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1세인 김만혁은 길림성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에 살고 있으며 이 곳에서 약 10년간의 촌당지부 서기를 맡고 있다.
왕년의 한겨울 같으면 “래년에는 마을에 무엇을 심으면 돈을 벌 수 있을가”하는 근심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올해는 “색등축제가 다가왔다. 관광객들이 많아지면 어디에서 숙박하게 할가”하는 것으로 골머리를 앓게 되였다.
방천촌은 중·로·조 3국 접경에 자리하고 지난날 한때 두만강물의 침범으로 훈춘과의 교통이 차단되여 현지인들은 “령지(飞地)”라고 불렀다.
그후 도로가 통했지만 변강에 위치한 원인으로 촌민들은 수입이 단일했고 대부분은 모두 외지로 돈벌이를 갔다.
“2000년도인가로 기억된다. 마을 사람들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 걱정거리가 되여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을에는 토지가 많지 않고 또한 고기잡이, 소 사육도 연구해야 했다. 그때는 배불리 먹고 살기에는 괜찮았지만 부유해지자면 어려움이 많았다”
김만혁씨가 생각지 못한 것은, 향촌관광이 점차 흥기하면서 거의 잊혀져 가기만 하던 변경 마을에 호기를 제공해준 것이다.
2009년 7월 방천풍경구가 “길림팔경”에 성공적으로 입선돼 한번에 국내외 관광객들이 관심하는 초점지역으로 됐다. 마을에서는 할일이 없이 놀던 주민들을 동원해 “가정려관”을 꾸려 추가 수입이 있게 됐다.
“그러나 마을에서 자체로 관광을 운영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조몰락거리는 규모 밖에 안되였다.”
김만혁씨는 또 다시 걱정에만 쌓이게 됐다. 그가 끊임없이 탐구 노력한 결과, 2017년 “회사+농가” 개발운영 모식의 관광업이 방천촌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관광회사는 이 곳에 개발, 운영관리 등 작업을 벌리고 농가들의 유휴방을 조선족특색이 있는 가옥으로 개조해 관광객을 맞이했다.
현재 방천촌은 면모가 일신되고 청기와에 하얀 벽, 고풍스러움으로 가득찬 조선족전통 건축과 옛 돌절구, 미장벼짚으로 된 담장은 서로 돋보이게 조화됐고 연하의 가게서 파는 순대, 찰떡 등 조선족 특색의 미식, 음악광장에서는 언제나 민속적인 노래와 춤이 공연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촌민들은 갈수록 향촌관광 발전으로 부유의 길로 나아갔다. “나의 마누라도 그냥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조선족 복식을 빌리는 것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김만혁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일부 여러 해 외지로 나간 촌민들도 잇달아 귀향해 창업을 시작했다. 56세의 리두현이 그중 한사람이다. 현재 그는 숙박경영 외 특색고기구이점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촌민들은 겨울에 추위를 피해 집에만 들여 박혀 있는 관광객들에게 색등축제를 제공해 그들의 관광심리를 자극했다.
훈춘방천국제관광지주유한회사 항목 경리 류회강은 “모닥불 모임, 불꽃놀이, 동화인형 순회관광 등 활동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미 표를 예매한 상황”이라고 했다.
김만혁씨는 지난날 농사만 짓고 물고기만 잡아서 생활해오던 자기가 관광관리를 배울 줄은 뜻밖이였다. 그는 “반드시 시대의 발전 변화에 뒤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근심 걱정이 있어도 기쁘다”고 말했다.
두만강신문 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