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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일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10.08일 10:06
  2018년 62세에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 조선족로인협회 회장직을 맡은 김영희는 언제 어디서나 몸을 내번지고 열정을 쏟아붓는 책임감 높은 사업형 녀성으로 주변에 널리 알려져있다. 뿐만 아니라 남편 허광년과 딸 허금매도 각자의 맡은바 사업터에서 최선을 다해 주렁진 성과를 거두었는바 이들 가정은 말그대로 일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일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터는 바뀌여도 사업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어



  장백조선족자치현 조선족로인협회 김영희 회장.

  “저는 1956년에 장백조선족자치현 록강촌에서 태여난 장백 토박이입니다. 아버지는 해방전에 동북민주련군에 참가하여 정찰원으로 있었으며 해방후에는 장백조선족자치현공안국 부국장, 장백진당위 서기 등 사업을 하면서 리직하는 날까지 사업에 최선했던 분입니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하는 일을 보면서 자랐기에 그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1973년 김영희는 17살이 되던 해에 장백조선족자치현 신방자소학교에 교원으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소학교에서 근무하는 3년 남짓한 동안 그는 로교원들을 따라 허심히 업무를 연찬했으며 몸을 내번지고 일했는데 애숭이로부터 일약 우수교원으로 성장했다.

  “1976년에 저는 통화사범학원에 가서 대학공부를 하게 되였습니다. 배움에 메말랐던 터라 그때에도 공부에 열정을 쏟아부었지요. 그래서 ‘3호학생’까지 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김영희는 장백조선족자치현제3중학교에 배치받아 새로운 일터에서 교원사업을 시작하게 되였다. 직장은 비록 바뀌였지만 사업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은 더욱 불타올랐다. 1987년에 사업의 수요로 장백조선족자치현서류국에 가기전까지 8년 동안에 그녀는 수차 학교와 현 우수교원으로 당선되였으며 현선진인물, 길림성 우수반주임 그리고 1985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맞는 교사절에는 백산시 우수교원으로 당선되여 백산시정부가 조직한 표창대회에 참가했다.

  “1987년 서른한살이 되던 해에 저는 사업의 수요로 현서류국에 가게 되였습니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생소한 일이라 새로운 도전이였지요. 이곳에서도 역시 책임감과 열정으로 시작을 뗏지요. 그리고 그렇게 퇴직할 때까지 쭉 20여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김영희는 장백조선족자치현서류국 국장으로 있으면서 직원들과 함께 서류 정리와 편목, 개발과 리용에 살손을 대 서류사업의 전면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장백조선족자치현서류국은 선후로 길림성서류국으로부터 ‘3급 서류관’, ‘2급 서류관’, ‘1급 서류관’으로 선정되였고 김영희 국장은 두번 길림성 서류계통 선진인물로 당선됐다. 그녀는 또 현과 백산시의 당 대표, 현인대 대표, 현정협 위원으로 있으면서 대표와 위원의 사명감을 안고 책임을 다하였다.



  김영희 회장(좌4)은 조선족로인들을 조직하여 여러가지 활동에 적극 참가하고 있다.

  “저는 사업에 참가한후 나라의 개혁개방을 시작으로부터 직접 경험한 일원으로서 나라의 발전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신근한 노력과 헌신적인 분투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변강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선족으로서 자신의 힘과 열의를 조국 건설과 개혁개방에 이바지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합니다.”

  2011년 퇴직 후에도 김영희는 손에서 일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현로간부국 활동중심 문예협회 부회장, 조선족민속문화연구회 회원 그리고 2017년 3월에는 현로간부대학 부교장으로 있으면서 재직시절 못지 않게 바삐 돌아쳤다.

  “현로간부대학에 있는데 얼마 안돼 조선족로인협회에서 회장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이 왔습니다. 그때 마침 또 일본에 있는 딸이 제가 가서 어린아이를 돌봐주기를 바랐지요. 고민하다가 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두말 없이 고향에서 로인들을 위한 일을 하는 데 찬성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2018년 말부터 현조선족로인협회에 와서 로인들의 뒤바라지를 하게 되였습니다.”

