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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춘 교사, 칠색 빛으로 단장된 20년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0.11.17일 14:42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고 사람을 육성하는 곳이다. 이러한 기반에서 전선생님은 학생들이 다 저마다 자신의 길과 꿈을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한다. 교육사업 종사 20년, 전선생님은 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학생을 이끌어왔고 학생의 성장하면서 방향을 찾는“북두칠성”이 되여 주었다. 실제 행동으로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지켜왔으며 초심을 잃지 않고 교육사업에 자신을 맡겼다.

적색 –교탁에 대한 열정과 동경을 품고

  금방 졸업했을 때 교사 직업에 대한 좋은 상상을 안고 꿈에 그리던 교탁에 올랐지만 상상했던 것처럼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00년에 학교는 파격적으로 전선생님 보고 졸업반 우등반의 영어 수업을 맡으라고 하였다.

  아무런 경험이 없는 전선생님은 이를 악물고 이 임무를 진행하였다. 학생의 공부 성적을 보장하기 위해 쉬는 시간과 점심 휴식시간을 리용해서 개별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밤을 새우면서 수업 준비를 했다. 이렇게 해서 학생들과 가까워졌을 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인정을 받게 되였다.

  교도주임은 이런 말을 했었다. 처음에는 학부모들이 경험이 없는 선생님이 졸업반을 책임지는 일에 대해 불만을 가졌는데 점점 전선생님의 열정과 노력에 감동했다고 한다. 이런 말씀은 칭찬이기는 하지만 그에게 더 큰 압력이 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더 큰 목표를 새웠다. 당시 고중 입학시험에 전선생님이 이끈 반의 영어 성적은 목표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우수했다. 그리고 순리롭게 새로 입학한 학생들의 담임이 되였고 조선족 제2중학교의 력사상 제일 나이어린 담임이 되였다. 그 때 전선생님은 겨우 22살이였다.

  등색 – 2003사스를 성공적으로 극복

젊은 담임으로서 매일 학생, 학부모, 학교의 시련에 지친 전선생님은 매일 출근하면서“오늘도 부탁한다”를 묵념하였다. 하늘도 들었는지 제일 관건 시기에 그를 도와주었다.

  2003년의 봄에 SARS사건은 전 사회에 공황을 조성했고 의료진을 포함한 많은 환자의 죽음 소식과 련합국, 세계보건기구 및 언론의 관심으로 전선생님의 뇌신경은 시시각각 곤두섰다. 그러나 그는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학교의 지시에 따랐으며 사고가 나지 않게 방지하고 있었다.

  전선생님은 돈을 주고 판람근을 사서 반 아이들에게 먹이고, 식초를 사서 방과 후 반급을 소독하여 우에 지시에 따라 방역을 착실히 실행하였다. 하지만 위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왔다. 5월의 어느날, 그의 반의 한 학부모가 사스 의심 환자로 확정됐다는 통지를 받게 되였다.

  반 시간도 되지 않아 전선생님은 학교 령도와 회의를 나누고 제일 빠른 속도로 학생들을 모아서 체온검사를 시켰다. 새벽에 구정부에 가서 회의를 하고 날이 밝지도 않을 때 학부모에게 전화를 해서 격리를 받아야 한다고 전해줬다. 선생님, 학생, 학부모 총체적으로 92명을 격리해야 했다.우에 지시에 따라서 공항로의 한 호텔에서 단독으로 격리를 받아야 했다. 당시 전선생님은 가족들에게 알려줄 겨를도 없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모두와 함께 방폭대 보호 아래 비를 무릅쓰고 격리하는 곳에 도착했다.늦은 밤에 모든 학부모는 전선생님의 조직하에 순서대로 자기 아이의 손을 잡고 격리실로 들어갔다. 문득 그는 옷자락에 한 아이의 손이 계속 있었던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 아이는 부모님이 곁에 없었다.

