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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조선족 녀기자의 ‘무한도전’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0.07.27일 09:56



  

슈퍼맨의 직업은?

  어릴 적 즐겨 보았던 영화 “슈퍼맨(超人)”... 가슴에 커다란 S자를 그리고 빨간 망토를 두르고 바지우에 빨간 팬티를 덧입은 초인간 영웅이 정의로운 마음으로 온 몸을 바쳐 인류를 지켜주는 스토리... 1978년 만화를 개편해 처음으로 만든 영화이지만 지금 다시 보아도 너무 매력적이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기자로 일하며 약자를 보호하고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슈퍼맨의 모습은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커서 영웅이 되려는 꿈을 갖게 했다.

  조서광(1984년 생, 료녕성 철령시 개원현 출신)도 그런 슈퍼맨을 보며 기자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비록 그때는 나이가 어린지라 기자의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는 잘 몰랐지만 영화속 주인공처럼 세상을 개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기자 직업은 남들이 가보기 힘든 곳에 가볼 수 있고 또 특별한 시점에 특별한 곳에 나타나 특별한 사건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는게 최대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CCTV 뉴스센터의 기자로 있는 조서광은 기자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지식을 중히 여기는 부모님의 슬하에서 태여난 조서광은 어릴 적부터 글쓰기와 독서에 열중했다. 어릴 적 영화속의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던 조서광은 중학교 때 CCTV 기자 수균익(水均益)의 ‘최전선의 이야기‘라는 책을 읽게 되였다. 전쟁터에서 겪었던 짜릿한 순간들... 사회 부조리를 파헤치기 위해 겪었던 위험한 일들... 이야기 하나하나가 기자의 꿈을 가졌던 그에게 큰 감동과 충격을 주었다.

  2003년 대학입시에서 우수한 성적을 따낸 그는 북경대학의 기타 중점 학과들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신문학전공을 지원 1순위에 놓았다.

  조선에서 열일중인 CCTV 녀기자, 인기 급상승!

  2009년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CCTV 뉴스센터에 입사한 조서광은 1년간의 교육을 받고 파견된 첫 일터가 조선이였다. 그전까지 조선에 CCTV의 조선 주재 기자소가 없었기에 조서광의 임무는 막중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조선이 기자소 정원으로 한명만 허락하다보니 2010년 12월 그녀는 혈혈단신으로 조선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들이 잇따라 그녀의 앞에 놓여졌다. 인력부족으로 취재, 촬영, 기술, 방송안전, 뉴스기획 등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했고 현지 관계부문과의 소통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비록 조선에 파견되기전 1년간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뛰여보니 여러가지로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았다. 그야말로 산 하나를 넘고나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난을 극복하며 성장의 첫 걸음을 뗀 조선 주재 기자소는 그녀의 노력하에 점차 성과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2011년 12월 17일 조선 최고지도자 김정일 서거 당일 그녀가 첫시간에 포착, 촬영한 평양 시민들의 반응과 애도 장면은 중국 기타 언론사는 물론이고 CNN, BBC 등 국제 유명 언론사들도 앞다투어 인용했다.

  그후 조선중앙방송사의 리춘희 아나운서 특별 인터뷰, 조선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첫 공개활동, 김일성 탄신 100주년 맞이 위성발사, 2018년 조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 중대 력사사건 보도는 그녀의 뛰여난 실력을 충분히 립증해주었다.

  조서광은 최근 10여년사이 조선에서 발생한 여러 중대 력사사건 현장을직접 지켜보고 이를 화면에 담은 유일한 기자로 되였고 또 그녀가 청춘을 바쳐 일떠세운 조선 주재 CCTV 기자소도 현재 많은 조선 관련 기사를 정확히 국내에 보도하면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남극과학고찰 수행기자-미지의 빙설세계로

  2014년 12월, 4년간 근무하며 정들인 조선 주재 CCTV 기자소를 떠나 귀국한 조서광은 CCTV 뉴스센터로 복귀해 경제분야의 기자로 활약했다. 그녀는 CCTV 1채널 저녁 7시 전국종합뉴스 등 무게 있는 프로그램에서 기자로서의 훌륭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2017년 11월 그녀는 또 남극고찰팀의 수행기자로 선정되여 미지의 빙설세계로 향했다.

  1984년 제1차 남극과학고찰 때부터 중앙텔레비전방송국은 수행기자단을 파견하는 전통이 있었다. 하지만 극지과학고찰선에서 4개월간 생활해야 하고 또 혹독한 추위, 생각지도 못할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겪어야 했기에 통상 남성기자를 많이 파견했다. 또 거기에 자진해 나서는 녀성 기자들도 아주 적었다.

