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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기행] 장백산 아래 황송포에 다녀오다(상)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09.14일 11:17
  들어가는 말

  작년(2020년)도 8월 하순에 장백산 아래 이도백하의 약수동에 친구 두분과 함께 5일간 뜻깊은 오지 려행을 다녀와서 〈장백산 아래 약수동에 다녀오다〉라는 긴 기행 수필을 《길림신문》에 발표하였었는데 반향이 비교적 크고 효과도 좋았었다. 올해는 려행에서의 ‘홀로서기’를 실천해볼 목적으로 그냥 배낭을 달랑 메고 홀로 려행길에 올라 10일간 려행을 했는데 장백산 아래 황송포에는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5일간 체류했었다.

  료양이 결부되지 않은 순수한 려행길은 말그 대로 몸이 고달프다. 하여 려행단을 따라 려행하는 경우에는 빼곡히 안배된 려행 내용을 소화하다 보면 매일매일 피로가 쌓이기가 일쑤이다. 하지만 홀로 떠난 려행은 좀 고독하기는 해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료양을 결부시킬 수 있기에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해서 좋다. 작년도에 고기잡이의 유혹에 빠져 약수동에 5일 동안 체류하면서도 황송포는 항상 잊지 않고 그 어느 때엔가 꼭 다녀오리라 마음속으로 다졌었다.

  그 소박한 념원이 올해 실현되였다. 장백산 원시림 속에 자리 잡은 오지 마을에서 며칠간 보내면서 산과 강, 공기와 나무, 인공미와 야생미, 건설과 파괴 등 여러가지에 대해 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였다. 황송포에서 보낸 5일간의 생활과 그 생활에서 얻은 인상 쪼각 내지는 사색 쪼각들을 모아 오늘 〈장백산 아래 황송포에 다녀오다>라는 제목으로 기행수필을 만든다. 어찌보면 작년에 발표한 기행수필-〈장백산 아래 약수동에 다녀오다〉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겠다.

  장백산과 황송포

  황송포에 가기전에 나는 이틀간 이도백하에 들려 그립던 미인송을 만나보고 이도백하 강반에 아담하게 건설된 산책로와 미니공원을 돌아보았다. 낮에는 기온이 30도를 넘어 움직일 수가 없기에 새벽 시간과 저녁 시간을 내여 이전에 다녀오지 못한 미인송공원과 습지공원에 부랴부랴 다녀왔는데 그야말로 ‘말 타고 꽃구경’이였다. 황송포는 이도백하에서 택시로 60원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는데 나는 이도백하에 물건을 구입하러 온 민박집 주인아주머니의 차 신세를 지게 되였다. 려행 고봉기여서 그런지 길에는 차들이 많았다.

  황송포(黄松蒲)라는 이름이 어떻게 해석이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의 리해에 따르면 이 이름은 황송(黄松)과 포(蒲)의 결합체라고 생각된다. ‘황송’은 청송, 홍송, 흑송, 백송처럼 색갈에 따라 분류한 소나무의 일종이고 ‘포’는 사전의 해석에 따르면 ‘부들과의 여러 해살이 풀’이다. 황송포는 림장의 이름인데 장백산 북쪽 풍경구(长白山北景区)의 신산문(新山门)과 불과 6키로메터의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하기에 그들은 ‘장백산 아래 제일 림장’이라고 자랑차게 말하고 있다.

  황송포는 려행하기에 알맞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장백산천지와 가깝기에 많은 분들이 이곳에 들려 하루밤을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천지에 가서 구경한다. 려행객들이 몰리는 오전에 천지를 구경하려면 두세 시간은 기다려야 하지만 손님이 적은 오후에는 기다릴 필요가 없이 쉽게 구경할 수 있다. 황송포에 가면 바로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기에 인기가 만점이다. 그리고 만방에 이름을 널리 날리고 있는 ‘대희태하’(大戏台河) 의 멋진 야경을 구경하려고 황송포를 찾는 려행객도 아주 많다.

  황송포의 남다른 매력은 또 료양하기에 좋은 곳이라는 점이다. 료양하는데 좋으려면 여러가지 조건이 구비되여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조건이 바로 맑은 물과 맑은 공기, 조용한 환경이다. 이곳에는 묵룡하(墨龙河) 혹은 소흑하(小黑河)라고도 불리우는 맑은 강이 있고 특히 이곳은 ‘공기의 비타민’으로 불리우는 음이온이 많기로 유명하다. 마을 주변의 원시림에 들어서기만 해도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곳의 공기 속에 포함되여있는 음이온의 함량은 보통 지방의 몇십배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는 것도 료양의 별미라 할 수 있겠다.

