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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기와 마을 사람들의 빈곤해탈 이야기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1.02.25일 23:18
세인들의 주목을 끄는 하나의 기적.

8년 후 근 1억을 헤아리는 농촌 빈곤인구가 전부 빈곤에서 벗어났다.

세계의 근 5분의 1의 인구를 점하는 대국이 절대적인 빈곤에서 철저히 벗어나게 되였다는 것은 인류 빈곤감소 력사상 종래로 있어본 적이 없다. 이 크나큰 사건은 극히 평범하지 않은 2020년의 중국에서 발생했다.

강대한 대국으로 놓고 볼 때 치국 국정 운영은 천만갈래로 복잡하며 다사가 동반되는 가운데 당의 초심, 국가의 따뜻함이 전달된다. 산 아래에서 성도(省都)까지 직통하는 길이 열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흙벽돌집을 떠나게 되였으며 집앞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였다. 사람들은 사소한 변화 속에서 중국을 읽고 중국을 알게 되였다.



2016년 2월 2일, 습근평 총서기는 강서성 정강산시 모평향 신산촌 촌민들과 함께 츠바(糍粑)를 치고 있다. / 신화사  

정(情怀):

나는 인민의 공복입니다

2015년 10월 16일의 북경. 인민대회당에는 귀한 손님들로 자리를 메웠는데 각국의 귀빈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습근평 주석은 2015 빈곤감소 및 발전 정상포럼에서 기조 연설을 발표했다.

총서기는 지나온 려정을 흥분에 넘쳐 회고하며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40여년래 나는 선후 중국의 현, 시, 성, 중앙에서 사업하면서 시종 빈곤부축을 나의 사업의 중요한 내용으로 삼았으며 내가 들인 정력이 가장 많았습니다.”

이는 오래동안 가장 편벽한 농촌에 심입해 가장 빈곤한 군중들의 신변에 일상적으로 나타난 대국의 수령이다. 총서기께서 전날에는 풍운제회(风云际会)의 외교 장소, 중대한 관두에서 국제적인 의제를 이끌어가다가도 이튿날에는 벌써 간소한 행차로 고생을 마다하고 빈곤촌으로 떠난 것이 몇번이였던가.

수년 사이 총서기의 발자국은 14개 집중 련접 극빈 지역에 분포되여있었다.

륙반 산간지대, 진파 산간지대, 무릉 산간지대, 우몽 산간지대, 전계금(滇桂黔) 석막화(石漠化) 지역, 전서(滇西) 변경 산간지대, 대흥안령 남록 산간지대, 연산—태항산 산간지대, 려량 산간지대, 대별산 산간지대, 라소 산간지대 등 지역의 련접 특곤 지역과 벌써부터 특수 정책을 실행한 서장, 장족 집거 4개 성의 주, 현, 신강 남강의 카쉬, 호탄, 키지르수끼르기즈 3개 자치주…

령을 넘고 눈바람을 헤치고 땡볕을 받으며 줄줄이 늘어선 그의 발자국은 중국지도 사방에 총총 분포되여 빈곤에서 초요에로 나아가는 진척을 재여보며 당심, 민심의 공동 주파 고동을 셀레이게 했다.

섭씨 령하 30도의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그는 변경에서, 간고한 산업 전환을 실천하고 있는 림구에서, 대량산 부락에서 산길 따라 한집 한집 둘러보기도 했다. 진파 산록의 생태 이민촌 한 촌민의 집에서 그는 한칸한칸 돌아보며 온돌방이 따뜻한지를 만져보기도 했다. 태항산 깊은 산골에서 그는 한 빈곤호의 빈곤해탈 장부를 계산해보고 륙반산 산간지대의 낡고 낮은 흙벽돌 집에 들어가 물을 한바가지 떠다 마시면서 수질을 점검했다. 무릉 산간지대의 산은 첩첩하고 짙푸르다. 한 로인은 총서기의 손을 꼭 잡고 당의 정책이 좋다고 연신 말한다…

빈곤부축의 1선에 몸담고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은 습근평동지의 다년래의 일관한 사업방법이다. 복건성 수녕현 하당향은 가장 편벽하고 가기 힘든 곳이다. 일찍 복건 녕덕에서 사업할 때 지구급 서기로 그곳에 간 분은 그가 처음이다.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지 향당위 서기가 낫을 들고 길을 내고 습근평동지가 대나무로 풀을 꺾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지금까지도 하당향의 사람들은 습서기가 차물 때가 가득한 더러운 컵을 들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늘 되뇌이고 있다. 녕덕지위에서 근무한 적이 한 동지는 그 때의 일을 이렇게 회억했다.“1년중 반년은 농촌에 내려간 그는 매번 세심하게 집안을 둘러봤다. 솥뚜껑을 얼마나 열어봤는지 모르며 밥상 커버를 얼마나 열어봤는지도 모르며 이불도 얼마나 헤쳐봤는지 모른다. ”

솥뚜껑과 이불 속에는 먹고 입는 군중들의 진실함이 담겨있다. 습근평동지는 솥에 담겨있는 가난함을 알고 있고 가난의 아픔을 감수해봤다.

