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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감령의 상공에 휘날린 붉은기 앞에 서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0.09.17일 14:26
-381개 탄알구멍이 있는 ‘상감령 특공8련’ 기발에 다가서다



381개 탄구멍이 뚫린 붉은 기발이 상감령 주봉에서 펄럭인다.(락하산병군사관 제공)



서북고원에 진주하기 직전에 ‘상감령 특공8련’의 관병들이 기발앞에서 선서하고 있다. (진립춘 촬영)



8련의 관병들이 실전훈련을 하고 있다. (방초 촬영)

한 사람을 잊지 못하는 것은 때론 어느 한 지명 때문일 수도 있다.

68년전 어느 한 련―중국인민지원군 제15군 제45사 제134퇀 제3영 8련도 역시 한 지명 때문에 군사력사에 깊이 명기되였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상감령전역에서 8련 장병들은 43일간 피흘려 싸웠다. 갱도를 14주야로 고수하면서 총탄구멍이 381개 남은 붉은 기발은 끝까지 상감령 주봉에서 휘날렸다.

8련은 단 한번의 전투로 이름을 날렸다.

전투가 끝난 후 8련은 지원군 제3병퇀으로부터 “영용완강, 공훈탁월”이라는 금기를 수여받고 집체 특등공을 세웠다. 그때부터 그들은 ‘상감령 특공8련’ 이라는 영웅적 이름을 가지게 되였다.

마찬가지로 그 전투 때문에 지금까지 상감령은 여전히 세계군사분야 연구에서 중요한 지표의 하나로 되였다.

미국 육군사관학교기념관에는 지금까지 상감령고지의 모형이 놓여 있다. 매 기의 학원들은 이 전례를 학습하고 연구하였는데 그들은 시종 “7개 영이 륜번으로 공격하였는데 왜 2개 련이 고수하는 진지를 공략하지 못하였는가?”를 연구토론하였다.

상감령전역이 승리한지 벌써 68년이 지났다.

68년래 ‘상감령’이라는 세 글자를 말하면 사람들은 용감하고 완강한 ‘상감령 특공8련’ 을 떠올리군 한다.

68년래 총탄구멍이 381개 뚫린 이 붉은기는 시종 8련 장병들과 함께 출정하였다.

군기는 8련 장병들의 마음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이 중대가 줄곧 걸어온 성장과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이 기발앞에서 선서할 때마다 8련 관병들은 선렬들이 멀리 가지 않았음을 느낀다.

  한폭의 기발은 하나의 련혼(连魂)

진붉은 바탕에 밝은 오렌지색으로 씌여진 ‘상감령 특공8련’ 7개 큰 글자는 힘있고 박력이 있다.

4급 군사장 원왕수는 손으로 기를 펴서 반듯하게 폈다. 직사각형으로 접어 조심스럽게 보관한다. “이 몇글자를 볼 때마다 아무리 힘들어도 온몸에 힘이 솟구친다.”고 그는 말한다.

8련의 장병들은 모두 이런 기발을 가지고 있었다.

이 컴퓨터 모니터 크기의 기발은 그들이 처음으로 임무를 수행할 때 발급하였는데 그들의 옹근 군생활을 함께 했다.

원왕수의 기발은 줄곧 그와 함께 했다.

호북성 북부 산간지대로부터 대사막 복지에 이르기까지, 연해 변강의 평원으로부터 내륙평원에 이르기까지 번마다 전신무장하여 하늘 높이 휘날렸다. 기발은 그의 성장을 지켜보았고 그가 락하산병으로 도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번에 기발은 원왕수를 따라 해발이 근 3,000메터 되는 서북고원으로 왔다.

모래바람이 휘몰아치고 황사가 하늘에 자욱하다. 장병들의 코와 눈썹은 온통 모래다.

이때 반 전술시험이 곧 시작된다. 원왕수는 평소처럼 미리 기발을 배낭속에 넣었다.