  “선생님, 저는 혼자 독방을 쓰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도 부모님이 없잖아요?”하루 종일 교육부의 령도로부터 언론으로부터의 시련속에 간만에 가족에게 전화하고 싶었는데 아이의 말을 듣고 전선생님은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격리하는 동안 학생들을 조직해야할 뿐만 아니라 학부모님도 위로해야 했다. 왜냐면 그들의 정서가 사스격리 때문에 안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언론매체의 인터뷰와 사회로부터 오는 위안을 받아야 했다. 16일의 격리는 16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격리가 풀리자 전선생님은 교육국 칭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좋게 평가해 주었다. 침착하고 차분하며 원칙적이고 사람을 잘 달래준다고…한동안 이 일은 핫 이슈로 남았고 하늘에서도 그에게 보상을 해주었다. 2003년 9월에 전선생님은 도리구 교육계에서 유일한 대표로 할빈시 제17회 부녀 대표 대회를 참가하여 력사상 나이가 제일 어린 부녀 대표에 당선되였다. 이는 전선생님의 정치인생의 하나의 리정표가 되였다.

황색 – 직업고등학교의 담임이라는 도전과 함께

3년이란 순환은 끝나고 2004년의 여름, 전선생님은 인생 중에 첫 번째 졸업반을 보냈고 이 반급을 위해 정력을 다 쏟아부었고 심지어 혼인도늦추었다. 원래는 휴식하고 싶었고 학교의 령도도 그의 마음을 알아서인지 전선생님에게 반주임의 임무를 주지 않았고 그저 중학교 2학년의 영어를 가르치게 하였다. 하지만 개학한지 보름이 지나 원래 고중 2반의 반주임 최선생님이 사직하여 학교 령도의 고려 끝에 전선생님더러 다시 반주임을 맡게 하였다.

  전선생님은 처음에는 이 임무를 맡기 싫어했다. 아시다시피 조선 2중의직업고중은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아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자주 쌓이곤 한다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하라고 하니 전선생님도 어쩔 수 없이 임무를 도맡아서 하게 되었다.처음부터 한 반급의 반주임이 되는 것과 도중에 반주임이 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지만 차이는 컸다. 전선생님은 교육 잡지에 교육 사례를 참고하고 늘 어떻게 하면 리론들을 실제 응용에 적합할 것인지를 사고하였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의하면 직업고중은 그냥 시간을 때워서 졸업증을 따고 외국에 가거나 일자리를 찾는 곳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교육은 이 곳에서 의미와 보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전선생님은 늘“이 세상에는 부족한 학생은 없고 부족한 선생님만 있을 뿐이다”라고 믿어왔기에 정성만 들인다면 아무리 부족한학생이더라도 감화 받아 좋아질 수가 있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는 아침 시간을 이용해서 학생들에게 인생관, 가치관의 강의를 해줬고 하학하기 전 5분의 총결시간에는 비평보다 고무 격려를 더 많이 하면서 다음날 더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다.

  학생들을 단독적으로 불러서 그들의 진로를 분석해주고 그들에게 위기감을 주어 주동적으로 공부를 하고 나쁜 습관을 고치게 하였다.

  또한 모든 기회를 이용해 그들과 교류하고 소통하였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는“감사”를 주제로 한 성인식을 올렸다. 한 달 동안 준비하면서 학생들더러 저절로 전자액자를 만들라고 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컴퓨터 선생님을 찾아가 관련 지식을 배우게 하였고 주동적으로 학습할 수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학생들더러 18년 동안에 제일 감동한 일이나 제일 감사하고 싶은 사람에 관한 수필을 쓰게 하였다. Flash제작, 주제곡 선정, 수화 학습,정보 수집, 반급 집체 복장을 빌리는 임무에서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참가해 주었다. 전선생님이 생각하기엔 반회를 준비하는 과정은 반회 그 자체보다 더 값지고 의미 있었다. 후에 전선생님이 이끈 반급은 할빈시 제3기덕유 실천 대회에서 시급 2등 상을 받게 되었고 그 해 12월 그는 구청에서의 후진생 전환 우수교사라는 상을 받았다.

  록색 – 새싹은 꼭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

  전선생님의 노력과 성과에 학교 령도는 새 학기에 그에게 더 큰 도전을 주었다.

  그는 새로 입학한 중학교 1학년의 담임이 되였는데 이 반급은 보통반급이 아니라 학생이 8명만 있는 반급으로 그들은 모두 오고 갈 때 없는“특수”한 학생들이었다.

