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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100주년] 홍군 장정은 어떻게 초래된 것인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3.02일 10:04
  20세기 20년대 말, 30년대 초 중국 판도에는 여기저기에서 홍색구역이 출현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공산당이 창건한 혁명근거지들이다. 당시 쏘련의 영향으로 그 명칭은 소베트구역으로 불렸다. 소베트구역은 그 전성기에 총면적이 40여만평방킬로미터에 달했고 인구는 3,000만명에 닿아 크고 작은 농촌혁명근거지 10여개를 형성했으며 호남, 호북, 강서 등 10여개 성의 변계 지역에 분포되여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흥성하던 근거지들이 짧디짧은 몇년 사이에 흥성에서 쇠락에로 나아갔고 한갈래 한갈래의 홍색 대군은 부득불 그들을 양육한 땅을 떠나지 않을 수 밖에 없게 되였다…



  소베트 구역 분포도

  6차 당대회 후 중공중앙은 당의 건설을 각별히 중시했다. 대혁명이 실패하면서 이미 사지에 처한 듯했던 중국 공산당은 간고한 투쟁을 거쳐 또다시 장대해지기 시작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공중앙에서 각지의 홍군과 농촌 근거지에 대한 령도를 강화한 것이다. 각 근거지들에서는 군벌 혼전의 시기를 틈타 농민들을 발동해 토지혁명을 진행하고 ‘밭은 경작자의 소유’란 제도를 실시했으며 혁명정권을 건립하고 유격전쟁을 전개함으로써 홍군과 근거지들이 부단히 공고 확대되도록 했다.

  중국공산당은 농민들을 령도하여 토지 혁명을 진행하면서 광범한 농민들로 하여금 국공 량당과 두 정권의 우렬을 재빨리 가려볼 수 있도록 했으며 홍군을 지원해 혁명전쟁을 하고 근거지를 보호, 건설하는 그들의 적극성을 지대하게 불러일으켰다.

  1930년 여름에 이르러서는 전국적으로 이미 10여 곳에 농촌 근거지가 건립되였고 홍군은 근 7만명으로 발전했으며 지방 무장까지 합치면 10만명이 되였다.

  홍군과 근거지의 존재와 발전은 국민당 통치집단을 경악케 했다. 이에 장개석은 1930년 10월부터 병력을 집중하고 전국의 반혁명 군사력량을 통일적으로 동원해 홍군에 대한 대규모의 ‘포위토벌’을 발동했다.

  1930년 10월-1931년 9월, 홍군 제1방면군은 모택동, 주덕 등의 지휘하에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방침을 관철하고 ‘적을 깊이 유인’하는 등 일련의 효과적인 전술 원칙을 실시하면서 국민당 군대의 3차의 ‘포위토벌’을 모두 짓부셨다. 반‘포위토벌’의 승리는 감남, 민서 근거지를 하나로 이어놓았는바 면적이 8만 4,000평방킬로미터, 총인구가 453만명인 중앙소베트가 곧 형성되였다.

  1931년 11월 7일, 강서 서금에서 중화소베트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소집되였다. 이 회의에서 중화소베트공화국 림시중앙정부 설립을 선고했으며 모택동이 중앙 집행위원회 주석 겸 인민위원회 주석으로 당선되였다. 당은 근거지 건설을 령도하는 실천중 보귀한 집정 경험을 쌓았고 당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며 군대를 다스리는 일련의 령도 간부와 골간 력량을 육성해냈다. “소베트구역 간부는 좋은 작풍 있다네. 건량을 둘러메고 공무 보러 다니네. 낮에는 초신을 신고 혁명하고 밤에는 산길을 넘나들며 빈농들을 방문하네.” 당시 중앙근거지에서 전해지던 이 민요는 소베트 간부들의 우량한 작풍에 대한 인민 군중들의 찬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모택동의 리론과 실천은 근거지 인민들의 옹호를 받았지만 오히려 ‘좌’경 착오를 견지하는 지도자의 부정과 배척을 당했다.

  1932년 5월, 장개석은 악예환 ‘포위토벌’ 총사령을 자임하고 40만 군대를 집결해 혁명 근거지를 향해 제4차 ‘포위토벌’을 개시했다. 당시 모택동은 이미 군대를 지휘할 권한이 없었지만 전선에서는 여전히 그의 전략 방침에 따라 싸웠다. 1933년 3월, 주은래, 주덕은 모택동의 전술을 운용해 국민당의 제4차 ‘포위토벌’을 물리쳤다.

