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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명의 답안지—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사상 복건 삼명 실천기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0.12.22일 11:09



  이곳은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갖고 있는 홍색 성지이고 생기와 활력을 배태하고 육성하는 개혁의 옥토이며 산 좋고 물 맑고 인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다.

  이곳은 삼명이다-

  새 시기 정신문명 건설은 이곳에서 싹트고 꽃을 피웠으며 삼명의 의료제도 개혁은 전국을 선도하는 전형으로 되였고 림업개혁은 전국적으로 한걸음 앞섰으며 사현의 특색음식은 전국적으로 소문이 높다…

  무엇 때문에 삼명일가?

  습근평 총서기는 복건에서 사업하는 기간에 선후하여 11차나 삼명에 심입하여 조사연구하면서 삼명의 개혁발전을 위해 방향을 제시하고 나아갈 길을 명확히 밝혀주었다. 18차 당대회 이래 총서기는 중요 지시와 회시를 내리는 등 방식으로 예전과 다름없이 삼명의 발전을 주목하고 삼명의 인민들을 잊지 않았다.

  삼명의 인민들은 시종 습근평 총서기의 당부와 기대를 명기하고 일관적으로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사상을 실천했으며 전진의 도로에서 끊임없이 더욱더 우수한 답안지를 엮어가면서 ‘5위1체’의 총체적 배치를 통일적으로 추진하고 ‘네가지 전면’ 전략적 배치를 조화롭게 추진하는 지방모델을 수립했다.

  혁명로근거지가 어떻게 새로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는가? — 끈질긴 노력과 반석같이 튼튼한 신념으로 대를 이어 실천하였고 시종 정확한 방향을 따라 전진하면서 부단히 발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민중산골짜기에 ‘중국 첨단 공업단지’가 들어섰다.

  12월 6일, 혁신의 최전선에 선 중관촌과학기술단지가 복건 혁명로근거지 삼명시에 들어섰고 44개 기업이 계약을 체결하고 단지에 입주했다. 목표생산량에 도달한 후 년간 생산액이 100억원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 ‘구’가 이곳에서 합류했다-

  3선도시 건설의 전개로 말미암아 후에 설치된 삼명시는 지금 기회를 다잡고 고품질 발전으로 매진하고 있다. 오늘날의 삼명은 산업 전환과 고도화에서 새로운 성과를 거두어 11개 분류, 37개 업종의 공업체계를 형성했으며 그래핀, 희토, 생물의약 등 신흥산업이 급속히 발전하였다.

  무이산 남쪽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삼명시는 인구가 300만명도 안되며 민강의 발원지이고 경내에는 산이 80%, 물이 10%, 밭이 10%이며 이전에는 발전토대가 박약했다. 이곳은 지난날 중앙쏘베트구의 핵심지역이였고 중앙홍군장정 출발지의 하나였으며 이곳에서 3만 7000명이 홍군에 참가했다.

  혁명로근거지에 대한 깊은 감정을 품고 습근평 동지는 삼명에 많은 관심을 돌렸다. 1996년 5월부터 2002년 6월까지 그는 삼명의 12개 현(시, 구)를 다 돌아다녔고 62개 향진과 촌을 찾아보았다.

  산간평지에 자리잡은 태녕현 신교향 령하촌에는 습근평 동지의 발자취가 깊숙이 남아있다.

  1999년 7월 7일, 이날은 혹서가 심했다. 당시 복건성당위 부서기였던 습근평 동지는 거의 두시간 넘게 차에 부대끼며 마을을 찾아와 조사연구하고 마을에 계시는 오랜 유격대원 황병무를 찾아뵙고 또 마을사람들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의 령하촌은 인구가 1000여명 되고 밭은 1400여무밖에 안되였으며 온 마을에는 수동전화기가 한대 뿐이였고 마을사람들은 물을 강에 가서 길어다 마셨다.