  원시림과 산책길

  날이 갈수록 인공림의 매력은 대단하다. 공원에 멋지게 자라난 인공림도 멋지고 도로변에 끼끗하게 자라난 가로수도 멋지다. 그리고 인간의 손에 의해 기묘하거나 기괴하게 자라난 ‘화분통의 나무(盆树)’도 멋지기는 마찬가지이다. 나라가 발전하면서 더욱 커진 인공림은 보기도 좋고 가치도 높다. 인류사회가 지상의 락원으로 건설하려면 인공림 건설은 불가피적이고 그 발전 전망도 무궁하다. 일전에 화룡시 광평림장의 끝없이 펼쳐진 인공림을 보면서 무척 감동을 받기도 하였다.

  원시림은 인공림에 비해 규칙적이지 못하고 ‘무질서’하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들이 되는 대로 자라났고 귀중한 나무와 싸구려 나무들이 ‘되는 대로 어울려’ 자라났다. 하지만 이렇게 ‘무질서’하고 ‘되는 대로 어울려’ 이루어진 원시림이 사람들에게 주는 감각은 자연스러움과 신성함이다. 원시림에서는 태고의 깊이 있는 숨결이 느껴지지만 인공림에서는 그런 숨결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생활의 질이 제고됨에 따라 삼림 속에 나무판자로 산책 길을 만드는 일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장춘의 정월담이나 연길의 모아산이나 다 산책 길이 잘 뻗어있다. 이번에 황송포 원시림에 건설된 산책 길을 거닐면서 이런 산책 길이 정말 필요하구나 하는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원시림을 보호하는 측면에서도 필요하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안전한 산책 길을 거닐면서 음이온이라는 ‘공기의 비타민’을 한껏 흡수하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원시림의 산책 길에는 나같은 장정 셋이 안아야 겨우 안을 수 있는 거목들도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민박집 주인아주머니의 소개에 따르면 그 산책 길 옆에는 머루나 다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끈질기게 달려드는 모기떼에게 쫓기다보니 머루나 다래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산책 길에서 드문 맞띄우는 모습이지만 유람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산책 길가에 볼썽 사나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아름다운 자연과 불협 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송화강과 천지물

  주부(舟夫)라는 필명을 가진 학자 (본명苗勇)의 연구에 따르면 송화강의 이름은 무려 49개 였다고 한다. 지금의 송화강이란 이름은 1426년 명선덕년간(明宣德年间)부터 불리우기 시작한 이름인데 따져보면 근 600년이란 긴 력사 기간에 이름이 고정되였다는 말이다. 쑹카리우라(松卡里乌喇)라는 만족어 원음의 뜻은 천하(天河), 다시 말하면 장백산천지에서 발원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백산천지에서 발원하여 길림성과 흑룡강성의 광활한 땅을 누비며 달리는 송화강은 그 길이가 1,972키로메터로서 중국에서 다섯번째로 큰 강이다.

  주지하다 싶이 열여섯 개의 봉우리에 둘러싸여있는 장백산천지는 휴화산에 물이 고여 이루어진 호수로서 중국에서 제일 큰 화산호이다. 고찰에 따르면 장백산천지는 그 해발고도가 2189.1메터이고 타원형의 모양 새로 되여있으며 남북의 길이가 4.4키로메터, 동서의 넓이가 3.37키로메터이고 수면 둘레의 길이가 13.1키로메터이며 평균 수심이 204메터이다. 제일 깊은 곳은 373메터에 달하는데 세계에서 제일 깊은 고산 호수이다. 천지의 수온은 0.7℃―11℃이고 년평균 기온은 7.3℃이다.

  송화강이나 천지에 대해서는 내가 여기서 구구히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가 다 웬간히는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송화강의 지도를 펼쳐놓고 볼 때마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송화강의 발원지가 두개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하나는 남쪽 발원지이고 하나는 북쪽 발원지이다. 남쪽 발원지는 장백산천지이고 북쪽 발원지는 대흥안령의 지맥인 이러후리산(伊勒呼里山)에서 발원하는 눈강(嫩江)이다. 남쪽 발원지로부터 계산한 송화강의 길이는 1,972키로메터이지만 북쪽 발원지로부터 계산한 송화강의 길이는 2,309키로메터에 달한다.

  도처에 학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어느 한 강의 발원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상당한 학문이 들어있는 줄로 안다. CCTV의 9채널에서 이전에 장강과 황하의 발원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었고 일전에 또 호남성의 상강(湘江) 발원지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었다. 송화강의 공식적인 발원지를 왜 길이가 더 긴 북쪽 발원지를 버리고 길이가 더 짧은 남쪽 발원지를 선택하였을가? 여기에도 깊은 학문이 들어있을 것이다. 이 어려운 과학연구과제(科研课题)는 존경하는 독자 여러분들께 그 연구를 맡긴다.