그 당시 북경에서 섬서성 북부 량가하에 갈 때 그는 16세도 안되였다. 당시 보리고개를 넘기가 어려워 농민들이 외출 동냥을 하던 궁핍한 시절을 7년이나 보냈다. 그도 배고픈 적이 있었고 딱 한번 만 입쌀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 맛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와 마을 사람들은 고생하며 일했다. 우물을 파고 제방을 쌓고 제전을 만들고 메탄가스 탱크를 건설했는데 바로 더 좋은 생활을 보내려고 일했으며‘1년 4계절 옥수수가루라도 먹을 수 있게'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마저 당년에는 하늘에 올라가기보다 더 어려웠다. ”

중국 농촌의 빈곤상황은 그의 가슴속 깊이 새겨져있다.“다년래 나는 줄곧 빈곤부축에 몸 담그어왔습니다. 사실 내가 바로 가난한 집에서 나왔습니다.”농촌으로부터 현, 시, 성에까지, 성에서 중앙에 가기까지 습근평동지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많은 마을 사람들을 시종 걱정하고 있었다. 그 때 그 사람, 그 때 그 일들을 가슴 속에 담고 있었다.

2015년 습근평 총서기는 운남을 고찰하는 바쁜 행차에 특별히 시간을 내여 노강주 공산(怒江州 贡山)두룽족누족자치현의 촌민들을 만나보았다. 이들과 만나면서 습근평은 “편지 래왕이 있었으니 우리는 서먹한 사이가 아니지요.”라고 친절하게 말했다. 이에 앞서 촌민들은 총서기에게 편지를 보내 1년중 반년은 큰눈 때문에 산에 갇혀있던 두룽강향은 이제 곧 턴넬이 관통되면서 개변될 것이라고 했다. 오래동안 걱정했던 일이라 그는 이번 행차에 이들을 만나 볼 생각을 했던 것이다.

2016년에 소집한 전국 ‘량회‘ 는 습근평 총서기께서 호남에 가 조사연구한 지 근 3년 세월이 흘러갔을 때다. 심의에 참가할 때 그는 상서(湘西)투쟈족묘족자치주 대표들을 만났는데 18동촌 로총각들의‘독신해탈’상황을 물어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지난해에 몇명이 안해를 맞아들였나요?". 습근평 총서기는 텔레비죤에서 방송하는 뉴스를 통해 대량산 깊은 산골의 아투레얼촌(阿土列尔村)을 본 적이 있다. 그 곳은 문만 열면 벼랑이고 집 뒤는 절벽이였다. 선조들은 막대기와 덩굴로 만든‘덩굴 사다리'로 절벽을 지나다녔다. 2017년 전국 ‘량회‘ 에서 총서기는 이‘덩굴사다리촌'을 물어보고 근황을 료해한 후 조금이나마‘시름을 놓았다.’2018년초 그는 차로 두시간 넘게 울퉁불퉁 산길을 달려 대량산 복지에 이르렀다.

한가지 세절에서도 습근평 총서기의 마음 속에 마을사람들을 얼마나 깊이 새기고 있고 얼마나 명심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었다. 2015년 음력설에 즈음하여 그는 자기 돈으로 구입한 설음식을 들고 섬북 황토지에 갔다. 그가 청년시절에 량가하를 떠나서 근 40년만이다.“쉬와, 헤이즈, 테이숴…” 총서기는 하나하나 마을 사람들의 애칭을 불렀다.

예전의 섬북 마을 사람들의 안목중의 그는 ‘고생을 마다하고 부지런한 훌륭한 후배'였고 정정을 떠난 몇년 후에도 정정사람들은 여전히 그를‘우리의 로서기'라고 친절하게 불렀다. 복건에서 사업할 때 당지 사람들은 그를‘백성성장'이라고 불렀으며 절강에서 사업하게 된 후 촌민들은 그를‘당에서 파견한 훌륭한 간부'라고 불렀다.

“누구십니까?” 2013년 11월, 호남 18동촌의 석파전 로인이 이렇게 물어보자 “나는 인민의 공복입니다.”라고 대답한 그다.

“대지를 밟으며 인민들 속에 있으면 매우 편안한 감이 들고 든든합니다.” 몇년동안 인민군중들의 의식(衣食)과 따뜻함은 총서기의 기쁨과 걱정을 자아냈다. “그들의 생활에 곤난이 있으면 나의 마음은 아픕니다. 그들의 생활이 조금만 좋아져도 나는 기쁩니다. ”

근일 2012년말에 올린 연설 전문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의 걱정이 생동감 있게 종이에 적혀있다. 당시는 18차 당대회가 페막해서 얼마 안되였을 때였는데 습근평 총서기가 하북성 부평현에 가 곤난 군중들을 위문할 때였다.

여러해 동안 가난했던 부평이다. 길이 울퉁불퉁하고 가옥이 낡고 무너지듯 했다. 그의 표정은 줄곧 굳어져있었다. 로혁명근거지의 일부 촌민들의 생활이 비교적 곤난함을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 고찰을 마치고 그는 소박한 연설을 했다. 습근평 총서기는 민족부흥의 길을 다그쳐 추진하는 큰일에 대해 명확히 지적했다. “우리는 반드시 갖은 방법을 다해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 하루 빨리 촌민들이 좋은 세월 보내도록 해야 합니다.”

천지가 아무리 크다 해도 우선은 백성들이다. 그 때 새로운 단계의 빈곤해탈 공략전의 서막을 열어서부터 지금까지 8년이라는 눈깜짝할 사이에 중국의 가난했던 지역이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

근 1억명 빈곤인구가 빈곤 모자를 벗었고 몇천년동안 중화민족을 괴롭혔던 빈곤문제가 력사적인 해결을 가져왔다.

빈곤해탈은 력사적인 거센 물결 소리를 냈고 백성을 위하는 백년 대당(大党)의 본색이 담겨있었다.

