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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1호 트롯가수 류춘금의 인생이야기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4.06일 15:08
  조선족 1호 트롯가수

  한국 최초로 ‘하이난 투어’ 여행상품 개발

  주현미와 한 무대에 서기도



류춘금 가수

  “트롯 전국체전”, “미스트롯2” 요즘 한국은 트로트 열풍 속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트로트는 대중적인 가요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오랫동안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2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컴백한 트롯가수 류춘금(59세)씨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필자는 지난 3월 3일 대림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168센티의 훤칠한 키에 동안피부를 지닌 그녀는 화장기 전혀 없는 얼굴에 야구모자를 쓰고 편안한 차림으로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무대에서의 화려한 모습을 벗었지만 내면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여전했다.



  길림신문에서 주최한 "내가 제일 즐기는 노래 20수"에 선정

  가수의 꿈은 언제부터 키웠나?

  류춘금 가수의 고향은 화룡 연변탄광 장재촌의 서쪽마을에 있는 3호 동네다. 말 그대로 온 동네에 세 집 밖에 없는 산골동네였다. 사람이 그리웠던 그녀의 아버지는 늘 주안상을 차려놓고 옆동네 장재촌 사람들을 불러서 식사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때 어르신들이 불렀던 “눈물 젖은 두만강”, “찔레꽃”, “꽃마차” 노래를 따라서 흥얼거리며 그녀는 무의식중에 가수의 꿈을 싹틔웠는지 모른다.

  중학교 때 그녀의 음악재능을 알아본 음악선생님 (고 주영수)이 그녀에게 전주중학생 문예콩클에 참가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악보도 볼 줄 모르는 그녀였지만 선생님의 발풍금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노래로 출세하여 3호 동네를 벗어나야겠다는 야망이 어린 소녀의 가슴에서 움텄다. 하지만 아버지가 견결히 반대했다. 그녀는 소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스피드스케이트 선수였고 연변자치주 대표로 길림성 대회에까지 출전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입장에선 어려운 가정형편에 스케이트 선수 뒷바라지를 하였는데 딸이 갑자기 노래로 전향한다니 승낙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눈과 귀를 피해 김치움에 들어가서 노래연습을 했다. 2개월 후 그녀는 전주중학생 문예콩클 무대에 섰다. 인생 첫 번째 무대였다. 실력도 뛰어났지만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욕망이 강했던 덕분인지 그녀는 운 좋게도 1등을 수상했다. 그녀가 불렀던 “광산의 새봄” (유수호 작사, 주영수 작곡) 노래는 연변방송국 매주일가를 통해 전파를 탔고 그녀의 가수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이듬해 그녀에겐 기회가 찾아왔다. 무장경찰부대의 문예병으로 선발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버지의 반대에 직면했다. 나이 어린 딸을 차마 부대에 보내서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그때 문예병이 되었더라면 그녀의 인생드라마는 어떻게 씌어졌을까? 마침 연변1중에서 특기생을 뽑았는데 그녀는 1기 특기생으로 선발되었다. 열세 살 소녀는 드디어 산골마을을 탈출해 연길에서 기숙사생활을 시작했다. 1981년에 연변예술학원 성악부에 입학한 그녀는 졸업을 앞두고 연변방송국 예술단에 성악전업 방송 전속 가수로 발탁되었다. 그녀가 부른 ‘손풍금 타는 총각’, ‘내 고향 진달래’ 등 40여곡의 노래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애창곡으로 널리 불린다. 다재다능하고 에너지 넘치는 그녀는 가수생활을 하면서 TV방송국의 “TV화면세계” 프로듀서까지 맡아서 일했다. 월 2회 방송으로 나가는 30분짜리 종합다큐 프로였다.

  



중-조 국교수립 70주년 무대

  한국에서 활동한 첫 조선족 가수

  1992년에 류춘금 가수는 “한민족체전”의 요청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다. 체전이 끝나고 KBS연수를 마친 뒤 “추석맞이 가요무대”에 선 것이 그녀의 한국에서의 첫 번째 가수활동인 셈이었다. 그녀는 주현미, 설운도, 이자연 가수와 같은 무대에 섰으며 1992년에 ‘메들리 8집’을 내고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펼쳤다. 나이트클럽, 스탠드바, 카바레 등 야간업소를 전전하면서 활발하게 가수의 인생을 이어갔다. 하루저녁에 여덟 곳을 다니며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 성악은 그런 무대에 먹히지 않았다. 그녀는 대중에게 다가가기 쉬운 트로트를 배워서 불렀다. 성악전공 출신이기에 호흡조절에서는 타 장르 가수보다 우세였다. 성악을 전공한 가수가 트로트를 한다고 하니 첨에는 주변에 의아해하는 시선들이 많았다. 고음을 쭉쭉 빼서 시원하게 뽑을 수 있는 목소리를 놔두고 왜 트로트를 고집하냐고.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대중들의 정서와 가깝고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트로트라는 장르도 잘 부르면 얼마든지 많은 명곡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녀는 정통 트로트는 가사전달이 생명이라는 걸 느꼈고 노래맛을 제대로 살리려면 발음 교정부터 해야 되겠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유명 작곡가 박성훈 선생의 도움으로 그녀는 6개월 동안 매일 발음 교정과 발성 연습을 했다. “가사를 받으면 가사부터 먼저 달달 외우고 시간 날 때마다 계속 반복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거에요. 요즘은 핸드폰 녹음앱으로 노래가사를 녹음해서 모니터링하면서 수없이 듣고 교정하고 그렇게 연습합니다.”

  마냥 노래 부르는 것이 신났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그녀는 95년도에 한국에서 첫 앨범 “부산머슴아”를 냈다. 1절은 중국어로, 2절은 한국어로 부른 앨범이었다.

