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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꾜도 지정급수장치공사 사업자인 주식회사 에므에이 대표 마홍철의 이야기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7.12일 14:39



주식회사 에므에이 대표 마홍철

  2014 년부터 5년간 재일조선족축구협회 회장을 련임했으며 임기기간에 네차에 걸쳐 재일조선족 운동회를 조직,주최한 마홍철 전임회장은 만날 때마다 유니폼모습인데다가 마이크거나 카메라 렌즈를 자주 피한다. 일본땅에서 진행되는 크고 작은 조선족들의 행사장에 빠질 때가 없고 발로 뛰는 리더로 손색이 없는 그의 진 모습은 도꾜도 지정급수장치공사사업자인(東京都指定給水装置工事事業者) 주식회사 에므에이(エムエイ)의 대표이다.

  흑룡강성 녕안시 마련하향(옛 녕안현 마하향) 려명2촌에서 3남3녀의 막내로 태여난 마홍철은 선후하여 려명촌 소학교, 녕안초중, 목당강고중을 마치는 과정에 줄곧 말썽거리의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거기에 몸까지 허약했던 그가 무사히 고중을 졸업하기까지 집식구들과 선생님들, 특히는 큰 형수에게 더할 나위없는 페를 끼쳤다고 한다. 다행히 고중 2학년때 심하게 흉막염을 앓고 난 뒤 정신을 차린 덕에 그는 1987년에 학교의 추천으로 할빈공업대학 정밀기계전업에 입학하였다.

  대학졸업 후 치치할시 제2선반기(机床) 공장에 배치를 받은 마홍철은 1년후인 1992년 7월에 휴가로 천진에 갔다가 사업의 길에 발을 담그게 되였다. 당시 천진제1판점에서 조선료리점을 경영하고 있었던 큰 형수님의 권유로 음식업경영을 배우기로 했고 천진개발구 무역회사에서 무역업무를 습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7년에 일본류학의 길을 택한 그는 이듬해에 니혼대학(日本大学) 리공학연구과 기계전공 연구생에 합격했다.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마홍철은 그에 걸맞게 진솔하기도 하다. 사실은 연구가 자기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 솔직히 말하면서 어쨌든 류학생신분에 맞게 매일 열심히 학교에 가야 했고 그 학비를 벌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고 일본에 온 초기를 회억했다. 학비장만에 정신이 몰려 실험과목을 홀시했던 그는 졸업론문에서 필수인 실험데이터가 많이 부족함을 뒤늦게 깨달았다. 졸업을 앞두고 하는 수 없이 휴학을 신청한 그는 1년만 열심히 돈을 벌고 다시 학교에 돌아 가기로 작심했다.

  그럴 즈음에 친구가 좀 돈이 되는 아르바이트라고 하면서 수도공사장 현장일을 소개해 주었다. 땅파는 일이며 파괴된 수도 배관일이며 밤낮을 따지지 않고 한달동안 고생한 끝에 처음으로 40여만엔을 손에 쥐게 된 마홍철은 흥분했다. 여태 편의점에서 밤을 새며 벌었던 액수에는 비기지도 못할 큰 돈이였던 것이다. 하루빨리 가족이 함께 살 날만을 그리며 힘든 줄을 모르고 열심히 현장을 뛴 그였다. 그렇게 넉달이 지나자 회사 사장이 취직을 하지 않겠냐고 그를 찾아왔다.

  복잡한 것들을 제치고 우선 30대중반에 들어서기 시작한 자기의 나이와 고향에 두고 온 안해와 아들, 그리고 대학원을 힘들게 졸업한 후에도 보장될 수 없는 취직에 대한 불안함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자기한테 대학원공부도 취직을 위한 한개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한 그는 2000년 6월, 대학원을 중퇴하고 주식회사 유이(由井)공업에 현장대리로 취직했다.

  드디여 세식구가 단란하게 모여 살게 되였고 회사업무에서의 그의 습숙도(習熟度)도 높아갔다. 하지만 옹근 4년동안 힘든 현장관리와 복잡한 사무적인 일까지 도맡아 했지만 그에 상응되는 직함이 부여되지 않았다. 게다가 오래된 경영관리방식때문에 회사수익이 확연하게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에게 보너스가 지불되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동료들이 하나 둘 그만두고 나면 현장대리인 마홍철이 구멍 뚫린 자리를 메우기 위해 일군들을 모집하느라 사처로 뛰여야 했다. 매번 회사업무는 정상적으로 유지되였지만 중압으로 오는 심한 스트레스때문에 병원을 자주 찾게 된 그는 회사의 만류도 마다하고 6년만에 유이공업을 퇴사했다.

  오래전부터 창업을 꿈꿨지만 손에 쥔 것이 없었던 마홍철은 유이공업시기 1년간 파견근무를 했던 주식회사 타루미(タルミ) 사장을 찾아 갔다. 마침 두개의 큰 수도공정을 따왔던 사장은 창업자금을 모을 때까지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하는 마홍철에게 그 두개 공사의 현장대리를 맡겼다. 현장에서의 책임감과 직심스러운 일자세는 어디서나 변함이 없었다. 1년후 두 공정에서 천만엔의 수익을 올린 마홍철은 타루미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게 되였고 파견근무시절에 얻었던 신용을 다시 확인받게 되였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믿음이 생기고 나면 무슨 일이든 진척이 빨라졌다. 이듬해인 2007년, 타루미의 기계설비와 창고를 빌려 쓰기로 계약한 마홍철은 우선 자영업의 형태로 독립을 선고하고 타루미를 경유하는 수도공사일들을 독립적으로 맡아 하기 시작했다.

