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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아이들의〈꿈터〉를 지켜가는 한수영 씨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5.25일 15:10
나와 그녀의 인연은 ‘애심’이라는 단어가 가교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퇴직후 연변애심어머니협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협회 부회장 겸〈꿈터〉원장인 한수영을 알게 되였다. 놀랍게도 그녀는 현재 아홉 ‘자식’을 키우는 ‘엄마’였다.



  '꿈터'의 한수영 원장

딸부자집의 맏이로 태여난 그녀는 취직후 같은 학교 동료인 착하고 대범한 총각과 꿈속에서 그리던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이듬해 떡두꺼비 같은 아들쌍둥이가 선물처럼 그들에게 찾아와 달콤한 신혼에 삶의 의미를 더한층 얹어주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교원인 그들 부부에게 있어 출근과 쌍둥이 부양을 병행하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당시는 월급까지 몇달씩 밀리다보니 더구나 힘들었다.

그녀는 깊은 고민 끝에 출국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인들한테서 리자돈 몇만원을 꾸어 떨어지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는 8살 쌍둥이를 떼놓고 그녀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낯선 일본으로 떠났다. 쌍둥이를 키우며 고생하는 남편과 밤마다 엄마를 찾으며 눈물범벅으로 잠자리에 드는 애들이 너무 그리웠으나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밤낮없이 일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악착같이 일하여 모은 돈을 들고 그녀는 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국땅에서 고된 막일을 하느라 쌓인 피로를 풀 념도 않고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동안 주지 못했던 정성과 사랑을 쏟으며 보다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2008년 3월, 그녀는 지인의 소개로 연변애심어머니협회에 성큼 발을 들여놓았다. 어릴 적부터 없는 살림에서도 나눔과 베풂을 실천해온 그녀는 회원으로서 성금 지원과 같은 협회의 활동이라면 항상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1년말, 김화 회장으로부터 협회에서 꾸리는 청소년〈꿈터〉를 잠시만 관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별 고민 없이 승낙했다. 그렇게 잠시만 ‘원장엄마’라는 신분으로 지내려던 것이 장장 10년 세월을 이어온 것이다. 강산이 변하고 꽃다운 얼굴에 잔주름이 가도록 여태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온 것은 적당한 후임을 찾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정이 들 대로 든 오갈 데 없는 애들을 몰라라 할 수가 없어서였다.



희로애락이 담긴 그녀의 ‘원장엄마’ 10년 인생사는 진한 감동을 주는 한편의 장편드라마나 다름없다. 처음에는 9살부터 12살 사이 고아들과 빈곤장애인가족의 애들 13명(6남 7녀)을 돌보게 되였다. 아이들을 책임진 그 날부터 어느 하루라도 편안하게 넘어갈 때 없이 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였다. 학교에서 호출장이 올 때마다 죄 진 엄마의 마음으로 정신없이 학교에 뛰여가 뒤처리를 하는 건 밥 먹듯 하는 일상이였고 애들이 열이 나거나 배가 아픈 등 증상으로 불편해하면 한밤중에도 허둥지둥 달려가 그 가냘픈 등에 무거운 애들을 둘쳐업고 병원으로 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녀자애들이 첫 달거리로 옷을 적시고 큰 병에라도 걸렸나 무서워하고 당황해할 때에도 친엄마의 마음으로 깨끗이 씻어주면서 성인이 되는 과정에 일어나는 생리현상임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고 심지어 남자애들의 포경수술에까지 신경을 썼다.

영양을 따져가며 하루 세끼 잘 먹여주고 학교에 보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사춘기에 들어선 애들의 예민한 정서와 반항심리를 잘 보듬어주는 게 가장 큰 난제였다. 특히〈꿈터〉에 모인 아이들은 대부분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어 조금만 건드려도 걷잡을 수 없이 터지군 하였다.

30여년 교원경력이라는 깊은 내공을 갖고 있는 그녀였건만 애들의 마음을 열기 위하여 밤을 패가면서 심리학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내심하게 또 엄하게 아이들을 교육하고 인도하였다. 한번은 남자애 셋이 남몰래 집을 빠져나가 PC방에서 밤을 새고 아침운동을 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자 한치의 양보도 없이 호되게 꾸짖어 다시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두었다. 또 이성에 어섯눈을 뜬 녀자애들이 친구를 잘못 사귀여 사고라도 칠가 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는데 혹 저녁에 나가는 경우가 있으면 뒤따라가서 그들의 수호천사로 되여주었다. 방학간에 아르바이트 체험하러 나간 아이가 사장의 꼬임수에 넘어가 사고를 칠 번한 것을 구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몇날 며칠 가지고도 모자란다.



그녀는 애들의 인격과 자존심을 지켜주려고 매사에 촉각을 세웠다. 항상 애들에게 “너희들은 비록 불우한 가정에서 태여났으나 많은 애심엄마들이 지켜주고 있으니 절대 기 죽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고 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힘을 실어주었다. 한번은 모 보도매체에서 인터뷰할 때 찍은 사진을 아이들의 동의 없이 다른 데 리용하려는 기미를 알아채고 애들의 인격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막아나섰다. 또 어떤 단체들의 자기 홍보 차원의 위문이거나 아이들의 자존심을 배려하지 않는 위문은 견결히 사절하였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관심하는 사람들의 배려는 고맙게 받아들이더라도 애들이 학교에 가고 집에 없을 때 방문하게 하였다. 그렇게 그녀는 애들이 불우한 가정에서 태여났다는 리유로 주눅이 들가 봐 항상 로심초사하였고 어깨 펴고 당당하게 살도록 큰 버팀목이 되여주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다년래 애들한테 쏟아온 그녀의 정성은 가족과 친척, 친우들까지 감동시켰다. 가족보다〈꿈터〉의 애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안해를 남편은 묵묵히 지지해주었고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쌍둥이들도 엄마를 ‘빼앗겼’으나 불평 한번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꿈터〉애들과 친형제처럼 화목하게 잘 어울리며 엄마의 일손도 곧잘 돕군 하였다. 명절 때마다 갈 데 없는 애들이 우르르 그녀 집에 모여서 명절을 쇠는 것은 이제 ‘전통’으로 되다싶이 하였다. 하여 그녀의 집은 설명절이면 항상 잔치집처럼 흥성거렸다.