  가수에서 사업가로가수생활을 하면서 주변 인맥이 차츰 늘자 그녀는 1995년도에 “소명기업”이라는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무역사업을 하면서 여행업에도 뛰어들었다. 그녀는 한국에 최초로 중국 해남도라는 관광지를 알린 사람이다. 직항노선도 개통되지 않은 그때 골프투어·효도관광·신혼여행을 주력 상품으로 ‘하이난투어’ 여행상품을 개발했다. 지금은 해남도가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휴양지로 각광받지만 지난 세기 90년대 중반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홍보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무역업으로 벌은 돈은 전부 여행상품 홍보비용 투자로 쓰였다. 외환위기가 닥치며 회사가 휘청거리자 그녀는 과감하게 여행 사업에서 손을 떼고 무역업에만 올인했다. 지금도 그녀의 사업신조는 ‘과감하게 내려놓기’, ‘순리대로 풀기’다.

  현장에서 몸소 뛰며 본인의 눈으로 제품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 그녀는 중국 전역을 누비며 무역업에 몸을 담궜다. 한번은 신강의 채석장에서 신강홍 돌을 고르는 작업을 하다가 날카로운 돌에 팔을 베어 뼈가 허옇게 드러나는 사고를 당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차로 네 시간 넘게 걸리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기절했고 이틀 후에야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사업에서 승승장구할수록 노래와는 점점 멀어져갔다. 30년째 이어가고 있는 무역업, 현재는 부산에 본사를, 상해에 지사를 두고 있는 ‘윈슨코리아’ 무역회사는 주로 선박에 들어가는 부품, 장비를 수출한다.



류춘금 가수, 록음실에서



  다시 가수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

  가수생활을 잠깐 쉬었다가 다시 시작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뒤돌아보니 어언간 2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연변TV 방송국 선배인 현 한국주재 “길림신문” 대표 이호국 선생의 권유로 더 늦기 전에 노래를 불러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다. 마침 대기업에 근무하던 아들이 회사경영을 맡게 되면서 그녀는 재도전 할 마음을 굳혔다. 주변의 도움으로 이미 앨범을 냈던 신곡 “애절”과 “부산머슴아”를 2019년에 한국 금영노래방에 수록시키고 가수생활을 재개했다.

  22년의 공백을 깨고 그녀는 다시 무대에 섰다. 2019년 9월 연길에서 열린 건국 70주년 무대, 10월에는 중-조 국교수립 70주년 무대에 섰으며 11월에는 ‘일본 세계조선족 문화절’ 축하공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일본에서 노래 부를 땐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힘겹게 마쳤지만 그녀는 무대에 섰을 때의 벅찬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다른 트롯가수와 비교할 때 본인의 강점은 어디에 있나?음악학원에서 성악전공을 했기에 호흡조절 면에서 강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호흡이 받쳐주지 못하면 노래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소리가 안 나온다. 호흡연습을 꾸준히 한 덕분에 20여년의 공백기를 깨고 가수생활을 다시 하는데도 별 무리가 없었던 것 같다. 트로트는 호흡 내공을 굉장히 많이 필요로 하는 장르다.

  흔히들 성대는 사람이 지닌 악기라고 하는데, 훌륭한 이 악기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평소에 목을 아끼고 많이 보호하려고 애쓴다. 가수는 기관지염 같은 거에 걸리면 치명적이니까 생도라지를 사서 도라지차를 끓여서 많이 마신다.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거나 흡연은 꼭 피해야 한다. 성대는 흔히들 타고났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본인의 관리가 중요하다.

  류춘금 가수가 생각하는 트로트란 무엇인가?트로트는 4분의 4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쿵짝 쿵짝의 한국 대중가요다. 리듬에 강약의 박자를 가미해 특유의 꺾기 창법을 구사하는 대중가요의 독립된 장르이기도 하다. 구성지고 애상적인 느낌이 리듬이고 이 리듬을 누가 어떻게 꺾기, 돌림, 털기 등등 기교를 이용해서 부르냐에 따라 색깔이 바뀔 수도 있다. 트로트는 대중의 정서에 가깝고 누구나 쉽게 즐기면서 접할 수 있는 대중성이 강한 음악이다.

  녹음을 하지 않는 날에는 무엇을 하나?휴일에는 산행을 즐긴다. 산의 정기를 듬뿍 섭취하면 힐링이 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많은 여성들처럼 옷장을 정리하는 일 또한 그녀의 취미다.



2020 한중 설맞이 공연

  어떤 가수로 남고 싶나?

  인성이 훌륭하고 존경받는 가수로 평가받고 싶다.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면서 내공을 쌓는 마음으로 음색과 창법, 가창력을 독보적으로 다듬어서 지금 연습중인 신곡 “세월에 맡겨라”를 대중들의 애창곡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건이 주어진다면 트로트를 사랑하는 후배양성에 본인의 노하우와 지식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싶다.

  30년 가까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류춘금 가수는 항상 고향을 잊지 않고 살았다고 말한다.

  “가수활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고향의 많은 팬들이 저를 기다렸다는 걸 알았어요. 저를 낳아주고 길러준 내 고향 연변의 자랑스러운 가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고향분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요.”

  긴 공백을 깨고 다시 돌아온 류춘금 가수, 코로나 땜에 요즘은 활동범위가 많이 위축되었지만 설 수 있는 무대라면 어디든 달려가겠다며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으로 내공을 다져가는 그녀는 무대에 설 때마다 신인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사업가로 사는 동안 늘 가슴 한켠에 쌓아 두었던 노래에 대한 미련, 더 늦기 전에 가수 인생에 멋진 도전장을 내민 그녀가 오래오래 왕성한 활동을 펼쳐갈 수 있기를 바란다.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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