  “헤여질 때 차에 오르기 전에 그이는 저의 손을 꼭 잡으시면서 꼼꼼하게 신신당부했다.” 당시 촌당지부 서기였던 황건화는 그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습근평 동지는 “촌당지부 서기는 당의 가장 기층에 있는 간부입니다. 나도 촌당지부 서기직를 맡은 적이 있으며 촌의 사업은 수없이 많고 쉽지 않습니다. 촌당지부 서기는 시시각각 촌민들의 리익을 고려해야 하고 새농촌건설을 잘 틀어쥐여야 합니다. 곤난이 있으면 상급 당위를 찾아 지지를 받고 협조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그때의 조사연구가 있은 후 습근평 동지는 전문적으로 혁명로근거지에 대한 조사연구 사업 종합회보회의를 소집하고 ‘세가지를 잊어서는 안된다’면서 혁명로근거지를 잊지 말고 혁명로근거지 건설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며 혁명로근거지 인민을 잊지 말고 그들의 문화, 경제 생활을 부단히 개선해야 하며 ‘로로동자, 로당원, 로전사, 로간부, 로빈고농과 이러한 혁명로간부를 잊지 말고 그들의 나머지 정력을 발휘시키고 그들의 생활을 관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간곡한 관심은 분발전진의 힘으로 되였다.

  “만일 습근평 총서기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혁명로근거지 인민들은 그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꼭 보고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황건화는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쭉 펴면서 “총서기한테 20여년간 마을에는 천지개벽의 변화가 발생했다고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1999년말, 령하촌은 온 마을에 저압선로를 가설하여 안정적인 전기를 사용하였다. 이듬해 5월, 마을에 수도가 들어왔고 또 한해가 지나서 마을에 세멘트길이 생겼다.

  홍군식당을 개업하고 초심공원을 건설하고 홍색관광을 발전시켰다. 오늘날 산 좋고 물 맑은 령하촌은 세계 각지의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전 촌의 인당 년간 소득은 1999년의 1000원으로부터 지난해에는 1만 7000원으로 늘어났고 15가구의 빈곤호가 빈곤모자를 벗었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맥을 이어왔다.

  20여년간 삼명시의 력대 당정 지도부와 삼명인민들은 습근평 동지의 부탁과 기대를 항상 명기하고 홍색유전자를 전승하여 혁명로근거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대를 이어 실천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 이어나갔기에 혁명로근거지의 면모는 나날이 새롭게 변하였다-

  경제총량이 새로운 단계로 뛰여올랐다. 삼명시의 국내총생산은 1996년의 172억 6000만원으로부터 2019년에는 2601억 6000원으로 증가했고 년간 성장률이 10.6%에 달했다. 2019년 인당 GDP는 처음 10만원 선을 돌파해 전국 평균수준을 초과했다.

  초요사회 전면실현에서 결정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농촌주민 소득이 1996년의 2425원으로부터 2019년에는 1만 8312원으로 늘어났고 도시주민 소득은 1996년의 6250원으로부터 3만 7942원으로 늘어났다. 2017년 전 시의 서류작성, 카드설립 빈곤인구는 기본상 빈곤에서 벗어났고 370개 빈곤촌이 전부 빈곤모자를 벗었다.

  지난날의 ‘좁은 길, 깊은 산, 먹을 것 없던’ 곳이 지금은 ‘넓은 길, 무성한 삼림, 먹거리가 풍부한’ 곳으로 변했다.

  올해 12월 8일, 83세에 난 하송도는 당시 ‘지방 3선’도시 삼명건설자 27명과 함께 상해에서 서로 만나 떠난 지 20여년이 넘는 삼명시를 찾아왔다.

  하송도는 “그때 삼명으로 오자면 하루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은 고속철도를 타고 5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때 가장 좋은 아빠트는 5, 6층짜리 건물이였는데 지금은 고층건물이 빼곡이 들어섰다.”고 말했다.

  만일 홍색이 삼명의 영생불멸의 력사적 기억이라면 록색은 삼명이 고품질 발전을 추진한 선명한 표지이다.

  1997년 4월 10일, 습근평 동지는 태녕현 상청계에 심입해 관광개발과 생태보호 사업을 고찰하였다.

  습근평 동지가 대나무떼목을 타고 강물을 따라 내려가는데 잉어 한마리가 물속에서 뛰여오르더니 마침 그의 발 옆에 떨어졌다. 배사공 소가문은 우스개말로 “여러분들이 드실 복이 있네요. 저녁 메뉴가 더 늘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습근평 동지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발에 씌웠던 비닐덧신을 벗어 잉어를 넣고는 손으로 물을 퍼서 비닐주머니에 부어넣었다. 기슭에 오를 때 습근평 동지는 비닐주머니를 들고 잉어를 도로 물에 놓아주면서 일행에게 “반드시 환경을 잘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튿날, 습근평 동지는 락현 고당진 상구촌에 가서 촌민집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뢰차를 마시며 일상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촌당지부 서기 장림순은 그때 상구촌은 세멘트길 하나도 없고 새로 지은 집이 한채도 없었으며 길을 비쳐줄 수 있는 가로등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산간지대 농촌은 도대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

  촌민들이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습근평 동지가 마을 맞은편의 청산을 바라보면서 “청산록수가 더없이 귀중한 보물이기에 산간지대에서는 ‘산수화’를 잘 그려야 하고 산수전을 잘 리용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였다.