시험을 앞두고 자연스럽게 대처해야 할 그가 이번에는 좀 불안하다.

6년전의 한차례 요추수술로 하여 원왕수의 몸은 더는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릴 수 없게 되였다. 그러나 ‘고원 무장 달리기’는 이번 심사과목의 하나이다.

반드시 달려야 한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배낭을 짊어진 그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기타 대원들이 앞으로 달리더니 잠깐사이에 원왕수를 앞섰다.

고원에는 산소가 희박하다. 그의 호흡은 점점 빨라지고 가슴은 북치는 듯 펄떡 거렸다. 그는 자신의 체력이 이미 극한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이미 종점에 도착한 전우들은 그를 향해 일제히 소리를 지른다. “돌격 나팔소리 뿐이다. 퇴각의 북소리는 없다!”이는 8련의 련혼이다.

이 말은 그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원왕수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종점을 향해 달려갔다.“쓰러져도 종점에 가서 쓰러져 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68년래 불꽃튀는 전투 속에서 굳혀진 “돌격 나팔소리만 있고 퇴각 북은 없다!”는 철같은 전혼(战魂)은 한세대 또 한세대 장병들의 혈액속에 스며들었다. 8련의 장병들이 돌진한다. 오늘도 ‘첨병’은 여전히 첨병이였다.

20세기 60년대초, 공군사령원 류아루는 전공이 탁월한 3개 야전군에서 반복적으로 고르다가 최종 조선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륙군 제15군을 선발하여 락하산병 제15군으로 개축하였다. 따라서 8련은 정식으로 락하산병서렬에 편입되였다. 이때로부터 나어린 중국 락하산병은 힘찬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

올해는 락하산병종 창설 70주년이 되는 해다. 현재 락하산병들은 이미 노새와 말, 반기계화로부터 기계화, 정보화로의 전변을 거쳐 력사적인 도약을 실현하였다. 한차례 또 한차례 전환의 관문에서 8련은 솔선수범하여 여러가지 시험훈련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다.

12년전에 그들은 또 새로운 공적을 세웠다. 문천지진 때 소목령의 동굴에 갇힌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원왕수와 기타 5명의 돌격대원 수직에 가까운 세멘트벽에 생명의 사다리를 가설하였다. 2박 3일 동안 지칠 줄 모르게 기여오르고 또 기여오르면서 마침내 그들은 모든 리재민을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앞에 상감령이 있고 뒤에 소목령이 있었다!

오늘날 폐허에 재건하고 다시 명명된 교정에서는 글소리가 랑랑하다. 그해에 재해지역 인민들은 8련 장병들이 그들을 도와 학교를 재건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사천성 덕양시 마조진의 5개 중소학교를 ‘상감령학교’로 명명하였다.

이번 야외 무장훈련에서 원왕수는 있는 힘을 다하였다. 그는 상상할 수 없었다. 8련 전투영웅 시운진이 당년에 어떻게 20분 동안에 전반을 이끌고 적의 3개 고지를 공략하고 적의 영장을 사살하였는지를.

69년전 조선전장 박달봉저격전에서 시운진은 전우들과 함께 적들과 끝까지 혈전을 벌려 중국 군인의 혈기를 세계에 과시했다.

당시 격렬한 전투장면은 현재 련대의 영예실에 복제되여 있다.

“8련 반장 시운진은 전반의 남은 3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또 다른 고지를 점령하고…” 눈앞에서 펼쳐진 글을 바라보면서 휠체어에 앉은 로인은 휘청거리며 손가락으로 전시장을 가리키며 무언가 말하려고 한다. “적병은 키가 크고 힘도 셌다. 한 입에 나의 오른손 식지를 물어뜯었다. 나는 왼손으로 돌멩이를 들어 적병의 머리를 갈겼다. 적병은 기우뚱하더니 까무라쳤다. 나는 온몸에 24곳이나 다쳤고 기진맥진하여 기절했다…”

자신의 력사를 설명하는 이 로인이 바로 당시 저격전의 견증자인 영웅 시운진이였다.