  1933년 하반기, 장개석은 또 100만 대군을 집결한 후 총사령을 자임하고는 소베트 구역을 향해 제5차 ‘포위토벌’을 발동했다. 그는 큰돈을 들여 미국 작전 비행기 150대와 독일 중형 화포를 대량 구입했으며 로산에 군관 훈련퇀을 설치하고 23차나 가서 훈화하면서 “‘공산토벌’ 결심이 없는 자는 즉시 목을 벤다”고 떠들었다.

  장개석은 독일 국방군 전임 총사령 젝트를 높은 봉급으로 청해다 군사고문을 맡기고 보루전과 소모전이 상호 결합된 전략을 제정했다. 하여 3,000여개의 보루가 거미줄마냥 첩첩이 홍군 근거지를 봉쇄했는데 이를 두고 장개석은 “소베트구역은 양어못이고 홍군은 못 속의 물고기이며 보루 봉새선은 마치 그물과 같다. 못가를 둘러막고 못의 물을 뽑아낸 후 물고기를 깡그리 잡아내야 한다.”고 비유했다.

  ‘좌’경 교조주의 착오가 중공중앙에서 통치 지위를 차지한 데다 홍군 지휘대권을 공산국제에서 파견해온 독일인 리덕(李德)에게 넘겨준 데서 제5차 반‘포위토벌’은 실패로 돌아갔다. 중국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리덕은 군사위원회의에서 ‘깊은 산속에 있는 맑스레닌주의는 걷어들여야 한다’고 제출했고 모택동의 전략 전술은 재차 부정 당했다.

  감남 민서 산구는 첩첩중산으로서 지도에서 보기에는 그 로정이 몇십리 밖에 안되지만 실제 거리는 훨씬 더 멀다. 리덕은 지도를 보고 부대를 파견했는데 홍군 대오가 급행군으로 기진맥진해 작전지역에 달려가면 여유작작 만단의 준비를 한 적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맞아주는 상황이였다. 적이 강하고 우리가 약하며 장비마저 현저하게 차이나는 상황에서 중국 혁명 전쟁의 실제를 떠난 눈먼 지휘는 홍색근거지에 치명적인 재난을 몰아왔다.

  1934년 4월 10일, 국민당 군대는 10개 사의 병력을 집중해 중앙 소베트구역 북대문인 광창을 련합 공격했다. 18일간의 혈전 끝에 광창은 끝내 함락되였다.

  그러나 남부전선의 홍군은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지방 유격대와 배합해 적들의 식량소와 탄약창고를 련이어 습격하면서 적들의 코를 끌고 산속을 이리저리 에돌았는데 잠시적인 승리를 취득했다.

  1934년 7월 여름의 회창, 모택동은 어느 한 새벽에 란산령에 올라 중앙소베트에서 6년간을 보낸 마지막 시 한수 〈청평락·회창〉을 지었다. “동녘 하늘에 새벽 빛 서린다, 그대 일찍 왔다 하지 말라. 청산을 두루 다 밟았어도 여전히 한창 시절이라, 이곳 풍경이야말로 홀로 아름답구나. 회창 성밖의 고산준령들 면면히 동해에로 이어져 있네. 전사 멀리 남월을 가리키는데 그곳은 더욱 울울창창하여라.” 보다 싶이 그 자신감은 의연히 솟아오르는 아침해를 방불케 한다.

  9월 상순, 적군은 각지에서 중앙근거지 중심 지역에로 다그쳐 진공을 발동했다. 중앙 홍군은 더는 제자리에서 전쟁국세를 돌려세울 가능성이 없게 되였다. 10월 중순, 공산국제의 동의를 거친 중공중앙과 중국혁명군사위원회는 중앙 홍군 주력 8만 6000여명을 거느리고 전략적 전이의 머나먼 길에 올라 장정을 시작했다.

  홍군 반‘포위토벌’ 기간에 모택동을 대표로 한 중국공산당인들은 ‘포위토벌’과 반‘포위토벌’ 투쟁 중 부단히 반복되는 규률을 점차 인식하고 유격전 위주에서 운동전 위주에로의 전변을 진행했으며 동시에 인민 전쟁의 전략 전술 원칙을 실행했다. 홍군 반‘포위토벌’의 승리는 바로 인민전쟁 전략 전술 사상의 승리였다. 이 전략 전술 사상은 중국 혁명 전쟁의 경험을 총화한 기초에서 점차 형성되고 발전한 것이였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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