  2019년 3월 10일, 전국 ‘두 회의’가 열리던 기간에 습근평 총서기는 복건대표단의 심의에 참가했고 장림순은 전국인대 대표자격으로 발언할 때 지난날의 이야기를 언급했다.

  습근평 총서기는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마신 뢰차였는데 거기에 쌀이 섞였겠죠? 그리고 참깨, 차잎, 귤껍질까지도……” 습근평 총서기는 고향사람들과 뢰차를 만들고 있는 구채립에게 대신 안부를 전해줄 것을 장림순에게 신신당부했다

  “총서기의 안부를 전해받은 고향사람들은 모두 너무 흥분되여 마치 새해를 맞이하듯이 폭죽을 터뜨렸다.” 구채립은 웃으면서 “동남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도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사’라며 특별히 전화를 걸어왔다!”고 말했다.

  얼마 전 구채립은 현성의 문박이란 작은 진에 뢰차관을 개업했는데 장사가 날따라 잘되고 있다. 대학 재학중인 아들도 정식당원으로 되였다. 지금의 생활을 언급하자 그녀는 눈가에 웃음꽃을 피웠다.

  이번 복건대표단 심의에 참가할 때 습근평 총서기는 상구촌의 환경위생 정비, 화장실 개조 등 상황에 대해 자세히 문의했다.

  생태문명 건설을 언급할 때 습근평 총서기는 여전히 의미심장하게 “로혁명근거지와 쏘베트구역의 발전을 가속화하자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제 발전과 생태보호가 서로 조화되고 서로 촉진하는 일을 많이 하여 오염 예방, 퇴치 난관공략전을 잘 치르고 푸른 하늘, 푸른 물, 깨끗한 땅 3대 보위전을 특별히 잘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20여년이 흘렀다. 청산록수가 더없이 귀중한 보물이라는 것이 현지에서 이미 현실로 되였다.

  상구촌은 량호한 생태환경에 의거하여 림업, 네이블오렌지 재배 등 특색산업을 발전시키고 표류, 민박 등 향촌관광 프로젝트를 경영하고 있다. 촌민들은 집문 앞에서 할 일이 있게 되였고 돈을 벌 수 있게 되였으며 상구촌의 인당 순소득은 1997년에 비해 근 10배나 늘었다.

  촌민위원회 사무실 앞의 한그루 장목나무 아래에 촌민들이 공동으로 세운 새로운 촌민규약비석에는 “록수청산과 금산은산을 영원히 리용하여 자손들에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씌여져있다.

  삼명의 거리를 산책하느라면 눈에 가득 안겨오는 것은 록색 뿐이다.

  이 국가삼림도시는 국가 생태 보호와 건설의 전형적인 시범구로서 음이온과 산소함량이 전국 평균수준의 3.4배이고 시구역 공기 우량일수 비례는 98% 이상을 유지하고 있으며 올해 삼림피복률은 80%를 초과할 전망이다. 2015년 이후 류역의 수질도 시종 복건성에서 제1위를 유지했다.

  어떤 발전의 길로 나아가고 어떤 발전을 실현할 것인가? 삼명은 실천 속에서 고품질 발전의 길로 나아갔다.

  삼명시구역에서 차량을 리용하여 약 30킬로메터 달리면 삼원구 암전진 암전촌 옆의 만수암 산속 동굴에는 ‘먼 옛날의 비밀’이 숨겨져있다.

  “북쪽에는 주구점이 있고 남쪽에는 만수암이 있다.” 18만 5000년 전에 고대인류는 이곳에서 번식하면서 살아왔다. 오늘날 만수암은 이미 4A급 풍경구로 되였으며 복건성의 유일한 국가고고학유적지공원이자 전국 중점문화재 보호단위로 되였다.

  하지만 20여년 전에는 문화유산 보호와 광산자원 개발간의 모순이 특별히 첨예했다. 기자는 지금 현장에서 당년에 만수암의 산정이 깎이여나간 흔적을 그대로 찾아볼 수 있었다.