신념:

우리의 장엄한 승낙, 한번 승낙은 천금과 같다 

비범한 일을 완수한 후에는 필연적인 비범한 정신이 있기 마련이고 비범한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2020년 가을, 습근평 총서기는 특별히 한 시골마을의 기념관을 찾았는데 이름은‘반쪽 이불의 포근함'이라는 전문 진렬관이였다. 의미심장하게 빈곤해탈 공략전 총화, 평가 회보전야에 고찰한 것이다. 빈곤해탈의 초심은 바로 당의 홍색 려정중에 묻혀있었다.

1934년말, 3명 녀홍군들이 호남 여성현 사주촌에 갔는데 요족 로인 서해수 집에 묵게 되였다. 떠날 무렵 이들은 이불 하나를 반쪽으로 잘라 로인에게 남겨두고 떠났다. 공산당이란 무엇인가? 공산당은 바로 자기에게 이불 하나 있을 때 반쪽은 백성들에게 잘라주는 것이다.

인민군중들도 같은 친분으로 당에 보답했다. 로혁명로근거지에서 부른 가요는 아래와 같다.

한알 남은 쌀은 군량으로 하고/한자 남은 천으로 군복 만들고/하나 남은 아들은 싸움터에 보낸다… 습근평 총서기의 마음 속에 백성들의 생활을 걱정하는 것은 당년의‘이불 하나를 같이 사용'하던 감정과 다를 바 없다.

장정의 길을 다시 걸어가노라니 감개무량하고 동경하노라. 2019년 5월, 습근평 총서기께서 강서 우도현을 고찰할 때 중앙 홍군 장정출발기념관에서 그는 한폭의 ‘초신지도’앞에 오래동안 서있었다.

그것은 80컬레의 초신으로 만든 중국지도였다. 중국공산당은 가난한 사람들의 당이며 인민군대는 맨발부대였다. 8만여명의 홍군전사들은 우도하반에 집결하고 설산을 넘고 초지를 건느는 만리장정의 길에 올랐다. 홍군들이 맨발로 출정하게 할 수 없다며 로혁명근거지의 백성들은 집집마다 초신을 만들어 전사들에게 보냈다.

총서기는 “지금 나라가 발전하고 인민들의 생활이 개선되였습니다. 우리는 물 마실 때 우물 판 사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고 신신당부했다.

우도현 담두촌 촌민 손관발은 홍군 렬사의 후대이다. 그의 손자와 손녀를 보면서 습근평 총서기는 미래를 내다보았다.“앞으로 이 이애들이 어른이 될 때 우리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실현될 것이다.”

이는 당시 8만여명 홍군들이 바라던 중국이다. 초심을 잊지 말아야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갈 수 있다. 18차 당대회 페막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다음과 같이 우렁차게 말했다.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인민들의 동경이 바로 우리가 분투해야 할 목적이다.”

오래동안 가난에 쪼들리던 인민들이 초요사회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초요사회의 전략적 구상을 제기한 개혁개방초기부터 지금까지 겨우 30, 40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력사의 바통을 받아쥔 그의 어깨에 놓인 책임은 가볍지는 않았다.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한다고 선포해놓고 그 때에 가서도 많은 군중들이 빈곤선에서 생활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19차 당대회에서 습근평 총서기의 이 말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빈곤해탈 공략전에서 단호히 승리를 거두어야 합니다.” 그는 성에서 온 동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당원간부들은 모두 아래와 같은 의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한집, 한가구, 한사람이라도 기본생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면 우리는 떳떳할 수 없습니다.”

가난함이 사회주의가 아니다. 백년전 시국이 암담하고 어수선할 때 탄생한 중국공산당은 백성들을 이끌고 좋은 세월을 보내기로 뜻을 세웠다. 공산당은 말하면 말한대로 한다. 초요사회는 세세대대로 꾸준하게 추구해온 꿈이다. 습근평 총서기는 한번 또한번 날자를 계산하며 초요사회에 들어서는 초읽기의 똑똑 소리를 한시도 늦추지 않았다.

2019년 11월에 있은 제2회 중국 국제수입박람회에서 습근평 주석은 회의에 참석한 외국 지도자들과 함께 전시관을 돌아보았다. 걸어가다가 그들의 발걸음이 늦추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스크린을 향했다. 그것은 빈곤해탈 공략 진척의 시계였다. 습근평 주석은 간단하고 단호하게 “우리의 빈곤해탈은 시간, 분초에 따라 계산합니다.”고 해석했다.

2020년 3월, 돌연 발생한 코로나19의 검은 구름이 여전히 도시를 짓누를 때이다. 빈곤해탈 공략의 결전결승 좌담회가 바로 이 때에 열렸다. 전 중국 빈곤해탈 제1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은 스크린을 통해 습근평 총서기가 긴박감을 느끼고 있음을 절감했다.“코로나19가 발생한 후 효과적으로 역정을 통제한 후 지방에 가 소집하는 것도 고려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를 넉넉하게 잡아봐도 10개월도 안되고 날자로 계산하면 300일이 남았습니다. 기한내로 빈곤해탈 공략 목표를 실현하는 데는 원래부터 가장 어려운 문제만 남았는데 역정은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반드시 하루빨리 동원하고 재 포치해야 합니다.”