  로인협회의 활성화를 위해 김영희 회장은 ‘젊은 로인’들을 협회에 가입시키는 데 모를 박았는데 이 몇년간 70명에 가까운 ‘젊은 로인’들이 대오에 합류해 로인협회의 활동에 전례 없는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로인협회 활동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위챗그룹을 통한 새로운 활동방식을 고안해냈다. 각 분회를 동원하여 위챗그룹에 문예종목을 올리도록 하였으며 자료사진과 동영상을 전송해 비록 정상적인 모임은 중단되였지만 활동은 중단되지 않도록 보장함으로써 로인들의 생활을 풍부히 하려고 노력을 경주했다. 이렇게 1년 동안에 김영희 회장은 위챗그룹을 통해 30여차에 달하는 문예활동을 조직했다.

  코로나19 최전선에 자신들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싸우는 의료일군들을 고무하기 위해 김영희 회장은 로인협회의 160여명 회원들을 동원하여 모금활동을 조직해 16,750원의 성금을 모아 관련 부문에 변강 조선족로인들의 따듯한 마음을 전달했다.

  남편 허광년도 일에서 내로라하는 ‘감농군’



  2018년 일본에서 딸 일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김영희(우1)와 남편 허광년(좌1).

  김영희 회장의 남편 허광년도 알고 보면 재직시절에 맡은 사업에서 누구 못지 않게 열성을 몰부어 온 ‘감농군’이다. 현에서 선전부 부부장으로 있으면서 문명단위와 문명가정 건설을 책임지고 성급 문명도시와 성급 위생현을 건설하기 위해 몸을 내번지고 사업했으며 1988년 장백조선족자치현 성립 30주년을 맞으면서 처음으로 생방송을 통해 대회 성황을 보도하는 임무를 원만히 완수하여 호평을 받았다.

  선전부 부부장을 담임하면서 그는 또 현오강사미삼열애판공실 주임, 현법제판공실 주임, 현력사지판공실 주임 등 여러가지 직무를 겸임하면서 쉴새 없이 일터에서 바삐 보냈다.

  1990년 사업의 수요로 현당학교 부교장으로 자리를 옮겨 교학과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1994년 현인대상무위원회로 가기전까지 2편의 론문을 간행물에 발표했다. 현인대상무위원회에서 허광년은 민족교육과학문화위생판공실 주임으로 있으면서 선후로 현 자치조례, 광산자원 관리조례, 도시 관리조례, 집체림 관리조례 등 지방조례를 제정하고 신청, 심의하는 사업에 직접 참여했으며 수차 우수공산당원, 민족단결진보 선진사업일군의 영예를 지녔다.

  퇴직 후에도 허광년은 《장백조선족민속자료》집 편찬에 참여했으며 2016년부터는 장백조선족민속문화연구회에서 몸을 담그고 만년의 열의를 붙태우고 있다.

  북경대학 졸업한 딸 허금매는 일본 교도통신사 기자



  외국 통신사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수한 딸이 있어 행복한 김영희가족.

  2003년 김영희 회장의 딸 허금매는 대학입시에서 길림성 소수민족 수험생 중 1등, 백산지구 1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북경대학 국제관계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도꾜대학 장학생으로 뽑혀 연구생공부를 했으며 2010년에 일본 교도통신사(日本共同社) 국제국에 취직했는데 허금매는 교도통신사가 중화권에서 처음으로 공개채용한 중국직원이기도 하다.

  허금매는 현재 교도통신사에서 중국어와 한국어 담당기자 및 편역을 책임지고 있는데 선후로 일본방위청 장관, 내각관방 장관, 일중우호협회 회장 등 고위급 관료들을 취재했다. 그가 2013년에 쓴 중일관계 관련 기사는 당해 교도통신이 선정한 중일관계 10대 뉴스에 오르면서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허금매는 일본에 체류하는 중국사람들의 합법적 권익을 수호하고 조국의 영예를 빛내기 위해 외국 통신사라는 특수한 일터에서 사명감을 안고 자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중일 두나라의 여러 령역에 관련된 보도에서 시종 공정하고 객관적인 원칙의 보도를 견지하고 있다.

  “조국의 변강인 장백조선족자치현에서 로인들을 위해 퇴직 후에도 자신의 빛과 열의를 이바지할 수 있고 석양을 불태운다는 것이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힘이 닿는 한 로인협회를 위해 봉사하는 심부름군이 되여 열심히 뛸겁니다.” 김영희 회장은 오늘도 압록강반에서 조선족로인협회를 더 잘 꾸려나가기 위해 로심초사하고 있다.

  /길림신문 리철수 최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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