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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영자교원, "민족교육에 큰 공을 세운 사람"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7.28일 11:16



  계영자(1954년생)는 근 30년간 교육계에 몸담고 '당과 인민의 교육사업에 충성'하는 초심으로 자신을 불태워 대련시조선족학교의 비약을 실현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평범한 어문교사였던 그가 해변도시 대련시에서 우리 민족 교육자의 꿈을 실현하기까지, 지금도 그의 가슴 속엔 자부심과 민족심,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하다.

  길림성 반석 태생인 계영자는 1982년 연변대학을 졸업한 뒤 대련시83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984년 조직의 배치에 응해 대련시조선족소학교로 전근했다.

  " 고학력 인재가 왜 굳이 소학교에..."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동기들의 눈초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영자는 일선에서 노력 을 경주하여 상급의 인정을 받았고 점차 사회에서 두각을 내밀었다. 어문교사에서 교무처 주임, 당지부서기, 교장에 이르기까 지... "조선족학교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된 그 순간부터 저는 당과 민족교육 사업을 위해 평생 충성할 것을 다짐했어요." 그가 밝 힌 소신이다.

  민족학교의 리더가 된 후 그는 자신을 더욱 엄격히 요구했다. 부단한 학습으로 리념을 수립하고 실천을 통해 확고히 했다. 당시 대련시 조선족소학교는 학생 수가 불과 43명이고 변변한 교수청사조차 없었다. 학교를 잘 꾸리자면 일정한 규모를 갖추어야 하고, 학생래원 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을 간직해온 그는 교장으로 임명된 후 오래동안 생각해왔던 대담한 발상을 내놓는다. 바로 9년제 민족학교를 설 립하는 것이다.

  실 천파, 노력파였던 계영자는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이라 여겼던 이 '제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관련부문에 '제안'을 제기하고 대련 시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들이 학교를 시찰하는 기회를 빌어 학교상황을 실사구시하게 회보함과 아울러 중학부를 설치할 필요성을 재 차 강조했다. 이 같은 그의 노력은 대련시위와 시교육위원회의 긍정과 높은 중시를 불러일으켰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그는 또 대련시 조선족 유지들을 학교에 초청해 좌담회를 수차례 열고 9년제 학교 설립의 필요성과 미래 계획에 대해 설명하며 사회 각계 조선족 유지들의 성원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의 강한 의지와 흔들림없는 추진력으로 1998년 9월 28일, 드디어 해안도시 대련시에 9년제 민족학교가 우뚝 일떠섰다. 대련시조 선족학교는 설립된 지 장장 반세기만에 '9년제 학교'라는 날개를 달고 학생이 초기의 50명 미만에서 400명으로 부쩍 늘어나면 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됐다.

  학교를 운영하자면 반드시 뚜렷한 육성목표가 있어야 한다. 새 교수청사가 생겨난 뒤 계영자는 학교 지도부 성원들과 함께 밤샘작업으 로 개진할 문제, 추진할 목표 등을 론의했다. 그는 솔선수범하여 사랑이 넘치는 학교, 학생들이 주인인 배움의 요람을 만드는 데 혼 신의 노력을 기울였고 특히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특별한 도서관인 '개방식 책장'을 설치하여 학생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 는 여건을 마련해주었다. 계영자의 리드하에, 전체 사생들의 노력하에 학교는 '동북3성 조선족학교 혁신교육 실험기지', '대련 10 대 명교' 등 영예를 이룩했다.

  민족교육에 대한 헌신적 자세와 일관된 신념으로 계영자는 9년제 민족학교가 설립된 지 3년 만에 고중부까지 설립하여 학교를 유치원부터 소학부, 초중부, 고중부에 이르는 완전한 학교로 탈바꿈시켰다.

  1999 년 계영자 교장의 사적을 집대성한 다큐멘터리 《도시의 진달래》가 CCTV 제1채널과 대련텔레비죤방송국에서 방영되였고 같은 해 그 의 발자국이 소수민족중 유일한 조선족으로 대련시 성해광장 백년조각에 새겨졌다. 이외 2002년에는 사적이 중국 《조선족전통미덕이야 기대전서》에 실렸고 2016년에는 《중국조선족백년실록》에 실리며 그의 공헌을 충분히 긍정했다. 사람들은 그를 "대련시 조선족교육 에 재생과 부활의 힘을 부여해준 사람", "민족교육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라고 엄지를 내민다.

  계영자는 재직기간 여러기 대련시정협 위원으로 활약하였으며 퇴직후에도 조선족단체의 중요직을 맡으면서 대련시 조선족사회의 발전에 남다른 기여를 하였다.

  " 입당후 초심과 사명을 잊은 적 없고 더욱이 민족을 잊지 않고 일해왔어요. 교육자로서 민족교육에 올인하는 것은 본연의 책임이고 사명 이라고 생각해요. 30년 교육사업에서 학생들의 순진한 표정, 기대에 찬 학부모들의 눈빛이 제겐 가장 큰 응원이자 위로였어요." 계 영자가 민족교육을 위해 남긴 발자국과 공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계영자 프로필

  1954년 길림성 반석현 출생

  1982년 7월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1982년 7월 - 1984년 3월 대련시제83중학교 교사

  1984년 4월 대련조선족소학교 교사

  대련시조선족학교 교장 겸 당지부서기 력임, 현재 퇴직

  대련시정치협상회의 제7기~제10기 위원

  대련시부녀련합회 제10기 집행위원

  1999년 전국민족단결진보모범개인

  1999년 발자취가 성해광장 백년조각에 유일한 조선족 대표로서 새겨졌음

  2016년 중국조선족 100년 실록에 사적 기재

  2019년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주년 기념메달

  연변작가협회, 대련조선족문학회 회원, 료녕성조선족문학회 회원

  수필집《추억이 깊은 곳엔 파란 꽃이》(중문판, 조문판) 출간

  장편실화《원색기억-동북에서의 조선족 일가의 이야기》(중문판) 출간

  수필, 실화문학 30여편 발표

  



어머니와 언니들과 함께(앞줄 왼쪽 첫번째 계영자)



1981년 대학 실습기간 선생님 및 동창들과 함께(앞줄 중간 계영자)



지난 80년대 대련 유람선에 탄 계영자 부부



1999년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50주년 경축대회 참가



유일한 조선족 대표로 발자취를 대련 성해광장 백년조각에 남겨



중국 저명 군대작가 고옥보(高玉宝), 모주석 등 당중앙 령도 통역을 담당했던 김도영(金道永)과



대련시조선족학교를 찾은 장보경(张宝庆) 교육부 부부장과



대련시조선족학교 설립 60주년 경축대회



《원색기억-동북에서의 조선족 일가의 이야기》 출판기념식에서(왼쪽 5번째 계영자)

  /료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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