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농민 진봉파: 돈을 꾸지 않아도 되는 것이 바로 초요사회
진봉파로 놓고 말하면 좋은 생활의 표징이란 바로 생활고(빚)가 없고 손에 여유 돈을 쥐고 있는 것이다.
흑룡강성 부금시의 농민 진봉파는 17살때부터 밭일을 시작, 하늘을 등에 지고 검은 땅과 얼굴을 맞대고 가정의 3쌍(1쌍은 15무) 지기 땅을 지켜왔으나 수입은 여전히 변변치 못했다.
2013년전까지만 해도 경작지 한쌍의 일년 수입은 근근히 2000원, 한 가족 네식구가 생활하고 자식 공부까지 시키려니 진봉파는 수시로 돈을 빌려야만 했다.
2013년, 그는 자기네 땅을 현지 농가가 설립한 합작사에 류전시키고 집중적으로 벼를 심게 했다. 자신도 합작사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는데 년수입이 7, 8만원 된다. 가정의 일상 지출을 제외하고도 그는 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생활에도 새로운 기상이 나타났다. 진봉파네 땅은 마을에서 20여리 떨어져 있어 그때 그는 흙집에서 살았었다. 합작사에 가입한 뒤로 온 집이 시내로 이사해 아파트에 들었으며 자식도 시내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합작사에 가입한 진봉파는 압력이 없어진 것 같았다.
요즘 이곳 농업은 고과학기술의 쾌속차량에 올랐다. 육묘로부터 재배에 이르기까지 기계화 설비들이 들어서니 농민들은 더는 허리 굽혀 모내기를 하지 않아도 되였다.
진봉파는 합작사에서 기계의 일상적인 수리를 맡고 있다. 합작사에 가입한지 2년만에 그는 현지 사용에 적합한 흙을 쳐내는 농기구를 자체로 설계 제작해 냈다. 4메터 높이에 1500킬로그람되는 철채는 봄갈이때 아직 녹지 않은 큰 흙덩이들을 재빨리 쳐내 흙가루로 만들어낸다.
이 몇년사이 진봉파는 신형 기계가 어떻게 농업재배 에너지 절약을 다그쳤는가를 알게 되였다. 공중에서 비료를 뿌리는 무인비행기는 진봉파의 눈을 트이게 했다. 대형뜨락또르가 밭에 들어서 한꺼번에 두쌍반의 땅에 모를 내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다.
신생사물은 너무 많았다. 진봉파는 과학기술의 길을 걷기로 작심했다. “농민의 본질을 변하지 못하나 배우지 않으면 락오자가 됩니다”
드넓게 펼쳐진 곡식밭을 보면서 진봉파는 늘 뭔가 모자란 느낌이 든다. “이후에는 단일한 곡식밭이 아니였으면 좋겠다. (벼밭에) 꽃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는 이 푸른 전야도 오색 찬란하게 변하길 바라고 있었다.
래원: 중국청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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