지만 구해파는 흑룡강으로 향했다. 흑룡강 당지 치료구급사업 지도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출발전 구해파는 CCTV 취재 접수를 받으며 안해의 지지와 안해의 힘든 나날을 떠올렸다. “안해의 압력도 꽤 컸을 것이다. 허리가 불편한 데다 홀로 살림해야 하니…” 그러나 안해는 구해파를 적극 지지하였다. 구해파의 성격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북이 그를 수요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룡강에서 17일동안 투쟁 한후 구해파는 5월 13일 흑룡강에서 길림으로 향했다. 길림에서 23일간의 전쟁을 마치고 그는 드디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랐다.
“목전 길림시의 모든 코로나19 환자는 좋은 치료를 받았고 중증환자 ‘령’사망을 실현했다. 때문에 나는 돌아올 수 있었다.”남경 록구공항에서 구해파는 이렇게 말했다.
네티즌들은 분분히 “정말 수고했어요. 이젠 잘 휴식하세요.”라며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구해파(좌4)가 길림에서 중증환자 구급을 지도하고 있다.
/출처 CCTV, 편역 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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