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말머리 동상이 “고향” 원명원으로 돌아왔다.
이는 160년만에 처음으로 원명원에 돌아온 해외에 류실되였던 중요한 문물이다.
원명원에서 류실되였던 6점의 동물 머리 동상이 그전에 이미 부동한 방식으로 조국에 돌아와 국가박물관과 보리예술박물관에 보존되였다.
말머리 동상은 어떻게 “귀가”했을가? 이 준마의 다른 친구들은 지금쯤은 어디에 있을가?
말머리 동상은 어떤 물건인가?
말머리 동상은 청나라 원명원 장춘원 서양루 건축군의 해안당 십이지신 동상 분수중 오마(午马)분수의 중요한 구성부분이다.
이는 에 실린 불에 타기 전 해안당 사진, 십이지신 동상이 살아 있는 듯 하다. 신화사
십이지신 두상 분수는 매일 대응되는 시간이 되면 물을 뿜는데 유독 점심 오시(午时)만 되면 일제히 물을 뿜어내 장관을 이룬다.
전람현장 / 신화사
분수는 서양의 수력시계를 원형으로 하여 수력으로 자동운행되는데 설계가 정교하여 해안당 건축군의 정수로 되고 있다.
말머리 동상은 이딸리아인 카스틸리오네(중국명 랑세녕)가 설계한 것으로 청나라 건륭년간 궁정 장인들이 제작, 동서방 예술 풍격을 융합하고 있다.
말머리 동상은 분할주조법, 탈랍법(失蜡法)과 리벳(铆接)공법 등 여러가지 기법으로 제작되였는바 표정이 살아 있는 등 아주 높은 기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그 재질은 정제한 적동(红铜)으로 색채가 짙고 중후하며 백년의 풍상속에서도 녹쓸지 않았다.
이는 에 실린 훼손된 후의 원명원 해안당 사진. 신화사
1860년 영국 프랑스 련합군이 북경에 침입하면서 원명원은 참혹하게 략탈당하고 불에 타버렸다. 말머리 동상과 기타 11점의 짐승머리 동상은 함께 해외에 류실되였다.
말머리 동상은 어떻게 돌아왔나?
2007년 8월, 국가문물국은 향항소부비유한회사에서 원명원의 말머리 동상을 경매한다는 소식을 접한뒤 즉시 회사 책임자에게 원명원의 말머리 동상은 중국근대에 략탈당한 진귀한 문물이기에 공개경매를 찬성하지 않으며 적당한 방식으로 돌려오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향항소부비유한회사는 이에 리해를 한다면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7년 9월, 향항오문지역의 유명한 기업가이며 애국인사인 하홍신선생이 6910만 향항딸라를 들여 원명원 말머리 동상을 구입했다.
2019년 11월, 중화인민공화국성립 70주년과 오문회귀 20주년을 경축하기 위해 국가문물국의 적극적의 조률하에 하홍신선생은 원명원 말머리 동상을 정식으로 국가문물국에 기증했다.
2019년 11월 13일, 당시 문화관광부 부장을 담임앴던 락수강(우)이 하홍신 선생의 대표 하초경녀사와 함께 원명원 말머리 동상을 제막했다. 신화사
말머리 동상의 “집”은 어디에?
류실된 문물은 원속지에 귀환시킨다는 국제공감대를 더욱 잘 리행하기 위해 국가문물국에서는 하홍신선생과 협상하여 말머리 동상을 북경 원명원관리처에 소장하기로 했다.
치밀한 배치를 거쳐 말머리 동상이 장기적으로 전람될 곳은 원명원 정각사로 정했다. 말머리 동상은 전속 전시구역인 건륭시기 문물건출 문수정에 배치되였다.
전염병이 가져온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러측이 힘을 합쳐 정각사에 전시와 안보 보수공사를 실시, 안전과 보호가 전면적으로 향상되여 장기적으로 전시할 필요한 조건을 갖추게 되였다.
말머리 동상의 “친구”들은 어디에?
소머리, 범머리, 원숭이머리, 돼지머리, 쥐머리와 토끼머리는 부동한 방식을 통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2019년 그 동상들은 말머리 동상과 함께 국가문물국에서 주최한 “귀환의 길- 새중국성립 70주년 류실문물귀환성과전시”에 참가했다.
유감스러운 것은 원명원 십이지신 두상중 룡머리, 뱀머리, 양머리, 닭머리, 개머리는 아직 행방물명이다.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여전히 해외에 류실된 많은 중국문물들이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해외에 류실되여 있는 이런 문물들은 우리의 력사를 담고 있으며 우리의 휘황함을 새기며 민족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는 우리는 그들을 찾아 내여 “집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래원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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