  묵룡하와 물놀이

  나는 황송포의 유일한 조선족 민박집에 주숙을 정했었다. 림장 마을의 제일 뒤에 위치한 그 민박집에서 약 10분간 걸으면 우리가 표류(물놀이)를 하는 작은 강이 나온다. 여름이면 암석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며 흐르고 겨울에 강은 얼지 않아도 수면으로 빙설이 흩날려서 일년 사계절 새하얀 비단필로 감싼 듯 하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 바로 백하이다. 두도백하, 이도백하, 삼도백하… 그런데 우리가 표류를 하는 강의 이름이 소흑하(小黑河)라고도 불리우는 묵룡하(墨龙河)라니? 아서라, ‘백하’면 어떻고 ‘흑하’면 어떠랴? 표류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음에랴.

  내가 표류를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자 주인아주머니는 흔쾌히 동의하면서 민박집에서 일을 도와주는 80세가 된 자기의 본가집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물놀이를 하자고 하였다. 물놀이를 하자는 말에 80세가 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할머니는 소녀애들처럼 기뻐하면서 즐거워하였다. 워낙 표류를 그렇게 즐기시는 할머니란다. 표류를 하면서 함께 간 사람들이 물치기 놀이를 하여 옷이 흠뻑 젖었었다는 지나간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우리는 무더위를 피해 저녁녘에 표류를 시작하였다.

  사진 찍기에 편리하게 나는 혼자서 배를 타게 되고 주인아주머니와 할머니가 함께 한배를 타게 되였다. 표류에 사용되는 도구는 지극히 간단하였다. 고무로 된 배와 한메터가 좀 넘는 상앗대(삿대)가 전부다. 표류가 진행되는 시간은 50분 좌우였는데 그 시간은 나로 말하면 력사의 미궁 속을 달린 느낌이였다고나 할가, 그 어떤 알 길 없는 인생길을 달려온 듯한 느낌이 자연스럽게 갈마들었다. 배는 내 생각대로 달려주지 않았다. 이리 부딪치고 저리 휘둘리우며 배는 강을 따라 나름 대로 떠밀려내려갔다.

  표류가 나에게 주는 계시는 실로 컸다. 정열적이고 질박한 물싸움놀이는 없었어도 내 마음은 즐겁기만 하였다. 표류와 우리의 인생은 많이도 닮아있다. 내가 아무리 버둥거려도 닥쳐올 시련은 꼭 닥쳐오고야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작은 물배는 휘우뚱거리면서 그래도 종점까지 달린다. 이것 역시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다. 표류에서의 승자는 누구일가? 이리 부딪치고 저리 휘둘리우는 것은 누구나가 비슷하다. 하지만 표류과정에 우리가 경과한 록음 방초 우거진 멋진 경치를 누가 더 많이 감상했느냐가 아마도 승자를 선발하는 기준치로 될 것이다.

  민박집 주인아주머니의 제의로 나와 연길에서 온 최선생네 부부가 함께 내두산을 가보기로 하였다. 내두산은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많이 들어온 이름임에는 틀림이 없다. ‘장백산 아래 첫 동네’, ‘하늘 아래 첫 동네’ 등은 이미 귀에 익은 말들이고 눈에 익은 글들이다. 우리는 내두산 마을에 도착하여 우선 ‘내두산항일유격근거지기념관’을 참관하였다. 참관이 끝나서 마을을 쭈욱 돌아보았는데 우리 민족의 문화를 반영한 그림이나 조각품, 조각상들은 많았는데 실제로 조선족들은 한명도 만나지 못했었다.

  내두산은 장백산과 이도백하 사이에 숨어있는 마을이다. 젖통모양의 산 아래에 위치해있다고 해서 내두산이라 불리우는 이 마을은 깊은 수림 속에 파묻혀있었다. 이전에 내두산에는 이런 말이 떠돌았단다. “보이는 건 백년 산삼이요, 걸채이는 건 십년 록각(鹿角)일세”. 그만큼 약재와 짐승이 많았다는 의미이리라. 그리고 마을이 동떨어진 편벽한 곳에 있었기에 항일 전사들이 이곳에 항일유격근거지를 건립하고 일본놈들과 피어린 싸움을 벌렸으리라.

