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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69] 7부 보수 받던 ‘도림누나’ 리맹춘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1.03.25일 18:11
얼마전에 사회보험 수속을 밟으려고 고향으로 다녀왔다. 대련에서 기차를 타고 흑룡강 수분하역에서 내린 후 다시 뻐스를 갈아타고 한시간 남짓이 달려 동녕 현성에 들어섰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그 사이 고향은 신부가 화려한 옷차림을 하듯 몰라보게 변했다.

보고 싶은 산과 들, 보고 싶은 친구들이 많고 많아도 나는 먼저 조상의 뼈가 묻힌 삼차구 산기슭에 자리 잡은 공동묘지로 발길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이 해내외로 나가다보니 주인 없는 공동묘지는 자못 쓸쓸하기만 했다.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묘지는 쑥대가 무성했고 펑펑 구멍난 무덤에서 커다란 쥐들이 욱실거렸다.

아버지,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하고 제를 지낸 후 돌아서려는 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나무패쪽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리맹춘지묘'였다. 40년전에 내가 써준 비문이였다. 지난 세기 40년대초, 우리 태원 리씨 여덟 세대가 왜놈들의 발길에 채워 두만강을 건너 살길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행장을 푼 곳이 바로 흑룡강 해림현 도림촌이였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리맹춘은 나보다 세살우였는데 평소에 나는 그를 ‘도림누나'라고 불렀다. 동녕현 삼차구에서 농사지으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도림누나는 아들딸 다섯을 키웠으나 지금은 다 고향을 떠나고 없었다. 이리저리 나뒹구는 누나의 묘비를 바라보노라니 도림누나와 함께 보냈던 잊을 수 없는 지난날들이 새삼스레 나의 머리를 쳤다.

인민공사때 마을에서 크고 작은 행사를 많이 치렀다. 소대 간부모임이요, 년말 렬군속 좌담회요, 들놀이요 하며 집체활동이 많았고 결혼잔치, 환갑잔치, 생일잔치 등 군일도 많았다. 그런데 이런 크고 작은 행사때마다 주방에서 일하려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하여 박대장은 식솔이 많고 빚이 많은 도림누나더러 일전이라도 벌라고 주방일을 맡겼다. 도림누나는 학교문전은 가보지 못했지만 마음씨 착하고 료리 솜씨는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소대에서는 사람이 많든 적든 하루에 7부 보수를 도림누나에게 주었다. 그 때 한공에 1원 20전을 주었는데 도림누나가 남새를 씻고 썰고 료리를 만드는 데 반나절 품이 들고 어떤 날에는 밤 늦게까지 손님시중을 해도 하루 보수가 1원 밖에 안되였다.

“저 맹춘이는 고생을 사서 한다.” 사원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도림누나를‘7부 맹춘'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도림누나는 언제나 “누구도 안하겠다면 이 일을 누가하겠소?”라고 하며 나섰다. 어느 집에 무슨 군일이 있으면 누구나 도림누나를 찾았다. 온종일 일해서 돌아올 때 손에 쥔 것이란 과자나 사탕 뿐이였다. 도림누나는 우리 집에 늘 놀러왔는 데 우리 삼형제중 막내이고 신체가 허약한 나에게 개눈깔 사탕 몇알을 주면서 “이 사탕은 큰상에서 가져온거다. 어서 먹어라.”라고 말하군 했다.

1970년 12월초, 내가 결혼식을 올리던 날이였다. 잔치 전날부터 친척들과 마을사람들은 잔치 부조를 들고 모여들었다. 그 때는 잔치부조라 해야 소주 두병, 수건, 그릇 같은 것이였다. 그래도 잔치 집에서는 잔치 전날에 술 도감, 찰떡 치는 사람, 심부름군들을 청해 대접한다. 결혼식 전날, 큰 형수님이 부조한 사람들의 명단을 어머니에게 넘겨주었 데 어머니는 가벼운 한숨을 지으면서 “맹춘의 이름이 없구나. 잔 밥 (어린식솔)이 많고 빚이 많으니 돈이 어디 있겠니?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말거라”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잔치날 아침 기운 솜바지에다 낡은 털실 옷을 입은 도림누나가 불쑥 우리 집에 들어섰다. 머리에는 하얀 눈이 뒤덮여있었다.

“맹춘이 네가 와서 큰 걱정 덜었다.”어머니는 반갑게 도림누나를 맞아주며 이미 준비해놓은 고기, 남새와 양념을 도림누나에게 맡겼다. 도림누나는 말없이 부엌에 불을 지폈다. 남새를 다듬고 고기를 썰고 상차림을 하느라고 땀벌창이 되였다.

1981년 3월, 삼차구조선족진 선전위원으로 근무하던 어느날, 도림누나의 둘째아들 성환이가 헐레벌떡 나를 찾아와 어머니가 방금 중풍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정신없이 달려갔더니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환갑나이도 안된 누나의 머리에는 때 이른 서리가 하얗게 내렸고 입은 비뚤어져있었으며 두 눈에서는 눈물이 꼴똑 차 있었다. 성환의 말에 의하면 소대에서 모내기를 끝내고 술추렴을 했는데 누나가 50여명이나 되는 사원들의 점심식사를 준비하다가 쓰러졌다고 한다. 누나의 속옷을 갈아입혀야 했기에 이웃 두 로인을 모셔왔다.“리선생, 저 맹춘의 속바지는 찢어져있고 젖 싸개(브래지어)도 한 줄은 끊어졌소. 속옷 몽땅 갈아입혀야겠는데 여벌옷이 한견지도 없수다.”라고 했다. 순간, 나의 코마루가 찡해났다.

내가 갓 고중을 졸업하고 논에서 참돌피를 가려내지 못해 마구 흙탕물을 일굴 때 슬그머니 내 곁에 와서 차근차근 농사기술을 익혀주던 누나, 생산대에서 평공을 할 때 목에 피대를 세워가며‘로3편'을 줄줄이 외우는 사람은 10부를 받았지만 집체와 사원들의 뒤바라지를 해준 누나는 겨우 7부 보수를 받고⋯ 자식 다섯을 키우느라 속기름까지 다 빠지고 죽는 순간에도 시집 못간 막내딸을 걱정하느라 눈물을 머금도 돌아간 누나⋯ 나는 슬픔을 참으며 누나의 후사를 치렀다.

세월이 흘러 도림누나가 이 세상을 떠난 지도 어언 40년이 된다. 세상이 바뀌여져 카드 하나로 온 세상을 다닐 수 있는 세월을 보지 못한 누나가 안타깝다. 은행 잔고 한푼도 없이 순수한 인정으로 뒤바라지만 하다가 한생을 마친 ‘7부 누나'가 사무치게 그립다.

 /리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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