1990년에 습근평은 〈락수물이 대돌을 뚫기에서 받은 계시〉라는 글을 썼다. 2006년, 습근평동지는 〈락착을 틀어쥐는 것이 못을 박는 것과 같다〉라는 글을 썼다. 단정된 일에 대해서 충분한 인내심을 가져야 하고 엄격한 규정내에서는 꼭 승리를 거둘 수 있다. 결심을 내리고 마음만 먹었으면 끝까지 해야 하며 마지막까지‘못'을 박아야 한다.

이런 작풍에 대해 습근평 총서기는 생동하게 말했다. “락착을 틀어쥐는 것은 벽에다 못을 박는 것과 같습니다. 정확하게 박지 못하면 못이 구부러듭니다. 정확하게 박았다면 한두번 박으면 못이 빠지지 않습니다. 3, 4번씩 박아서 얼마 안지나 여전히 흔들리면 련이어 7, 8번 박아야 이 못은 단단하게 박혀집니다.”

습근평 총서기는 빈곤해탈에 있어서 ‘락수물이 대돌을 뚫는’근성과‘못'과도 같은 확고부동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전국 ‘량회’에서 각 성 대표단을 돌아볼 때 “나는 내가 가본 곳마다에서 올라오는 반영에 대해 중시합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여년전에 습근평동지는 이미 이런 끈기로 빈곤에 빠진 복건의 어부 가족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적이 있다.

어부들은 평생 바다에서 떠돌아다니며 한가족이 배에서 살아가는데 오그라든 발을‘굽은 발굽'이라고 차별시해서 부른다. 습근평동지는 그 때 어부 가족에게 해안에다 집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답방을 해보니 어떤 사람들은 머무르지 못하고 다시 배로 돌아간 것을 발견했다.

우여곡절 끝에 습근평동지는 더 바짝 틀어쥐고 하포현 염전향으로 달려갔다. 습근평동지는 키가 크고 선실이 작다보니 그는 허리를 굽혀 선실로 들어갔다.

늙은 어부는 이 장면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고충을 털어놓았다.“언덕에 올라가면 집밖에 없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뭘 먹구 살겠습니까?”

어부들이 해안에 가서 사는 것을 전반 문제로 삼고 해결하고 정착시키며 즐겁게 일해도록 해야 한다. 조사연구 끝에 습근평동지가 여러 절차를 잘 틀어쥐고 확실한 방법을 내놓자 어부들은 마침내 웃으며 뭍에 올랐다.

몇년 후, 중앙에서 근무하게 되였는데 전국 ‘량회’ 기간에 현지에서 온 전국인대 대표를 만나게 되였다. 어부들이 두리방에 살고 어업양식을 아주 번창하게 한다는 소식을 들은 습근평동지는 시름을 놓고 “매우 좋습니다! 관건은 치부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몇년간, 습근평 총서기는 타지방 이민 이주를 관심했는데 비슷한 맥락에 따라 이사할 수 있고 안정적이던 데로부터 치부할 수 있도록 점차적으로 추진했다. 반드시 달성한다는 자신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책략도 있었다.

여전히 복건에서 근무할 때 일인데 삼명에 가서 조사연구를 할 때 습근평동지는 빈곤퇴치의 력사적인 발전에 깊은 영향을 주는‘진짜로 빈곤을 부축하고 진짜 빈곤호를 부축한다’는 심각한 개념을 제기하였다. 18차 당대회 후에 북경에서 부평 락타만촌까지 차로 오는 3시간 반동안을 그는 “가치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가난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당은 진지함을 제일 추구한다. 전면적인 초요의 길에서 한사람도 빠질 수 없으며 성패는‘정밀'에 달렸다. 오래동안 마을의 일은 흔히 대충 짐작으로 진행되였다. 습근평 총서기는 그중의 리해득실을 잘 알고 있었다. 2013년 말에 습근평은 호남성 상서 십팔동촌에서‘정밀 빈곤 부축'의 방략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수천년 이래의 농촌관리에 현대관리 사로를 도입하였다. 즉 누구를 부축하고 누가 부축하고 어떻게 부축하고 어떻게 해탈하는가 하는 전반 과정은 마치 꽃을 수놓는 과정과 같은 정밀한 품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습근평 총서기는 2016년 청해성 해동시호조투족자치현에 가서 조사연구를 했다. 반언촌 촌민 려유금 집의 상우에는 《빈곤구제수첩》과 《빈곤호정밀관리수첩》이 놓여있었다. 두권의 책자는 이미 보풀이 일었다. 총서기가 한페지씩 넘기며 한가지씩 보며 물으면서 한탄했다.“이 수첩을 많이 썼네요. 벌써 낡았군요!”

점에서 면까지, 기수에서 진도까지 뒤돌아보고 동태적으로 관리했다. 이것은 진귀한 공화국 빈곤해탈 문서이다. 이것은 력사상 전례가 없는 력사적인 공사이다. 이것은 중국공산당이 인민에게 한 엄숙한 약속으로서‘일약천금이다’.

물을 거슬러 배를 젓듯이 전진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습근평 총서기는 빈곤해탈 위한 시간표를 지켜보며 빈곤해탈 진척을 장악했다

2015년 11월에 중앙빈곤구제개발업무회의에서 총서기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고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아직도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2019년 4월에 중경을 시찰할 때 총서기께서는 깊은 산속의 마을을 본 후에 “이런 마을을 보니 내 마음이 든든합니다”라고 말했다. “여러 면에서 볼 때 우리는 임무를 완수하는 것에 대해 매우 자신이 있습니다!”

