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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호조, 中공산당과 韩독립운동의 력사적 교차점

[인터넷료녕신문] | 발행시간: 2021.07.12일 09:35
올해는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중한 문화교류의 해'가 시작되는 해다. 중국공산당이 창건된 1921년은 중화민족이 국난을 겪던 시기였다. 당시 한민족 역시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 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한국의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중국을 거점으로 민족 독립운동의 홰불을 밝혔다.

항일투쟁의 력사 속에서 중국공산당원과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공동의 적 앞에서 서로 손을 맞잡았다. 형해명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공산당과 한국은 그 인연이 깊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림시정부 시기, 특히 중경시기에 주은래 등 중국공산당의 혁명가들은 김구 선생 등 한국 독립운동가와 우의를 다졌다. 이같은 교류와 협력은 중한 수교 이후 중국공산당과 한국 여야 각 정당과의 우호관계 수립에 기반을 제공해왔다.

신화통신 기자는 최근 중국내 여러 력사적 현장을 직접 찾아가 한국 근대 독립운동사 속에서 중국공산당과의 교차점을 조명했다.

◇상해-가흥, 력사의 우연한 일치

김승호 주상해한국총령사관 총령사는 최근 홍색관광버스를 타고 상해의 주요 '홍색 랜드마크(공산당 유적지)'를 둘러봤다.

그는 국가간 교류는 국민간 마음의 거리에 달려있고, 마음의 거리는 얼마나 서로 마음이 통하는 지에 달려있다면서 이번 홍색버스 탑승으로 중국 인민의 마음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 축하 인사와 함께 이번 홍색 랜드마크 려행을 통해 중국공산당의 창건 력사를 리해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지도 하에 인민이 함께 분투한 결과 중국이 오늘날과 같은 성과를 거두게 됐다며 상해가 바로 그 분투의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김승호 주상해한국총령사관 총령사가 홍색버스에 오르고 있다/신화통신


1921년 7월 23일 모택동, 동필무 등 중국 각지에서 온 초기 공산당 조직 대표들은 상해 프랑스조계지의 한 석고문(石库门∙상해의 전통 건축 양식) 건물에 은밀히 집결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프랑스조계지의 순경에 의해 회의장이 발각되자 대표들은 어쩔 수 없이 회의를 중단했다. 이어 8월초 가흥 남호로 이동해 유람선에서 회의를 재개했다.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중국공산당 창건이 정식으로 선포됐다. 이 때부터 중국공산당 혁명의 불씨가 타올라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주중 외교 사절단이 지난 6월 16일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기념관을 방문했다. 이날 40여개 국의 주중 외교 사절단이 중국공산당 중앙대외련락부와 상해시위원회의 초청으로 상해를 방문해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개최지와 기념관을 둘러봤다/신화통신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림시정부 역시 1919년에 상해 프랑스조계지에서 수립됐다. 이는 1910년 한일합병후 처음으로 수립된 망명정부였다. 림시정부는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상해 황포구 마당로에 위치한 한 석고문 건물을 청사로 사용했다. 이는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개최지에서 직선거리로 300m도 채 안되는 곳에 위치했다.

1932년 4월 29일, 한국의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본군을 향해 폭탄을 투척했다. 그 사건 이후 대한민국 림시정부는 상해에서 철수해 5월 항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홍구 폭탄 의거를 이끌었던 김구는 가흥으로 몸을 피했다.

이후 김구는 일본군의 추포를 피해 가흥에서 이곳저곳을 전전해야만 했다. 한때 그는 남호 호수가 한척의 배에 몸을 숨긴 적도 있었다. 1935년 가을 김구는 여러 림시정부 요인들을 가흥 남호로 소집해 선상에서 국무회의를 개최하고 향후 항일 독립을 위한 계획을 도모하기도 했다.




절강성 항주시 장생로에 위치한 '대한민국 림시정부 항주 옛터 기념관'이 2007년 11월 30일 문을 열었다. 사진은 2007년 12월 1일 촬영한 기념관 정문/신화통신


◇장사, 공동의 적에 맞선 협력의 장

대한민국 림시정부는 1932년 항주·진강을 거쳐 남경으로 이전한 후 1937년 말 장사에 둥지를 틀었다.

