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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100주년] 등소평의 ‘북방담화’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3.24일 09:00
  1978년 9월 13일부터 20일까지, 등소평은 중국 당정 대표단을 인솔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성립 30주년 경축활동에 참가했다가 귀국한 후 북방지역에서 8일간 시찰했다. 료녕성에서 흑룡강성, 길림성에까지, 다시 료녕성, 하북성, 천진시를 돌아보면서 가는 곳 마다에서 보귀한 이야기를 남기였다. 선후로 본계시, 대경시, 할빈시, 장춘시, 심양시, 안산시, 당산시와 천진시 등지에서 일련의 중요한 담화 내용을 발표했는 바 이를 력사적으로 등소평의 ‘북방담화’라 한다. 등소평의 ‘북방담화’는 맑스주의 보편적 원리를 중국실제와 결합하여 맑스주의 중국화의 제2차 력사성적 비약을 추진한 중요한 성과이며 중국특색사회주의리론 체계이고 나아가 중국의 길을 열어놓은 리론 서설이다.

  40여년간의 개혁개방과 중국의 길을 탐색하는 실천을 거쳐 중국특색사회주의건설이 새시대에 들어선 력사적 교차점에 서서 등소평의 당년의 해박하고 심각하며 전면적이고 투철하면서도 구체적 실정에 부합되는 , 심오한 리론을 쉽게 풀이해 준 ‘북방담화’ 를 되 새기고 새시기의 광역 시야로 ‘북방담화’ 속에 깃든 사상해방, 실사구시 원칙, 장기간 축적한 탁식, 풍부한 정치적 경험과 드높은 리더 예술, 비범한 령수의 풍채를 되 새길 때 배로 친절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특히 우리로 하여금 ‘북방담화’의 력사적 지위, 심후한 내함과 그 가치 및 시대적 의의에 대해 깊히 사색하게 하며 그 가운데서 견정불이하게 새새기 중국특색사회주의의 길 따라 힘차게 전진해가는 데 있어서의 심오한 계발을 얻게 한다.

  한마음 한뜻으로 건설을 다그쳐야

  1978년 12월에 열린 당의 11기3중전회는 과단하게 “계급투쟁을 기본 고리로 하는” 착오적인 제기법을 중지하고 당과 국가의 사업 중심을 사회주의현대화건설에로 돌릴 데 대해 확정했다. 당 사업의 중심을 돌리는 실천의 첫 ‘선언’이 바로 등소평의 ‘북방담화’로부터 전해져 나왔던 것이다.

  1978년 9월 17일, 등소평이 심양군구 기관 및 군구 사급 이상 간부회의 석상에서의 연설가운데서 형상적으로 자신의 담화를 점화(点火)라 했었다. “나는 처처에서 점화한다. 여기서 한번 점화하고 광주에서 한번 점화했으며 성도에서도 점화했었다.” 1982년 9월 18일, 등소평은 김일성과의 회담에서 자신의 ‘북방담화’를 돌이켜 “나는 동북3성 곳곳에서 한마음 마뜻으로 건설을 다그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라가 이렇게 크고 이렇게 가난한데 힘써 생산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살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기때문에 나는 찍어서 신속히 , 견결히 사업중점을 경제건설에로 돌려야 한다고 제기했지요.” 그는 또한 즐거운 심정으로 “그 뒤의 실천으로 보면 이 로선은 옳습니다.”고 표했다. 당년 ‘4인무리’의 죄행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군중운동이 열의충천하는 형세하에 ‘북방담화’는 명확하게 신속히 견결히 당의 사업 중점을 경제건설에로 돌릴데 대해 제기했는바 이는 등소평의 한 정치가의 원견 탁식을 체현했다. 당의 11기 3중전회 후의 40여년래 우리나라 개혁과 발전도 각이한 고험과 도전을 경력했지만 우리 당은 줄곧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을 견지했고 견정불이하게 개혁개방을 추진해왔다. 바로 그랬기에 오늘날 괄목상대할 사회주의현대화건설사업의 휘황한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관건은 그래도 실사구시해야

  사상로선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큰 전제이다. 이는 역시 당의 11기3중전회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돌출한 공헌으로 된다. 주지하다싶이 사상로선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진리의 표준을 토론하는 데로부터 시작했다. 동북지구는 전국에서 비교적 일찍 진리 표준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 지역이다. 1978년은 진리의 표준을 견지하는 데서와 ‘두가지 무릇(两个凡是) ’을 견지하는 데서의 날카롭고 치렬한 투쟁이 한창 때였다. 바로 이런 관건적인 시각에 등소평이 동북을 시찰하면서 ‘북방담화’를 발표했던 것이다.