고찰도중의 모든 세절을 통해 빈곤구제의 눈금을 표기하고 일의 단점을 찾아냈다. 총서기는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운 옷을 입었는데 지금은 젊은이들이 류행을 위해 특별히 입은 것외에는 기운 옷을 입는 사람이 매우 적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감숙 고랑현 황화탄 생태이민구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줄줄이 늘어선 대와에 흰벽의 새집들이 넓고 밝은 것을 보았다. 그 후에 열린 성당위와 성정부 업무보고회에서 총서기는 이 부분의 견문을 이야기했다.

“어제 내가 황화탄에 있는 백성들의 집에 가보았데 집이 다 장식되였고 텔레비죤은 심지어 원호형이였습니다. 나에게도 그런 텔레비죤이 없습니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총서기는 이어서 말했다. “내가 로부부에게 또 무슨 요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촌민은 눈물을 흘리면서 ‘무슨 요구가 더 있겠습니까? 생각한 것도, 생각지 못했던 것도 다 가졌는데요, 천번이고 만번이고 당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민심을 얻었습니다. 백성들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 ‘배’는 인민이라는 ‘바다’가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습니다. 영원히 민심을 잃지 말고 영원히 백성을 위해 일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방략:

력량을 집중해 큰일을 하다

“중국공산당은 어떻게 14억 인구를 인솔하여 빈곤에서 해탈하였는가?” 이는 외국 정계의 중요 인물들이 늘쌍 회담 석상에서 주동적으로 물어오는 화제다. 습근평 총서기는 흥미진지하게 이렇게 말한다. 인간 기적은 바로 전당, 전국의 힘을 단합하고 사회주의제도의 력량을 집중하여 큰일을 해내는 자신감과 침착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2020년 4월, 총서기는 진파 산간지대의 섬서성 평리현에 내려가 조사연구를 하였다. 봄비가 잔잔히 내리는 데 그는 계단을 따라 차밭에 들어섰다. 그의 옆으로 섬서성당위 서기, 안강시당위 서기, 평리현당위 서기 그리고 장가촌당지부 서기가 나란히 섰다.

‘5명 서기가 함께 있는’사진, 이는 중국 빈곤감소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을 보여준다. 이 과업을 총서기가 바로 성, 시, 현, 촌의 서기들을 몸소 이끌고 함께 짊어지고 있었다. 이는 상하 협력의 힘을 보여주었고 전국 총동원의 힘을 보여주었다.

2015년 11월, 외계로부터‘사상 최고급 규격'의 회의로 불리우는 중앙빈곤부축개발사업회의가 북경에서 소집되였는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전부 출석했다. 회의에서 22개 중서부의 성(자치구, 직할시) 주요 책임자들이 빈곤해탈 난관공략 책임서에 정중하게 서명하고 당중앙에‘군령장'을 내놓았다. 습근평 총서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군령장은 함부로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말하면 곧 말한대로 해야 합니다.”

바로 회의가 소집된 그 달 중공중앙, 국무원은 문건을 발부하고 확정했다. “빈곤해탈 난관공략 기간에 빈곤현의 현급 지도자들은 안정을 유지해야 하며 표현이 우수하고 조건에 부합되면 현지에서 승진이 가능하다.”

안휘성 금채의 현당위 서기는 이로 리임했다가 다시‘복귀'했다. 이 실례는 여러 면에서 당중앙의 결심이 더욱 투철하고 확실함을 알려주었다. 총서기는 이렇게 요구했다.“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빈곤현의 서기와 현장은 그곳에서 마음을 붙이고 있어야 하며 끝까지 책임을 떠메고 일해야 합니다.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곳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가 맡은 일에서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런 요구가 없으면 누구나 얼마 안돼서 자리를 털고 떠나가버릴 것이며 그러면 차린 ‘연회’ 나 ‘좌석’도 빈털털이로 되고 말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나라가 제일 크다(国者之大)고 하는가?

빈곤해탈 공략을 더욱 광활하고 더욱 장원한 좌표에 놓고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의 력사적 행정에 놓으며 960여만 평방키로메터의 중국대지에 놓고 넓게 생각하고 큰 장부를 계산해야 한다.

빈곤해탈을 위한 이민과 동서부가 합작한 빈곤해탈은 큰 공간을 넘나드는 일이다. 2021년의 새해 벽두, 《산과 바다의 정(山海情)》이라는 빈곤해탈 주제로 찍은 드라마가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어려운 생활을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젊은이들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력사의 재현을 통해 그 시절의 빈곤과 고난, 산과 바다를 뛰여넘어 힘을 합쳐가며 노력한 빈곤해탈은 다시 한번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이는 습근평 총서기가 몸소 겪은 한단락의 시간이다. 중앙의 동서부 빈곤해탈 협동결책 포치에 따라 일찍 1996년 5월, 복건과 녕하는 3,000키로메터의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천리혼약'을 맺었다. 당시 복건성당위 부서기로 있은 습근평동지는 빈곤해탈지도소조 조장을 담임하고 복건과 녕하 협동 빈곤부축 사업을 친히 조직하고 실시하였다.

1997년, 습근평동지는 서해고에 대한 6일간의 고찰을 했다. 유엔에서 인정한‘지구상에서 인류가 거주하기에 제일 불적절한 지역'에서 빈곤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한집에 들어서니 무엇이 서발 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는 것인지를 진정으로 알 것 같았으며 유일한‘재산'이란 대들보에 걸어놓은 한줌의 발채가 전부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난한 고장에 가보기도 하고 묵어도 보았지만 지난 세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개혁개방을 실행한 지 수년이 잘되였는 데도 여전히 그렇게 가난하고 힘들게 생활하는 고장이 있는 것을 보고 저는 마음 속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이미 동남부의 성에서 여러해 사업하고 있었으며 동서부 발전의 현저한 차이는 그로 하여금 깊은 사색에 잠기도록 하였다.