  만수암에는 풍부한 석회암자원이 매장되여있다. 현지의 한 강철공장에서 20세기 70년대부터 산의 형체에서 광석을 채굴했기에 거대한 폭파소리가 시종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산속에 보물이 있다.”던 현지 마을주민들은 채굴로 인한 먼지오염을 견디지 못해 지속적으로 항의하면서 산의 형체와 동굴의 고적을 보호할 것을 호소했다.

  1999년, 현지의 조직하에 고고학자들은 산속에서 돌파적인 발견을 했는데 2000여건의 석제품과 대량의 포유동물화석 그리고 우리 나라 최초의‘실내 장식공사’로 불리우는 약 4만년 전의 인공석 바닦을 발견했다.

  2000년 1월 1일 당시 복건성 대리성장이였던 습근평 동지는 만수암 구석기시대 동굴유적은 우리 성 선사시대 고고학의 첫 중요한 발견이자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중요한 선사시대의 유물이라며 반드시 참답고도 타당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신속히 회시했다.

  습근평 동지는 회시에서 만수암 구석기시대 동굴유적지는 재생불능의 귀중한 문화재 자원으로서 우리에게 속할 뿐만 아니라 자손후대에게도 속하기에 그 어느 개인과 단위도 눈앞의 리익이나 국부적인 리익을 도모하기 위해 전사회와 후대들의 리익을 파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보호된 만수암을 원할지언정 당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석회암을 원치 않는다.

  이 강철공장에서는 비록 이 때문에 공장의 장기적 효익 20억 이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나 즉각 광석채굴과 폭파를 중지했다.

  암전촌의 71세에 나는 촌민 왕원하는 “문화재보호는 마을을 크게 변모시켰고 현재 젊은이들이 농가락을 운영하고 레저산업을 일떠세우고 있으며 앞으로 발전기회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시대의 삼명은 홍색과 록색이 서로 어울려 빛나고 공업과 문명이 동시에 발전하며 기제가 령활하고 산업이 우수하며 대중들이 부유하고 생태의 아름다움이 서로 보완되고 있다.

  삼명시당위 서기 림흥록은 “삼명은 로혁명근거지로서 사실상 뚜렷한 발전우세가 없었으며 우리도 줄곧 ‘중등생’으로 자처했으나 정확한 방향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기에 보다 우수한 성적을 끊임없이 이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은 도시에서 어떻게 큰일을 해낼수 있겠는가?— 개혁을 발전의 근본적인 동력으로 삼고 민생복지 증진을 발전의 근본적인 목적으로 삼으며 난관을 공략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변화를 도모하고 혁신하며 새로운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해야

  사현의 특색음식 시장은 지난날에는 아주 작았고 종사자들도 대부분 ‘촌민’ 출신이였으며 ‘소규모 작업장, 부부가게’가 기본이였으며 ‘1원이면 가게에 들어갈 수 있고 2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엄청난 명색이였다.

  12월 8일, 1년에 한번씩 열리는 중국 (사현)특색음식관광문화축제가 개막하여 큰 거리와 작은 골목에 인파로 북적거렸고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작은 도시 사현의 낮과 밤을 뜨겁게 달구었다.

  사현의 특색음식 시장은 오늘날 크게 발전하여 점포가 세계 62개 나라와 지역에 널리 분포되였고 총수자가 8만 8000개에 달했으며 종업자가 30만명을 초과하여 년간 영업액은 500억원을 돌파했다.

  무엇 때문에 산간지대 사현에서 온 특색음식이 온 세상에 널리 보급되여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을가? 그 답안은 혀끝에만 있는 것이 아니였다.

  1999년 3월 4일, 습근평 동지는 사현에서 고찰할 때 “사현 특색음식업의 성공은 위치를 정확히 확정하고 낮은 소비의 공백을 메우고 박리다매로 한갈래 길을 개척한 데 있었으며 현재에는 응당 참답게 총화 짓고 연구와 양성훈련을 강화하여 특색음식업의 확장공간을 깊이 발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0년 8월 8일, 습근평 동지는 재차 사현을 찾아 하무진에서 좌담할 때 “향후 경제발전의 버팀목을 정확히 찾아야 하며 특히는 사현의 특색음식업을 버팀목으로 하는 제3산업을 강화하여 그로 하여금 새로운 경제성장점으로 부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색음식업도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 20여년간 현지에서는 부탁을 명기하고 계속 사현의 특색음식업을 대산업으로 틀어쥐면서 ‘확장’조치를 충분히 강구하고 ‘지탱하는’ 토대를 튼튼히 하여 특색음식업과 현역경제 도약식 발전의 실현을 추동했다.