  1978년 9월 16일, 등소평은 중공 길림성위 상무위원회로부터 사업을 회보받을 때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것은 관건은 그래도 실사구시이고 리론과 실제를 결부하는 것이며 모든 것은 실제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어떻게 모택동사상 기치를 높히 받드는가 하는 것은 큰 문제이다. ‘두가지 무릇’은 모택동사상을 높히 받드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내려가다가는 모택동사상에 루를 입히게 된다. 모택동사상의 핵심 점이 바로 실사구시이고 바로 맑스-레닌주의의 보편원리와 중국혁명의 구체적 실천을 결부한 것이다.”고 지적하였다. 9월 20일, 등소평은 천진시에서 자신의 ‘북방담화’에 대해 한차례 총화를 진행했다. 그는 천진시당위 책임자에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여러 곳을 다녀오면서 재삼 강조해 말한 점이라면 바로 사상을 해방하고 기계를 작동하고 게으름뱅이가 되지 말고 실제로부터 출발하자는 것이였다.” 사상을 해방하는 관건적인 시각에 ‘북방담화’는 진리표준 토론에 대한 사람들의 의혹심을 가셔주었고 료녕, 길림, 흑룡강, 나아가 옹근 동북지구와 전국의 진리표준 토론을 추동하고 사람들의 사상을 해방하는 데에 있어서 사뭇 중요한 역할을 일으켰다.

  대문을 걸어 닫아서는 안된다

  1978년 9월 15일 등소평은 중공 흑룡강성위 상무위원회로부터 사업을 회보 받을 때 이렇게 지적했다.“총체적인 상황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체제, 기구 체제 등을 포함해 말하자면 기본상 쏘련으로부터 들여온 것인 바 일할 자리에 비교해 사람이 많고 기구가 중첩되였으며 관료주의식의 발전 양상이다.” “ 허다한 체제 문제는 다시 검토해야 한다. 총적으로 우리의 체제는 현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의식형태 상부구조는 새로운 요구에 적응하지 못한다.” 9월 16일 등소평은 중공 길림성위 상무위원회의로부터 사업을 회보받을 때 “ 우리는 참답게 학습해야 한다. 국외에 나아가 보고 남들은 어떻게 관리하는 가를 보아야 한다.” “ 세계는 매일 변화한다. 새로운 사물이 부단히 나타나고 새로운 문제가 부단히 나타난다. 우리는 대문을 걸어 닫아서는 안된다. 머리를 굴리지 않고 영원히 남의 꽁무니에 뒤떨어져 있어서는 안된다.” 9월 18일 중공 안산시위 상무위원회로부터 사업을 회보받을 때 등소평은 “선진기술 설비를 유치해들인 후 반드시 국제 선진적 관리방법과 선진적 경영방법, 선진적 기준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경제 법칙에 따라 경제를 관리하는 것인바 한마디로 혁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개량하지 말고 뜯어 보수하지 말아야 한다.” 대외개방하는 시야로 관건적 문제를 해결하는 가운데서 단계적으로 개혁을 앞으로 밀고 나아가야 하는 것은 등소평이 설계하고 중국을 이끌어 개혁개방해 온 하나의 선명한 특색이다. 바로 이런 개혁개방 사로에 따라 등소평은 련이어 호도거리생산책임제를 실시할 것을 제기했고 경제특구를 세우는 것을 제창하는 등 일련의 개혁개방 ‘대정책’을 출범시켜 중국특색사회의를 건설하는 초행길에서 가시덤불을 헤치여 중화민족의 새로운 위대한 대장정의 스타트를 뗏다.

  반드시 생산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등소평의 1978년도 가을에 발표한‘북방담화’와 1992년 봄에 발표한 ‘남방담화’는 등소평 ‘사회주의본질론’ 형성 과정에서의 중요한 두 련결점으로 된다. ‘사회주의본질’에 대한 전면적인 개괄은 등소평이 ‘남방담화’에서 명확하게 천명했다면 ‘사회주의본질론’이란 명제에 대한 제기와 창설 론술은 등소평의 ‘북방담화’에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비록 당시 등소평이 ‘사회주의본질론’ 이란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1978년 9월 16일, 등소평은 중공 길림성위 상무위원회로부터 사업회보를 받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지금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는 빈곤한 나라에 속해있다고 보아야 한다. 제3세계에서 보더라도 우리는 비교적 발달하지 못한 데에 속한다. ”“만약 매우 긴 한 력사시기 내에 사회주의 국가의 생산력 발전 속도가 자본주의 나라보다 느리다면 웬 우월성을 운운하겠는가? 이것이 가장 큰 정치이고 이것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서 누가 누구를 전승하는가 하는 문제로 된다.” 이번 담화는 좌석의 모든 이들을 매우 강렬하게 진감했다.