서해고는 륙반산과 매우 가까왔고 홍군이 장정할 때 넘었던 제일 마지막으로 높은 산이 륙반산이였다. 산 앞에 바로 그가 익숙히 알고 있는 섬북이 였다. 어떻게 하면 중국 동부와 서부를 효과적으로 움직여 지역을 뛰여넘는 협동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겠는가? 이는 력사를 다시 쓰는 한편의 거대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서길이민들이 옥천영 일대로 집단 이주할 데 관한 조사연구 시 습근평동지는 민녕촌 건설에 대한 구상을 내놓고 위치와 마을 이름까지 정해주었다. 당시 그 곳은 말그대로 황량한 땅이였다. 처음 그곳에 도착한 이민의 회억에 따르면 큰 모래바람이 한바탕 불어치면 가슴에 안고 있는 솥과 온몸으로 내리 눌러놓은 이부자리를 내놓고 다 날아가버렸다. 그러나 그는 미래가 보였다. 1997년 7월, ‘민녕촌'은 모래톱에서 첫 삽을 떴다.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지금의 민녕촌은 비록 메마른 모래톱이지만 장래에는 꼭 금사탄으로 변할 것입니다.”

2016년 7월, 습근평 총서기는 재차 민녕진에 갔을 때 특별히 진을 한바퀴 돌도록 하며 상세하게 둘러봤다.

5년내 근 1,000만명의 격지 빈곤부축 이주를 완수했는데 이는 중국의 빈곤부축 사상 종래로 있은 적이 없으며 세계적으로도 없었던 일이다.

총서기는 ‘지각'과 ‘조퇴'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서 좀 ‘지각’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좀 더 힘을 기울이면 됩니다. 그러나 ‘조퇴'를 강조할 필요는 없습니다.‘조퇴'는 자칫하면 무턱대고 남과 비교하는 풍조를 일으켜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없게 되며 허위적으로 성과를 꾸밀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반드시 이런 현상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는 2020년에 전면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기로 했으니 전력을 다해 분투해야 하고 전속으로 달려야 하며 급행군해야만이 목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절대 눈앞의 성공과 리익에서 급급해서는 안됩니다. 타인의 공로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

총서기는 ‘높이는’문제와 ‘낮추는’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해당 부, 위 동지들이 위험주택 개조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습근평 총서기는 이런 두가지 경향에 대해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한가지 경향은 한걸음에 하늘에 닿는 식으로 함부로 표준을 높이는 것이다.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은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것이기에 부유, 초요 수준과는 다르다. 다른 한가지 경향은 표준을 낮추어 뒤떨어질세라 앞당겨 빈곤에서 탈퇴하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지방에서는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빈곤부축 가옥건축 공사를 다시 타사에 도급주어 제때에 공사를 완수하지 못하고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게 해 입주 1,2년만에 천정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표준을 낮추는 문제에 대해 반드시 엄숙하게 다스리고 꼭 시정해주어야 한다.

귀주 필절은 서부 빈곤지역의 전형이였다. 이번에 빈곤해탈 난관공략이 바야흐로 결속될 무렵에 습근평 총서기는 필절에 가봤다. 소수민족 동포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촌광장에서 그는 다시 한번 향촌진흥을 언급하고 농업농촌 현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농업농촌 현대화는 수천만 촌민들의 마음속의‘금멜대'이다. 2020년 5월, 빈곤해탈 난관공략 결승전의 관건적인 시기에 들어설 때 습근평 총서기는 당시 그가 섬북 농촌에서 단련받을 때 촌민들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당시 나는 배를 곯으며 로백성들한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인가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몇가지 소원을 털어놓았습니다.”

“‘배불리 먹던'데로부터‘순 조밥을 먹고’당년에는 바랄 수도 없던‘밀가루, 이밥을 먹고 싶으면 먹고 거기에다 늘 고기도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나는 마을 사람들을 보고 더 나아가 어떤 경계까지 생각할 수 있는가고 했더니 그들은 앞으로 일할 때 ‘금멜대’를 메겠다고 했습니다!”

“‘금멜대’,나는 그걸 농업 현대화로 리해했습니다.”

총서기의 안목중에는 빈곤해탈은 다음의 더 엄청난 구상과 이어놓았는데 바로 향촌진흥이다. 이는 ‘3농'사업 중심의 력사적이 전환이다. 농업은 한나라의 근본이다. 총서기는 보다 멀리 내다보았다.

아무리 멀리 가고 더 찬란한 미래에까지 이르러서도 지나온 걸어온 길을 잊을 수 없고 도달할 목적지를 잊을 수 없다.

당중앙 19기 5차 전원회의 문건에는‘공동부유'에 대한 질술에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한 문건초안조 성원에 의하면 습근평 총서기가 문건 작성 작업을 지도할 때 인민을 중심으로 한 전체 인민들의 공동 부유를 도모하는 데 있어서 모호해서는 안된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시내물이 모여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많은 빈곤부축 경로를 보다 큰 사상리론 체계중에 놓는다면 더 선명한 자리매김이 될 수 있으며 더 큰 시대적 가치를 빛낼 것이다.