  30대 초반의 안발휘는 사현 특색음식 산업단지의 한 조미료기업 책임자이다. 이 산업단지에는 중앙주방 모식을 통해 사현 특색음식점에 원재료 배합을 제공하고 있는 72개 기업이 집중되여있다.

  사현의 특색음식점은 날따라 늘어나면서 배합봉사 시장도 확장되고 있다. 그는 “지난해에 나는 상표를 등록하고 현대화 공장을 건설하여 30여종의 제품을 개발하였는데 현재 판로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일찌기 외지의 사현 음식점에서 주방장으로 지냈던 안발휘는 귀향하여 창업하는 길을 선택했다.

  농민가정을 벗어나서 ‘국경’을 넘기까지 오늘날 사현의 특색음식점들은 바야흐로 ‘홀로서기’식의 조방형 경영과 작별하면서 브랜드화, 체인화, 집약화, 정보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개 업종이 번창하면 많은 업종도 번성해진다.

  특색음식업의 ‘확장’과 ‘류출’ 효과에 힘입어 사현 농민 인당 년간소득은 1997년의 2805원으로부터 2019년의 2만 528원으로 늘어났다.

  사현의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한마디 말은 바로 “편육을 벽돌로 삼고 국수를 철근으로 삼아 사현의 고층건물을 지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사현 현성에는 이미 고층건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백성들의 일을 큰일로 삼아 처리하고 백성들의 기대를 실제에 시달하는것은 삼명의 일련의 개혁발전 실천의 기본적인 론리이다.

  의료제도 개혁은 하나의 세계적인 난제이다.

  이처럼 복잡하고도 민감한 중대 개혁이 어찌하여 이곳에서 문제가 해결되여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나아가서는 세계보건기구에서까지 인기를 누리는 ‘삼명의료제도개혁’의 전형적인 경험으로 되였을가?

  삼명은 공업에 의해 흥기되였고 퇴직인원 비중이 비교적 높아 ‘부유해지기 전에 먼저 늙어가는’ 현상이 뚜렷했다. 삼명은 한때 의료보험의 ‘낭떠러지’에 밀리면서 기금 결손이 2억여원에 달하여 재정에서 보장할 능력마저 없었다. 이와 동시에 의료자원이 총체적으로 불충분하고 도시와 농촌이 불균형적이였으며 대중들이 ‘병 보이기 어렵고 치료비가 비싼’ 문제가 특히 두드러졌다.

  고통이 가라앉은 뒤에 이전의 고통을 회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구나 벽을 마중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12년에 삼명이라는 이 작은 도시는 자각적으로 새시대 개혁과 난관돌파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결연히 의료제도개혁의 ‘거센 물결과 험난한 여울목’을 향해 용감하게 나아갔다. 공립병원의 ‘약품으로 의사를 먹여살리던 상황’을 바로잡고 의료보험 관리에서 여러명 또는 여러 부문에서 관리한다 해도 결국에는 사람마다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누구도 잘 관리하지 못하던 국면을 타파하고 의료제도 개혁 관리체제를 끊임없이 바로잡으면서 삼명에서는 의료제도 개혁 난제를 타파하기 위해 효과적인 탐색을 진행했다.

  백성들의 ‘구명돈’과 관계되는 의료보험 령역에서 삼명은 전국적으로 제일먼저 원래의 24개 의료보험기금 담당기구를 통합하여 삼명시의료보장기금관리쎈터를 구성했다. 2016년에 또 솔선적으로 약품조달과 의료봉사 가격 제정 등 직능을 새로 구성된 의료보험국에 통일시켰다.

  삼명시의료보험국 국장 서지란은 “약물구매, 약물 사용과 비용을 지불하는 여러 단계에서 분산관리에서 집중관리에로 바뀌였다면서 간단하게 말하면 위생건강부문과 병원에서 주문하고 의료보험부문에서 구매와 ‘계산서’를 책임지며 공동으로 백성들을 위해 의료보험 기금의 ‘돈주머니’를 잘 관리했다.”고 말했다.

  “의료제도 개혁은 백성들의 진정한 복음이다.” 삼명시민 진서방은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으로 앓고 있었으며 지난해 한해 동안에 도합 9668원의 의료비용을 지출했는데 개인지불 비률이 10%밖에 되지 않았다. 의료제도 개혁의 덕분에 진서방이 장기간 복용하고 있는 아카보스는 의료제도 개혁 전의 정가가 100원을 초과하던 것이 지금은 9원 21전밖에 안된다.

