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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령령 사장, 행복은 분투로 이루어진다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9.03일 13:36
  3개 회사 백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전도유망한 기업가 류령령, 연변에서의 12년 분투 발자취 더듬어



연길시 공원로 연변대학구간의 문화성은 간판으로 도배했다.

  “간판을 보면 그 도시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생신한 아이디로 설계한 아름다운 간판은 업체의 이미지 뿐만 아니라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고 가치를 높여준다.

  연길을 다녀가는 국내외 손님들은 연변의 아름다운 야경과 눈길을 자극하는 다종다양한 옥외광고와 각자 개성이 있는 영업간판들을 보고 북경, 상해와 같은 대도시의 거리와 못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처럼 연길(연변)의 도시품위를 올려주는 데 일조한 잘 알려지지 않은 업체가 있다. 바로 각종 간판을 제작하고 야경을 설치하는 광고제작업체이다.

  조사에 의하면 연길시에 각종 간판의 설계, 제작, 설치를 일체화한 대형 광고제작업체가 10여개 있는 데 그중 연변거룡광고유한회사는 대형표시판, 옥외광고, 도시량화공정, 스크린광고 등 분야에서 연변내 40%이상의 광고제작물량을 소화한 규모가 큰 회사이다.

  소유의 금속판에 글자를 새기고 조각할 수 있는 레이저금속조각기(激光金属雕刻机)를 포함하여 디지털벤더(数控折弯机), 디지털판전단기(数控剪板机), 디지털프레스(数控冲床),레이저커터(激光切割机),금속광택기(金属抛光机),3D 프린터 등 20여종의 현대화 제작설비가 구전하고 백여종의 조한문간판글자체를 개발하고 보유한 이 회사는 2009년에 설립된 나어린 회사이지만 12년간의 노력을 거쳐 연변에 3000여개의 크고 작은 거래처를 둔 실력이 탄탄한 회사다.

  이렇듯 규모가 방대하고 광고계를 석권하는 회사의 리사장이 올해에 36세인 나젊은 녀성이다.



류령령 리사장.

  1.가정난으로 대학꿈을 포기하고 빈손으로 생활에 도전하다

  “얼 마나 대학을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남에게 손내밀기도 싫었고 궁핍함을 호소하기도 싫었다.” 고중을 졸업하고 천진교통대학 입학통지서를 받아쥔 그녀는 며칠동안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그 때 너무나 많이 울어서 그런지 지금도 어지간한 일에는 눈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게 그녀의 말이다.

  “기 실 농촌에 계시는 부모들에게 근심을 끼쳐드리기 싫었다. 그래서 대학에 붙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통화로 갔다.” 통화는 그의 고향인 류하보다 더 큰 도시였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그곳에 가면 밥먹을 일자리를 찾을 것만 같았다.

  “또 래 친구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때 나는 보신탕집에서, 물만두집에서 복무원으로 일했다.” 그렇게 통화에서 2년, 다시 심양에 가서 자식들을 한국에 보낸 로인들을 돌보는 일도 2년인가 하고 단동에서 복장점도 잠간 경영하는 등 그녀의 인생수업은 창업이 아닌 생활에 도전하는 것으로 시작되였다. 하지만 무슨 일이나 노력하면 될 것같은 신심이 생기고 시작하면 끝을 보아야 한다는 뚝심이 차츰 생기더란다.

  2. 고향같은 연변에 와 연변사람이 되다

  “23 살 되는 해의 가을, 어쩐지 푹 휴식하고 싶었다. 그래서 복장점을 정리하고 전국 유람을 떠났다. 목적지도 없이 떠난 길이라 남방을 한바퀴 돌고 흑룡강성 이춘에 도착하니 양력설이 다 되였다. 어찌나 추운지 입김이 입밖에 나오자마자 하얀 눈꽃으로 변했다. 고향에 돌아왔다가 따스한 봄이 되자 조선족들의 ‘수도’로 불리우는 연변에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났다. 그것이 첫 연길행이였고 그렇게 도착한 연길은 오늘까지 나의 안신처가 되였다.”

  그녀는 연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이곳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렬차가 황니허역을 지나자 흘러나오는 조선말 안내방송에 놀랐고 연길시에 들어서니 거리마다 즐비한 조선어간판이 눈을 즐겁게 했으며 택시나 뻐스의 조선말안내방송도 귀맛을 당겼다.

  친척이나 친구가 거의 없는 연변이지만 마치 고향에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 살리라!) 그녀는 민박에 짐을 벗어놓고 세집을 구하러 뛰여나갔다.

  3. 구직자로부터 사장으로 되다

  인 터넷대화방에서 사귄 연길의 친구의 안내로 세집을 구했다. 그 때 300원이면 꽤 널직한 방을 구할 수 있었지만 직업을 구하는 것이 의사일정에 올랐다. 식당일이나 보모일은 많았지만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어딘가 좀 도전하고 싶은 생각에 광고신문을 올리훑고 내리훑던 중 이란 광고에 눈길이 멎었다. 보험회사 직원이면 엘리트계층에 속하지 못해도 꽤 인기가 있던 세월이였다.