구조:

비범한 시대, 훌륭한 인민

“사람마다 훌륭하다!” 2020년을 돌이켜 보고 2021년을 맞는 신년축사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마음속의 말을 이렇게 표달했다.“나는 위대한 조국과 인민이 있으므로 하여 자랑스럽고 자강불식의 민족정신으로 하여 자부감을 느낍니다!”

‘훌륭하다'는 말 뒤에는 무수한 시대적 얼굴이 있다.

새로운 성곤철도(成昆铁路) 건설 공사장에서 20명 청년 당원들이 총서기에게 편지 한통 보냈다. 그들이 책임진 임무는 전 구간에서 길이가 가장 길고 난이도가 가장 높은 소상령 터널 건설이다. 50, 60년전, 이들중의 적지 않은 아버지나 할아아버지들이 옛성곤철도 건설의 난관을 뚫었는데 마찬가지로 난이도가 가장 높은 사무라(沙木拉)터널 건설로서 세계 철도 건설 사상 기적을 창조했었다. 새로 건설하는 철도는 연선 인민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고 치부에로 달리는 데 새로운 통로를 개척하는 것으로 된다. 세세대대로 이어온 정열은 습근평 총서기를 감개무량하게 했다.

내몽골 적봉시 소묘자촌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촌당지부 서기 조회걸은 20여년전에 이 마을에 시집온 색시로부터 빈곤해탈, 치부에로 달리는 선두주자로 되였다. 촌에서는 옥수수를 심던 데로부터 홍당무우를 심다가 지금은 중약재를 재배하고 있다. 재배농들이 스스로 모색하던 데로부터‘당지부+합작사+산업 당원+농가'의 길에 들어섰다. 조회걸은 전국 인대대표로 총서기와 함께 국가 대사를 의논할 날이 있을 줄을 생각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는 발언할 때 저도 몰래 눈물을 흘렸다. 그가 살고 있는 마을은‘중국의 수천만 농촌과 마찬가지로’이 시대에서 활기차게 발전하고 있다.

팽예는 귀주 필절시 금서현 화옥촌 토박이 묘족 자제이다. 오몽산 중심지라 첩첩 산이 가로 막고 계곡이 둘러쌓여 있다. 어릴 적 팽예는 맨손으로 돌벽을 오르내리며 학교를 다녔다. 대학을 다닐 때도 사회의 지원을 받아 학업을 마치게 되였다. 연구생 공부를 마치고 의연히 귀향창업해 비곤부축 작업장의 황랍염색 기술원으로 되였다. 습근평 총서기가 화옥촌에 방문왔을 때 마침 그녀는 빈곤부축 작업장에서 일손을 다그치고 있었다. 그녀는 촌민들을 이끌어 전통복장을 대외에 팔아 빈곤에서 벗어나고 치부하려 했다. 심심산골을 떠났다가 되돌아와 심심산골을 개변하고 있다. 한 산촌의 운명이 바뀌여지고 있다.

⋯⋯

새 시대는 분투자의 시대이다. 습근평 총서기는 시종 군중들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빈곤해탈 난관공략의 심원한 영향은 인민군중들의 강력한 내생적 동력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며 앞으로 중국이 안정적으로 미래를 지향하는 튼튼한 토대라고 믿고 있다. 습근평 총서기는 중국이 높이 날고 빨리 달리려면 14억 인민의 강력한 력량을 집결시키고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여러번 말했다. 빈곤해탈 난관공략은 현시대 중국의 가장 광범한 사회적 동원을 형성하고 각 부문 각계가 참여하는 강한 합력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빈곤해탈은 운명을 개척하는 일련의 분투자들을 만들어냈다.

녕하 오충시 홍사보구 홍덕촌에 있는 류극서 일가는 8년전 서해고‘가난한 산골’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다. 바람이 불면 ‘한그릇의 밥 절반이 모래'인 황량한 개펄에서 이주민들은 아쩔 수 없이 황하의 물을 끌어들여 오아시스를 만들었다. 습근평 총서기가 이 집에 왔을 때 류씨는 총서기에게 8년전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경치인 그의 소, 그의 밭, 그의 집, 그의 꽃들을 구경시켰다.

2020년 7월, 습근평 총서기는 길림성 사평시 리수현 팔리묘촌 합작사 마당에서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에 땀을 흘리며 고생하던 농호들은 오늘날 한데 뭉쳐 창업가로 되였다. 그들은 “1년 리익 배당금은 8,000여원이고 설, 명절이 되면 복리혜택을 받습니다.”,“호미를 잡던 손은 농기계를 잡게 되였으며 고정 로임도 받습니다.”,“과거 일부 빈곤 군중들은‘뒤짐 지고 봐달라'고 하던 데로부터 이제는 팔을 걷고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빈곤해탈은 과감히 꿈을 쫓는 실천가들을 감화시켰다.

2018년 2월, 습근평 총서기는 사천 량산이족자치주 소각현 삼하촌을 찾았다. 마을의 락고유격은 총서기에게 이런 말을 했다. “두가지 꿈을 다 실현했는데 하나는 대학꿈인데 운명을 바꾸게 되고 다른 하나는 치부 꿈인데 빈곤에서 벗어나게 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락고유격은 중경의 모 기업에서 근무하게 되였다. 집에 갔다 올 때마다 랍육(腊肉)을 동료들에게 가져다 주었는데 맛있다고 한다. 그는 귀향창업하기로 결심하고 근 100명의 촌민들을 조직하여 랍육장사를 했다.