  9월 17일, 중공 료녕성위 상무위원회로부터 사업회보를 받을 때 등소평은 또한번 격앙된 어조로 강조했다. “우리는 너무 가난하고 너무 락후하다. 솔직히 인민에게 미안하다. 우리는 지금 반드시 생산력을 발전시켜야 하고 인민의 생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북방담화 ’는 비록 사회주의 본질, 이 관건적인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답해주지 않았지만 그러나 대체상으로는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회주의를 건설할것인가 하는 기본 함의를 밝혀주었다. 이를 시작으로 등소평은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을 새로운 과학적 수준에로 격상시켰는 바 정중하게 전 당에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똑똑히 인식할 것을 요구했다. 선후로 “가난한 것이 사회주의가 아니다. 발전이 너무 느린 것도 사회주의가 아니다. 사회주의의 근본 임무는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 등등 일련의 새로운 사상을 제기하고 밝혔다. 바로 이런 완전 새로운 사회주의관의 인솔하에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정확한 지도사상과 리론적 의거가 있게 되였으며 또한 오늘날 우리가 견정불이하게 중국의 길을 견지해 가는 데에 견실한 리론적 토대를 다져주었던 것이다.

  맑스주의인식론이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은 다 감성에서부터 리성에로, 현상에서부터 본질에로에 대한 인식에로 부단히 심화된다는 인식과정을 말해주고 있다면 등소평의‘북방담화 ’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시대의 발전과 연구적 시야가 트이고 연구하는 층차가 깊어 짐에 따라 우리는 등소평이 40여년 전에 발표한 ‘북방담화 ’가 극히 강한 예견성과 현실주의 지도의의를 지니고 있음을 점점 더 절실히 터득할 수 있다. 포섭 면이 넓고 뜻이 깊으며 사람의 사유, 지혜를 틔워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세속적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 매우 강한 과학적 예견성과 현실적 지도의의를 가진다.

  ‘북방담화 ’는 당의 사업 중심을 경제건설에로 돌릴 데 대한 서곡을 울려주어 중국 운명의 위대한 력사적 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사상의 시동을 켜놓았고 정치적 동원을 해놓았으며 중국의 앞길을 비추어 줄 지혜의 등대에 불 밝혀놓았다. 당과 국가의 발전 전도와 력사적 운명에 거대한 영향을 일으켰고 우리나라를 인도하여 잡기 어려운 중요한 전략적 기회를 다잡아 세상에 보기 드문 경제의 쾌속 발전 기적과 사회의 장기적 안정 기적을 창조해냈다.

  ‘북방담화 ’는 당의 사상로선을 다시 바로 잡는 기조를 정해 진리 표준 문제에 대한 대토론을 지지 추동했고 사상해방의 거대한 성세를 이끌어내 력사 대전환의 전야에 조금도 두려움 없는 정신으로 중국문제를 해결하는 많은 새 사유, 새 원칙, 새 방법을 제기하여 사상, 정치, 조직 로선에서의 발란을 유력하게 추진했으며 사상해방, 실사구시, 시대와 더불어 발전하고 개척 혁신하는 시대정신을 창조하고 육성해냈다.

  ‘북방담화 ’는 중국체제개혁의 스타트를 뗏으며 지대한 정치적 용기와 리론 용기로 중국의 개혁에 일련의 예리한 론술을 펴냈다. 개혁을 사회주의제도의 자아 완선과 발전의 동력 원천으로 삼아 우리나라 체제 개혁의 력사적 행정 가운데서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일으켜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과 왕성한 생기를 뚜렷이 나타나게 했다.

  ‘북방담화 ’는 중국의 대외개방의 선곡을 울려주었다. 개방적, 지구촌화 시야로 사상적 질곡과 굴레를 타파하고 중국을 이끌어 국문을 열어제쳐 대외개방의 견고한 발걸음을 내디디게 헸다.

  ‘북방담화 ’는 ‘사회주의본질론’의 관건을 파헤쳐 처음으로 선명하게 무엇이 사회주의이며 어떻게 중국의 실제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이며 어떻게 과학적으로 사회주의가 처한 력사적 좌표를 파악하며 어떻게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을 새로운 과학적 수준에로 격상시키겠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고 중국특색사회주의리론의 론리적 기점과 력사적 기점을 찾아내 과학사회주의의 거대한 에너지가 당대 중국공산당에 의해 재차 활성화되게 했다.

  ‘북방담화 ’는 그 당시 중국의 빈곤 락후한 실제로부터 출발하여 중국의 앞길과 운명에 관여되는 허다한 문제에 초점을 두고 모든 공담을 타파하고 사람들이 관심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현실적이며 가장 절박한 구체적인 문제를 관심하고 인민군중의 근본 리익을 생산력을 발전시키는데 있어서의 근본적 가치 표준으로 삼았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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