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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옛말하면서 살 날이 왔습니다”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8.31일 10:34
  

  힘든 액화가스 배달로 생활의 어려움 이겨낸 김은자



  화룡시 붉은태양 광장에서 흥겹게 춤추고 있는 김은자(왼쪽)

  화룡시 문화가 문성사회구역에 가보면 흥겨운 춤노래로 만년을 즐겁게 보내고 있는 사회구역 민간예술단의 로인들을 볼수 있다.

  이라는 무용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아름다운 민족복장차림을 한 로인들이 위대한 당과 조국을 노래하는 소박한 념원을 무용에 담아 표현했는데 수준높은 무용표현이 전문예술단체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 민간예술단에는 올해 70세인 김은자로인도 들어 있었는데 오늘날 이렇게 행복한 세상에서 즐겁게 만년생활을 보내기까지는 지지리도 힘들고 어렵던 과거를 지나왔다면서 “이젠 옛말하면서 살 날이 왔다”고 밝게 웃고 있었다.

  푼돈벌이로 곤경을 헤쳐가며

  기자와의 취재를 약속한 8월20일 오전, 김은자로인은 뜻밖에도 20여년전의 신문들을 한아름 가득 안고왔다. 당시 여러 신문잡지들에 실렸던 그녀의 선진사적들을 스크랩해둔 것들이였다.

  그녀가 들고 온 1997년 8월19일자 《길림신문》 제3면에는 라는 제목으로 된 김은자의 사적이 실려 있었다.

  당시 화룡시합판공장에 다니던 김은자는 300원도 안되는 로임으로 네식구가 생활하고 거기에다 간경화복수와 고골두무균괴사로 앓고 있는 남편의 병치료에 또 아들딸 두 자식의 공부 뒤바라지까지 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합판공장에 의외의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원래 경기가 그닥잖던 공장이 불경기 상태에 빠지면서 로임도 내줄수 없는 상황이 되는바람에 생활이 궁핍해졌다. 돈 나올데라고는 없는 살림형편에 로임마저 끊기고 보니 가정의 경제적인 부담이 가장 컸다.



  “이젠 옛말하면서 살 날이 왔다”면서 활짝 웃고있는 김은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역경을 마주한채 가만히 앉아 있을수만은 없었다. 생각던 끝에 김은자는 작은 돈벌이부터라도 시작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해바라기씨 장사부터 시작했는데 낮이면 공장에 나가고 밤이면 머리수건을 동여매고 영화관앞에 나앉아 해바라기씨를 팔았다. 온 밤 팔아도 수입이 본전을 제하고 나면 3원도 되나마나 했다. 그래도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한달에 액외로 근 100여원되는 수입이 생기게 되니 생활에는 큰 보탬이 되였다.

  작은 벌이라도 꾸준이 하면 돈벌이가 된다는 신심에 김은자는 짬짬이 화룡시 신동소학교 뒤길에 가서 아이들이 즐겨먹는 엿이며 껌, 빵같은 사소한 군입질 거리들을 팔아서 푼돈을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안되여 공장이 불경기를 이기지 못하고 아예 방학을 한채 문을 닫게 되면서 그녀는 하루 아침에 정리실업자로 되고 말았다. 그나마 몇달에 한번씩이라도 주며말며하던 로임마저 영 끊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남편의 병치료나 아이들 학비는 고사하고 당장 온집 식구가 입에 풀칠할 일에 눈앞이 캄캄해났다.

  ‘메이치 아재’로부터 ‘메이치 아매’로 되기까지

  ‘메이치’(煤气)라고 하면 액화석유가스(液化气)의 한어발음이다. 공장이 방학하면서 수입래원이 끊긴 김은자는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험한 일, 궂은일 가릴 형편이 못되였다. 그때 합판공장에 다니던 동료 한사람이 액화석유가스를 대신 넣어서 집집이 배달해주는 일을 하면 한통에 1원은 벌수있다는 돈벌이 정보를 알려 주었다.

  다른 장사를 하자고 해도 밑천이 없다보니 할수 없었고 본전이 적게 드는 액화가스 대리 운반일을 하는 것이 그래도 좋을것 같았다.