  이런 반급에서 조그마한 실수가 있더라도 한 학생은 전체 반급을 뒤흔들 수 있다. 그래서 전선생님은 그들이 학교에 오는 날에 열려야 하는 반회를 다과회형식으로 만들었고 전선생님이 돈을 내서 반급을 집처럼 따뜻하게 꾸몄고 통일 반급복장, 방석, 책상보를 맞춰주었다. 학생들이 사람이 적어서 썰렁하다고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 늘 시간만 있으면 반급의 빈자리에서 오락 활동을 하게 하였고 점심에 급식을 먹기 싫으면 학생들이 먹기 좋아하는 음식을 배달해서 같이 먹게 하였다. 집에 있는 카메라를 들고 늘 그들의 공부와 생활의 순간순간을 기록해서 남겨두어 학부모회 때 영상으로 제작해서 학부모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매 학생에게 생일파티를 열어주었고 학기 말에“소 반급 대 가족”이란 반회도 열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 위에도 꽃이 핀다고 이 모든 수고는 학생들로 하여금 8명인 반급도 부족함이 없다고느끼게 해주었고 학부모들도 안심하게 하였다. 이런 반급도 불가피면하게 고민이 있었다.

  례를 들어 학교 배구 시합에서 사람이 적어 4명 학생이 다른 반급과 합하여 시합을 할 수밖에 없었고 예술축제 때 사람이 부족해서 작품이 다른 반급과 비교할 수 없었고 반급청소도 사람이 적어서 청소당번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또 자기 차례로 청소해야 했다. 그리고 늘 웃학년의“억압”을 받아야 했고 학생들이 어리고 능력이 부족하여 학교의 많은 활동은 전선생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 과정에 학생이 임무를 완성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보다 그들이 자신감을 잃을까 봐 걱정이 되였다고 전선생님이 말한다. 8명 학생은 소학교 때 거의 후진생이였고 평상시에 관심과 존중을 받지 못하였기에 자괴감이 심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관심을 받고 싶어하고 능력이 부족하지만 적극적이였다. 이에 전선생님은 그들을 비평하지 말고 언어로 그들을 긍정해 주고 그들과 많이 소통하여 매 사람마다 반급의 주인이 되게 하며 그들 모두가 충분히 의견을 발표하고 민주적인 반급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력점을 두었다.

  전선생님의 가르침에 아이들의 성격이 이전보다 밝아졌고 긍정적으로 되었으며 전에는 공부하기 싫었지만 지금은 주동적으로 단어를 외우고 과문을 외우고 자기의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학부모들은 전한다.학부모의 감사와 감격은 전선생님에게 제일 큰 보람이었다.

  그 이듬해에 전선생님은 임신하였다. 임신 초기에는 반응이 강했고 몸상태는 급격히 나빠졌으며 임신 반응은 5, 6개월까지 지속되였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임신의 리유나 반급의 인수가 적다고 학교의 활동을 참가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반대로 모든 활동에 적극적이었으며 전람회에 항공전시하는 활동에서도 불룩 나온 배를 안고 무더위를 무릅쓰고 학생들을 이끌고 참가했다.

  그리고 매일 일찍 학교에 나와 학생들의 아침 자습을 지켜주었고 임신 6개월에 감기에 걸려 사무실 의자 몇 개를 리용해서 잠시 휴식하고 학생들이 숙제를 다 완성하고 하학할 때까지 기다렸다.

  사실 몇 번이나 담임을 포기하고 그냥 마음을 가라앉히고 출산을 기다리고 싶었는데 매일 좋아지는 학생과 그를 믿어주는 학부모를 위해서 이를 악물고 끝까지 견뎌내었다고 한다.

  일 년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고 이 반급은 일학년 하학기에 도리구 선진 집체로 수상 받았고 전선생님도 칭찬을 받았다.

  학생들이 걱정돼서 수유기를 채 넘기지 않은 상태에서 중학교 3학년의 영어 수업과 고중 1학년의 영어 수업을 맡게 되였다. 수업 시간표는 꽉 찼고 저녁 자습시간과 토요일 보충수업까지 합하면 매주 17, 8개 수업을 해야 했다.

  엄청난 수업량은 그로 하여금 괴로웠고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저녁 자습이 있는 날에는 아침에 자고 있는 아이를 집에 두고 저녁 8시에 집에 돌아오면 또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 한 살도 안 된 아이가 하루 종일 엄마를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괴로웠다.

  학생들이 졸업하는 그날에야 전선생님은 보람을 느끼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졸업 전 마지막 수업 시간에 학생들은 교탁 우에 포장지를 올려다 놨다. 전선생님은 꽃이라고 생각하고 열어보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고 포장지 속은 비여있었다.

