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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기업 및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북경동화원의료설비유한책임회사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0.09.30일 09:34
  



북경동화원의료설비유한책임회사 남룡 리사장

  올해는 북경동화원의료설비유한책임회사(이하 ‘동화원’으로 략칭)가 설립된지 29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991년 남룡 리사장이 일본에 설립한 요코하마동승교역주식회사로부터 첫 발걸음을 뗀 동화원은 근 30년간의 꾸준한 노력으로 현재 전국에 30개 지사 및 판사처를 갖고 있는, 국내 약탕기 령역의 룡두기업 및 서의 의료설비 령역의 유명기업으로 성장했다. 한편 동화원은 선후로 국가고신기술기업, 국가불꽃계획 중점고신기술기업으로 선정되고 중국약탕기설비와 건강체험설비 주류공급상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연구개발, 생산, 판매가 일체화된 종합성의료설비기업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북경동화원의료설비유한책임회사

  국제무역업으로 첫 자본금을 축적지난 세기 80년대말 남룡 리사장은 국가 대형 국유기업인 ‘중국오금광산수출입총공사’라는 좋은 직장을 버리고 일본류학길에 올랐다.

  “그때는 외국으로 가는 것이 류행이였습니다. 외국에서 시야도 넓히고 비즈니스도 배울 겸 외국행을 선택하게 되였습니다.”

  남룡 리사장의 말에 따르면 그가 일본류학을 떠났을 때 집의 부모들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줄도 모르고 그의 어머님은 그가 일본에 간 후 단위에 전화를 쳐서 그를 찾기까지 했으며 일본에 류학간 사실을 알고는 무척 근심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것이 그때 당시 북경에서도 대우가 좋기로 소문난 단위에서 나오고 그것도 갓 분배받은 집까지 내놓고 일본행을 선택했으니 리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남룡 리사장은 일본에 간 후 재일교포가 경영하는 한 무역회사에 판매부장으로 취직했다. 일본은 그때 발달국가로 중국과의 격차가 아주 컸다.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 일본사람들의 기업경영, 사고방식 및 사업태도 등을 많이 배우고 익혔다. 한편 회사에 근무하는 2년남짓한 기간 그는 중국에서의 인맥관계를 리용하여 중국에 많은 거래처를 설치해주었으며 한국시장도 개척하는 등 회사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1991년 그는 자신의 경영리념을 실천에 옮길 생각으로 일본 요코하마에 자신의 첫 개인회사를 꾸렸으며 일본, 한국과 중국간의 광산물국제무역을 진행하면서 인생의 첫 금을 캤다.

  무역은 상대적으로 하기 쉬운 사업이고 자금이 없을 때 하기 좋은 사업임에 반해 외부의존도가 높았다. 이 페단을 극복하기 위해 남룡 리사장은 직접 물품을 만들리라 마음먹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는 1994년과 1995년에 하북성 장가구와 산서성 양천시에 잇달아 광산물가공공장을 설립하고 이 두 공장에서 생산되는 광산물 초급가공품을 직접 외국에 수출함으로써 순수 무역업으로부터 무역제조업에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정 지도부 일군들 동화원 시찰



  국가공정원 유몽손 원사 일행이 동화원을 참관

  내수시장 개척지난 세기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출이 내수에 비해 각광받는 시기였다. 수출을 하면 회사계좌에 돈이 꼬박꼬박 입금되였지만 내수는 물건을 팔았다 해도 자금을 회수하기가 힘들었다. 한편 그때만 해도 중국 국내의 구매력은 일본 심지어 한국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중국경제의 궐기와 더불어 국내 내수시장의 규모는 엄청난 속도로 커졌으며 이는 남룡 리사장이 회사 주요발전방향을 13억 인구의 국내 내수시장에로 전환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때 무슨 품목을 할까 고민하면서 이것저것 찾던 중에 한국에서 약탕기를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은 약탕기로 달인 한약을 약봉지에 받아가지고 먹었는데 아주 편리하고 좋아보였습니다.”

