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정치 > 정치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창당 100주년] 홍군을 팔로군으로 명칭을 바꾼 이야기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3.02일 10:00
  “북평과 천진이 위태롭다! 화북이 위태롭다! 중화민족이 위태롭다! 오직 전민족이 항전에 떨쳐나서야만이 우리는 출로가 있다!” “ 전중국 동포, 정부와 군대는 단결하여 민족통일전선의 장성을 만들어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자!”

  1937년 7월 8일, 로구교사변이 발생한 다음날 중공중앙은 전국인민들에게 전문을 발표하여 이같이 호소했다.



  1937년 7월 7일, 일제는 로고교사변을 발동했으며 로구교를 지키던 제29군 사병들은 일본침략군의 침입에 저항하고 나섰다.

  일본참모본부는 두달간의 시간을 들여 북평일대에 주둔한 국민당 29군을 소탕하고 3달 동안에 국민당군을 소멸하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의 전면 침략은 중화민족으로 하여금 준엄한 위기에 처하게 했다. 항일민족통일전선의 적극적인 창도자이자 조직자인 중국공산당은 민족 존망 위기의 시각에 다시금 국공합작을 적극 추동하고 나섰다.

  1937년 7월 8일, 모택동, 주덕, 팽덕회 등 홍군지도자들은 장개석에게 전보를 보내 홍군이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적들과 싸워 국토를 보위하는 목적에 도달”하려는 뜻을 전달했다. 이어서 엽검영을 서안에 파견해 중공중앙을 대표하여 7월 14일 남경 국민정부에 “장개석의 지휘하에 적들과 싸우며 홍군 주력부대가 수시로 항일에 출동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7월 15일, 중공대표 주인래 등은 을 을 장개석에게 넘겼다. 선언은 전면적인 항전을 신속히 발동하고 민주정치를 실시하며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할 데 관한 등 3가지 기본요구를 제출하였으며 중국공산당이 국공합작을 실현하고 무장으로 국민당정권을 뒤엎는 것을 중지한다는 등 4가지 보증을 재차 천명했다.



  

  7월 17일, 주은래, 진방헌, 림백거는 장개석, 소력자, 장충과 로산에서 계속 담판했다. 장개석은 “싸움을 벌인다면 남북을 가리지 말고 로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항전의 책임이 있으며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다.”라고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장개석은 아직도 일본과 평화적 협정의 환상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있었으며 로구교사변을 ‘지방사건’의 범위내에만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8월 13일, 일본침략군은 전쟁의 불길을 상해에까지 지폈으며 국민당 통치의 중심까지 위협하였다. 장개석은 그제서야 급해서 홍군을 전선에로 출동시키려고 하였으며 그런 원인 때문에 국공담판에서 단결합작의 의도를 더욱 많이 표현하기 시작하고 홍군부대에 국민당을 파견하지 않는 것을 동의했다.

  쌍방은 섬서와 감숙지구의 홍군 주력부대를 국민혁명군 제8로군으로 개편하고 국민당이 통치하는 부분적 도시에 팔로군판사처를 세우며 《신화일보》를 출판하는 등 협정을 달성했다.

  8월 25일, 중공중앙혁명군사위원회는 명령을 발부해 홍군을 국민혁명군 제8로군으로 명칭을 고치며 홍군전선총지휘부를 제8로군총지휘부로 고치고 주덕을 총지휘, 팽덕회를 부총지휘, 엽검영을 참모장, 좌권을 부참모장, 임필시를 정치부 주임, 등소평을 정치부 부주임으로 임명했다. 부대의 개편도 시작되였는데 홍군 1, 2, 4 방면군은 각각 팔로군 115사, 120사와 129사로 명칭을 고쳤다.

  9월, 국민정부군사위원회는 팔로군 번호를 제18집단군으로 고치고 주덕이 총사령으로, 팽덕회가 부총사령으로 되였다. 그러나 그후에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계속 팔로군이라고 불렀다.

  팔로군 제129사 항일결사대회에서 많은 동지들은 왜서 국민혁명군의 번호를 사용해야 하고 국민혁명군 복장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리해하지 못했다.

  류백승 사장은 홍군 지휘관과 병사들의 이런 심정에 대해 몹시 리해하면서 “동지들, 우리가 무슨 복장을 입고 모자를 쓰든간에 모두 인민을 위해서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한 이때 인민의 근본리익을 위해서 민족의 근본리익을 위해서 잠시 붉은 오성모자와 작별합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해남도의 홍군유격대를 제외한 중국공산당 남방 8개 성의 홍군유격대도 국민혁명군 신편 제4군(신사군)으로 명칭을 고쳤다.

  9월 22일, 국민당 중앙통신사는 을 발표하였으며 다음날 장개석은 사실상 중국공산당의 합법적 지위를 승인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렇게 국공 량당이 다시 합작을 하고 중국항일민족통일전선이 정식으로 형성되게 되였다.

  /길림신문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작곡가겸 작사가 유재환(34) 인기리에 종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린 작곡가겸 작사가 유재환(34)이 결혼을 발표하면서 예비신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앞서 유재환은 자신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개저씨들 나 하나 매장시키려고" 민희진, 울분의 기자회견 어땠길래

"개저씨들 나 하나 매장시키려고" 민희진, 울분의 기자회견 어땠길래

사진=나남뉴스 걸그룹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어 하이브를 향해 거침없는 막말을 쏟아내 화제가 되고 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공식 석상임에도 민희진은 '개저씨', '시XXX', 'X신', '양아치', ‘지X’ 등 비속어를 쓰면서 현 상황에 대한

"前연인 에세이 출판 금지해달라"…배우 백윤식 2심도 일부 승소

"前연인 에세이 출판 금지해달라"…배우 백윤식 2심도 일부 승소

"前연인 에세이 출판 금지해달라"…배우 백윤식 2심도 일부 승소[연합뉴스] 배우 백윤식 씨가 전 연인이 펴낸 에세이 출판을 금지해 달라고 소송을 내 1·2심 모두 일부 승소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9부(성지용 백숙종 유동균 부장판사)는 25일 백씨

“제게 너무 큰 위로” 작곡가 유재환 결혼, 예비신부 누구?

“제게 너무 큰 위로” 작곡가 유재환 결혼, 예비신부 누구?

작곡가겸 작사가 유재환(34) 인기리에 종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린 작곡가겸 작사가 유재환(34)이 결혼을 발표하면서 예비신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앞서 유재환은 자신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