  처음에는 자전거에 주문받은 액화가스통 한두개씩 싣고 다니면서 날랐다. 그러나 마흔살이 넘은 녀성의 몸으로 60근도 더 되는 액화가스통을 메고 들고 하면서 집집이 날라다 준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더우기 액화가스를 넣어주는 공급소가 화룡시내와 떨어진 서남쪽 교외에 자리잡은 묘포장에 있었는데 길이 멀고 또 흙길이여서 자전거에 무거운 액화가스통을 싣고 다녀오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였다. 길이 험해 중도에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진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때마다 김은자는 당장이라도 힘든 이 일을 뿌리쳐 버리고 싶었으나 가스통 하나를 주민호에 배달하면 3원은 벌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털고 일어나군 했다. 부스럭돈이라도 집으로 들고 들어가면 병들어 누운 남편과 아이들이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면서 다시 힘을 내군했다고 김은자는 그때를 회상했다.



  어렵던 시절의 가족사진

  그녀가 자전거로 한집,두집 가스통을 날라주는 것을 본 주위사람들도 그녀에게 액화가스를 부탁하면서 점점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자전거로는 날로 늘어나는 액화가스 배달수요를 만족시킬수 없었다.

  좀더 크게 일을 벌리자면 변변한 운수도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3륜차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삼륜차를 사려고 해도 돈이 없었다. 김은자는 렴치불구하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 역시 단위의 불경기때문에 여러달째 로임을 못타고 있었지만 김은자가 삼륜차를 사서 장사해보고 싶다는 말에 선뜻이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모아두었던 400원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삼륜차를 마련한후 딸이 운전할줄 모르니 년로하신 아버지가 나서서 그녀와 함께 묘포장까지 가서 가스통을 실어다 주군 했다. 70세가 넘으신 아버지가 제구실도 못하는 딸을 위해 삼륜차 구입비용은 물론 삼륜차까지 밀어주면서 땀을 흘리시는 모습을 본 딸의 마음은 오죽했을가?! 김은자는 당시 밤이면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서 남편과 자식몰래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거듭 눈굽을 찍었다.

  삼륜차로 액화가스를 여러 집에 나르기 시작해서부터 더욱 많은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메이치 아재, 우리집에두 실어다 주세요…”하루에도 몇번씩 이런 부탁들을 받으면서 김은자는 자연히 화룡시의 ‘메이치 아재’로 불리우게 되였다. 당시 화룡시에는 액화가스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서넛 있긴 했지만 조선족, 더우기 섬약한 녀성의 몸으로 액화가스통을 지어나르는 사람은 김은자 한사람밖에 없었다. 밖에 나서면 모두들 그녀를 ‘메치아재’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녀는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돈버는 재미에 오히려 그 부름이 정답기만 했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남편의 병치료를 위해 고생해도 힘든줄 몰랐다

  그렇지만 기분상하게 하는 일들도 적지 않았다. 오뉴월 땡볕에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땀벌창이 되여 삼륜차를 몰고 갈때면 어떤 불량한 청년들이 “녀성은 꽃이라네” 하고 비웃듯 노래하면서 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김은자는 누가 자기를 꼴불견이라고 놀려주는 것만 같아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허위허위 6층까지 가스통을 메고 올라 갔는데도 인차 받아줄 대신 늦게 왔다고 생트집 부리는 사람들도 있어 야속하고 속상했던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때마다 김은자는 돈버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하물며 내가 살기 위해 하는 일인데…하고 생각하고는 서글퍼지려는 마음을 애써 달래군 했다.

  이렇게 악을 쓰고 일하다나니 수입도 늘고 방법도 점차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화를 집에 가설하고 남편이 집에서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김은자가 채워주는 액화가스통은 근수를 속이지 않아 오래 쓸수 있었고 또 신용을 지켜 제때에 문전송달해주었기때문에 날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단골이 되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일재간이 늘고 또 일욕심도 커지자 후에는 또 소형자동차까지 세내여 액화가스를 더 많은 주문호에 날라다 주었으며 수입도 더 늘일수 있게 되였다.