  남룡 리사장은 된다는 판단을 하면 바로 실천하는 스타일로 즉시 한국회사의 제품안내서를 갖고 북경 동인당, 협화병원 등 큰 약방, 병원에 찾아가보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반응이 별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각 병원이나 약방에서는 보일러로 중약을 달인 후 병에 넣어서 환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다시 회수하는 시대였다. 큰 병원이나 약방에서는 약탕기에 호기심은 가지면서도 자금문제로 구매할 궁리를 하지 않았다. 남룡 리사장은 하는수없이 이 사업을 잠시 한켠에 밀어두고 광산물수출무역에 주력했다.

  남룡 리사장은 이렇게 약탕기사업과 멀어지는 듯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또다시 약탕기와 가까운 인연을 맺게 된다. 지난 1996년말 남룡 리사장은 북경에 온 친구를 호텔방까지 배웅해준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 친구가 가방에서 약봉지를 꺼내는 것을 보았다. 한국에서 보던 약봉지와 똑같았는데 남룡 리사장은 친구와의 담화에서 연길의 한 약방에서 이미 수입제 약탕기로 중약을 달여주고 있다는 소식을 알았다.

  연길에서 소비한다는 것은 북경이나 상해 등 도시에서도 소비가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남룡 리사장은 만사를 제쳐놓고 회사 중견부하와 함께 곧바로 한국에 건너가 한국 약탕기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콘테이너로 물품을 수입하여 국내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북경광안문병원과 북경중의원에 설치되여있는 동화원 약탕기

  국내 약탕기시장 석권기업을 경영하느라면 경쟁이 불가피하다. 남룡 리사장이 처음으로 국내에 약탕기판매를 시작할 때에도 경쟁회사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각 성의 중의원과 큰 약방을 고객으로 유치하는 판매전략을 펼쳤다. 처음에는 노력끝에 20개 정도의 성중의원을 고객으로 유치했으며 후에는 그 수량을 30개로 증가했다. 그때 당시 각 시, 현의 중의원, 인민병원, 개인진료소를 망라하여 성중의원에서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가 살폈으며 성중의원에서 사용하는 제품은 안심하고 구매했다. 이외에 약방의 경우 큰 약방의 선전효과가 특별히 뚜렷했다. 동화원은 북경 동인당, 남방의 장중경 등 큰 약방들을 잇달아 고객거래처로 확보했다.

  “기업경쟁은 전투와 같이 고지를 많이 점령해야 합니다. 특히 중점고지를 차지하면 다음 단계 전투에서 아주 유리한 위치에 처하게 됩니다.”

  남룡 리사장은 성중의원, 큰 약방 등에 물품을 납품하여 시너지효과를 톡톡히 누렸다고 한다.

  이어 회사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각 성에 판매네트워크를 구성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시장에서 판매되는 약탕기는 거의 전부가 대리상을 통해 판매되고 있었다. 대리상의 경우 일반적으로 단기적인 경제리익을 강조하고 판매후봉사를 제공해주기 어려운 등 페단이 존재했다. 이런 상황에 근거하여 동화원은 처음부터 직영점 경영방식을 도입하고 전국각지에 판사처를 건립하는데 나섰다. 처음에는 판사처를 경영할 적임자가 없어서 애를 먹기도 했다. 고향이 하북성인 회사의 기사보고 하북성판사처를 경영하라고 내려보내기도 하고 지어 집수리를 하러 온 목수를 권고하여 고향인 복건성에 가서 판사처를 경영하게끔 했다. 직영점을 통해 경영하면 대리상을 찾아 판매하는데 비해 관리 등 방면에서 정력이 많이 소모되였지만 남룡 리사장은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직영점경영이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회사는 이런 조치들을 통해 점차 시장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불과 3년사이에 국내 약탕기 시장점유률 1위를 차지하는 기적을 창조했다.

  동화원은 최근년간 연구개발에 많은 자금을 투자했으며 중약의 현대화에 큰 획을 긋는 많은 혁신기술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지난 2000년 동화원의료설비유한회사가 설립되고 ‘동화원’ 브랜드가 세상에 고고성을 올렸다. 같은 해에 동화원은 북경시 중관촌 하이테크 산업개발구 창평원에 2만평방메터의 새 회사 부지를 매입하고 2년후에 그곳으로 이전해갔다.

