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0만유로 기부금 지원
샹봉쉬르리뇽 마을.
오스트리아인 에릭 슈밤은 2차세계대전 당시인 1943년에 부모와 함께 프랑스 중남부의 산간에 위치한 작은 마을 ‘샹봉쉬르리뇽’에 도착했다. 나치의 만행으로 당시 프랑스는 유태인을 축출해 수용소로 보내던 상황이였다.
슈밤의 아버지는 유태계라는 리유로 나치의 표적이 됐다. 슈밤의 가족들은 샹봉쉬르리뇽에 숨었고 마을주민들은 나치순찰대가 마을을 찾을 때마다 슈밤의 가족들을 중학교 건물에 숨겨줬다.
AFP통신 등 매체들에 따르면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슈밤은 지난해 12월 90세로 별세하면서 이 마을에 약 200만유로(약 인민페 1561만원)의 기부금을 남겼다. 슈밤은 고령과 질환으로 죽음이 가까워오자 지난해 11월 유언장에 “샹봉쉬르리뇽 주민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청소년 교육과 장학금에 써달라.”고 적었다. 슈밤은 프랑스가 나치로부터 해방된 후에도 이 마을에서 1950년까지 살았다.
샹봉쉬르리뇽 주민들은 당시 슈밤 뿐만 아니라 다른 유태인들의 목숨도 구해줬다. 마을의 목사였던 앙드레 트로메의 주도로 마을사람들이 똘똘 뭉쳐 3000여명의 유태인을 숨겨준 것이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는 마을의 전통 아래 샹봉쉬르리뇽 주민들은 1789년-1799년 프랑스대혁명, 1930년대 에스빠냐내전 당시에도 박해를 받던 사제나 에스빠냐 공화주의자들이 마을을 찾으면 이들을 도왔다.
유태인 학살을 추모하는 이스라엘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쎈터는 1990년 샹봉쉬르리뇽 주민들에게 ‘렬방의 의인’이라는 명예칭호를 헌정하기도 했다. 이들은 최근에는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을 도왔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