어디 그뿐이랴.〈꿈터〉의 옛집에서 해마다 집세를 야금야금 인상하여 큰 경제부담으로 다가오자 그녀는 식구들과 토론하여 일년에 집세를 18,000원씩 받던 자기 집을 애들이 다 졸업할 때까지 무료로 내놓았다. 이렇듯 그녀 일가의 헌신 덕분에 애들은 근심걱정 없이 널직하고 아늑한 집에서 마음 편히 생활할 수 있게 되였다.

또 다른 난제는 보호자들과의 소통이였다. 이는 애들 관리 못지 않게 요긴한 일이기도 하였다. 보호자들과 수시로 련락하여 애들의 교육에 협조를 요청해야 했고 마음에 상처가 있는 보호자들의 심리상담까지 병행해야 했다. 그중에는 애를〈꿈터〉에 맡겨놓고 몇년 되도록 전화 한번 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보호자가 있는가 하면 자기 살기 바쁘다고 제 자식을 만나보려고도 안하는 무책임한 부모도 있었고 애가 앓든 말든, 입시준비를 하든 말든 아예 관심조차 없는 한심한 보호자도 있었다. 이런 보호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녀는 내심하게 소통해서 아이들에게 전화라도 자주 해주어 혈육의 정을 느끼도록 협조해달라고 부탁했다.



한심한 보호자 때문에 억울한 일도 많았다. 언젠가 한 아이가 고모네 집에 가서 하루밤만 자고 싶다고 해서 그 고모한테 전화했더니 고모라는 사람이 단칼에 거절하면서 “내가 왜 우리 집에서 재워야 하는가? 당신네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며 퉁명스레 내쏘았다. 가슴에 대못이 박인듯이 먹먹해났다. 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 친혈육이 아니라고 나눕는 보호자 때문에 억장이 무너질 때도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말은 못 들을지언정 내가 왜 이런 억울함을 당하면서까지 고생해야 하는지 하는 생각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는 불쌍한 애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모든 것을 참고 지금까지 지극정성을 다한다고 한다.

애들이 외출할 때마다 공항, 기차역, 뻐스역까지 바래다 주고 또 돌아오면 마중 나가기를 수십번, 시원찮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무거운 채소를 사들고 6층〈꿈터〉에 오르내리기를 수백번, 대성촌에 위치한〈꿈터〉로 향하는 무서운 밤길을 왕복하기를 수천번… 밤중에 집 나간 애들을 애 타게 찾아 헤매느라고 뜬눈으로 지새운 밤은 얼마였으며 같이 아파하고 속을 태우고 힘들어하면서 남몰래 흘린 눈물은 또 얼마였으랴…



사회를 맡은 연변애심어머니협회 부회장 겸 꿈터의 원장 한수영

“정성이 지극하면 돌 우에도 꽃이 핀다”고 그녀의 젊음과 건강, 사랑을 먹고 21명의 애들이 건전하게 성장하여 아름다운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녀의 바람 대로 애들마다 구김살 없이 바르게 잘 자랐고 하나 둘 어엿한 대학생으로, 청년으로 사회에 진출하였다. 키워준 은혜를 언제나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는 애들은 저희들 식의 보답을 잊지 않고 있었다. 연길에 오면 가장 먼저 원장엄마를 찾아와 회포를 풀면서 그리운 정을 나누었고 원장엄마 생일이나 교원절이 되면 고마움을 담은 손편지를 예쁜 꽃에 꽂아 선물했고 아파서 몸져누울 때면 울면서 달려와서 같이 아파해주고 건강을 빌어주군 하였다.



홍송자 가정을 찾은 연변애심어머니협회 방선화 회장과 한수영 부회장(자료사진)

“결혼할 때 원장엄마를 부모님 자리에 모시겠어요.”, “결혼식에서 원장엄마를 끌어안고 대성통곡할 것 같네요.”, “자식을 낳으면 원장엄마한테 맡겨야 시름 놓겠으니 손군을 키워주세요.”, “군대에 가면 ‘영광의 집’이라는 패쪽을 원장엄마네 집문에 꼭 달아드리겠어요.”… 천진란만한 애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가슴 뭉클해나는 진심, 이보다 더 값진 보답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이렇듯 잘 자라준 애들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고 십여년간 바쳐온 눈물과 땀방울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인생이 다 보상받는 듯하다고 감격해하고 있다.

  “주어도 주어도 더 주지 못한 아쉬움만 남는다.”는 그녀는 오늘도 아홉 자식 엄마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머지않아 그녀의 품을 뿔뿔이 떠날 꿈나무들에게 사랑을 듬뿍듬뿍 주면서 온실 안의 화초가 아닌 비바람 속의 송백으로 튼튼하게 키우고 있다.

  /연변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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