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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72]교장선생님이 들려준 추억의 홍색교양이야기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1.04.16일 13:17
기억이란 어제 있었던 일도 가물가물 잊혀질 때도 있지만 몇십년이 흘러도 색바래지 않게 생생히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올해는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한해다. 요즘 우리 당 력사를 학습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떠오르는 한가지 추억, 그것은 40여년전에 한 시골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어린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던 홍색교양이야기다.



40여년전 어느날, 홍색교양강의를 하셨던 88세의 리동춘 교장선생님과 사모님.

‘H’자 모양의 우리 시골학교는 촌에서 유일한 벽돌집였는데 제일 서쪽켠을 선생님들의 사무실로 쓰고 그 옆으로 중학반 교실 그리고 동쪽켠을 소학반 교실로 사용했다.

교장선생님은 사무실이 따로 없이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큰 사무실 하나를 같이 사용했으며 집도 바로 학교 옆에 있었는데 우리는 휴식시간이 되면 곧장 교장선생님 집에 달려가서 마당에 있는 물펌프에서 물을 받아 먹거나 집안에 있는 커다란 물독에서 바가지로 물을 떠서 벌컥벌컥 마셔대고는 운동장에서 뛰놀았다.

어릴 때 우리 눈에는 교장선생님은 맡은 수업이 따로 없이 이곳저곳 살피면서 돌아다니는 분으로 보였다. 시골학교에서 소학교를 다니던 5년 동안 딱 한번 교장선생님이 들어와서 강의를 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다른 수업은 기억이 온데간데 없고 그날의 고작 한번 받은 교장선생님의 수업은 40년이 넘어 지난 오늘까지 잊혀지지 않고 추억으로 남아 있다. 후에 알고보니 나뿐만 아니라 같이 수업을 들었던 한반의 광식이도 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교장선생님이 개구쟁이 시골아이들에게 대체 무엇을 강의했길래 이렇게도 기억에 남았을가.

풀내음이 싱그럽고 잠자리가 나풀거리며 하늘을 날아다니던 어느 여름날, 시골학교 복도에서 종소리가 따르릉, 따르릉 울리더니 한번도 강의를 해본적이 없던 교장선생님이 갑자기 교실로 들어왔다. 의아해하는 우리를 보고 “얘들아, 오늘은 정치수업을 볼거다. 내가 너희들에게 옛말을 들려주겠는데 홍군들이 장정을 한 이야기를 말이다.”라고 말문을 뗐다. 그리고는 두눈이 초롱초롱해서 바라보는 3학년 어린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비록 어리지만 홍군들이 장정을 할 때에는 너희만한 아이들도 대오에 있었단다. 홍군전사들은 2만 5천리 장정 도중 초지를 지나다가 갑자기 수렁속으로 쑥 빠져들어가 생죽음을 당했지. 그걸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구하지 못했단다. 왜서냐구, 그쪽으로 가면 함께 빠져서 다같이 죽기 때문에. 그리고 설산을 넘다가 얼어죽은 홍군전사도 있었단다.”

“오죽하면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를 파서 끼니를 에때우고 배가 고파 가죽혁띠를 풀어서 삶아서 먹었겠니...”교장선생님은 자신의 가죽혁띠를 가리키면서 “바로 이런 가죽혁띠를 삶아서 먹었단 말이다. 우려서 먹으려면 오래 동안 삶아야 했겠지. 그러면서 국민당과 싸워서 이겼지.”라고 말했다.

그날의 정치수업ㅡ홍색교양이야기는 대충 이렇게 끝나고 가죽혁띠를 삶아 먹었다는 말이 인상 깊어 수업이 끝나고 우리끼리 정말일가 수군수군하면서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개구쟁이들에게 금방 잊혀질 것만 같던 교장선생님의 그 한번의‘평범한’수업은 기적 같이 4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그냥 기억에 남아있다.어린이들에 대한 맞춤식 홍색교양수업이 정말 필요한가부다.

그후 나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교장선생님을 한번도 못보다가 사회에 진출해 시내에서 우연하게 딱 한번 만났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내가 다가가서 인사를 올리니 어느덧 할아버지가 된 교장선생님도 나를 알아보고는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생님은 중산복 웃호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수첩을 꺼내 펼치더니 “이봐라, 내가 우리 학교 학생들 중 대학에 간 아이들 이름을 여기에 다 적어놓고 있었단다. 광식이, 정일이, 영진이 그리구 너까지. 그때 스무명도 안되는 시골학교 한개 반에서 네명이나 대학에 갔으니 너희들이 당연 최고였지.”라고 말했다. 교장선생님이 여태도록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그 말에 나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번 일은 더욱 생생하게 기억으로 남았고 내심으로 교장선생님이야말로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썩 후에 룡정고급중학교 교장에서 연변1중 교장까지 지내면서 역시 한평생 교육사업에만 전념해온, 우리 시골학교 교장선생님의 아들ㅡ리진선형님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런 일도 있었는가면서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40여년전 딱 한번밖에 없었던 어느 수수한 무명 시골학교 리동춘 교장선생님의 잊을 수 없는 그날 홍색교양수업, 그리고 수첩에 제자들의 이름까지 적어가면서 기억해주셨던 일, 오늘까지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어 행복하고 교장선생님이 오랜 세월 우리를 기억해줘서 감사하다.

/리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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