사실 중한 지식인들은 량국이 힘을 합쳐 외적에 대응해야 하는 필요성을 훨씬 일찍 절감했고, 이에 중국과 한국의 우호단체인 중한호조사(互助社)를 각지에서 결성했다.

1921년 3월 중국공산당 혁명가인 모택동, 하숙형은 호남성 장사에서 중한호조사를 설립했다. 중한호조사는 일본 침략에 반대하는 한국의 민족 독립 투쟁을 적극 지원했다.

장사 중한호조사는 대한민국 림시정부 선전일군이 호남지역에서 반일선전 활동을 펼치는 데 물질적으로나 도의적으로 적극 지원했다.




한국 독립운동 지도자인 김구를 기리기 위한 '김구선생 장사 진렬관'이 2006년에 장사시 악록산관광지에서 개관됐다. 2006년 4월 4일 한 남성 관광객이 진렬관내 김구선생의 조각상을 관람하고 있다/신화통신


우수근 한중글로벌협회 회장은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장사 중한호조사를 비롯한 중국 각지의 중한호조사는 당시 한중 량국의 항일 공동투쟁에 큰 버팀목이 되였다"며 "대한민국 림시정부 소속 한국인 독립운동인사들도 이를 또 하나의 거점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장사 중한호조사의 옛터가 자리한 선산학사는 현재 중국 문물보호기관의 관리하에서 외부에 개방됐다. 우회장은 "한중 량국의 소중한 우호와 련대의 상징으로서 이 옛터를 한국사회에도 적극 알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호남성 장사시 선산학사 옛터의 모습/신화통신


◇중경, 중한 우호의 력사적 현장

대한민국 림시정부는 청사를 계속 서쪽으로 이전하다 1940년 중경에 이르렀다. 이곳은 1945년 독립하기까지 대한민국 림시정부의 마지막 중국청사로 활용됐다. 이 기간에도 중국공산당은 한국의 독립운동에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중경 대한민국 림시정부 옛터 진렬관의 하설 부관장은 신화통신 기자에게 "이곳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이 바로 중국공산당 남방국 기관지 《신화일보(新华日报)》 영업부의 옛터"라며 "《신화일보》는 당시 대한민국 림시정부와 한국의 독립운동 상황을 가장 많이 보도했던 언론"이라고 소개했다.

광복후 대한민국 림시정부 요인들은 1945년 11월부터 중경을 떠나 고국땅으로 돌아갔다. 김구의 《백범일지》에 따르면 당시 주은래, 동필무를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자가 림시정부 국무원 전원을 위해 송별연을 개최해주었다.




중경 대한민국 림시정부 옛터 진렬관 전경/진렬관 제공


1992년 8월 24일 중화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정식 수교했다. 한국측 인사들은 대한민국 림시정부 옛터를 복원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이곳은 당시 주민들의 거주지역이자 상업용 부동산 개발 대상 지역이였다.

하설 부관장은 "중경시정부는 경제적 손실을 무릅쓰고 기업에 보상금을 지급해 이 터를 보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급적 원래 형태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대한민국 림시정부 옛터를 복원해 1995년 8월 정식 개관했다고 밝혔다.

2000년 한국과 중경간 하늘길이 열렸다. 중한 각 분야 교류가 갈수록 활성화되면서 중경 대한민국 림시정부 옛터 진렬관을 찾는 사람도 점차 늘고 있다. 하설 부관장은 "2010년 이후 관람객이 크게 늘기 시작해 2019년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며 "약 5만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한국류학생 김민희씨가 지난 5월 중경 대한민국 림시정부 옛터 진렬관을 관람하고 있는 장면/신화통신


많은 한국 관광객이 중경 대한민국 림시정부 옛터를 복원하고 보존해준 중국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개관 20여년 동안 관람객들이 남긴 100여권의 방명록이 바로 중한 량국의 깊은 우호교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한국 대통령 역시 2017년 12월 16일 중경을 찾아 림시정부 옛터 진렬관을 방문했다. 그는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대한민국 림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정신입니다."

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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