  의료제도 개혁은 인민의 생명건강과 생활의 행복에 관계되고 중대한 리익 조정과 체제의 타파에 관계된다. 습근평 총서기는 장기간 의료제도 개혁의 진전을 관심하고 주목하고있다.

  2016년 2월 23일, 습근평 총서기는 중앙개혁전면심화지도소조 제21차 회의에서 전문적으로 삼명 의료제도 개혁 경험을 청취하고 긍정해주었다.

  2017년 3월 24일, 습근평 총서기는 중앙개혁전면심화지도소조 제33차 회의에서 삼명 의료제도 개혁 경험을 높이 긍정해주고 “삼명의 의료제도 개혁의 방향은 정확하고 효과가 뚜렷하기에 널리 보급하는 데 주의를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9년 7월 24일, 습근평 총서기는 중앙개혁전면심화위원회 제9차 회의에서 삼명의 의료제도 개혁 경험을 총화하고 널리 보급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2019년 8월, 이 산간지대의 작은 도시는 떠들썩해지면서 한차례 전국 규모의 의료제도 개혁 추진 현장회의가 이곳에서 개최되여 공유, 교류, 연구 토론하면서 새로운 한차례 의료제도개혁의 륜곽이 더욱 뚜렷해졌다.

  ‘점화’로부터 료원에 이르기까지 삼명 의료제도 개혁은 중국 의료위생체계개혁 발전사에서 큰 획을 그렸다.

  2012년 이래 삼명에서는 선후하여 200여가지 의료제도 개혁 정책을 제정, 실시하고 ‘의료보험체제 개혁, 위생체제 개혁과 약품류통체제 개혁의 련동’, ‘두장의 령수증 제도’ 및 ‘처방관리방법’과 의료보험국 설립 등 조치를 제정하고 실시하여 이미 선후하여 국가 의료제도 개혁의 최상위 방안으로 승격되였다.

  삼명시장인 여홍승은 “인민을 중심으로 하는 발전사상을 실천하고 과감히 결심을 내리고 난관을 박차고 나아간다면 지난날에 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던 많은 큰일들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발전으로 제목을 내고 개혁으로 글을 지으며 백성들이 실제혜택을 보게 했다.

  삼명 영안시 홍전촌에서는 1998년에 ‘산을 농민들에게 분배하는’ 개혁혁신으로 말미암아 중국 림업개혁 ‘소강촌’으로 불리웠고 삼명이 전국범위에서 솔선적으로 ‘산의 권리를 정하고 나무의 뿌리를 정하며 인심을 안정시키는’ 집체산림 소유권제도 개혁을 완수하도록 추동했다.

  개혁개방 이후 아주 오래동안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청산이였으나 삼명에 발전우세를 갖다주지 못했고 낡은 림업정책이 경직화되고 산림재산권이 분명하지 않아 백성들이 근처의 유익한 조건을 충분히 리용하지 못하여 백성들은 이처럼 많은 청산을 “문을 열지 않은 록색은행”이라고 불렀다. 1997년 5월, 습근평 동지는 사현에서 조사연구할 때 “사현은 림업대현으로서 림업생태 효익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또 응당 림업경제 효익을 추구하여 진정으로 림업을 산업으로 꾸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1998년 2월 25일, 습근평 동지는 녕화현에서 조사연구할 때 또 “림업건설을 잘 틀어쥐고 림업산업과 림업생태 산업을 통일적으로 잘 틀어쥐여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온통 황페한 산들일 뿐이고 빈주먹만 남을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잠든 뭇산을 깨우기’로 불리우는 이번의 삼명 산림개혁은 “청산이 금산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도리를 남김없이 설명했다. 삼명은 처음으로 림권 담보대출, ‘복림대출’ 등 금융제품을 출범하고 ‘산림표제도’를 개혁하여 전 성 록색금융개혁의 시험구로 되고 전국집체림업종합개혁시험시범구를 만들어 “림업의 흥기로 생태가 아름다워지고” “채벌하지 않아도 유족해질 수 있다.”는 꿈을 이뤘다.

  2019년에 삼명시의 림업 총생산액은 1146억원을 실현하고 삼림생태계통의 년간 종합효익은 1983억 4000만원에 달해 복건성의 앞장에 섰다. 삼명시림업국의 류소언 국장은 삼명시 산림개혁의 성공은 산간지대 발전의 실제에 립각하여 인민대중들의 리익을 수호하고 개혁 속에서 동력과 리윤을 창출하고 삼림자원을 진정한 ‘저수지, 금고와 식량 창고’로 만든 덕분이였다.