9년전, 시운진 로영웅은 다시 로련대로 돌아왔다. 매번 영예실에 올 때마다 그는 장병들에게 뼈에 사무치는 그 기억을 들려주었다.

원왕수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로영웅이 적들과 싸울 때, 붉어진 눈언저리를! 그날 381개의 탄알구멍이 가득찬 기발앞에서 로영웅은 침묵속에서 보고 또 보면서 오래도록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이 장면은 8련 장병들의 마음속에 아로 새겨졌다.

전화속에서 용솟음쳐 나온 특공8련은 선혈과 희생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기발의 ‘붉은 홍’은 렬사들의 선혈로 물들인 ‘홍’이며 매개 8련 장병들의 뜨거운 마음으로 끓어넘치는 ‘홍'이다.

“신념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준다.” 이번 전술시험에서 원왕수와 동료들의 종합성적은 전 려의 첫자리를 차지했다. 훈련이 끝나자 그는 첫시간에 영예실에 달려가서 기발 앞에 섰다.

국경 70주년 열병식에 참가하고 병사 황사상과 당왕은 북경에서 련대로 돌아왔다. 그들이 한 첫번째 일도 영예실에 가서 희소식을 알리는 것이였다. “우리는 선배들에게 오늘의 8련 장병들도 련대의 붉은 기발에 먹칠을 하지 않았다고 알려주고 싶다.”

“8련의 군대는 종래로 혈기가 결핍한 적이 없다. 그것은 8련은 바로 혈기의 수련장이기 때문이다.” 항미원조에 참가했던 로영웅 장계발은 그날 련대를 한바퀴 돈 후 감개무량해 말했다 .

“역시 당년의 그 ‘성격’이다! ” 로영웅은 이렇게 찬탄하였다.

그들의 이름은 곧 우리의 진지

영예실에서 8련의 신병 양호강은 손에서 비자루를 내려놓고 눈앞에 펼쳐진 전시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올해 4월의 어느날, 양호강은 련에 온 다음 처음으로 영예실 청소를 하게 되였다. 어릴 때부터 군인을 숭배하던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했다가 뜻밖에도 그의 아버지가 복무하던 련대에 왔다.

“아버지, 나는 ‘상감령특공8련'에 왔어요.” 전화에서 양호강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잘됐다! 반드시 열심히 해야 한다.” 아버지 양복용은 격동을 감추지 못했다.

28년전 신병 양복용은 8련에 와서 가장 잊을 수 없는 5년의 군생활을 보냈다.

28년후, 아들 양호강은 이곳에서 그의 군대 생활을 시작하게 되였다.

이는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순간이였다. 부자 두 세대가 같은 련대에 복무하는 이 장면보다 더 아름다운 꿈의 릴레이가 있겠는가? 또 그 무엇이 이렇듯 가까운 련대의 유전자와 비길수 있으랴?

영예실에서 양호강은 12살 되던 해에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왔던 정경을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2009년, 양복용은 제대 12년만에 처음으로 8련에 돌아왔다.

용기를 내어 기숙사의 문을 밀어 젖히자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은 익숙하고 또 낯설었다. 모든 것이 변하지 않았다. 집안의 배치도 변하지 않아 양복용은 당년의 자기 침대를 찾을 수 있었다. 바뀐 듯 침대는 새롭고 책상우의 컴퓨터에서는 정보화건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집안을 둘러보고 또 보던 양복용이 침대 옆에 걸터 앉았다. 40여세의 산동사나이의 눈시울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렸다.

12살 난 양호강은 아버지를 따라 영예실에 왔었다. 그는 한눈에 전시판에 씌여진 아버지의 이름-양복용을 볼 수 있었다. 그는 흥이 나서 깡충깡충 뛰면서 ‘아빠다!’라고 외쳤다.