  “보 험회사 학습을 한달인가 두달인가 하고 대리인자격증을 따냈는 데 그 때 나한테 뜻밖의 기회가 생겼다.” 연길에 와서 사귄 남자친구의 삼촌이 하던 광고회사를 접고 더 큰 무대인 심양으로 진출하게 되였는 데 80여평 되는 광고회사를 헐값으로 처리한다는 것이였다. 현장에 가보니 여러가지 간판을 제작하는 업체였는 데 이름모를 기계와 도구가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그 때까지 간판이라는 게 그냥 영업집 바깥벽에 걸어놓는 것 정도로 알았다. 그것을 어떻게 제작하고 어떻게 일감을 구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였다. 그래도 수년간 경영한 남친 삼촌이 돈을 벌어서 심양에 가는 것을 보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일년안에 갚기로 하고 19만원에 회사를 맡았다. 보험회사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남친 삼촌한테서 제작기술을 배우고 합작회사들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거래방식을 익혔다.

  그렇게 연길에 온지 석달만인 2009년 9월에 25살난 그녀는 연변에서 가장 나어린 광고제작회사 녀사장이 되였다. 그시절 그만한 규모의 광고제작회사는 2 ,3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광고회사 생산차간에서 직원들과 함께(가운데).

  4. 초년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 바꾼다

  “금 방 사회에 나왔을 때 ‘초년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 바꾼다’더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힘이 되군 하였다. 그런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생소한 광고회사를 경영하자니 정말 힘에 부쳤다.” 그녀는 광고디자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제작, 설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직접 자기 두손으로 해야 했으며 지어는 회계장부까지 도맡다싶이 하다보니 하루에 잠잘 시간이 다섯시간 밖에 안되였다. 때로는 어린 아이를 업고 다니면서 전단을 뿌리고 멀리 훈춘, 돈화, 왕청을 찾아 거래처를 늘였다.

  “앞 으로 시간이 나면 대학에 다닐 것이다. 그리고 나의 창업과 분투의 과정을 책으로 쓰고 싶다.” 해놓은 일도 많고 할 말도 많지만 어디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면서 그녀는 “벌써 12년 세월이 지났고 회사도 80평방메터로부터 3000여평방방메터 규모로 커졌다. 설비도 모두 현대화 지능설비로 바꾸었고 직원도 수십명으로 늘었으며 회사내에 식당과 직원숙소도 마련하였다.”고 회사를 단마디로 소개한다.

  “거 룡의 성장은 매개 직원들의 노력과 갈라놓을 수 없으며 더욱 고객들의 다년간의 지지와 신임과 갈라 놓을 수 없다. 돌이켜보면 거룡은 시종 ‘신용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전문성으로 경전을 만든다.’는 리념을 견지하였으며 시장과 광대한 고객들의 인정을 받아 광고가공제조업계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류령령은 연변거룡광고유한회사를 거룡이라고 자랑차게 지칭한다.

  5. 기업우세를 리용하여 업무령역을 넓혀가다



  광천수 생산차간을 찾은 류령령 리사장.

  “하 는 일이 광고다보니 저도 모르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거래처가 늘었는 데 이 기업우세를 충분히 리용하면 좋은 자원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도문시 장안진 광제촌에 자리잡은 길림성백람음료수유한회사와 합작하여 광천수를 판매하고 연변국영채색포장유한회사와 합작하여 포장물을 판매하고 있다.” 기실 류령령은 매개 합작을 통해 윈윈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모든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가져다 주고 고객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간판제작과 질좋고 신용이 있는 후속봉사를 통해 많은 거래처를 확보한 거룡회사와의 합작은 이 두회사가 곧 그만한 고객군을 늘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경쟁이 치렬한 음료수회사들가운데서 길림성백람음료수유한회사는 현재 연변내 3000여개 회사에 당회사 이름으로 명명한 음료수를 공급하는 음료수회사로 발돋음하여 한달 주문판매량이 4000상자에 달하여 합작전에 비해 판매량이 대폭 제고되였고 연변국영채색포장유한회사는 합작을 통해 각종 포장업무를 곱절 늘였으며 거룡회사는 대중들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런 상품들을 통해 대량의 광고를 제작하게 되였는 데 일간 주문량이 수십건으로 늘었다. 이러한 합작을 통해 그녀는 길림성백람음료수유한회사의 35% 지분과 연변국영채색포장유한회사의 51% 지분을 가진 주주로 되였다.



  포장물 샘플 전시청에서 수요량을 알아보는 류령령 리사장.

  집 에서는 두 아들의 자상한 어머니이지만 밖에서는 3개 회사 백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전도 유망한 기업가인 류령령은 연변에 와서 분투한 12년을 돌이키면서 “행복은 분투로 이루어진다. 래일의 행복은 바로 오늘의 분투가 아닐가 생각한다.”는 의미 깊은 말로 인터뷰를 마치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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