  “지난 2008년에 국가중의약관리국에서 우리 회사에 련락이 왔습니다. 중의약 관련 설비의 규범화와 관련하여 회의를 소집하는데 회사에서 대표를 파견할 수 없는가고 물었습니다.”

  남룡 리사장의 소개에 따르면 그때 국내 약탕기 시장의 경우 국산제에 수입제에 설비들이 각양각색이였고 병원, 약방들에서 중약을 달이는 표준도 제각기 달랐다. 이런 혼란한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 국가중의약관리국에서는 정부, 로중의, 병원의 탕약관(煎药房) 책임자, 생산회사가 참가한 ‘4자회담’을 조직하고 규범화에 대해 토론했다. 그 회의에서 많은 로중의들은 중약을 달일 때 주의해야 할 점 례를 들면 약을 달이기 전 우선 물에 얼마간 담그어야 하고 물을 넣은 후 약을 골고루 저어주어야 하며 어떤 약은 먼저 넣고 어떤 약은 나중에 넣으며 초탕과 재탕을 한데 혼합해야 한다 등 절차들에 대해 중점적으로 언급했다.

  이번 회의가 끝난 후 동화원은 국가중의약관리국의 위탁을 받고 관련기능을 겸비한 약탕기의 연구개발에 나섰으며 반년간의 노력끝에 ‘10대 기능 약탕기’(十功能自动煎药机) 독자연구개발에 성공했다. 국가 관련부문에 발명전매특허를 신청한 이 제품의 연구개발은 국내 약탕기산업의 획기적인 사변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중국중의약보》에서는 이를 톱기사로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국가중의약관리국에서는 이어 동화원과 손잡고 국내 모든 중의원 산하 탕약관의 규범화작업에 나섰다. 규범화작업 중 중요한 내용의 하나가 바로 국내 모든 중의원 산하 탕약관에서 ‘10대 기능 약탕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였는데 이로 하여 동화원은 아주 빠른 시간내에 신제품을 전국에 파격적으로 보급하는 판매특수를 누렸다. 이 제품은 또한 국가중의약관리국에서 제정한 정부구입목록 제1호로 선정되는 등 현재에도 동화원의 ‘효자판매제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중약의 현대화에 큰 획을 긋다경영판매와 기술력은 회사의 발전을 견인하는 ‘쌍두마차’라고 할 수 있다. 동화원은 시장판매령역에서 우세를 확보한 이후 기술연구개발에 많은 정력을 몰부었다. 지난 1998년 회사는 연구개발부서를 설치하고 약탕기의 국산화 연구개발에 나섰으며 2년후에 독자지적재산권이 있는 중약 약탕기 연구개발에 성공했다. 이어 여러가지 류형의 중약 약탕기를 잇달아 개발해냈으며 기술력 방면에서 경쟁회사들을 멀찌감치 앞서갔다.

  “제조업에서 앞서나가려면 연구개발에 과감히 투자해야 합니다. 연구개발은 사실상 자금력의 겨룸입니다.”

  남룡 리사장의 말에 따르면 기술이라는 것은 모르면 아주 신비하고 넘기 어려운 벽으로 인식하기 쉽상이지만 정작 해보면 큰 기술이나 작은 기술이나를 물론하고 자금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꾸준히 밀고 나가면 성공할 확률이 아주 높다고 했다.

  이런 인식하에 동화원은 최근년간 연구개발에 많은 자금을 투자했으며 중약의 현대화에 큰 획을 긋는 많은 혁신기술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지난 2013년부터 동화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탕약제조센터’(煎药中心)가 이런 혁신기술중의 하나이다.