  생 각보다 자금이 딸렸다. 전부의 공사가 끝난 후에야 투자자금회수가 가능하였기에 공사기간중의 지출은 마홍철 자신의 개인신용카드로 담당하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한동안 불안한 경영방식인 ‘자전거조업(만성적으로 자기 자본이 부족하여 타인 자본을 잇따라 거두어 들여서 가까스로 계속하는 조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말)’을 계속하면서도 직원들의 월급을 미룬 적은 한번도 없었다. 직원들의 건전한 심리와 정서가 현장에서의 안전과 효률을 결정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였다.

  유이공업에 몸을 담궜던 6년간은 헛된 기간이 아니였다. 여러 현장에서의 인맥은 물론, 공사일에 대한 성실함과 회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마홍철은 주위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여 어려웠던 창업초기 옛 동료들이 찾아와서 힘을 모아 주었고 옛 거래회사가 일거리를 주선해 주기도 했다. 중고설비를 제공해 주는 사람과 자금을 변통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덕분에 매번 맡겨진 공사일들을 원만히 끝마치군 했지만 마홍철 자신에게는 크게 리익이 없었다. ‘플러스마이너스제로’였다. 그래도 한번 파기 시작한 우물을 떠나지 않고 꾸준히 파온 마홍철이였다.

  어느 한번 현장에서 생긴 미스때문에 타루미의 사장부부와 함께 관련 원청회사였던 신니혼공업(進日本工業) 사장을 찾아가 사과를 하게 되였다. 그때의 그 창피함과 미안함을 오늘까지도 잊지 못하겠다는 마홍철이다 .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원청회사 사장과 직접 만나게 되였고 엄격하기로 소문난 사장의 직접적인 감독을 받게 되였다. 비록 하청회사인 타루미를 통하여 계약하는 공사였지만 신니혼공업의 위상에 손상주는 일 없게 직접 공사현장을 책임지는 일은 마홍철의 어깨에 놓여져 있었다. 우직하게 돈 버는 일보다 공사현장을 책임지는 일에 신경을 썼던 2년이 흘렀다.

  업계내 전국적으로 21번째의 규모를 갖춘 신니혼공업은 치바켄(千葉県)내의 거의 대부분 수도공사 공지를 도맡아 하는 비교적 큰 그룹회사이다. 헌데 가끔씩 맡는 도꾜도(東京都)내의 수도공정에서 현장대리의 불찰로 도꾜수도국에 신용을 잃은 적이 몇번 있었다. 고민중이였던 사장은 도꾜도의 수도공사현장일에 능숙한 마홍철에게 법인회사를 세우고 직접 하청회사로 들어 오라고 권했다. 난감해하는 그의 기색에 영문을 묻고난 사장은 즉시 회사설립에 필요한 자금과 인맥을 제공해 주었다. 하여 2009년 주식회사 에므에이(株式会社エムエイ)가 세상에 나왔다. 그동안의 인내와 노력이 드디여 결실을 맺게 되였던 것이다.

  이듬해인 2010년, 에도가와쿠(江戸川区) 시시보네(鹿骨)지구의 1,7억엔짜리 공사입찰에 성공한 신니혼공업은 주식회사 에므에이와 직접 하청계약을 맺었다. 하여 모든 현장 감독 책임과 계약절차를 도맡은 신니혼공업이 입찰액의 30%를 수익으로 얻게 되였고 마홍철은 나머지 70%로 인건비와 재료비를 포함하여 전반 공사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공사일은 계약대로 반년만에 원만하게 완수되였고 신니혼공업은 도꾜도에서의 신용을 되찾게 되였다.



안전회의

  2012 년부터 신니혼공업은 도꾜도내에서의 수도공사업무를 에므에이에 맡기기 시작했다. 서류작성을 비롯한 구체 계약업무와 현장감독업무가 늘어남에 따라 원청회사인 신니혼공업과의 거래 비률이 3:7로부터 1:9로 변했다. 큰 변혁이였다. 회사는 차츰 궤도에 들어서게 되였고 사회적으로나 업계적으로도 크게 인정을 받게 되였다. 신니혼공업과의 신용관계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찍 2001년에 급수장치공사주임기술자 자격을 취득한 마홍철사장은 회사명목으로 2015년 관(管)공사업 허가를 받았으며 2017년에는 지정급수장치공사사업자 자격도 따냈다.

  지정급수장치공사사업자란 정부기관이 경영하는 수도사업자로부터 물공급구역내에서 급수장치공사에 포함되는 모든 공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인정받은 자를 말한다. 일본의 수도법에 의하면 지정급수장치공사사업자가 진행한 급수장치공사여야만 물공급을 할 수 있으며 급수구역내 급수장치공사를 진행하려면 수도사업자에 신청하고 지정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적어도 신용만 지키면 지정급수장치공사사업자 자격을 가진 에므에이는 앞으로 창창한 길을 걷게 될것이라는 숨은 뜻이 되기도 한다.



제4회 재일조선족운동회 집행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마홍철

  신용을 목숨처럼 여기고 일을 위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일관계를 줄곧 유지해 온 마홍철사장은 수도공사업계로 인도해준 유이공업과는 곤난이 있으면 함께 이겨나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가고있다. 뿐만 아니라 재일조선족 축구협회와 재일조선족 운동회는 물론 일본에서 진행되는 모든 조선족들의 행사들을 적극 지지해온 그는 연변축구와 9.3애심컵 중국조선족씨름경기 등 중국내의 조선족 행사도 물심 량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도 나눔을 향한 그의 행보는 계속될 것이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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