  하지만 제33차 남극과학고찰팀에는 파격적으로 녀성기자가 파견되였다. 이에 고무를 받은 조서광은 차기 남극과학고찰 수행기자로 신청서를 제출했고 최종 제34차 남극과학고찰팀 수행기자의 신분을 얻어 남극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가게 되였다.

  11월 중순 일정 변화로 예정보다 15일 늦게 출발한 조서광은 뉴질랜드 보급항구에서 과학고찰선에 올랐다. 출발 반시간 뒤 남극지역 편서풍대에 진입한 과학고찰선은 높은 파도를 만나 심하게 요동쳤고 난생처음 배를 탄 조서광은 심한 멀미로 죽을 고생을 했다.

  일주일간 항행한 과학고찰선은 겨우 남극지역에 도착했다. 그는 그번 일주일은 지금까지 살며 가장 힘들었던 고비였다고 회억했다.

  긴긴 시간의 항행을 거쳐 도착한 곳은 인익스프레시블섬(恩克斯堡岛)이였다. 20세기초 몇몇 항행가가 이곳에 갇혀 기나긴 극지의 밤을 보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고 해서 “难言岛”라고 불리우는 이 섬은 중국의 다섯번째 남극고찰소 부지이다.

  배멀미로 죽을 고생을 한 조서광은 처음 이 땅을 밟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며 온 몸에 전률을 느꼈다. 소란스러운 헬기 소리도 그 순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온 세상이 갑자기 쥐 죽은 듯 고요해지는 느낌이였다. 그동안 했던 모든 고생도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100여명의 꿈을 가진 남극고찰대원들과 함께 한 4개월은 그의 인생에서도 가장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이였다고 한다. 남극에 있는 동안 그녀가 제작한 여러 작품들은 좋은 결실을 따냈다. 특히 “상상치 못했던 극지의 세계 (南极版万万没想到)”계렬 영상은 웨이보, 위챗, 뉴스 클라이언트 등 여러 온라인 플랫폼의 가장 핫한 화제로 되였고 실시간 클릭수는 1억을 넘었다.

  무한으로 향하는 렬차에서

  2월 3일, 북경에서 무한으로 향하는 렬차에서 달게 자고 있는 한 사람을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 이들은 CCTV의 무한취재팀이다. 단잠에 빠진 사람은 바로 조서광이였다.

  당시 무한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페염으로 봉쇄된 상황이였고, 그곳에 진입한 기자들은 바이러스 통제 전까지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조서광은 무한 특별취재팀 모집 소식에 자진해 신청서를 제출했다. 부모님께는 걱정을 끼쳐드릴 것 같아 소식도 전하지 못했다. (그후 그녀의 부모님들은 우연히 CCTV뉴스채넬에서 딸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쌀쌀하고 음침한 겨울 날씨에 인적까지 드문 기차역 광장... 무한에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낯선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떠났지만 그들을 맞이한 현지 운전기사의 긴장된 모습을 보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체감했다.

  무한 도착 당일 직접 황강시로 배치받은 그녀는 그날부터 밤낮이 따로 없이 현장 취재에 뛰여들었다.

  당시 상황을 회억하던 조서광의 두눈에는 물기가 어렸다. 허리 수술을 마친지 1개월도 안된 상태에서 지팽이를 짚고 공항에 나타난 의사, ICU 병실의 모든 설비를 지니고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의료진, 방역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천리길을 한걸음에 달려온 자원봉사자들, 방방곡곡에서 보내진 지원물자들을 보며 그녀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꼭 이겨낼 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게 되였다고 한다.

  지난 16일 인터뷰에서 조서광은 “기자로서 몇편의 훌륭한 기사를 써내고 얼마나 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록했다기 보다는 스스로 코로나와의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 중국인으로서 국가와 인민의 강대한 힘을 느낄 수 있었고 또 무한인민과 전국인민의 영웅적 기백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감동이고 격려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내가 만든 기사가 사회적으로 큰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현장감이 많이 떨졌기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명언 혹은 신조 같은 것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조서광은 “如果你的节目做得不够好,就是因为你离得不够近”이라는 말을 건넸다. 같은 부서의 선배가 늘 하는 말인데 처음엔 잘 몰랐지만 기자의 일을 오래하다보니 이 말에 담긴 참뜻을 알게 된 듯 싶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나 유럽 등 나라의 유명 언론사들의 기사를 보면 직접 병상까지 찾아간 기자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고 대부분 의사나 간호사들이 보내온 동영상을 뉴스에 쓰는 경우가 많다.

  조서광은 “남들이 가지 못하는 곳에 가서 첫시간에 그 장면들을 기록하는 것은 기자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며 사건 현장에 가지 않고 좋은 기사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며 향후도 더욱 많은 뉴스현장에서 기자로서의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조선어방송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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