  내두산의 다른 하나의 볼거리는 마을 어구에 건설된 미니 작가공원이다. 통나무들을 깎아서 만든 미니 공원에는 들어가는 문의 역할을 하는 량쪽의 작은 기둥에 각기 조한 두가지 문자로 ‘내두산 작가공원’이란 문자가 씌여져있고 그 안에 들어서니 ‘작가공원’이란 기둥식의 패쪽과 ‘백천문학’ (白泉文学)이라는 기둥식의 패쪽이 세워져있었으며 그 외에는 여러 작가분들의 이름을 새긴 기둥식의 패쪽들이 세워져있었다.

  그중에 ‘림원춘 몽당치마 문학비’가 있었는데 단편소설 《몽당치마》가 거둔 큰 성과에 비하면 이 문학비가 너무나 초라하다는 쓸쓸한 감정이 느닷없이 솟아올랐다. 내두산 미니 작가공원을 돌아보고나니 그 어떤 격정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초라한 모습 때문에 그만 맥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문학계의 어려운 경제 상황이 그대로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아 실로 마음이 아프다.

  1985년도에 락양에 갔을 때 룡문석굴(龙门石窟)을 돌아보고나서 나는 홀로 백거이(白居易)의 묘소를 찾은 적이 있다. 묘소는 거기서 멀지 않은 향산(香山)에 모셔져있었는데 이하(伊河)다리를 건느니 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 백거의는 우리 나라 당조 때의 저명한 시인이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그의 묘지는 그저 평범한 보통 묘지에 지나지 않았고 찾는 사람도 별반 없었다. 지금은 그래도 좀 건설이 되여 화려하지는 못해도 보기에 썩 편한 느낌이다. 우리 내두산의 미니 작가공원은 언제면 그 초라한 모습을 바꾸게 될는지?

  자연미와 인공미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여 마침내는 밤하늘에 오른 듯한 느낌을 준다는 대희태하(大戏台河)에 다녀왔다. 이 유람지는 주요하게 야경을 관람하는 곳인데 황송포에서 동남쪽으로 약 6키로메터 떨어져있는 곳에 있었다. 이 유람지의 이름이 하도 이상하기에 그 뜻을 물었더니 아는 사람이 없었다. 후에 집에 돌아와 자료를 섭렵하는 과정에 어렵사리 알게 되였다. ‘戏台河’는 만족어 ‘细塔赫’에서 연변되여온 것인데 ‘细塔赫’란 찬물에서 자라는 물고기란다. 이 고기는 아주 큰 데 예전에 이 강에서 살았다고 하여 그 이름을 따다가 클 ‘대’자를 붙이여 ‘大戏台河’로 불리우게 되였단다.

  돌과 물과 빛으로 된 층계

  풍경구에 들어선 첫 느낌이 마치 오색으로 빛나는 색(色)의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였다. 풍경구 전체가 채색으로 단장되여있었다. 나무 판자길을 걸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직경이 한메터는 훨씬 넘는 거목들인데 거기에 인성을 부여하여 ‘양씨네 8형제 나무’(杨家八兄弟树)라는 이름을 달아놓았다. 그 다음 만나게 되는 것이 수시로 색갈이 변하는 폭포인 데 많은 려행객들이 그 폭포를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겠다고 붐비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폭포가 이곳에 만도 아홉개나 된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황홀경이 2키로메터나 련속되니 사람에게 착각이 생길 정도이다. 내가 참으로 밤하늘에 올라온 것은 아닐가는 의심이 든다. 많은 절경들 속에서도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층계폭포였다. 어두웠다가 밝아지는 순간 높다란 나무다리 아래에 물과 빛이 어울려서 만들어진 50여개는 됨직한 층계가 나타나는데 참으로 가관이였다. 자연미와 인공미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말 그대로의 ‘황홀경’이였다. 할머니가 꼭 보고 오라던 ‘돌 우에 올라앉은 소나무’는 끝내 찾지 못하여 후에 사진을 보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모방하여 만든 정경이 있는데 거기에 사용된 작은 등만 해도 몇천개는 될 것 같았다. 이곳에 와서야 ‘황홀경’, ‘별유선경’이란 단어들의 참뜻을 느끼게 된다. 이 황홀경을 보고 난 후의 인상을 다음의 말로 귀납해 본다.

  “이 황홀경은 빛과 소리의 합주곡이고 물과 색갈의 결합체이며 돌과 나무의 사교무이고 자연미와 인공미의 융합체이다.” 독자들에게는 엉뚱한 한마디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말을 구상하느라 나는 오랜 시간 다듬고 다듬었다. 밤이 아닌 낮에 이곳을 찾아 전등 빛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 (다음기에 하편 계속)

  / 길림신문 신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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