  후발주자가 어떻게 추월을 실현했는가? — 발전대세를 확실히 파악하고 기회를 다잡아 새로운 국면을 개척하여 고품질 발전의 앞장에서 힘차게 나아가면서 새로운 공간을 부단히 개척했다

  삼강이 있은 후에 삼명이 있었으며 삼강은 삼명에 대하여 중대한 의의가 있다.

  산간지대에 위치해있고 원료와 시장 모두를 외부에 의존하는 데다 물류 원가가 높고 규모우세가 약하여 삼강은 20세기 90년대 후반기에 생산경영 곤경에 빠졌다.

  삼강그룹 리사장 려립장은 2000년에 기업이 곤경에서 벗어나기 가장 어려운 시기에 습근평 동지가 두번이나 기업을 찾아 조사연구를 했던 정경을 잊지 못하고 있다.

  2000년 1월 3일, 습근평 동지는 조사연구할 때 “현대 기업 제도와 개혁방향을 수립하는 것을 견지하고 개혁, 개편, 개조와 관리를 강화하는 것을 결부시켜 기업경영기제를 전환하고 결손을 만회하고 리윤증가 강도를 높여 곤경에서 벗어나는 최종목표를 실현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그해 8월 10일, 습근평 동지는 재차 삼강에 심입하여 참새를 해부하는 방식으로 공장 구역과 작업장에서 꼬박 하루 동안 조사연구를 진행하면서 보고 묻고 사고했다.

  당시 36살밖에 안되였던 려립장은 삼강 봉재공장 공장장이였다. 그는 그날 열린 좌담회를 이렇게 회억했다. 습근평 동지는 “삼강의 개혁과 발전은 매우 좋은 경험을 쌓았고 전형적인 시범의의가 있으며 전 성에 널리 보급할 수 있다.”고 긍정한 동시에 삼강의 과학기술 혁신, 인재유치, 산업구조 조정 및 지속가능발전, 생태환경 건설, 당건설과 사상정치 건설 등 사업에 대하여 구체적인 요구를 제기했다.

  습근평 동지의 말씀은 발전방향을 제시하였고 삼강사람들의 추진력을 불러일으켰다.

  삼강은 세분화 방법으로 관리를 강력한 생산력으로 전환시켰다. 혁신을 선도로 삼강은 6대 기술혁신 체계를 구축하고 다부문, 다전업 혁신팀을 구성하였으며 과학기술 난관공략을 실시했다.

  20년간 삼강의 강철 생산량은 2000년의 117만톤에서 2019년의 1240만톤으로 늘어났으며 자산총액은 30억 4000만원에서 466억 6000만원으로 늘어났고 리윤총액, 총자산 기여률, 톤당 강철 리윤과 세금액은 전국 강철업종에서 앞자리를 차지했다.

  올해 9월 1일, 지능로보트 회전기계팔이 제강 용광로에서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삼강의 지능화 전환이 정식으로 시작되였다.

  려립장은 “우리는 지금 기업의 혁신주체 지위를 강화하는 유리한 시기를 틀어쥐고 공업로보트, 기계시각기술, 지능화 장비와 공업인터넷을 활용하여 강철 제조에서 강철 지능제조에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당의 19기 5차 전원회의에서는 우리 나라 현대화 건설의 전반 국면에서 혁신의 핵심적 지위를 견지할 것을 제기했다.

  “미래를 지향하여 삼명은 기술 개조와 혁신을 두드러지게 하고 전통산업의 록색화, 첨단화, 지능화를 다그치는 한편 새로운 동력에너지를 적극 육성하여 신흥산업의 특색화, 집군화, 사슬화를 추동할 것이다.” 삼명시공업정보화국 국장 정문리는 상기와 같이 말했다.

  ‘총량을 늘이고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강철 및 장비 제조, 신소재, 문화관광과 건강양생, 특색 현대농업 등 4대 주도산업을 중점적으로 구축하면서 삼명은 미래를 지향하는 발전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삼명에 있어서 공업은 중요한 기둥이고 농업과 농촌의 발전은 중점중의 중점이다.

  1996년 5월, 습근평 동지는 처음으로 삼명을 찾아 조사연구를 할 때 “농업과 농촌 사업은 삼명사업의 중점이다.”고 지적함과 아울러 삼명의 실제와 련계시켜 농업 기초를 강화하고 농촌경제를 발전시키며 농민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데 대한 요구를 제기했다.