  “왜 포장지만 있고 꽃은 없어요?”라고 물어보니 8명의 학생은 이구동성으로“우리가 바로 선생님이 키워준 꽃이잖아요”하고 말하는 것이였다.

청색 – 수목단청이라는 한폭의 아름다운 예술품

20년의 교육경력은 전선생님에게 수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17년 담임 경력 중에 많은 것들은 시간과 함께 스쳐 지나갔지만 그중 수묵단청은 제일 인상이 깊다.

  2011년에 전선생님은 아주 특별한 반을 맡게 되였는데 전 반급에서 녀학생은 수영이 혼자뿐이였다. 이 학생은 수업이 끝나면 같이 화장실 갈 사람도 없고 같이 놀아 줄 사람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전선생님은 시간만 있으면, 수업이 끝나거나 점심시간에 혹은 체육시간에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듣기로는 쉬운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3학년 때 학교가 이사하기에 조선족 2중은 할빈시조선족문화예술관에 임시적으로 학교를 만들었고 화장실은 실외에 있는데 저녁에 불이 없어서 저녁 자습시간이 있는 날에는 전선생님은 수영이랑 같이 밥 먹었고 날이 어두워지면 같이 화장실에 가야 했다.

  어느 한번 학부모회의 때 전선생님은 반급에 녀자 한 명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수영이 엄마는“있는데요, 우리 수영이가 선생님이 우리 반급의 두 번째 녀학생이라고, 수영이는 선생님을 담임이 아니라 자기의 친구로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전선생님은 기뻤지만 압력도 있었다. 이렇게 3년이란 시간을 보냈고 3년뿐만 아니라 수영이는 고중에 들어가서 문과반 리과반을 선택할 때도 전선생님을 찾았고 대학 입시 준비할 때도 그와 그의 남편이 대신 대학을 선택하였고 지금 대학4학년인데 종종 전선생님을 찾아오곤 한다. 수영이와 전선생님은 보통 사생관계를 뛰여 넘었다며 교사와 학생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 수묵단청과도 같다고 수영이 엄마는 말했다.

  남색 -- 구름이 지나갈 때 흔적은 남기지 않았지만 마음은 통했다

  인생은 회전계단과도 같아서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더라도 현재의 자신은 원래의 자신과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8급 학생 중에 김영화라는 남자애가 있었는데 한족 학교에서 조선족 학교로 전학해 왔다. 그는 이미 3번 전학을 했었다. 가정 조건이 좋아서인지 아이가“소황제”마냥 행동했다고 한다. 경험이 있는 선생님은 이런 학생을 교육하는 것은 엄청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학교 3학년 어느 하루, 학교 경비 아저씨랑 대화하다가 경비아저씨가“다른 담임은 다 무서운 거 같은데 너희 담임은 온유한 것 같다”고 할 때 그는“맞아요, 전선생님은 다른 선생님처럼 무섭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무서워요. 전선생님이 화날까 봐 무서운데요”하고 대답하였다. 후에 이 아이는 고중에 가지 않고 많은 일을 해보았고 매번 실패할 때마다 모두 전선생님에게 전화했다. 매번 울다가 웃는 데 4년 전에 결국 영광스러운 소방대 전사가 되였으며 위챗에서 전선생님에게 다시는 선생님께 하소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왜냐면 자기가 지금 너무 바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교사절날에 김영화 어머니는 전선생님께 이런 메시지를 전해주었다.“하늘이 푸른 것은 구름이 지나가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마음은 통했기 때문이다.”

  자색 –교육이라는 길에서 꾸준히 앞을 향해 전진

  20년의 교육 사업에서 전선생님은 모든 일에 몰두하고 최선을 다 해왔고 과감하게 혁신하여 올바른 교육태도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전선생님만의 독특한 교육 방법을 가꾸었으며 학생과 학교의 칭찬과 호평을 받아왔다.

  참으로 스승으로서“도를 알려주고, 업을 가꿔주고, 의문에 대해 답변해준다”는 직책을 다 하였다. 전선생님이 가르쳤던 학생은 세번 련속으로 고중 입시시험에서 영어 단 과목의 민족 장원을 따냈고 전선생님 개인적으로 성과시에서 개최한 갖가지 영어 교육 시합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수상을 받곤 했다.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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