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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가선, 우리는 영원히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리!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0.07.31일 19:31
34년전의 7월 29일, 그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평생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평생 나라를 위해 고심하고 심혈을 기울였다. 다수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전의 한달전에야 비로서 처음 그의 이름을 알게 되였다. 그의 이름은 등가선(邓稼先)이다.



등가선 

1986년 7월 29일 등가선은 62세를 일기로 북경에서 서거했다. 등가선은 누구인가? 거의 모든 중국인들은 원자탄, 수소탄의 원훈(元勋) 중국핵무기연구제작 사업의 개척자와 창시자를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62년의 삶의 궤적은 구경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장렬한가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와와박사(娃娃博士)’

불과 2년도 안되는 사이에 학점을 다 따고 론문 답변을 통해 박사학위를 딴 그해, 그의 나이는 겨우 26세 밖에 안되였다. 그런 등가선에게 사람들은‘와와박사(娃娃博士)'라는 별명을 달아주었다.



 항일전쟁이 승리하던 그해 등가선은 국립 서남련합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북경에 돌아가 북경대학 물리학과 조교(助教)로 초빙되였다. 그의 조교 생애는 아주 짧았다. 오직 보다 선진적인 지식을 배워 나라의 건설에 이바지하겠다는 일념으로 1948년 등가선은 미국 퍼듀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했으며 1950년 8월에 박사학위를 땄다. 그해에 등가선은 결연히 귀국선에 올랐다. 그는 조국의 품속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로떵(老邓)’

1958년 등가선은 특수 임무를 맡았다. “나라를 위해 대포를 쏜다.” 제2기계공업부는 북경에서 핵무기연구소(9소)를 설립하고 두개 연구실을 내왔는데 등가선이 연구실 주임을 맡았다.

그는 갓 대학을 졸업한 대학생들을 이끌고 ‘맨주먹으로’원자탄 리론연구를 시작했다. 등가선은 대학생들을 자기의 친 동생들을 대하듯이 보살펴주었으며 늘 자기의 식량권을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처음에 대학생들은 등가선을‘주임님',‘주임님’하며 불렀다. 그러나 등가선은 “너희들은 아예 그냥 로떵(老邓)이라고 불러라.”고 거듭 얘기했다.

당시 등가선과 사이좋게 지낸 한 동업자는 이렇게 회억했다. “그의 옷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아 피우고 그의 서랍을 열어 사탕과 과자를 찾아 먹는 일은 일상으로 되였지요.”

소박하고 틀이 없으며 겸손한 그의 외모 뒤에는 강한 책임심과 거대한 압력이 그를 숨가쁘게 했다. 원자탄을 어떻게 만드는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엄격히 비밀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모든 압력과 고민 그리고 초조함은 자기절로 소화해야 했다.

등가선의 안해 허록희는 이렇게 회억했다.



등가선의 가족. 

“그에게 어디로 전근하는가고 물으면 그는 ‘말 못하오’라고 대답했으며 무엇을 하는가고 물어도 ‘말 할 수 없소’라는 대답 뿐이였으며 편지를 써 부치겠으니 그 곳의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도 그는 편지는 쓸 수도 없고 통화도 할 수 없다고 말했지요. 그러면서 그는‘앞으로 이 가정은 당신 혼자 도맡아야 해야 하겠소. 나의 생명은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사업에 맡겼소.' ‘이 일을 잘하기만 하면 나의 삶은 아주 보람이 있고 죽어도 가치 있는 일이요.’라고 아주 단호하게 말했어요.”

‘원자탄 수소탄 원훈(元勋)’

당시의 새 중국은 가난하고 아무 것도 없었으며 지체된 모든 일들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였다. 원자탄 연구에서 부딪친 곤난을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였다. 리용할 수 있는 과학연구 설비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전자관계산기, 핸드계산기(手摇计算机), 계산자대 지어 주판을 사용한 무궁무진한 계산을 통해 중국 첫 원자탄의 최초 륜곽을 이루어냈던 것이다. 



청해성 해북장족자치주 해안현 경내의 중국 첫 핵무기연구제작기지, 사진은 지하갱의 핵실험을 감측하는 기지 작업소이다. 

1962년 말, 등가선이 지도하고 작성한 중국의 첫 원자탄 리론방안이 나왔으며 그는 또 핵실험전의 폭격(爆轰)모의 실험에 참가하고 지도했다. 그는 늘 실험현장을 드나들면서 실험인원들과 함께 실험방안과 측험결과를 연구토론하고 리론부 사업인원을 지도하여 실험 예측평가와 결과 분석을 잘하도록 지도했다.

1964년 10월 16일 오후 15시 정각, 신강 로브노르핵실험장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은 강한 섬광과 어울리며 하늘을 찌를 듯이 버섯구름이 피여올랐다. 중국의 첫 원자탄이 폭발 성공했다.



 

원자탄.

축하하고 정비할 사이도 없이 등가선은 또 수소탄연구에 뛰여들었다. 고작 3년이 지난 후인 1967년 6월 17일, 중국의 첫 수소탄이 폭발 성공했다.



 

수소탄.

핵무기를 연구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무서운 악마가 바로 방사성물질이 인체에 대한 상해이다.

더 말할 나위 없이 수년간 거대한 임무를 책임진 그는 커다란 압력을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낮과 밤이 따로 없이 계속 강도 높은 사업을 이어갔다.

1985년 등가선은 직장암으로 확진받았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등가선은 세번 수술했는데 매일 통증을 견뎌내야 했다. 진통 주사를 매일 한대를 맞던 데로부터 한시간에 한대씩 맞아야 했으며 온몸에 용혈성 출혈이 생겼다.

림종전에도 그는 여전히 어떻게 하면 첨단무기면에서 노력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뿐이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는 “우리가 남보다 너무 떨어지면 안됩니다⋯”이다.

 



사진은 중국의 ‘원자탄, 수소탄 도시’내의 등가선 옛집의 서재이다.

1958년부터 1986년까지의 28년간 우리 나라는 도합 32차례의 핵실험을 했다. 그 중 15차례는 등가선이 직접 지휘한 것인데 100%의 성공을 거두었다.

28년 동안, 론문을 발표해도 한편도 자기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조직 외에는 아무도 그의 사업 지점을 모르고 아무도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몰랐다.



 

등가선. 

28년,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나라에 바쳤다. 명리를 분토와 같이 여기고 나라의 위망을 떨치고 강산을 흥성시키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등가선’, 력사는 영원히 당신의 이름을 아로 새길 것이며 우리는 영원히 당신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 출처: 신화넷  / 편역: 홍옥기자

https://mp.weixin.qq.com/s/nuh-mFXV9eIzkMPsovG1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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