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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색 흔적 룡강에]당과 인민의 나팔수-라디오방송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6.15일 11:28
  1945년 8월 20일, 중국인민항일전쟁 승리의 노래소리와 함께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첫 지방인민방송국-흑룡강인민방송국이 설립되였다. 공화국인민라디오의 '장자'로서 한 세대 또 한 세대 흑룡강 라디오인들은 당의 령도하에 열정을 불태우고 청춘을 바치며 성실과 지혜로 기세드높은 라디오사업의 발전력사를 써내려감으로써 력사와 시대에 잊혀지지 않는 목소리를 남겼다.



  목소리로 시대의 변천을 기록하고 백성에 대한 관심을 전달하는 무형의 전자파가 흑룡강 인민들의 옆을 따뜻하게 지켰다. 흑토지의 상공에 울려퍼진 첫 목소리를 찾으려면 1923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진이태(陈尔泰) 전 흑룡강라디오텔레비전청 라디오텔레비전연구실 주임, 고급편집

  류한(刘瀚)이 무선전화기의 송신기를 라디오 송신기로 개조하여 만주리가 13번지에서 방송국으로 사용했으며 1923년 1월 1일 방송을 시작했다.



중국인이 자체로 설립한 첫 방송국으로서 할빈무선방송국은 중국어와 러시아어 2가지 언어로 매일 2시간 방송했으며 뉴스, 상업정보, 희곡, 일기예보 등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설립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할빈무선방송국은 공산당원과 헙력하여 할빈통신사를 설립해 당의 홍보진지 역할을 했다.







진이태 전 흑룡강라디오텔레비전청 라디오텔레비전연구실 주임, 고급편집

  진위인(陈为人)과 리진영(李震瀛)이 현지의 뉴스 원고를 제공했는데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할빈무선방송국은 이미 우리 당의 뉴스 원고를 직접 방송해 당의 주장과 방침정책을 홍보하는 것이 다름없다. 할빈 당조직 건설, 당원 발전과 관련된 최초의 단서를 할빈무선방송국에서 보내온 것이다. 할빈과 공산국제교통선의 련계 또한 할빈무선방송국의 러시아인을 통해 련계된 것이다.

  '9.18'사변 후 일본 외적들이 할빈을 점령했다. 할빈무선방송국은 할빈방송국(放送局)으로 이름을 바꿨다. 흑룡강 라디오인들은 당의 령도 하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전파 속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만주반대 항일 라디오프로그램을 방송했다. 1945년 8월 20일, 중국공산당 대표 류아루(刘亚楼)가 소련 홍군과 협동하여 방송국을 접수한 후 할빈방송국이라 이름을 바꿨다. 흑룡강인민라디오사업이 이때로부터 첫 페이지를 펼쳐나가게 되였다.





  70여년 전, 할빈시 송화강거리에서 흑룡강 인민방송의 첫 목소리가 울러퍼져나갔다. 당시 방송국의 홍보방침은 대중들을 당중앙의 주위에 단결시키고 군중대회 실황을 중계방송하는 외에 강연연설을 방송해 직접적이고도 생동하게 홍보를 진행하는 것이였다. 리조린동지가 수차 라디오방송국에서 강연을 해 당의 방침정책을 홍보했다.



림청(林青) 전 흑룡강성라디오국 국장 겸 흑룡강방송국 국장

  시작곡으로 해방구의 노래를 쓰고 싶었지만 당시 록음을 할 수 없었고 음반도 제작할 수 없었다. 당시 도서금(陶书琴) 아니운서가 방송과 피아노 연주를 모두 할줄 알아 그녀가 그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하기로 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 방송은 모두 그녀의 연주곡을 사용했다.





류단(刘丹) 전 흑룡강인민방송국 아나운서

  맨 처음에는 철사록음 형식이였다. 5, 60근에 달하는 록음기를 한 사람의 힘으로는 들 수가 없어 둘이 힘을 합쳐 운반했다. 겨울에 실외에서 록음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전지가 얼어버리기 때문에 가끔은 록음설비 두 세트를 준비해야 하기도 했다. 가죽외투를 기계 우에 덮어 씌워놓고 대기하고 있다가 한 록음기가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대기하고 있던 록음기로 다시 록음했다. 이렇게 여러번 록음해서야 겨우 록음을 마칠 수 있었다.

  수차 개명하고 여러번 이전한 인민방송국은 당중앙의 뒤를 줄곧 따르면서 새중국이 가시덤불에서 점차 광명에로 나아간 과정을 견증했다.



림청 전 흑룡강성라디오국 국장 겸 흑룡강방송국 국장

  개국대전 중계방송을 할빈팔구공원에서 진행한다는 자체가 엄청난 희소식이였다. 중계방송 전에 이미 나팔을 생산해 시구역, 회의장, 거리에 설치하는 등 10월 1일의 실황 중계방송을 위해 만단의 준비를 했다. 모주석의 우렁한 목소리가 할빈시 곳곳에 전해졌다.



  1950년 10월 19일,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진입하여 항미원조전쟁을 시작했다. 흑룡강은 견고한 후방기지로서 대중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동원하여 생산을 회복 발전시켰을뿐만 아니라 전선을 지원하고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조선전쟁에서 보내온 대량의 속보, 서신, 정보를 방송했다. 1952년의 겨울, 상감령(上甘岭)전역이 발발했다. 전선의 전사들은 포연탄우속에서 '누가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인가'를 듣게 되였다.





진이태 전 흑룡강라디오텔레비전청 라디오텔레비전연구실 주임, 고급편집

  한 전사가 아나운서 사영정(姒永晶)누나에게 편지와 함께 상감령의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조선전쟁터에 나간 지원군전사들이 크나큰 격려를 받고 '우리의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에 대한 국내 백성들의 료해와 지지 그리고 항미원조에 대한 열정이 갈수록 커졌는데 이 또한 라디오의 효과이다.



그 당시 설비가 루추하고 조건이 간고하던 단일한 방송국이 오늘날 설비가 선진적이고 보급범위가 광범하며 대오가 방대한 현대화한 융매체전파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흑룡강의 인민라디오방송사업은 혁명과 건설, 개혁의 각 력사시기에 줄곧 당과 인민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해 대대로 전해내려가며 조용히 발전을 거듭해 나가고 있다.

  /동북망 조선어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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