당시 양호강은 전시판의 모든 공신들의 이름 배후의 의의를 리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말은 기억하고 있다. “선배들의 류혈 희생과 견지가 없었다면 우리의 오늘은 없을 것이다.”

이번에 양호강은 다시 이 전시판 앞에 서게 되였다.

대규모 3군 합동훈련이다. 8련 장병들은 협동 계획에 따라 예정 락하구역내에서 락하하게 되였다.

전시판 옆의 영예벽 이등공 수상자 명단에서 양복용의 이름이 눈에 확 띄인다.

시간은 1996년, 복건 모 기지에서 갑자기 큰 바람이 불었다. 사병 양복용은 락하하기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날씨를 만났다.  

반드시 뛰여 내려야 한다! 이것은 임무이다. 양복용이 몸을 훌쩍 날렸다. 엉덩이가 직접 땅에 닿으면서 웅크리고 앉버렸다. 모진 아픔을 참으면서 그는 련의 기발을 높이 들고 집결지점으로 힘차게 달렸다. 끝내 붉은기를 진지에 꽂고 출중하게 임무를 완수하였다.

제대후 지방 로무부문에서 임직하고 있는 양복용은 여전히 자기의 ‘진지’를 고수하고 있다. 그는 전문 농민공들을 도와 밀린 로임을 독촉하여 받아주고 있다. 그의 사무실에 “일신의 바른 기풍으로 인민을 위해 집법한다!”, “인민을 위해 실제적인 일을 하며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라는 금기가 벽에 가득 걸렸다.

양복용은 1970년대에 태여나 어릴 때부터 전쟁영화를 가장 즐겨 보았다. 그는 영화《상감령》의 마지막 화면을 즐겼다. 붉은기가 진지에서 높이 나붓기는 장면이다. “중국 군인은 죽어도 후퇴하지 않고 붉은기는 진지에서 휘날린다.”

영화속의 그 붉은기는 8련 지도원 축화봉도 어릴 때부터 보았다. 어릴 때 할아버지는 그를 데리고 《상감령》을 읽었다. 그는 영화속의 상감령 주봉에 꽂힌 붉은기에 대해서도 인상적이였다.  

축화봉은 자기도 장래는 군인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했지만 영화속 영웅 련대에서 지도원으로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우리의 앞에 걸린 이 총탄구멍 381개가 있는 기발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는지 모른다. ” 8련에 온 후 그는 ‘진지'가 갖고 있는 내포를 더욱 깊이 리해했다.

금년 5.4청년절에 련대는 활동을 조직하였다. 력사의 긴 강을 건너 장병들은 편지 한통으로 영웅렬사들과 공간을 뛰어넘은 대화를 나누었다.

영예실에서 나온 양호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작은 목표가 세워졌다. “미래의 어느날 나는 꼭 아버지를 초과하리라!”

 같지 않은 청춘의 같은 모습

한번 비틀하더니 신병 양한국은 시금치밭에 넘어지면서 온몸이 진흙투성이로 되였다.

이는 양한국이 처음으로 락하산을 타는 것이다. 연착륙을 했지만 성공적인 첫 도약이였다. 그는 락하산을 풀고 몸에 묻은 진흙을 툭툭 털었다. 까만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순간의 성취감은 매우 컸어요.”

2분전만 해도 그는 굉장히 큰 운수기우에 있었다.

그 순간, 공기가 멎는것만 같았다. 양한국의 두 다리는 자기도 모르게 떨리고 머리속도 텅비였다. 온몸의 세포는 그 한글자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 등이 켜지고 뛰여내려라는 신호가 울렸다…

“뛰엿!” 지휘원의 구령은 우렁차고 다급했다.  

양한국이 몸을 훌쩍 날려 뛰여내린 후 몇초가 지나자 하나의 락하산꽃이 공중에서 피여났다.