  1997년 아들 고홍근이 참군할때 찍은 가족사진

  2000년도에 김은자녀성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총공회로부터 ‘주정리실업녀종업원 재취업스타’로 표창받았는데 그때 그녀는 표창대회 발언고에 다음과 같이 자기의 속심말을 적었다. “저는 내 집, 내 자신만을 위한 사람이 되지 않고 화룡시안의 액화가스 주문호들에 진정으로 편리를 도모해주는, 시민들의 훌륭한 심부름군이 되여 남아있는 여생을 보람있게 가꾸어 가려 합니다…”

  40대초반인 90년대 초부터 시작했던 액화가스 대리운수일을 그녀는 56살까지 무려 10년 넘게 했다. 처음에 ‘메이치 아재’라고 부르던 손님들이 ‘메이치 아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메이치 아재’가 ‘메이치 아매’로 바뀌기까지 김은자는 많은 고생도 하고 수모도 더러 받았지만 그래도 마음만 굳게 먹는다면 살아나갈 길이 반드시 생긴다는 굳은 신념을 마음속깊이 간직하게 되였다.

  고생끝에 락…자식들 인재로 성장

  그동안 그녀는 힘든 액화가스 배달로 돈을 벌어서는 남편의 병치료를 위해 애썼고 아들딸의 공부뒤바라지를 열심히 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했지만 김은자의 지극정성에도 남편은 8년간이나 병환에 있다가 후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보니 딸 고홍매는 공부를 잘했지만 결국은 길림성경찰전문학교밖에 가지 못했다. 그러나 홍매는 어머니가 애써 자식들을 키운 정성과 피타는 노력을 잊지 않았다. 2004년도에 대학을 졸업한후 고홍매는 공무원시험에 합격되였으며 꾸준한 노력으로 사법고시도 통과해 판사로 되였다. 사업에 참가한후에는 사업에 힘써서 지금은 화룡시 림업기층법원 집행국의 국장으로까지 성장했다.

  아들 고홍근은 연변재정학교를 졸업했으며 영광스럽게 군복무까지 마쳤으며 지금은 한국에 나가 일하고 있다. 아들딸이 모두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출세한 셈이다. 아들딸들을 모두 대학생으로 키워 사회의 떳떳한 인재로 내놓기까지 김은자녀성이 감내한 고통과 어려움은 또 그 얼마였을가?



  법관으로 키운 딸 고홍매의 행복한 결혼식날

  “살아온 과거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모든 역경을 헤치고 나와보니 고생한만큼 그 보람도 큽니다. ‘고생끝에 락’이라더니 부모님을 향한 자식들의 관심과 효도 또한 지극하니 더 바랄게 없지요” 하고 김은자로인은 흐뭇해했다. 중국공산당의 옳바른 령도하에 날따라 번영부강해져 가는 우리 나라의 부민정책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주민들의 행복한 생활이 결코 있을수 없었을것이라고 김은자는 힘든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솔직하게 고백했다.



  만년에 춤노래로 여생을 즐겁게 보내고 있는 김은자(왼쪽)

  김은자로인이 사회구역 민간예술단에 나와서 춤과 노래로 만년을 즐겁게 보낸지도 이젠 3년철을 잡는다. “근심걱정이 없습니다. 춤추러 나오는 것도 로인들과 어울려 활동하면서 모두들 마음이 즐겁고 건강을 위해서지요. 우리 예술단의 모든 로인들이 다 저처럼 매일매일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당과 국가의 혜택으로 달마다 퇴직금이 나오고 아들, 며느리, 딸, 사위 모두 항상 어머니에게 관심을 돌리고 효성이 지극하니 이젠 힘들던 옛날도 다 지나가고 옛말하면서 살때가 되였지요.이 좋은 세월에 오래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야지요” 김은자로인은 취재를 마치자 곧 춤추러 가봐야 한다면서 사회구역 활동실로 달려갔다.

  좋은 세월을 만나 매일같이 아름다운 춤노래속에 묻혀 활력과 기쁨으로 차넘친 김은자로인의 만년일상과 밝고 명랑해진 모습은 누가 봐도 행복했고 박수를 보내주고 싶을만큼 멋져 보였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 사진 김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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