2016년 전국 량회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청해 대표단의 심의에 참가 할 때 ‘국수 한 그릇'에 대해 총서기의 흥미를 자아내고 상세하게 물어봤다. 지금 청해에 2만 8,000개의 라면점이 있으며 18만명이 라면으로 전국 각지에 널려 산업망을 형성했다. “총서기의 물음이 청해의 라면을 부상시켰다.”

빈곤해탈은 대중들과 물과 물고기와 같은 감정을 쌓게 되였다.

‘빈곤해탈의 길'을 ‘장정의 길'로 삼고 있는 황문수, 절벽에 천로를 뚫은 모상림, 신앙을 바위에 심은 주영개, 산간지대에서 중국을 감동시킨 장계매…

2019년 신년사에서 습근평 총서기는 격동된 심정으로 이들을 제기했다. “나는 항상 빈곤해탈의 1선에서 분투하는 동지들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280여만명의 촌 주재 간부, 제1서기들은 사업에 몰입해 많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꼭 건강해야 합니다. ”

19차 당대회에서 귀주성 대표단의 토론 시 총서기는 륙반수시 대만진 해알촌당지부 제1서기 양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다. 촌 주재 제1서기가 8년동안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빈곤에서 벗어나 치부의 길로 나아가면서 그는 매 가구의 집안 생활, 경제 정황에 대해 손금보듯 꿰뚫고 있었다.

총서기는 “인재는 제1선에서 경력을 련마해야 하며 빈곤해탈 난관공략의 주요 전장에서 간부를 단련시키고 인재를 련마하는 큰 용광로, 큰 학교로 되여야 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일선의 빈곤해탈 간부들을 아껴야 하고 능력 있는 자가 지위가 있고 고생한 자가 중시를 받으며 땀 흘리고 피 흘려 희생한 자들을 길이 전해져야 합니다.”고 강조했다.

빈곤해탈은 더욱 많은 미래를 창조하려는 선행자들을 불러오고 있다.

한 사람의 성장은 미래에 대한 가장 좋은 투자이다. 습근평 총서기는 시종 빈곤가정의 아이들을 념려하고 있으며 교육을 통해 가난이 대대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할 것을 바라고 있다. ‘두가지를 걱정하지 않고 세가지를 보장’하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데 관한 좌담회에서 그는 교육수치에 대해 아주 익숙하였다. “전국적으로 60여만명 되는 의무교육 단계의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2019년 4월, 습근평 총서기는 중경 석주투쟈족자치현 중익향소학교에서 한 농촌교사를 만났다. 그 교사는 해당 소학교에서 공부하여 대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모교로 돌아와 교편을 잡은 지 17년째 된다. 총서기는 “이렇게 시골에 뿌리내려 교수하는 농촌 교사들이 우리 나라와 고향을 위해 좋은 인재를 키워내는 모습을 더 많이 보았으면 합니다. 당신들이 하는 일은 매우 보람이 있는 겁니다.” 라고 말했다.

호남 상녕시 탑산요족향중심소학교 부교장 반구인은 교육 일선에서 근 30년간 근무하였다. 그는 2020년 9월 장사 기층대표 좌담회에서 총서기는 “교사의 수량이 부족하고 구조성 편제가 부족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훌륭한 교원을 남길 수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에 총서기는 “우리는 의무교육 보급화 문제를 기본상 해결했지만 교육자원의 불균형 문제가 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14차 5개년 전망계획 시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고 대답했다.

사람보다 더 높은 산은 없고 발보다 더 긴 길은 없다. 가난은 개변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다. 일찍 복건성에서 일할 때 습근평 동지는 약한 새도 먼저 날 수 있고 가난해도 먼저 부유해 질 수 있듯이 낡은 틀에서 벗어나 문제를 보려면 우선 머리속의 ‘빈곤'을 ‘벗어던져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8년 3월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한 습근평 총서기의“인민은 력사의 창조자이며 인민은 진정한 영웅입니다.”라는 말은 오래동안 메아리쳤다.

새 중국 창립전야, 중공중앙이 서백파를 떠날 무렵, 모택동동지는 “오늘은 과거 보러 상경하는 날입니다.”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과거를 본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온갖 풍파를 다 겪은 강대한 대국 앞에서 품은 확고하고 정확한 태도였다.

2013년 7월, 습근평 총서기는 서백파를 찾았다. 기념관에서 그는 오래동안 생각에 잠겼다.

“60여년이 지났다. 우리는 거대한 진보를 가져왔다. 중국인민들은 드디어 일어서고 부유해졌다. 하지만 우리가 맞서고 있는 도전과 문제들은 여전히 심각하고 복잡하다. 과거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은 몇세대를 이어가며 분투하고 천년을 종관한 력사적 답안지를 써낸 것이다.

당창건 100 년이 되는 이 때, 바로 빈곤해탈 난관공략 답안지를 바칠 시기이다. 시간적 우연일치는 맥락을 계승하는 사명담당을 내포하고 있다.

누구를 위하고 누구에게 의지하는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답안지에는 억만 인민이 결집한 웅장한 힘이 있고 중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래일이 있다.

습근평 총서기는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은 종점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 새로운 분투의 기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노력을 통해 가시덤불을 헤치고 힘차게 나아갔습니다. 우리는 계속 분투하고 용감히 전진하여 더욱 찬란한 휘황을 창조해야 합니다!”

/ 인민일보

https://article.xuexi.cn/articles/index.html?art_id=11559195428165484815&item_id=11559195428165484815&study_style_id=feeds_default&pid=&ptype=-1&source=share&share_to=wx_sin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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