  산동홍제당제약그룹에서 사용 중인 동화원에서 최초로 연구개발한 ‘탕약지능화조제시스템’

  ‘탕약제조센터’가 설립되기 이전에는 병원이나 약방에서 자체로 약탕기를 구입하고 약을 달여가지고 환자들에게 공급해주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이 봉사를 제공해주려면 우선 인원을 수십명 채용해야 되고 탕약관도 별도로 따로 만들어야 했다. 큰 병원이나 약방의 경우 흔히 시내 중심에 위치해있었음으로 토지자원이 원래부터 긴장한데 탕약관까지 만들라니 사무공간이 더욱 줄어들었고 또 인원관리까지 해야 했으므로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이런 상황에서 동화원은 제3자봉사 즉 제약공장에서 ‘탕약제조센터’를 설립하고 관련 봉사를 제공해주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제약공장은 표준화 및 규범화된 생산조건 및 공장건물을 갖고 있고 전문성이 강하기에 중약을 가공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구체적으로 병원에서 약처방전을 떼면 인터넷으로 ‘탕약제조센터’에 전달되였으며 ‘탕약제조센터’에서는 요구에 따라 약을 달여주고 나중에 물류시스템을 통해 환자들에게 직접 배송까지 해주었다. 이에 사용되는 관련 소프트웨어는 동화원에서 10년 남짓이 개발해온 시스템으로 그동안 기능이 륙속 보강되여왔으며 현재 병원, ‘탕약제조센터’, 환자 모두의 환영을 받고 있다.

  후세 사람들에 의해 ‘약왕’으로 불리는 당나라 의학가 손사막은 약을 채집하는데 편리하기 위해 주머니가 많이 달린 옷을 특별히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 중의원이나 약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약궤짝의 전신이다. 이렇게 중약궤짝은 중의약의 대표 상징물의 하나로 오래동안 전해내려왔으며 그동안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재료 방면에서 나무 아니면 불수강으로 만들었을 뿐으로 사람의 손을 통해 약을 짓는 과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이 전통관례가 동화원에 의해 타파됐다. 지난 2018년 동화원은 ‘탕약지능화조제시스템’ (中药饮片智能调剂系统)을 연구개발하고 탕약 조제과정의 무인화를 실현했다. 이 시스템의 통제에 따라 중약재들이 벨트에 실려 자동으로 지정위치에 운송되고 달여지는데 이 기술의 연구개발로 하여 중약재를 하나하나 인공으로 저울로 떠서 배합하던 과거의 락후한 조제과정이 종말되였다. 이는 중의학의 일대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관련설비는 시장에 출시된 후 인기도가 급상승했으며 동화원의 또 하나의 힛트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페염 사태가 발생한 후 동화원은 호북성, 호남성, 북경시, 신강위글자치구 등 지역에 약탕기와 소모품을 전문 공급해줌으로써 코로나 방역사업에 한몫 크게 기여했다.

  불황을 모르는 기업남룡 리사장은 기업경영에서 안일함은 금물이고 성공을 꿈꾸려면 투철한 론리적 사유에 의한 리성적 판단, 순간적인 감각, 시장수요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파악,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 등이 아주 중요하다고 알려주었다.

  동화원의 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자아 도전과 혁신이다. 일찍 무역업에 종사할 때 남룡 리사장은 미래를 대비하여 실업에 착수했으며 국제무역환경이 악화되자 과감히 수출무역업에서 퇴출하여 내수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리고 한국수입제 약탕기가 한창 잘 팔릴 때 국산화의 길을 걸었으며 국내에서 동화원 약탕기가 시장을 석권할 때 다원화전략을 제기하고 서의 의료기기연구개발에 나섰다.

  동화원에서 서의 의료기기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건강중국2020계획’의 출범과 더불어 건강산업에 대한 국가차원의 투자가 많이 증가되였으며 관련 의료기기에 대한 사회적 수요도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동화원은 중의체질식별기, 동맥경화측정기, 전자동혈압기, 인체성분분석기, 골밀도측정기, 정신압력측정기 등 건강관리제품을 잇달아 시장에 내놓았으며 이런 건강관리제품들을 집대성한 ‘건강의 집’(健康小屋)프로젝트도 출시했다. ‘건강의 집’에서 사용자들은 관련 의료기기에서 검측한 수치들을 핸드폰으로 련결하여 수시로 건강을 체크할 수 있다. ‘건강의 집’은 사회구역, 양로원, 기관, 기업 등에서 환영을 받았으며 개개인의 건강을 관리하고 지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다.