  대전현 광평진 원사촌 오룡산에는 700무의 푸른 차엽밭이 산비탈을 따라 펼쳐져있는데 적잖은 관광객들이 산책로를 따라 그 속을 거닐고 있다.

  2000년 8월 9일, 습근평 동지가 이곳에 와서 차엽밭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차산에 이르러 푸른 차엽밭을 굽어보며 습근평 동지는 대전은 차산업을 주요수단으로 삼아야 하며 차산업은 생태, 록색, 유기 방향으로 발전하고 심층가공으로 발전하며 차잎의 질을 높여 현지 브랜드를 형성해야 한다고 특별히 당부했다.

  지금 대전현에는 도합 10만무의 차밭과 2000여개의 차잎가공공장이 있으며 년간 생산액은 10억원을 초과했다. 원사촌의 차잎은 년간 생산액이 5500만원을 초과하여 촌민들의 인당 수입이 2만 2000원으로 늘어나도록 이끌었다.

  “차잎은 로혁명근거지 인민들이 빈곤에서 벗어나 초요사회에로 나아가는 금잎으로 변했다.” 당년에 습근평 동지를 수행했던 지부서기 장내류가 웃으면서 말했다.

  다년간 삼명은 시정에 립각하고 현지실정에 알맞게 록색생태자원을 충분히 리용하여 생태화 리념으로 특색 현대농업의 발전을 추동하였으며 량식, 록색림업, 정밀원예 등 특색 농업산업과 벼재배, 식용균 등 20여개의 특색농산물 체인을 형성하였다.

  인터넷의 광범한 응용으로 삼명의 농업사슬도 끊임없이 밖으로 확장되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농이희입니다.” 이는 ‘농이희’가 제작한 근 700개의 영상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사말이다. 33만 7000명의 팬을 거느린 그는 올해 농가를 도와 근 160여만원의 농산물을 판매했다.

  ‘농이희’의 진짜 이름은 료성화이고 녕화현 회토진 화갱촌 사람이다. 2년 반 전, 영상제품 기능 특장을 갖춘 료성화는 도시에서의 사업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민들을 도와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현재 료성화는 재배전문합작사를 설립하고 전자상거래회사도 설립하였다. 그는 “지금은 인터넷, 교통이 원활하고 환경도 좋아 미래의 농촌은 필연코 눈부시게 아름다운 큰 무대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농촌의 전망은 무한하다. 전국 교잡벼종자 최대 생산도시를 건설하고 특색농업이 융합된 모델을 개척하며 농업 과학기술 성과 응용의 고효능화를 실현하는 등 향촌진흥을 추진하는 길에서 삼명의 뒤심은 두둑하다.

  위대한 사업을 성취하려면 위대한 정신적 력량이 수요된다.

  삼명은 문명도시다. 20세기 80년대, 군중들이 반영한 ‘더럽고 지저분한’ 문제의 해결로부터 착수하여 삼명은 ‘만족스러운 삼명’ 활동을 전개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한 도시 문명 브랜드를 형성했다.

  2015년 2월 28일, 습근평 총서기는 제4회 전국 문명도시, 문명촌진, 문명단위와 미성년자 사상도덕 건설 사업 선진대표들을 회견할 때 “새시대 정신문명 건설은 삼명으로부터 시작되였다.”고 지적했다.

  습근평 총서기는 이와 동시에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려면 물질적 재부가 극히 풍부해야 할뿐더러 정신적 재부도 극히 풍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붉은 땅은 지금 새로운 힘을 모으고 있다.

  녕화현 홍군장정 출발 집결지 광장에는 ‘울려퍼지는 군호소리’라는 대형 조각물이 있는데 한 홍군전사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공격의 돌격나팔을 부는 모습이 전시되여있다.

  래년에는 새로운 두갈래 철도가 이곳에 새로 개통되여 녕화에 새로운 발전공간을 개척해줄 전망이다.

  삼명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지혜로우며 젊은 세대들은 지식을 탐구하는데 목말라있다.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배출되면서 녕화제1중학교는 현지에서 전설의 학교로 불리운다. 교정에는 올해 갓 대학에 입학한 졸업생들의 메시지를 담은 포스터 ‘2021년, 기다릴게요!’가 높이 걸려있다.——

  새로운 한해가 다가오면서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새로운 로정이 곧 시작될 것이다.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사상의 인도하에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삼명,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중국은 반드시 새로운 휘황찬란한 미래를 계속 엮어가게 될 것이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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