도약할 때의 긴장으로부터 무사히 착륙한 후의 느슨함이 석연했다. 이때의 양한국은 더는 입대하기 전에 롤러도 타지 못하던 그 남자아이가 아니였다.

개변은 소리가 없지만 흔적을 남긴다.

올해 4월 22일, 8련은 또 한차례의 입대식을 조직했다.

제일 첫줄의 가장 오른쪽에 서있는 양한국은 흥분하면서도 긴장하였다. 그는 곧 자기에게만 속하는 영예번호를 수여받게 된다.

이것은 파란색 바탕에 노란 글씨로 된 작은 이름패이다. 8련의 모든 장병들은 입대식에서 그것을 얻게 된다.

련장이 명패를 양한국의 왼쪽 가슴에 붙일 때 그는 종래로 있어본적이 없는 사명감이 마음속에서 솟아오름을 느꼈다. “나는 ‘상감령 특공8련의 제89대 전승인이다’번호는 89023 호!” 이 번호는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우리들에게만 속하는 특수한 락인이다.

“나는 89021호이다!” 신병 후장장은 영예 번호를 받은 후 신병련에서 사귄 전우들을 만나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자기의 이름 대신 ‘특공 8련’의 전사임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특공 8련'은 마치 타고난 책임표지처럼 일단 붙이면 장병들은 점차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진다.-백절불굴, 불가전승의 전사로 변한다.

외국의 군인들이 8련 장병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김천우 하사는 지난해 9월 로씨야에서 다국간 합동훈련에 참가했다. 락하산을 타고 땅에 내릴 때 그는 머리를 땅에 맞히면서 거의 혼절할 뻔했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걸고 끝까지 견지했다.”

8련 출신의 현임 려교도대 교원 서성은 자신이 국제 군사경기 ‘락하패’의 종목에 참가하였을 때 다른 나라의 락하산병들이 그들에 대해 “실력이 강하고 쓰러지지 않는다.”고 평가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시공을 넘어 68년전의 8련 장병들은 바로 승리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치는 이런 모습이였다.

1952년 10월 19일, 9호 진지를 공격할 때 두차례의 폭파는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기관총수 뢰발균은 수뢰를 들고 포복전진하여 적의 또치까앞까지 가서 벌떡 일어나 또치까에 뛰여들었다.

상감령전역이 승리한 후 《인민일보 》는 사설을 발표하여 상감령전선의 아군의 위대한 승리를 축하하였다. “조선을 침략한 미군이 금화 이북 상감령에서 발동한 ‘1년래 가장 맹렬한 공세'는 이미 우리의 영용한 조선인민군과 중국지원군에 의해 철저히 격파되였다.”

8련의 문에 일단 들어서면 평생 8련의 사람으로 된다. 련대의 주관들이 교대식을 마친 후 전임 지도원 뢰진무는 친구췬에 이런 글을 올렸다. “8련에서의 1278을 돌이켜보면 ‘진군의 나팔소리만 있고 후퇴의 북소리가 없는’이 는 련혼은 오래전에 골수에 새겨졌고 나의 일생에 영향을 줄 것이다. 나는 영원히‘상감령특공8련'의 ‘78002’번이다.”

련대에 온지 얼마 되지 않는 새 패장 련영은 “8련에 온후 언제나 무형의 힘이 자기를 앞으로 떠밀고 간다.”고 말했다.

사병 양한국은 반장 황용이 그에게 한 말을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반드시 앞으로 돌진해야 한다! 8련에는 비겁한 병사가 없으며 영원히 뒤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고 어떤 장면에 가장 놀라는가?

력사의 추억과 현실이 교차되면서 재연될 때 사람들은 또다시 당년의 영웅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어제 영웅의 정신이 오늘의 후배들 속에서 활짝 피여나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눈앞의 이 장면이 가장 좋은 대답이다.

이는 8련 장병들의 청춘이고 그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뉴스래원 CCTV-군사,해방군보  편역 길림신문 김태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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