  동화원은 다년간 중의중약중국행활동을 비롯한 사회공익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동화원’ 브랜드는 탄생되여서부터 현재까지 줄곧 성장일로를 거듭해왔으며 브랜드 인지도도 업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화원은 지난 2005년 ISO9001 및 ISO13485 품질체계인증을 통과했으며 제품 품질, 안전과 봉사 수준이 유럽표준에 도달했다. 2006년에는 ‘수도 민영기업 자주혁신 40대 기업’에 선정되였으며 2009년에는 ‘중관촌 국가혁신기술시범구 혁신형 시점기업’으로 평의됐다. 2012년에는 중국을 대표하여 ‘중약 약탕기’국제표준제안을 제기하고 이 제안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표결통과되였다. 2013년에는 중관촌 국가자주혁신시범구 신기술(봉사)증서를 획득하고 2015년에는 북경시공상행정관리국으로부터 북경시유명상표로 평의됐다. 2016년에는 국가공업과정보화부에서 발급한 ‘인터넷혁신해결방안상’ 및 ‘북경시과학기술상’을 수상했으며 길림동화원프로젝트가 가동됐다. 2017년 ‘중국우수기술’ 2등상과 ‘생산력촉진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동화원에서 최초로 연구개발한 ‘전자동탕약조제생산라인’이 ‘2018년도 정부구입 중관촌신기술신제품-첫 중점기술장비시범항목’으로 선정됐다. 이와 동시에 지능약탕기가 ‘2019년 중관촌 2대 혁신 신기술신제품’으로 평의됐으며 동화원 창주 분공장이 생산에 투입됐다……

  동화원의 거침없는 행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페염 사태에서도 멈출 줄 몰랐다. 올해 1월 31일부터 동화원은 생산을 회복하고 밤에 낮을 이어가며 코로나 방역에 사용될 약탕기와 소모품을 생산해냈다. 이렇게 생산한 제품들은 무한 뢰신산병원, 화신산병원 등 방창병원들과 적십자회, 중약회사 중약추출센터 등 단위와 회사들에 륙속 운반되여갔다. 일전 신강위글자치구에서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후 동화원은 국가위생건강위원회와 합작하여 신강위글자치구에 약탕기와 소모품을 전문 공급해줌으로써 호북성 및 신강위글자치구의 코로나 방역사업에 한몫 크게 기여했다.

  동화원은 기업이 발전과 더불어 기업문화 및 직원들의 직업훈련에도 큰 중시를 돌렸다. 남룡 리사장은 그동안 경영과정에서 느낀 점을 하나하나 정리하여 동화원경영리념으로 업그레이드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위기의식을 항상 간직할 것, 넓은 시야와 안광을 갖출 것, 정확하고 전면적인 사유방식을 양성할 것, 문제의식으로 착수할 것, 덕목을 우선으로 하며 덕목으로 타인의 인정을 받을 것, ‘장인정신’을 제창할 것, 자아변혁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것 등 80가지가 있다. 이외에도 동화원은 ‘인재 기본, 앞선 기술, 고객 지상’의 경영방침을 제기하고 인재양성, 연구개발 및 경영판매에 중시를 돌리면서 기업의 핵심가치관, 기업정신, 기업제도 등을 적극 구축해왔으며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에 좋은 토대를 닦았다.







  남룡 리사장은 최근년간 해마다 모교에 사랑의 후원금을 보내주고 있다

  동화원은 바야흐로 회사설립 30주년을 맞는다. 지난 20여년간 동화원은 의료업종이라는 한 우물만을 파왔으며 남들의 찬탄을 자아낼만한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으며 업계 굴지의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남룡 리사장은 향후에도 동화원은 계속 의료업종에서 혁신적 사유와 혁신적 조치로 새 제품 및 새 기술 개발에 힘쓰며 백년기업 및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노력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민족》조선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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